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98
98.
“아저씨가 하기 싫은 거 누가 억지로 시켰어요? 우리 상단에서 알아서 거두고 교육도 시키고 일자리도 줄 거니까 신경 꺼요.”
“……네가 주운 아이가 쓸모없는 아이여도?”
“쓸모의 기준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아무 동네나 가면 보이는 점소이나 짐꾼이나 다 쓸모 있는 사람인데요.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농사일이나 막노동 같은 잡일은 시키면 다 해요. 손버릇 나쁘고 게으르고 분란 일으켜서 문제인 것만 아니면 사람의 쓸모는 어디에든 있어요. 소비가 전문인 무인에게 왜 무시당해야 하죠?”
“!!”
이린의 말에 충격받은 듯 동공이 흔들리던 심여준은 비칠비칠 뒤로 물러섰다.
‘술 먹었나.’
손님이라 대접은 융숭하게 했을 테니 오빠네랑 똑같이 술도 갖다 줬나 보다. 비틀거리는 꼴이 정상은 아니었다. 어쩐지 다짜고짜 시비를 걸더라니.
“너희 남매는 왜 그렇게 똑같은 말을 하면서 손해를 보지?”
“거 손해 아니라니까 이 아저씨가 정말.”
키우는 데 든 돈은 정확하게, 칼같이 계산해서 품삯에서 깎는다. 덕분에 수년간은 다들 무급 노동이다. 연가상단도, 연가장도 회계 담당들은 그렇게까지 무르지 않고, 연적훈도 연이현도 그런 것까지 손해 보진 않는다.
“그렇게 싫으면서 왜 오빠랑 같이 다녀요?”
“그야…….”
누구에게든 편견 없이 손을 내미는 그 선함을 비뚤어진 자신도 싫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녀석이 좋으니까.”
그리고 그런 심여준의 발언은 이린의 귀에 범상치 않게 들렸다.
‘헐, 지금 우리 오빠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야?’
어이없어진 이린이 뒤로 슬슬 물러서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근처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린아 목소리가 들렸다니까.”
“그냥 솔직하게 동생 보러 가고 싶다고 해. 어, 여준?”
마침 식사 마치고 이린을 찾아 나온 이현과 백리한이었다. 두 사람을 발견한 이린이 소리 높여 불렀다.
“오빠. 이 아저씨 취한 거 같아.”
“무슨 일 있었어?”
바람같이 달려와 심여준을 붙잡은 이현과 백리한이 그를 뒤로 질질 끌어내며 이린에게 물었다. 술 냄새가 나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떨어져 있던지라 이린은 고개를 저었다.
“술주정하는 거 같던데.”
“정말이지, 아저씨가 나잇값도 못하고.”
이린이 여준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덩달아 아저씨라 부르기 시작한 백리한이 버둥거리는 심여준의 입을 막은 채 오금을 걷어찼다.
“!!!!”
비명도 못 지르고 꿈틀대는 심여준을 보며 이현이 미안한 듯 웃으며 이린에게 양해를 구했다.
“야장께 갈 거지? 이 친구 좀 방에 넣어 놓고 올게. 조금만 기다릴래?”
“응. 다녀와.”
이린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이현과 백리한이 심여준을 질질 끌고 심여준이 묵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어느새 나왔는지 청운진인이 부채를 살살 부치며 그 뒤를 따랐다.
“거 이상한 아저씨네.”
잔뜩 지쳐서 도착했다더니 그 상태에서 술까지 마셨으면 좀 인사불성이 될 만도 한가.
‘정말 오빠한테 이상한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앞으로 주의 깊게 살펴봐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이린의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아, 마선?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누군가 자신들 때문에 모퉁이에서 지나가지 못하고 곤란해하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자신을 찾아온 마선과 아이들이란 사실을 몰랐던 이린이 반색을 하며 맞았다. 아까 찾아가서 얼굴이나 보려고 했는데 다들 일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청아를 데리고 얼음 생산하고 지부장이랑 이런저런 깊은 대화만 하고 돌아왔었다.
‘그런데 표정들이 왜 이러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상기된 얼굴로, 아니 감격한 표정으로 입을 가리듯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하나같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저희, 저희 열심히 할게요!”
“아가씨한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겠어요!!”
“아가씨께서 저희를 그렇게 생각해 주고 계신 줄도 모르고…….”
“???”
내가, 뭐라고 했더라?
“린아, 이제 가자……? 무슨 일 있었어?”
백리한의 도움을 받아 술 취한 심여준을 방에 처넣… 아니, 데려다주고 돌아온 이현은 눈을 반짝이고 있는 아이들과 이린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무려 이현의 얼굴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한 아이들의 범상치 않은 상태를 어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이린은 그냥 평범하게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어, 음. 잘은 모르겠지만 의욕이 넘치는 건 좋은 일이지. 다들 잘 지내는 거 같아 기뻐. 종일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 가서들 쉬어. 응?”
“네. 아가씨!”
아니. 다들 눈을 부담스럽게 반짝이고 있는데 대체 무슨 일이야.
이현도 같은 마음인지 이린에게 슬쩍 다가와 전음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이린은 차마 육성으로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아이들에게 웃으며 손만 흔들어 줄 뿐이었다.
‘근데 나 저런 눈빛 꽤 많이 본 거 같은데.’
주로 장원 사람들이나 상단 사람들이 아빠나 오빠를 보는…….
‘전염됐나…….’
연가상단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이린은 일단 이현을 이끌고 공방으로 향했다. 제갈윤위와 만날 예정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시간을 지체해 버렸다.
“애들은 내일 다시 봐야겠네.”
“내일은 서문민영 만나러 가는 거 아냐? 시간 괜찮겠어?”
“민아랑은 낮에 만나면 되니까. 오늘은 친구랑 외출했다고 하더라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 모양이구나.”
서문민영의 건강 때문에 걱정이었던 이린 역시 이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윤위의 공방은 객간과 꽤 떨어진 곳에 있어 두 사람은 구불구불 복잡한 길을 걸어야 했다.
“위로 가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아서라. 화살 날아온다.”
담을 넘겠다는 양갓집 아가씨답지 않은 이린의 발언을 이현은 현실적인 이유로 저지했다.
상단이니만큼 보안에는 신경 쓰고 있지만 연가상단, 그것도 제갈윤위가 있는 곳은 특히나 더 보안에 주의를 기울이는 곳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부장보다 중요한 인물이다 보니.’
그리고 그 지부장보다 중요하신 분은 공방 앞마당에서 술을 마시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왔니?”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그런데 왜 술을?”
“격조했다는 걸 아니 다행이구나. 린아, 이리 오렴. 술 한 잔 받아야지.”
“네!”
냉큼 달려가려는 이린의 어깨를 붙잡은 이현이 잔소리를 했다.
“너 이미 마셨지?”
“어른이 주시는 잔은 거부하는 게 아니래.”
이현의 손에서 홀랑 빠져나간 이린이 제갈윤위 옆에 앉더니 뺨을 비비며 까르르 웃다가 건네주는 술을 받아 들고는 좋다고 마셨다. 연가장에서는 볼 수 없는 그 모습에 이현은 묘한 감상이 일었다. 그런 이린이 마냥 귀여운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배부른 눈으로 웃고 있는 제갈윤위의 모습에서도.
‘린아한테 어머니가 계셨으면 저런 느낌이었을까.’
제갈윤위가 이린을 귀여워하는 모습은 물론 흐뭇한 광경이었지만 자신들을 부른 이유는 분명 다른 것일 터였다.
“저한테는 안 주십니까?”
“넌 네 친구들이랑 마시고 왔을 거 아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갈윤위는 명현이 건네주는 새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 이현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애들은 너무 금방 큰단 말이지. 특히 남자애들은 귀여운 맛이 없어.”
“오빠는 처음 뵈었을 때랑 큰 차이가 없지 않아요?”
이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갈윤위는 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며 피식 웃었다.
“검은 들고 왔니?”
“예.”
“하긴 떼어 놓고 다니진 않겠지.”
제갈윤위가 손을 내밀자 이현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검을 풀어 내밀었다.
스릉-
서늘한 금속음과 함께 제갈윤위의 날카로운 시선이 이현의 검에 닿았다.
“관리는 잘했는데, 요즘에는 검 쓸 일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구나.”
“한동안은 계속 집에 있었으니 아무래도 그렇죠.”
“무뎌지진 않았겠지?”
예고 없이 이현에게 검을 휙 던진 제갈윤위는 그대로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그대로 이현에게 휘둘렀다.
이현은 살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공격에 당황하지 않고 몸을 피했지만 제갈윤위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어안이 벙벙한 이린이 일어나려 하자 명현은 이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명현이 웃고 있기에 이린도 난감해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달칵-
하지만 그 순간, 명현이 옆에 있던 무언가를 건드리자 낯선 기계음과 함께 제갈윤위가 이현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고 이현의 양옆에서 이현을 향해 무언가가 발사되는 것이 보였다.
“엑!?”
이전에도 공방에 뭔가 설치해 두었다는 걸 얼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장치를 이현에게 쓸 거라고는 생각 못한 이린이 다시 벌떡 일어나자 이번에도 명현이 이린을 막았다.
챙, 챙, 챙, 챙, 챙, 챙-
대체 모두 몇 개인지, 이현은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온 단검들 일부를 쳐내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이린의 표정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이현이 멀쩡히 피하고 있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뭐 하는 거예요!!”
“이 정도도 못 피해서야 어디 강호를 나다니겠니?”
자신의 검은 어느새 잘 갈무리한 제갈윤위가 태평한 얼굴로 이린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별 차이 없이 이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바닥이 움직이고 밑이 어딘지 모를 구덩이가 파져 있고, 단검과 암기가 나오는 함정을 어느새 빠져나온 이현을 보며 제갈윤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구나.”
“과찬이십니다.”
이현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명현이 다시 뒤쪽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당기자 기계음과 함께 엉망이 되어 있던 공방 앞마당이 다시 아까의 모습을 찾아갔다.
“린아가 아직 어리니 네가 잘 지켜야 한다. 알았니?”
“심려 마십시오.”
“아니, 왜 그렇게까지…….”
그게 저렇게 흉험하게 다짐까지 받을 일인가요
‘우리 아빠도 저러진 않는데.’
황망해하는 이린을 본 명현이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워낙 걱정이 많으신 분이라……. 너무 신경 쓰진 마십시오.”
“네에…….”
제갈윤위가 자신을 조카처럼 귀여워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의외였다.
게다가 여기 앞마당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어이없어하는 이린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린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제갈윤위는 명현을 불렀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제갈윤위의 자리에 있던 상자를 내밀었고, 상자를 확인한 제갈윤위가 이린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