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05
천하제일 시한부 (105)
“이게…… 뭐죠?”
고독을 본 초영의 반응이었다.
“고독.”
내 말에 초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말을 이었다.
“그건 알겠는데, 왜 이게 여기 있는 거죠?”
“백귀의 몸에서 나온 거다. 무슨 종류의 고독인지 알아볼 수 있겠나?”
내 말에 귀면탈혼과 초영이 눈을 부릅뜨고 고독을 살펴보았다.
아직도 꿈틀거리는 고독을 보며 초영은 놀랍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본래 고독은 공기와 만나면 대부분 금방 죽는다고 알려졌는데…….”
“그렇지? 이상하지?”
“혹시 이걸로 백귀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흠, 일리는 있어.”
초영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백귀는 그간 거의 말없이 변천맥의 말을 따랐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고독은 엄연히 무림에서 금기시되는 독물의 종류입니다.”
초영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이걸 사용했다는 것은…….”
“무림은 안중에도 없다는 거지,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것의 종류를 좀 알아봐 줄 수 있겠나?”
“고독의 종류를요? 흠, 한번 찾아는 보겠습니다만,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초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고독을 사용하는 문파는 백 년 전 그 일이 있은 후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으니까요. 뭐, 있다면…… 마교 정도?”
마교.
아, 또 이 바퀴벌레 같은 놈들의 이름이 나온다.
어떻게 된 것이 하나도 엮이지 않은 곳이 없나.
“설마 마교라고 단정 짓고 계신 것은 아니시겠죠?”
초영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모르지. 그냥 의심만 해 보는 거다.”
마교가 아닐 수도, 맞을 수도 있다.
마교주인 천무혁을 내 손으로 끝장냈지만, 마교 전체를 말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굳이 문파가 아니더라도 서적을 참고할 순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네. 좋아. 부탁하지.”
내 말에 초영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서희는 어디 갔어?”
아침부터 서희가 보이지 않았다.
난 항상 아침마다 서희를 찾는다.
서희와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해서였다.
물론 일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하지만 요 며칠 서희가 보이지 않았다.
“흑호방에 새벽부터 나가더라. 요즘 진 방주랑 사이가 좋아 보이던데.”
“흠, 그래?”
진청운.
그래, 그놈이라면 뭐, 서희가 아깝지 않다.
난 그쪽에서 신경을 끄기로 했다.
“참, 서진아.”
형이 날 불렀다.
“이번에 상일이하고 상천이 학관에 보내려 한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형 아들인데.”
“너한테는 조카지 않느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학관이 좋겠느냐, 무관이 좋겠느냐. 뭐, 이런 말이지?”
“그래. 내 고집으로는 학관인데 혹여 네 생각은 어떤지 묻는 것이야.”
“음.”
난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조카들하고 아직 사이가 어색하긴 했다.
하지만 얼핏 봐도 둘 다 무골은 아니었다.
“학관이 좋은 것 같아. 알잖아. 애초에 우리 주씨 핏줄이 무(武)랑은 담을 쌓았던 거.”
“그래, 그렇지. 근데 어째서 너 같은 괴물이 다 태어난 건지.”
흠칫.
형의 말에 순간 머릿속으로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너무 찰나간이라 그게 뭔지 정확히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아, 기분 나빴느냐? 미안하다.”
“아냐. 잠깐 뭔가 떠올랐는데…… 아무튼 아니야.”
난 이내 말을 마치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러고는 빠르게 내 거처로 들어왔다.
잠깐 확인해 볼 것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건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조부님도, 아버지도…… 심지어 큰 형도, 둘째 형도…… 다 무골은 아니야.”
조부님도 황궁 학사 출신이고, 아버지도 대학사까지 지내셨었다.
대학사면 황자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분들이니만큼, 공부 머리는 몰라도 무에 대해선 문외한이신 분들이란 거다.
하지만 그런 핏줄에서 유달리 나만 무골로 태어났다.
“어머니 쪽인가……?”
그렇다면 답은 어머니밖에 없었다.
왜냐면 다른 형은 어머니가 같은 분이신데, 나만 어머니가 다른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생각만 하면 끝이었는데, 여기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맨 처음 내가 독에 당하고 정천맹을 떠나고자 했을 때, 진랑과 했던 대화.
‘너희 어머니…….’
진랑은 분명 내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걱정을 표했다.
뭔가 어머니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난 어머니에 대해 말한 사실이 없다.”
웃긴 건 난 진랑에게 단 한 번도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했기에, 그걸 잊기 위해 오히려 입 밖에 절대 내지 않았다.
“아, 몰라.”
복잡하다.
의심은 한 번 품기 시작하면, 끝까지 그 싹을 꿋꿋하게 피워 내기 마련이다.
차라리 복잡할 때엔 의심을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척.
난 다시금 가부좌를 틀었다.
요 며칠 푹 쉬었으니, 이번에는 몸을 점검할 차례였다.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뭐냐.”
하필 이럴 때에…….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밖에서 움츠러든 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가주님, 밖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근데 왜 나한테 와?”
“소가주님을 찾고 계십니다. 헌데…… 그 여자분이십니다.”
“여자?”
머리를 굴려 보아도 선뜻 생각나는 인물은 없었다.
애초에 여자랑 친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여자랑은 담을 쌓고 살아왔다.
만약 나를 알고 있다면 사이가 나쁘거나, 혹은 철천지원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튼 오늘 심상 수련은 글렀다.
그리 생각하며 문밖을 나섰다.
그때였다.
오싹!
등골이 오싹해졌다.
“뭐지?”
뭔가 불길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항상 안 좋은 일이 생기던데.
아니나 다를까.
“네가 왜 여깄어?”
내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 * *
정문 밖.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깊이 눌러쓴 방갓에 면사까지.
하지만 얼핏 드러나는 턱선만 하더라도 그녀가 범상치 않은 외모의 소유자임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본 나는 그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 이쁘장한 얼굴 뒤로, 개지랄 같은 성격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너 누구한테 설명하냐?”
아, 모르고 속내가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냐? 네가? 맹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흑화.
날 찾아온 여인은 바로 흑화였다.
정천맹을 설립할 때 많은 도움을 준, 제일상단주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물론 덕분에 한자리 거하게 해 처먹고 계시긴 하지만.
“큰일 났어.”
흑화가 내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그 모습에 초영의 눈에서 불꽃이 튄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도와줘.”
“일단 들어와. 갑자기 뭔 소리야.”
반갑다고 해후를 나누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게 난 흑화를 데리고 내 거처로 들어갔다.
“누추하네.”
흑화의 솔직한 감상평이었다.
“거, 주둥이는 여전하네?”
물론 나도 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내 물음에 흑화가 이내 방갓과 면사를 끌렀다.
이윽고 드러난 그녀의 맨 얼굴에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야? 왜 못생겨졌어?”
“뒤질래? 진짜?”
“맞은 거냐?”
내 말에 흑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침입이 있었어. 유령귀들.”
“유령귀? 그거 삼 장로네 애들 아니야?”
“응, 그 유령귀가 맞아. 삼 장로가 반란을 일으킨 거라고.”
그 말에 난 피식 웃었다.
“그 음흉한 노친네. 항상 널 좋아했잖아. 이번…….”
“농담 아니야. 서진.”
흑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처음 보는 진지한 말투에 나 또한 더 이상 장난을 칠 수 없었다.
“반란이라고? 정말로?”
“응.”
흑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기대는? 아무리 유령귀여도 네 흑기대라면 충분히 막아냈을 텐데?”
“기습이야. 흑기대가 외부 점검 차 잠시 장원을 비웠었어.”
“그걸 노리고 유령귀들이 급습했다?”
“응.”
어이가 없었다.
정천맹 내부에서 반란이라니.
“아무래도 네가 맹에 없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아. 그가 알았다면 다른 장로들이 알아내는 것도 시간문제고.”
“그래, 그럴 수 있지.”
난 냉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난 안 간다.”
“…….”
내 말에 흑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말이야?”
“안 간다고. 맹에는 이제 안 돌아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반란이라니까? 너랑 진혁이 만든…….”
“그래서 그래.”
난 가차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녀의 말대로 정천맹은 나와 진랑이 만든 거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갈 수 없었다.
이번 것은 진랑을 믿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끼어들면? 내가 없을 때마다 이런 반란은 일어날 텐데? 내가 평생 정천맹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돌아가. 너네 힘으로 해결해. 이번 것도 진랑 몰래 온 거지?”
내 물음에 흑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랑이라면 다 생각이 있을 거야. 난 놈을 믿는다.”
진랑은 절대 어리숙한 맹주가 아니었다.
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그를 믿어야 했다.
“가장 측근인 너조차도 진랑을 믿지 않는데, 장로들이라고 믿을까.”
내 힘은.
감히 장로들이 내게 덤벼들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힘은.
오로지 진랑을 순수하게 믿고 있던 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진랑이 있기에 내가 날뛸 수 있었던 거다.
“개새끼.”
흑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널 찾은 내가 병신이지. 그래도 친구라면 걱정이라도 해야지. 그냥 믿는다고?”
“…….”
“지금 맹 상황이 어떤지나 알기나 해?”
“말은 똑바로 해.”
난 싸늘하게 흑화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싸늘하게 이어 말했다.
“난 지금 신기검단주가 아니다. 그러니까 맹 상황이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아.”
“…….”
흑화는 말없이 날 한참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후우.”
홀로 남은 난 그제야 한숨을 몰아쉬었다.
똑똑!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건 바로 형이었다.
“서진아.”
“왜.”
절로 퉁명스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네 동료인 것 같던데…… 저리 보내도 괜찮겠느냐?”
“알 바 아니야. 이젠…….”
동료.
그래 내 친구다.
생과 사를 함께 나눈 친구 맞다.
그렇기에 난 그들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고 나만 의지하는 나약한 친구를…… 나는 두지 않았으니까.
“쯧. 지금은 말할 기분이 아닌 모양이로구나.”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난 널 믿는다.”
형이 한마디를 내뱉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난 아무래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 * *
“개자식, 진짜 개자식이야. 저건 사람 새끼도 아니야.”
흑화는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훔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장원을 뛰쳐나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면사와 방갓을 놓고 왔다는 것을.
그녀는 황급히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방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사라지고, 조용히 한 인물이 그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역시, 이곳에 올 줄 알았다고.”
그는 유령귀였다.
그는 이미 서진의 거처를 알고 있었다.
애초에 서진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어야 반란을 성공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
유령귀는 각오를 다진 채, 그렇게 흑화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