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68
68.
“그나저나,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던데. 무슨 일로 또 이렇게 아이들에게 겁을 주고 계신가요?”
“아가씨가 참견하실 일이 아닌 듯하오만.”
“이 아이들에게 볼일이 있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라서. 얼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 계시던데, 확실히 어제 듣기로 귀 상단에서는 얼음을 취급하지 않는다던데요?”
그렇게 말하며 소녀가 힐끗 뒤를 돌아보자 그 뒤를 따르던 호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말씀대로입니다.”
“얼음을 취급하지 않는 상단에서 왜 얼음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으신지 모르겠군요. 구매하고 싶으신 거라면 우리 쪽에서 연결해 드릴까요?”
“그……런 건 아니지만.”
진명현은 그렇다 치고 부모 잘 만났을 뿐인 꼬마 계집애에게까지 밀려나야 하는 건 원통했다. 그러나 이 이상 고집을 부려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내는 순순히 물러났다.
“제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잘 가요.”
가볍게 사내를 일별한 소녀는 몸을 돌려 마선과 눈을 마주쳤다. 아니, 소녀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질 않으니 어쩌면 마선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전과 다르게 오늘은 이상하게 겁먹은 것 같네. 예전에는 굉장히 당당했는데.”
“그건…….”
찔리는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마선은 순진하진 않았다. 그것보다 어제는 굉장히 다급해 보였던 이 아가씨가 왜 갑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걸까. 그 하얀 뱀은 오월이와 함께 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왔으니 아가씨가 그사이 뱀을 찾았을 리는 없는데.
“저기. 저에게 볼일이 있으시다고…….”
“맞아.”
얼굴이 보였다면 싱긋 웃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 밝은 목소리와 함께 소녀의 뒤쪽에 있는 호위들의 지쳐 보이는 얼굴이 신경 쓰였지만 마선은 동요를 드러내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했다.
“실은 그저께 내가 키우던 뱀을 잃어버렸거든.”
“아, 예. 어제 얼핏 들었습니다.”
“비늘은 흰색인데 약간 푸른빛이 돌아. 전체 길이는 이 정도. 두께는 어른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정도?”
“예……에.”
오늘 아침에도 오월이의 품에서 탈출하기 위해 파닥거리던 그 뱀과 정확히 일치하는 특징이 하나씩 나열될 때마다 마선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혹시 이거 뭔가 알고 추궁하는 게 아닐까?
자신은 그렇다 치고 뒤에 있는 아이들이 티를 안 내고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너희들이 이 동네는 잘 안다며? 혹시 찾아줄 수 있을까 해서. 물론 찾아주면 충분한 사례는 할 거야.”
“사례요?”
귀가 솔깃해지는 단어에 마선의 동공이 흔들렸다.
원래도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공돈까지 들어온다니 더할 나위 없었다.
“응. 대신 다치지 않게 포획해서 데려와야 해. 연가상단에 찾아와 ‘청아’를 찾았다고 하면 들여보내 줄 거야.”
“청아, 요?”
“응. 그 아이 이름이야. 그럼 잘 부탁해.”
제 할 말만 남긴 연가장의 아가씨는 호위무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아가씨의 모습이 멀어지자 아이들 중 일부가 얼굴이 상기되어 마선에게 속삭였다.
“언니, 언니! 들었어? 뱀을 데려오면 돈을 준대!”
“……어어. 그래.”
“언니는 원래 돌려준다 그랬잖아. 돌려주고 돈 받자. 응?”
“으응. 그래.”
신이 난 아이들과는 달리 마선은 심란했다. 갑자기 저러는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그저 불안하고 걱정될 뿐이었다.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서 생각하자.”
“응!”
그리고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뒤를 몰래 쫓고 있는 그림자들을, 아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까 연가장 아가씨를 보니까 저렇게 얼굴 철저히 가린 아가씨들 행세하며 사기 쳐서 돈 버는 것도 방법이겠다 싶어서.”
걸리면 맞아 죽을 가능성이 크지만.
“어떻게?”
“으음. 일단 니들 좀 크고 나서 해야 뭘 하든 말든 하겠지.”
마선은 또래에 비해서도 키가 큰 편이었고, 머리 회전이 빨라 적당히 말을 잘 꾸며 낼 자신이 있었다. 뒷골목에 굴러다니는 남자애들 몇몇 끌어들여 호위무사로 꾸미고, 어린 여자애들은 좀 더 크면 몸종인 척하고, 오월이같이 작은 애들은 제 여동생으로 가장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거 괜찮은 생각 같은데, 누님. 귀한 집 아가씨들은 얼굴 가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 같고.”
“그렇지? 적당히 이름 사칭하기 좋아 보이는 집안이 어디가 있을까.”
마선의 의견에 동의한 채석이 오늘 벌어 온 돈으로 산 먹을 것들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며 말했다.
“연가장이 제일 좋지 않아? 딱 얼굴 가리고 다니는 아가씨가 있고, 호남제일미소년이랑 엮이게 도와주겠다고 하면 다들 홀딱 넘어올걸.”
“나중에 걸려도 용서해 줄 거 같고.”
설득력 있는 주장들에 곧 감정적인 반박이 추가되었다.
“오, 뻔뻔한걸. 너 저번에 하오문 출신 건달한테 걸려 처맞을 때 구해 준 것도 연가상단 사람 아냐?”
“그 아저씨는 그냥 연가상단 일꾼인 거지. 상단 주인도 아니거든?”
“거기 아저씨들 착하더라.”
“맞아.”
웅성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마선은 한숨을 내쉬었다. 채석이 말한 조건만으로 생각하면 연가장이 가장 좋긴 했다. 물론 너무 가까운 지역에서 사기를 치면 걸리기 쉬우니 다른 지역에서 가서 해야 하는 단점도 있었지만.
“언니 얼굴 다친 거는 이제 괜찮아?”
“으응. 괜찮아.”
아이들이 얼리기 위해 떠 온 맑은 물 중 일부로 상처 부분을 닦아 내던 마선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가씨가 자신에게 주고 간 손수건으로 향했다. 고운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손수건은 얼핏 보아도 고급품에 좋은 향기까지 나는 것 같았다.
마선의 삶에서 이런 예쁘고 고운 소품이란 인연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라 몇몇 아이들이 마선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반짝이는 눈으로 힐끔거리고 있었다. 마선이 상처를 닦고 있지 않았다면 보여 달라고 떼를 썼을지도 몰랐다.
‘역시 거긴 빼자.’
연가장을 건드리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지역이 가까워 들키기 쉬운 것도 있고, 워낙에 평판이 좋은 것이니 잘못하면 돌 맞을 거 같기도 하고.
마선은 조용히 흔들렸던 마음을 정리했다.
“언니, 물 다 채웠어!”
어제오늘 잘 먹어서 얼굴이 반질반질해진 아이들이 얼음을 얼릴 수 있도록 물을 잘 채워 놓은 나무통을 놓고 부르자 마선은 청아를 찾았다.
“청아 데려와.”
“얘 이름은 청아래?”
“그래. 아마도.”
오월이의 손에 내내 시달려서 지쳐 있던 뱀은 물이 채워져 있는 나무통 앞으로 들고 가자 이젠 알아서 물을 얼렸다.
카아아아아-
“잘했어! 고기 더 먹을래?”
키이이-
마선은 얼음이 잘 얼었는지 확인한 후, 귀하신 몸인 청아에게 고기를 먹였다. 너무 혹사시킨 걸까 제대로 먹질 못해서 그런 걸까. 어딘가 지쳐 보이는 것이 좀 불쌍해 보이기도 했고.
“언니들 갔다 올게, 얌전히 있어. 뱀 괴롭히지 말고.”
“이거 오늘 저녁에 갖다 주기로 한 거지?”
“응. 수레에 옮겼으니 이제 가져가기만 하면 돼.”
아이들이 바지런히 수레로 얼음을 옮기고 막 출발하려던 때였다.
“그럴 필요는 없겠구나.”
“!!”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데도 익숙해져 있는 목소리에 마선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얼음을 파는 동안 내내 마선에게 시비를 걸던 그 사내였다.
“이런 곳에서 얼음을 꺼낼 줄이야. 안쪽에 빙고(氷庫)라도 숨겨져 있는 건가?”
“그거야 꼬맹이들 쫓아내고 찾아보면 나오지 않겠나.”
심지어 이번에는 혼자도 아니었다. 날붙이를 든 건들거리는 모습의 중년인 두 사람이 사내와 함께였다.
‘저 사람들은 하오문 소속 건달들 아냐?’
역시 상단의 빙고니 어쩌니 하는 것은 핑계였다. 그저 삥이나 뜯으러 왔을 뿐.
“어, 얼음은 이게 전부야! 이제 없어!”
아이들에게 들어가라 손짓하자 겁먹은 꼬마들을 끌어안은 나이 많은 아이들이 후다닥 몸을 피했다.
“그거야 확인해 보면 알겠지? 꼬맹이들이 무슨 수로 그런 걸 알아내서 재미 보고 있었는지 몰라도 그런 좋은 건 이웃과 나눠야지. 안 그래?”
마선을 밀쳐 내며 아이들의 거처로 들어간 사내는 허름한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마구 휘젓고 다녔지만 당연히 빙고는 보이지 않았다. 굴러다니는 얼음 조각이나 발에 밟힐 뿐.
“어디냐! 어디다 숨긴 거냐, 이 망할 꼬맹이들!!”
“없다고 말했잖아! 억지 부리지 말고 가요! 저 얼음이라면 드릴 테니까!”
내심 덜덜 떨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소릴 지르는 마선을 무시하고 사내들은 행패를 이어 갔다.
“말 안 하겠다, 이거지?!”
“그래. 어디까지 말 안 하고 버티나 한번 해 보자.”
그렇게 말하며 사내는 겁을 먹고 모여 있는 아이들 중 가장 작아 보이는 아이의 뒷덜미를 잡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오월이였다.
“꺄아악!! 시러!!!”
“오월아!!”
“이 아이가 어떻게 돼도 조……. 억?!”
카아아아아-
행패를 부리던 사내의 얼굴에 서리가 내리며 얼어붙기 시작한 것을 본 아이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청아였다. 얼음을 얼릴 때처럼, 아직도 오월이의 품에 있던 청아가 사내의 얼굴에 그대로 냉기를 쏘아 냈다. 사내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으응 신음하며 몸부림쳤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하면서도 마선은 사내에게 달려들어 오월이를 빼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추, 추워. 이게 무슨?”
동료의 비명에 놀라 다가온 사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레 불어닥친 냉기에 그곳에 있던 이들 모두가 난데없는 추위에 떨어야 했다.
“아악!! 그만! 그만!!!”
그리고 그중에서도 아이들을 괴롭히던 사내들은 청아의 냉기를 정통으로 맞아 손발이 얼어붙는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했다.
‘정말, 우리한테는 유한 거였구나.’
얼음을 얼리는 뱀이니 범상치 않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위험한 생물이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마선은 새삼 자신들의 안이함을 탓하며 몸을 떨었다.
“이, 제 그만해! 이제 괜찮아!”
지금은 아직 여름, 늦더위가 계속되는 시기였다. 이 날씨에 얼어붙다시피 한 사람의 모습은 기괴하기만 했다.
카아아!!!
하지만 아이들의 부탁대로 물을 얼려 줄 때처럼 말을 들어주리라 생각했던 뱀은 멈추지 않고 계속 냉기를 뿜어냈다. 작은 몸을 팔딱거리며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보면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덕분에 도망가지 못하고 안에 숨어 있던 아이들 역시 그저 추위에 떨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이 근방이 모두 얼어붙겠어……!’
주변에 서리가 보일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고 있었다. 아니 마치 눈보라가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이곳만 한겨울이 될 것만 같아 오월이를 안고 있는 마선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그리고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눈보라를 피해 보려 아이들은 눈도 못 뜨고 자신보다 작은 아이를 감싸는 데 필사적이었다.
키이이-
그리고 그 순간, 갑작스런 열기가 아이들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