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67
67.
“자, 뱀아. 밥 먹자.”
끼이이-
오월이의 품에 붙잡혀 버둥거리는 청아는 눈앞에 들이밀어진 ‘무언가’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둘이 알콩달콩 잘 놀고 있었건만 오월이가 오빠들이 잡아 온 그 ‘무언가’를 청아에게 내민 그 순간부터 둘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큰 도랑이 파였다.
“이거 오빠들이 힘들게 잡아 온 거야. 응?”
끼이이이이이이-
“왜 그래? 안 먹는대?”
“싫어하는 거 같은데, 역시 살아 있는 걸 줘야 하나?”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지만 청아의 반항은 멈추지 않았다.
끼이이이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벌써 주변이 흥건하게 젖지 않았을까. 문화 충격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청아 앞에 아이들이 잡아 온 토실토실한 쥐 한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털 달린 생물을 먹어 본 적 없는 청아는 배고픈 와중에도 본의 아닌 단식투쟁 중이었다. 이린이 보았다면 독사는 먹으려고 했으면서 뭘 따지냐고 어이없어 했겠지만 아쉽게도 이 자리에는 이린이 없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결국 청아에게 쥐 고기 먹이는 것을 실패한 아이들이 지쳐 널브러져 있을 때였다.
“다녀왔어~”
“아, 큰언니!”
청아를 둘러싸고 여기저기 늘어져 있던 아이들은 마선과 다른 아이들이 먹을 것을 사 들고 돌아오자 반색하며 맞았다. 마선은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며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고개를 내밀었다.
“언니, 얼굴이 왜 그래?”
“별거 아냐. 그래서 무슨 일인데?”
“뱀한테 쥐를 잡아서 줘 봤는데 안 먹어, 어쩌지?”
“모처럼 통통하게 살찐 녀석을 잡았는데!”
지금껏 그다지 공격성을 보이지 않던 뱀이 쥐의 시체를 앞에 두고 빽빽거리는 모습이 마선의 눈에는 마치 쥐가 싫어서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다. 전에 봤다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런 부잣집에서 자란 뱀이면 그럴 만도 하지.”
“??”
마선은 품에 넣어 두었던 피 묻은 손수건을 꺼내 보며 아까 만난 연가장의 아가씨를 떠올렸다.
[이것도 인연이니 무슨 일이 있으면 연가상단을 찾아와. 가능하면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말고. 오늘 같은 일이 있으면 바로 막아 줄 수가 없잖아?]얼굴을 가리고 있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는 그 소녀는 하얗고 반짝반짝한 예쁜 옷을 입고, 잘생긴 오빠와 마음 좋아 보이는 아저씨의 보호를 받으며 선심 좋은 말을 건네었다. 지금보다도 어린 2년 전에도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아까워하는 기색도 없이 자신에게 은자를 던질 정도로 부자이기도 했다.
‘연가장의 아가씨라면 당연히 그렇겠지.’
누구는 태어나길 거지에 부랑자고, 누군가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잣집 딸이라니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쪽은 전에 한번 본 적 있다는 이유로 무슨 일 있으면 찾아오란 말까지 할 정도로 성격도 좋다니 배알이 꼴리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손수건을 보며 넋을 놓은 마선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아이들이 마선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언니. 역시 아까 연가상단 사람이 말한 그 뱀이 이 뱀이겠지?”
“글쎄.”
글쎄고 뭐고 아닐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지만 함께 얼음을 팔고 돌아온 아이의 말에 마선은 일부러 말을 흐리며 시장에서 사 온 고기를 꺼내고 불을 피웠다.
모처럼의 고기 굽는 냄새에 다들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설익은 작은 살점 하나를 뱀 앞에 내밀어 보니 예상대로 뱀은 마선이 내민 고깃덩이를 꿀꺽꿀꺽 받아 삼켰다. 역시 부잣집 애완동물답게 좋은 거 먹고산 게 틀림없었다.
우와. 신기해하며 고기를 삼키는 어린아이들을 한심하다는 듯 보며 조금 나이가 위인 아이들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어쩌지? 아까 그 아가씨가 뱀을 찾는다잖아.”
“우리 이제 이 뱀이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냐?”
“그치만, 그 아가씨 좋은 사람 같았는데.”
아까 연가장 아가씨가 마선을 구해 준 것이 인상 깊었던 아이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채석이 끼어들었다.
“야, 그게 우리한테 뭐가 중요해?”
끼이?
자기 얘길 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청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청아의 차가운 비늘이 피부에 닿자 대부분 움찔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렇잖아, 누님. 오늘 우리가 번 돈을 생각해 봐. 우리가 몇 개월 비럭질하고 다녀도 이런 돈 평생 못 만진다고!”
“소매치기는 성공하는 날이 있을지도.”
“너네같이 무딘 손이 소매치기가 가당키나 하니.”
손 빠르고 약삭빠른 아이들은 마선의 무리에 함께 남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 일찌감치 빠져나가 다른 살길을 모색하지. 다순처럼 가끔 찾아오는 경우는 그래도 양심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연가상단은 흉년에 먹을 걸 나눠 주기도 하고 동냥하는 애들한테도 매질 안 하고 먹을 걸 주기도 하는 걸로 유명한 곳인데.”
“야. 그게 다 상술이야, 상술. 순진하긴.”
“하지만 다순이는 거기 거둬져서 잘살고 있더라.”
“걔는 운이 좋은 거지. 혹시 아냐, 너도 피떡 돼서 그 앞에 쓰러져 있음 거둬 줄지.”
다순이 두루두루 처맞아 피떡이 된 불운한 날, 그 불쌍한 모습 덕분에 연가장 소장주의 눈에 들어 인생이 바뀐 이야기는 장사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날 다순이 얼마나 맞았는지 대충 아니까 따라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낄낄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마선은 슬금슬금 자신의 팔을 타고 올라와 고개를 갸웃거리던 청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몇 번만 더 팔고 이 뱀은 연가상단에 몰래 돌려놓자.”
“큰누나!”
“언니!!”
그 말에 아이들이 당황해 소리를 질렀지만 마선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말했지? 얼음 장사 같은 걸 우리 같은 애들이 하고 있으면 당연히 출처를 의심받을 거야. 오래할 만한 게 못 돼.”
“하지만.”
“당장 아까도 시비 걸렸던 거 기억 안 나? 그나마 얼굴 통하는 사람이 말려서 그냥 넘어간 거지.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어. 지나치게 욕심 부리다간 본전도 못 건져. 오늘 도와준 보답으로 돌려준다고 생각하든가.”
어차피 얼음 장사는 오래할 수 있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다 저 뱀을 뺏기면? 나중에 자신들이 저 뱀을 숨겨 두고 있던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과연 연가상단에서 자신들을 가만둘까?
“지금 바싹 벌어 놔야 하니까 니들은 가서 물이나 퍼 와.”
“네에.”
어느새 다가온 오월이가 청아를 채 가는 것을 보며 마선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
‘나중에 돌려줘야 한다 그러면 땡깡 피울 거 같은데.’
어린애들이라 어쩔 수가 없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더 신경 써야 하는 마선의 머리는 복잡했다. 예전에 연가상단의 아가씨에게 받은 돈은 참 시기적절하게 크게 앓은 아이가 있어 의원에게 데려가느라고 홀랑 날렸는데 이번에야말로 어떻게든 돈 나올 구멍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어린애들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단 말이지.’
그러니 기껏해야 소매치기나 수상쩍은 잔심부름 같은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들이 노점에서 뭔가를 판다 해도 금세 시비가 걸린다. 애초에 이런 거리의 아이들은 점소이로 잘 받아 주지도 않고. 다순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천운이 따른 경우였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납치당해 팔려 갈까 무서워 얼굴에 일부러 검댕을 묻혀 다니지 않으면 맘 편히 돌아다니지도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얼굴에 남아 있는 흉터를 문지르던 마선이 상념을 접고 일어났다.
“우선 얼음부터 만들고 생각하자. 뱀한테 억지로라도 뭐 좀 먹여. 기운 딸려서 만들다 말면 곤란해.”
“응!”
끼이이-!!
청아의 구슬픈 울음소리가(?)가 어두워진 저녁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날 밤, 아이들이 잠든 사이 청아는 낡은 고리짝 바구니를 몰래 뚫고 탈출을 감행했다.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음날 아침의 일이었다.
“야, 일어나 봐. 뱀이 없어!”
“아니 미친?? 이걸 뚫고 나갔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고리짝을 확인한 아이들은 구멍이 뚫려 있는 바구니를 보고 괴성을 지르며 청아를 찾기 위해 뛰쳐나갔다. 시끄러운 애들 목소리에 깬 마선도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나야 했다.
‘잃어버리면 성가신데.’
모처럼 원주인에게 돌려주려고 맘을 먹었는데 없어졌다니 뒷맛이 영 안 좋았다. 딱 두 번 봤을 뿐인 얼굴도 모르는 그 아가씨에게 혼자 친밀감이라도 품었던 걸까. 다급하게 달려가던 뒷모습이 어쩐지 계속 맴돌았다.
“어쩔 수 없…….”
“아, 여기 있다!”
“찾았어!”
어쩔 수 없다고 혼자 중얼거리던 마선은 뻘쭘하게 입을 다물고 일어섰다. 찾았다니 다행이긴 한데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다.
‘뭐지.’
아이들의 손에 저항 없이 잡혀 오는 것을 보면 탈출할 생각은 아니었던 걸까.
‘아니, 뱀에게 그 정도 사고력은 없겠지.’
저 뱀 반응이 워낙에 뱀 같지가 않으니 바보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언니. 얘 뭔가 배가 빵빵해.”
“?”
오월이의 말을 듣고 배를 살피자 어쩐지 아이의 말대로 배가 빵빵해보였다. 어제 결국 쥐를 먹이는 데 실패하고 고기 조각 조금 먹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가둬 놨는데 빠져나가 뭔가 잡아먹은 모양이었다.
“나가서 뭐 잡아먹었나 봐.”
“역시 살아 있는 걸 줬어야 했나.”
“배가 고파서 나갔나 보지? 어쨌든 다행이다.”
아직은 저 뱀이 필요했다. 빨리 얼음 팔아서 돈 벌고, 저 뱀도 주인에게로 돌려줘야지.
다시 마선의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어제 얼음이 생각보다 빨리 동난 덕분에 팔지 못했던 가게에 먼저 얼음을 가져다주고, 다른 가게들도 돌면서 얼음을 팔았다. 다른 상인들이 파는 것보다 확연히 값싸게 팔고 있었기에 얼음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아이고, 꼬마들 오늘도 바쁘구먼그래?”
그리고 마선이 예상한 그대로, 또다시 시비가 걸렸다. 일부러 아침 일찍 움직였지만 아이들 걸음이다 보니 결국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
“글쎄 저희는 얼음 같은 대단한 물건을 판 적이 없다니까요.”
“거짓말하지 마! 너희가 몰래 얼음을 팔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어!”
“아니 이분이 어제부터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네.”
어쨌든 뻔뻔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어 모르쇠를 일관하고 있었지만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어제 일이 있어서인지 이미 긴 상처가 얼굴에 커다랗게 남아 있는 마선에게 다짜고짜 손찌검부터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괜히 일이 커져 얼음의 출처에 대해 캐내려 하면 그것도 큰일이었다. 마선이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려 하던 그때였다.
“어머, 또 만나네.”
“아. 연, 연가상단의 아가씨!!”
마선은 반가운 목소리에 일부러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 지르듯 외치며 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사내는 어제 진명현의 뒤에 있던 면사 쓴 소녀를 기억하고 있는지 슬쩍 몸을 뒤로 뺐다.
“이 아이에게 볼일이 있으신가요, 아저씨?”
“흠, 흠흠. 정말 연가상단의 아가씨요?”
약간 못미더운 듯한 사내의 말에 면사로 상반신을 거의 통째로 가리고 있는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탓인지 마선의 눈에는 그런 이린의 행동조차 어딘지 우아해 보였다.
“제 아버지께서 연가장의 장주이심은 분명합니다만. 제가 그 사실을 알려 드려야 할 의무라도, 있던가요?”
다소 오만한 목소리에 움찔했던 사내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알 수없는 오한에 움찔 떨다 이린의 뒤에 있는 연가상단의 무사들을 발견하고 뒷걸음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