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40
240.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은데.’
과대망상증 환자의 허언(虛言) 같은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가지 꿈을 동시에 꾼 것 같았다.
‘친아버지는 천마신교의 교주고, 친어머니는 검성? 이런 건 이야기책으로 내도 설정이 비현실적이라고 욕을 먹을 거야.’
거기에 연가장의 둘째로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끔찍한 사고로 잃고, 동굴에 갇혀 명문세가의 잘생긴 대협과 마음을 나누다 혈교에게 추격당하다 살해당하고 어린 시절로 회귀하는 꿈까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허황된 꿈이람.’
그래도 좋았던 거 같기도 하다.
‘꿈속에서까지 어느 쪽에도 어머니가 없는 건 좀 아쉽지만… 내 상상력이 부족했나.’
이 정도면 충분한 풍부한 상상력 같은데.
‘그런데… 우리 아빠가 누구였지?’
피식 웃으며 이린은 눈을 떴다.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빠?”
“린아 괜찮니?”
익숙한 얼굴에 이린은 안심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옆에서 당황해 숨을 삼키는 소릴 들으며 피식 웃은 이린이 중얼중얼 말을 이어 갔다.
“아빠, 나 이상한 꿈을 꿨어. 어느 날 아빠도 오빠도, 나도 죽었…… 살아 있는데?”
이린은 양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갑자기 잠이 달아나 벌떡 몸을 일으켰다.
“린, 린아, 천천히!”
“괜찮은 거냐?”
양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린의 고개가 급하게 돌아갔다.
뭐야, 이거 뭔데.
양옆에 앉아 있는 곽선후와 연적훈을 보는 이린의 시선에 혼란이 가득했다.
“아, 어, 아빠?”
“그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연적훈이 대답했다.
“아…버지?”
“그래.”
이번에는 왼쪽에 앉아 있는 곽선후가 대답했다.
이린은 잠시 현실 도피를 하고 싶어졌다. 아니, 뭐가 현실인지 잘 구별이 가질 않았다.
“나… 나 지금 몇 살이지?”
“스물셋.”
“스물셋”
“스물셋?”
동시에 들려오는 대답에 이린이 되물었다. 열여덟도, 스물여덟도 아닌 스물셋?
혼란스러움을 덜기 위해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것을 물었다.
“내 이름이… 연이린 맞지?”
“그래.”
“응.”
그리고 복잡한 가운데서도 떠오른 기억들 중 가장 강렬한 사실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럼 내 어머니는… 검성이 맞아?”
“그래.”
“……그래.”
단호한 곽선후의 대답과 달리 연적훈의 대답은 몹시 느렸다.
“그럼 내 아버지는?”
이번에는 곽선후가 이린의 손을 꼭 붙잡았다.
곽선후와 눈을 마주친 이린이 혼란스러운 듯 연적훈을 응시했다. 순서가 엉망진창이지만, 분명 저 얼굴은 꿈속에서 본 아빠가 맞았다. 곽선후와의 기억에는 없는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그럼… 아빠는?”
“나는… 나는…….”
어찌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연적훈이 울컥한 듯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네 아빠지….”
“아빠아….”
“…….”
갑자기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한 연적훈과 연이린을 본 곽선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린의 기억이 제대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 혈교 새끼 그냥 빨리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설마 그 상태에서도 움직여서 그런 폭발을 낼 줄이야.
당시 그놈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이린에게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언제 그렇게 가까이에 온 건지 알 수 없는 남궁청휘와 연적훈이었다. 바보들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을 본 곽선후가 밀어내지 않았다면 적어도 두 사람은 침대에서 못 일어나는 몸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됐으니까 그만 떨어져.”
부둥켜안고 있는 연씨 부녀를 강제로 떼어 낸 곽선후는 이린의 눈물을 닦아 주며 정리했다.
“나는 네 친아빠고, 저쪽은 양아빠. 됐지?”
“그건 알겠는데… 그럼 왜 아버지가 아니라 아빠가 나를 키운 거야?”
“그건, 실은 내가 네 외숙부이기 때문이란다.”
훌쩍이며 눈물을 닦아 낸 연적훈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럼 검성이 연가장 출신이었어?”
“그래. 네 어머니가 너를 낳고… 음… 아무래도 본인은 아이를 키우기에는 적합지 않은 환경이고 아버지는 저분이시고 하니 내가 너를 키우게 된 거지.”
설명을 들은 이린은 확인하듯 물었다.
“그럼 혹시, 나랑 동행했던 그 여협. 그 사람이… 검성이야?”
“…그래.”
한숨과 함께 나온 대답에 이린은 다시 천천히 침대 위로 쓰러졌다.
“린아!”
“린아, 괜찮니?”
그렇게 만나 보고 싶던 어머니와 함께 산적 토벌까지 하고, 나중에 만나게 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니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본인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거였냐고!’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그럴 때가 아니었다.
‘어라?’
그리고 문득, 이린은 자신이 중요한 걸 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빠, 오빠는? 오빠는 어디 있어?”
“아, 그건….”
그동안 함께하며 한 번도 연이현을 본 적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연적훈이 나와 있는 지금 연이현이 연가장을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어쩐지 불안함이 전신을 엄습했다.
연적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현은 지금….”
* * *
“알아본 바로는 최근 혈교의 영역에 침범한 자가 있어 지금 혈교에 구금 중이랍니다.”
“설마….”
“듣기로는 굉장히 잘생긴 청년이었다는 것 같으니 아마도 예상이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연화문이 조카의 행적을 알아내기 위해 찾은 것은 주세하였다.
주세하가 다시 혈교로 돌아간 이후로, 두 사람은 둘만이 아는 암호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혈교의 눈을 피해 몰래 연락을 하고 있었다.
“저도 도와드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위지선… 위지 부교주가 직접 감시하고 있다니 제 선에서 풀어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위지선? 위지운의 아들 말인가?”
“네.”
“그자가 대체 왜?”
“그것까지는 저도 알 수 없군요. 하지만 일단, 아무리 검성이라 해도 혼자 혈교에 쳐들어가서 구출해 내는 건 포기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리인가.”
연화문에게서 전수받은 역용술 덕분에 운신이 편해진 주세하는 모처럼 찻집의 별실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혈교가 하는 짓은 별 볼 일 없어도 보신에는 꽤 신경을 쓰니까요.”
“별 볼 일 없는 것치고는 강호를 오랫동안 뒤흔들어 왔지 않나?”
“푸훗.”
연화문의 말에 주세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자는 강호를 뒤흔들 배포도 없는 자입니다. 예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요. 그저 이전 전대 교주가 세운 계획을 아직도 그저 찔끔찔끔 건드리고 우왕좌왕하는 정파의 모습을 보며 자위하고 있을 뿐이에요.”
주선하는, 제 손으로 직접 정파의 고수들을 무너뜨리고 내부의 고름을 짜내어 새로운 강호의 질서를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금의 교주는 어떠한가?
이상도 없고, 탐욕과 불만에 가득 차 어설픈 개혁을 꿈꾸는 자들을 부추겨 갈등을 만들어 소모할 뿐이다.
운이 좋으면 남궁세가의 일처럼 큰 음모로 번지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저 작은 소동으로 끝나는 정도였다.
‘그렇게 끝나서는 정작 아무것도 변할 수 없건만.’
벌써 여러 번 같은 방식으로 일이 일어났으니, 이제 제법 머리가 굴러가는 자라면 혈교의 부추김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터지기 직전의 고름이라면 작은 자극에도 터질 테지.
교주의 곯은 상처처럼.
‘하지만 정당한 분노이든, 억하심정인 불평불만이 쌓인 것이든 터지기만 하면 상처는 남는 법이지.’
거기에 아까운 신교의 교인들까지 말려드는 것을 막으려 부단히 노력해 왔으나 허사였다. 아무리 신교의 신자였다 하여도, 한번 휩쓸린 자들은 쉬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했다. 세하가 그들 모두를 책임지려다 실패해 혈교로 돌아와야 했듯이.
그리고 이제 세하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은 지나갔다.
“이제 저는 곧 혈교에서 손을 뗄 겁니다.”
“꽤 오래 걸렸군.”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래 걸렸을 뿐이지요.”
오롯이 신교와 함께하기를 원하는 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혈교와 너무 오랫동안 함께해 온 탓이었다. 아무리 세하가 신교의 교리로 그들을 설득하려 해도 혈교에 가까워진 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온다 한들, 그들을 어찌 믿을 수 있을까.
혈교에 복귀한 세하가 그동안 한 일은 힘없는 신교인들과 그간 몰래 모아 놓고 빼돌리지 못한 재산들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상단 역시 실속 있는 부분은 빠르게 정리해 대리인을 내세워 새로 만든 상단에 팔아 버리는 방식으로 살길을 도모하고 있었다.
“윤주는 어찌하겠다고 하지?”
“대모님은 저와 함께하실 겁니다.”
신교의 대모. 제갈윤주는 세하가 부재한 동안 힘겹게 신교를 지켜 온 이였다. 당연히 앞으로도 함께할 예정이었다.
“그 애가 혈교에서 벗어나면 언젠가 만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옛 벗.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제갈윤위와 제갈윤정은 얼마나 만나고 싶어 할까.
“대모님도 말씀은 아니 하시지만 만나고 싶어 하실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하지만 교주가 너희를 쉽게 놓아줄 것 같지는 않은데.”
“알아서 척척 돈 벌어 오고, 수발들어주고, 화풀이도 받아 주는 존재가 사라지겠다고 하면 그야 가만있지 않겠죠.”
지금 현재 혈교 내에서 주세하는 황실에 끈을 대어 황위 다툼에서 승리하도록 뒷바라지했지만, 정파의 급습으로 몰락하자 사람만 빼앗기고 버림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실제로도 지금 황실과 연락하고 있지 않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고.
‘하지만 혈교가 그쪽에 손을 뻗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연을 끊은 거지.’
황궁과 태후의 사가에 남겨 둔 신교인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자신이 찾아올 때까지는 절대로 신교에 연락해서도 찾아와서도 안 된다고. 설령 자신이 죽었다는 연락이 오더라도.
그러니 이미 그쪽은 걱정하지 않는다. 안전만 지켜진다면, 태후는 이미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이가 아니니까.
신교의 중요한 무인들은 모두 넘겨주어 수족으로 부리고 있고, 물질적인 지지는 황룡전장을 장악한 진사린이 충실히 해 주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본인의 역량이 더 뛰어나니 자신이 필요하지 않았다.
얼마 전 어린 황제의 용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도 세하가 걱정할 바는 아니었다.
태후에게는 황족들 중 누구보다 고귀한 혈통과 뛰어난 정치력이 있고, 결코 모자라지 않은 탐욕마저 갖췄으니.
‘사촌 오라비 따위는 밀어내고 전장의 소장주 자리를 쟁취한 진사린을 보며, 과연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까?’
황실은 세하가 가장 바라 마지않던 길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혈교 역시 그리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역시 혈교가 건재하면 제가 쉽게 떠나기 힘들 겁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고 싶다는 것인가?”
“이해가 일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일 정파에서 혈교를 친다면, 신교는 그 틈에 무사히 혈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혈교에 붙잡혀 있는 자가 연이현이 맞다면 어떻게든 안전을 확보해 보겠습니다. 정파를 설득해 주십시오. 혈교의 본거지를 알아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