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00
천하제일 시한부 (200)
“신기검단주.”
무극.
백발, 백염을 휘날리며 등장한 그는 예전보다 더욱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랜만에 뵙소, 장문인.”
난 그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건넸다.
나이도 그렇고, 그는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분이었다.
“상황이 여의치 못해, 대접은 못 해 드리네.”
“괜찮소, 장문인.”
난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낙화봉 정상으로 올라갔다.
점점 정상에 다다를수록 난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음을 간파했다.
“아래쪽에 신기검단을 배치했소. 아마 마교도 쉽사리 뚫지 못할 거요.”
“한시름 돌렸군, 고맙소.”
무극이 짧게 감사를 표했다.
그가 주변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제자들이 많이 다쳤소. 무령대와 무진대 역시 연락이 닿지 않는 걸 보니…….”
“무적과는 만났소. 현재 아래쪽 당가 진영에 그를 보호하고 있소.”
“오오, 당가도 나섰다면 희망이 조금 보이는군.”
무극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 듯 보였다.
“언제부터 이런 겁니까?”
내 물음에 무극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침입이 시작된 건 열흘이 채 되지 않았소. 전력으로 덤벼들지는 않고 계속해서 보급로를 끊고 점점 우리 피를 말리는 중이오.”
무극으로서도 답답할 것이다.
활짝 문을 열고 나가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해서 소극적으로 수성만 하다가는 보급이 되지 않아 굶어 죽기 십상이었으니까.
“식량은 얼마나 됩니까?”
“아껴서 푼다 해도 한 달을 넘기지 못하오. 그렇게 아꼈다간 제대로 싸울지도 의문이고.”
이래저래 암담한 상황.
“마교가 왜 갑자기 이런 행동을 취하는지 혹 알고 계십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오?”
무극이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난 부끄럽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간 천마신교가 잠잠했던 건 내부적으로 꽤나 큰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오.”
무극이 이내 힘겹게 자리에 앉았다.
이제 보니 그의 거동도 여간 불편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부상을 입은 듯하다.
“난 천마가 바뀌었다 보고 있소.”
“전대 천마는 내가 죽였습니다, 반년 전에.”
내 담담한 말에 무극이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무극이 마교가 진영을 꾸린 곳으로 예상되는 낙화봉 아래쪽에 시선을 던졌다.
“그래서 이리 공격적으로 변했구만.”
무극이 입맛을 다셨다.
“전대 천마는 그래도 나름 온건적인 자였소, 그를 죽였다면 반드시 대비를 갖춰 두고 있었을 것, 정천맹은 무슨 생각이오?”
“…….”
제길,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그저 일편적인 생각만으로 천마를 죽이면 마교가 흩어질 거고 그렇게 흩어진 마교를 점차 말려 죽여 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설마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런 짓을 한 건가?”
무극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들은 무림을 칠 명분을 얻었구만, 더군다나 조금 더 적극적인 천마를 추대했을 테고.”
“저 싸움을 멈출 수 있는 방안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게 뭔가?”
무극이 잔잔하게 물었다.
그 말투에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모습이 폴폴 풍겨 나왔다.
“소교주가 살아 있습니다. 전대 천마의 핏줄로 태생적으로 가장 정통성이 뚜렷한 자이지요.”
“소교주라면…… 나도 알고 있는 자겠군.”
“하지만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를 찾아낸다면…….”
“안 될걸세.”
무극이 암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녕 아무것도 모르는구먼.”
무극이 다시 저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마교에 신녀가 나타났네. 종교적인 뜻과 그들의 파괴적인 신념을 집중시키고, 그걸 관철시킬 그 신녀가.”
“신녀라…… 신녀의 핏줄은 진즉에 잘라 낸 걸로 알고 있는데.”
신녀.
난 그 신녀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마인들의 저 멍청하고 단순한 기질은 오히려 신녀를 만남으로써 진짜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깊게 생각지 아니하고, 신녀를 맹목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그녀의 한마디에 목숨도 내던질 수 있을 정도로 그 믿음이 강했으니까.
비록 천마를 믿지는 않더라도, 신녀는 믿는다.
그것이 천마신교 마인들의 특성이었다.
“어렵군요.”
난 솔직하게 심정을 밝혔다.
마교의 사정을 알고 나니, 이번 싸움이 너무도 어렵게 보였다.
“얼마 전 검천신장께서 산을 오르셨다네.”
“…….”
검천신장.
내 스승이자, 천하 삼신급의 절대자다.
세력을 구축하지 않아도 홀로 반나절 안에 명문대파급 하나는 초토화시킬 수 있는 그런 절대자.
그런 분이 왜 여길 오셨을까?
“그분이 경고를 남기셨기에 이만큼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일세. 한데 진짜 문제는 마교가 아니네.”
무극이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삼신, 삼강의 괴물들이 움직일걸세.”
“…….”
삼신과 삼강.
정확히 여섯 명의 초강자들.
삼신의 존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아는바가 없다.
그나마 아직도 간간히 활동하고 있는 검천신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건 다른 세 명의 삼강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겠지? 그분들이 움직이게 되면 무림에 어떤 파란이 일어나는지.”
“예,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고착화된 무림의 서열 자체가 뒤흔들릴 거다.
삼신, 삼강이 단순히 이쪽 정파 계열이 아니라 사도, 마도에도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즉, 그들이 움직인다면 반대 세력의 그만한 강자들도 움직인다는 뜻이 된다.
서로 암묵적인 규칙을 정해 서로의 세력을 침범하지 않고 있는 그들이 움직인다?
“후후, 그건 그렇고.”
무극이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내 아무래도 이번 전쟁에서 뼈를 묻을 것 같아. 이곳 곤륜에서.”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나야 이 한 몸 죽을 때가 되었으니 가는 것도 이상할 건 아니지만…… 저 제자들이 눈에 걸리네.”
무극이 천천히 시선을 돌려 낙화봉 정상을 향했다.
아직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안쪽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이 여기까지 간간이 들려오는 듯했다.
“이게 다 진짜 강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그러네. 동급의 고수가 여섯 명이나 존재한다는 것도, 또한 그들과 비견되는 다른 세력의 고수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무극의 검이 잘게 떨렸다.
피가 말라붙어 푸른빛을 머금었던 그의 명검은 어느새 잔뜩 균열이 일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걸 마교도 알고 있을 거야.”
무극이 내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게. 지천투의 시험을 통과한다면 능히 만년혈왕삼을 취하고, 자네의 무학도 한 단계 뛰어넘어 성취를 이룰 것이니.”
“…….”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무극인 곤륜의 성지가 있는 위치를 알려 주었다.
“제가 어찌…….”
“천마의 독에 중독되었다지. 자네 스승님이신 검천신장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네.”
“…….”
과연, 그분은 내게 어떤 말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계셨던 거다.
“들어가 보게. 자네가 다시 나올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테니.”
“…….”
“어서.”
무극은 생각하지 말라는 듯 계속해서 재촉했다.
난 어쩔 수 없이 그가 일러 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
무극의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무극은 이미 모든 것을 내어 줬다.
본래라면 곤륜의 제자들을 위해 사용했어야 할 신물이다.
만년혈왕삼.
단 한 뿌리의 값어치는 황실도 살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영약 중의 영약이다.
단환으로 제조하기보다는 생뿌리로 섭취해야 그 효능이 극도로 높아진다고 알려진 현존 최고의 영약.
그것은 곤륜의 성지에 잠들어 있었다.
* * *
곤륜의 성지까지 오르는 데 아무런 제재도 없었다.
난 단번에 마교가 무얼 노리는지, 곤륜은 어째서 철통같이 산을 방어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 때라면 어느 정도 틈바구니를 열어 두고, 무림과 조율해 마교를 몰아냈겠지만, 곤륜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것 때문이군.”
지천투의 시험이 깃들어 있다는 건곤연환진.
자체만으로도 땅과 하늘을 잇는 듯한 웅혼한 기운이 새어 나옴과 동시에, 그 안에는 삼류무사도 단 한 번에 탈태환골시킬 수 있다는 만년혈왕삼이 웅크리고 있다.
“후우.”
난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고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척―!
발을 올려놓기 무섭게, 진법이 무섭게 요동쳤다.
마치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착각과 함께, 내 몸이 엿가락처럼 쭈욱 늘어났다.
아, 이것 역시 착각이었다.
속이 울렁였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쿠궁―!
동시에 발작하기 시작한 독기는 이내 내공을 태워 버리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쿠엑!”
검붉은 핏물이 터져 나왔다.
아찔하다.
전신에서 부딪쳐 오는 이 기운들은 감히 감내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했다.
덜덜덜.
절로 이가 떨리고, 몸이 떨려왔다.
“제, 제길…….”
난 단단히 검을 움켜잡은 채, 억지로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압도적인 기운은 계속해서 내 몸을 휘감고, 반대로 내부에서는 이 미친 독기가 전신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쿠헉!”
핏물의 양이 많아졌다.
새까맣게 죽은 피가 이내 전신 모공에서도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허억.”
호흡이 달린다.
눈앞이 어지럽다.
털썩.
절로 무릎이 굽혀졌다.
거동을 할 수 없을 만큼, 독기는 진하게 향취를 남기고 내 전신을 지배해 버렸다.
“미친 천마…….”
이런 독기를 내가 어떻게 막고 있었던 걸까?
내가 쏟아 낸 핏물은 그대로 대지를 태워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핏물에 섞인 소량의 독극물만으로도 저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두둥―!
그때였다.
심장이 요동쳤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시야가 선명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몸을 잠식했던 고통이 점차 멎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독기가 사그라들었다.
“놈.”
동시에 들려온 목소리.
소름 끼치게도…….
“넌…….”
난 천천히 검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곤륜의 제자가 아니로구나, 네놈은 누구냐?”
상대의 물음에 난 고개를 들어 상대의 모습을 확인했다.
“나?”
놀랍게도 나와 똑같은 모습이다.
‘환영진인가?’
내 모습을 투영해 만들어 낸 가짜.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였다.
촤악―!
내 뺨에 돌연 핏물이 튀었다.
“잡생각은 모두 버리고 내 질문에 답하라.”
“…….”
지천투의 시험.
‘이런 것이었나.’
난 뺨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주서진, 정천맹의 신기검단주다.”
“…….”
돌연 내 모습을 한 상대의 입꼬리가 소름 끼치게 말려 올라갔다.
‘내가 저렇게 생겼던가.’
그런 생각도 잠시, 이내 상대의 입이 열렸다.
촤악―!
“네놈은 누구냐?”
“…….”
뭐지?
뭔가 똑같은 상황이 이어진 것 같다.
“대답했잖아, 난 주서…….”
촤악―!
또다시 핏물이 튀었다.
어디서 어떻게 공격이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네놈은 누구냐?”
계속해서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상대.
난 가만히 입을 닫았다.
뭐 어쩌라는 건지…….
촤악―!
또다시 이어진 공격.
이번에는 목 근처다.
아찔했다.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데…….
“네놈은 누구냐?”
지천투의 시험…….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시험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