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74
천하제일 시한부 (174)
대환단.
소림사에서 만들어 낸, 무림에서 제일로 쳐 주는 영약이다.
무당의 자소단, 화산파의 매화신단도 대환단에 버금가는 영약으로 회자되기도 하지만, 사실 대환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만큼 엄청난 영약이었지만, 대환단은 소림의 무승들도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영약 중의 영약이었다.
우르릉―!
그런 대환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기 무섭게 내부가 요동쳤다.
‘과연 대환단.’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전신 혈도가 순식간에 확장되고, 단전의 크기가 넓어졌다.
마치 부글부글 끓는 듯, 혈맥을 감싸고 도는 내공이 뜨겁게 느껴졌다.
화악―!
일순간, 마치 증발하듯이 단전이 텅 비어 버렸다.
내공이 일시에 사라진 것이다.
‘뭐지?’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약을 먹었는데 내공이 사라진다?
당연히 그 누구라도 당황할 것이다.
우웅―!
진동은 더욱 심해지고, 난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전신이 간지럽고 속에서는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터엉―!
동시에 튕겨 나가듯, 몸이 반으로 접혔다.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콰광―!
내공이 사라졌다.
그 말은 곧 독기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던 내공의 벽 역시 사라졌단 말도 된다.
내공의 벽이 사라졌단 말은 곧, 독기가 미친 듯이 활동할 수 있게 활로를 열어 주었단 말과도 같았다.
스스스슷―!
교활한 뱀처럼 독기는 혈맥을 타고 순식간에 전신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제, 제길.’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혈맥을 타고 돌기 시작한 독기는 임맥과 독맥을 타고 뇌와 단전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독기가 움직였단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난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었다.
내공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찰나였다.
쿵―!
둔중한 충격이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망치로 단전을 후려치는 듯한 아찔한 충격이 느껴졌다.
‘이대로 가면 끝이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독기가 지나가는 곳마다 혈맥이 다시 쪼그라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넓어졌던 혈맥이 다시 쪼그라들 때의 그 고통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
울컥!
입에서는 검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전신 모공에서 스멀스멀 검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만약 죽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때였다.
화악―!
갑자기 머리가 확 맑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빛무리가 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독기가 상단전에 닿기 일보 직전, 상단전에서 미약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아주 좁쌀만 한 기운은 거대한 독기를 서서히 밀어내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동시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환상과도 같았다.
저벅, 저벅.
누군가 내게 걸어왔다.
광휘를 머금은 상대는 날 향해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날 보며 웃었다.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냥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아아, 익숙한 목소리다.
너무도 따스하고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정이다.
상대는 날 포근하게 안아 주었다.
한 번도, 내 기억에는 없었지만, 마치 으레 그래 왔듯이 자연스럽게.
또한 받아들이는 나 역시도 너무도 당연히 그래 왔던 것처럼 상대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상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아들, 서진아.”
아…….
아버지.
이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던 아버지의 진짜 목소리였다.
* * *
너른 들판.
계절은 봄이었다.
따스한 햇볕이 만개한 그런 화창한 어느 날의 고요한 일상이었다.
푸른색과 백색이 가미된 문사복을 걸친 아버지는 대단히 자상했고 인자했다.
그런 아버지 곁에는 항상 누군가가 행복한 미소와 함께 서 계셨다.
“어머니.”
그래, 어머니다.
무슨 일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씩씩하고도 자애로웠던 어머니.
젊은 날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시 없을 만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품 안에는 이제 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나……인가?”
그래, 그건 나다.
그냥 알 수 있다.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버지와 어머니.
너무도 평화로운 날이었다.
“이제 곧 함께 살 수 있을 거야, 조금만 참아 줘.”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평생 그렇게 살자, 서진이와 당신이랑.”
아버지는 진심으로 어머니를 사랑하셨다.
첫 번째 결혼은 조부께서 점지해 주신 상대와 혼인을 맺었다고 들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큰어머님도, 둘째 어머님도 또한 아버지도.
하지만 그분들과는 달리 아버지는 내 어머니를 진심으로 아끼셨다.
그런 모든 것이 표정으로, 또한 행동으로 드러나 보였으니까.
* * *
어두운 밤이 되었다.
봄이었던 계절이 지나고 시린 겨울이었던 것 같다.
환상임을 알고 있음에도 피부까지 시린 감촉이 느껴졌다.
“이 날은…….”
내가 처음으로 주씨세가에 끌려온 날이었다.
어머니와 헤어지고, 아버지의 수하로 보이는 주씨세가의 무사가 날 찾아내 강제로 데려온 날.
난 방구석에 처박혀 울고 있었다.
그러다 잠들었을 무렵.
아버지는 조용히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속삭였다.
“너만은 내가 지켜 줄 것이다, 너만은.”
아버지의 표정은 봄날의 따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허하고, 오욕칠정 자체를 잃은 듯한.
무념무상한 표정 그 자체.
아무 의미 없는, 뜻도 없는 아버지의 손길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가웠고, 그래서 따뜻했다.
후우―!
동장군이 내뱉는 차가운 숨결처럼, 아버지의 공허한 숨결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품에서 작은 도자기를 꺼내 들었다.
“저건…….”
내가 품고 있는 도자기다.
또한 아버지는 다시 품을 뒤져 모양이 똑같은 도자기를 또 하나 꺼내 들었다.
“너는 일 년 후 집을 나갈 것이다. 이것은 내가 네게 내리는 ‘암시.’ ‘씨앗’을 네게 넘겨 모든 걸 잊게 하고 추후 이 모든 일을 떠올리게 되리라.”
무엇을 알게 하려고.
무엇을 감추려고.
“아들아.”
아버지의 쓸쓸하고도 공허한 그 눈빛이, 아주 조금 정상으로 돌아왔던 듯싶다.
“이 아비가 죄가 많아. 헛된 실험으로 수만의 목숨을 헛되이 여겼노라.”
돌이켰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자신이 이룬 모든 것들이 수만의 목숨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그렇게 알아 버렸을 때는 늦어도 너무 늦었을 때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후회하셨다.
눈물을 흘리며 아홉 살 조그만 날 안아 주던 아버지가 내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네 동생 서희를 찾게 될 것이다. 서희에게는 ‘열쇠’를 남겨 두었으니, 너는 필연적으로 서희를 찾게 될 것이니라.”
아버지가 호리병의 덮개를 열었다.
그리고 내게 그것을 먹였다.
나는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었기에, 아무것도 모른 채, 그것을 넙죽 받아먹었다.
“내가 세상에 뿌린 아홉 개 무학의 뿌리들을 모두 네가 거두어야 한다. 첫 번째가 ‘암시.’ 그 두 번째는 바로 ‘패력.’이다.”
아버지의 눈빛이 점차 흐리멍덩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세 번째는 ‘마경’이며, 네 번째가 ‘주천.’ 다섯 번째 ‘관조’와 여섯 번째 ‘조화’니라.”
아버지의 말끝이 흐려졌다.
“오로지 ‘씨앗’을 품은 너만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 그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 만반의 태세를 갖춘 그들을 맞이할 세력을 구가하라.”
아버지가 다시금 호리병을 숙여 내 입에 뭔가를 흘려 넣었다.
“결국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
아버지의 자조 섞인 미소와 함께, 환상이 점점 옅어졌다.
“따스한 소리 한번 해 주지 못하고, 이리 보낼 수밖에 없는걸.”
아버지는 마지막이라 생각했는지, 잠든 날 다시 한 번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마지막에는 결국 아버지의 목소리도 울먹이는 듯 촉촉해졌다.
“네 어미의 가문, 헌원가를 찾아라. 그들은…….”
“어머니의 가문……?”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이름도 없는 줄 알았다.
헌원, 헌원가문.
무림에 그다지 흔하지 않은 성씨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난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마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야가 어두워졌다.
* * *
우웅!
대기가 준동한다.
천지가 뒤틀리고, 내부가 평온해졌다.
싸아―!
빙정이 마침내 벽을 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대환단의 기운은 결국 만년빙정을 일깨웠고,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부드럽게 융화되기 시작했다.
“…….”
전신 모공을 통해 독기가 일부 배출되기 시작했다.
악취가 진동했으며, 독기는 기겁을 한 채 다시금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상단전에서 터져 나온 기운은 점차 아래로 내려와 중단전과 하단전을 하나로 이어 버렸다.
둥―!
몸이 바닥에서 한 치 정도 둥실 떠올랐다.
동시에 내 머리 위로 금빛을 머금은 연꽃이 세 개가 활짝 꽃봉오리를 피웠다.
파스스―!
일순 꽃이 지고, 다시금 화, 수, 금, 토, 목 다섯 가지 상반된 기운들이 소용돌이치며 치솟아 올랐다.
다섯 가지의 기운은 갖가지 색깔을 가진 채, 그대로 내 몸을 천천히 선회하며 몸속 깊숙이 흡수되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대환단으로 시작된 기운의 소용돌이가 점차 기세를 키우는가 싶더니 이내 만년빙정이 녹아내렸다.
그 거대한 기운들은 똘똘 뭉쳐 독기를 다시 가두기 시작했고, 일부는 몸 밖으로 배출됐다.
그래, 약간이나마 해독된 것이다.
호흡이 편해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눈을 감았음에도 주변 지형지물이 모두 파악되었다.
감각이 그만큼 예민해진 것이다.
동시에 삼재검과 제마진경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무리들이 속속 떠올랐다.
즉, 보다 효율적으로 무공을 다룰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쿠구구구―!
이내 성난 듯 소용돌이치던 기운들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된 기운들은 전신 혈맥에 그대로 녹아내렸다.
‘허…….’
난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기운이 사라졌음에도 사라진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경지를 넘었구나.’
난 영약의 힘으로 내가 머문 경지를 또 한 번 밟아 섰음을 깨달았다.
다시는 영약으로 경지를 뚫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등봉조극.’
기운 자체가 가지는 본연의 느낌.
그 느낌 자체가 사라졌다.
즉,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공은 내 몸속에 떡하니 웅크리고 있었다.
전신 혈맥에 녹아 있었기에, 이제 구태여 주천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무공을 즉각적으로 발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번뜩!
난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내 앞에는 서희가 걱정스러운 표정 그대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
몸이 가볍다.
너무 가벼워 일어날까? 하는 그 순간 몸이 순식간에 튀어 나갈 정도였다.
“오라비……?”
서희가 졸린 눈을 뜨고 물었다.
‘열쇠.’
순간, 환상 속에서 아버지가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이내 난 서희를 향해 씩 웃어 주었다.
단 한 번도, 맘 편히 웃지 못했는데.
정말이지 개운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런 내 변화를 알아챘던가?
서희가 놀란 눈으로 날 보며 갸웃거렸다.
“뭐지? 뭔가 달라진 것도 같은…….”
난 말 없이 서희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러고는 또 한 번 다짐했다.
‘아버지의 암시 때문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아버지에게 감사하며.
‘서희를 위해서, 살고자 합니다. 그렇게…….’
으득!
‘헌원가를 찾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