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06
천하제일 시한부 (206)
“이런 미친 늙은…….”
“잠깐!”
현천맥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막 나서려던 가주들을 제지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고개가 아프구나.”
검천신장의 한 마디에 현천맥은 제전 아래를 내려갔다.
그러고는 검천과 눈높이를 같이 한 채,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검주께서는 이곳에 무슨 일로?”
“네놈이 대체 뭘 꾸미나 보러 왔다.”
검천의 대답에 현천은 떨리는 안면 근육을 다스리며 애써 웃는 낯으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검주께서 대체 왜 저희에게 신경을 가지시는지 모르겠군요. 검주의 자리를 마다하고 나가셨다면 그냥 모른 척 그리 살아가면 될 것을…….”
“그리 살아왔지 않았느냐? 적어도 이십 년은.”
“…….”
현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더 이상 표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그 말씀은 마치 이제부터는 몸소 나서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음, 얼추 비슷하지? 왜 꼬우냐?”
검천이 검집째 자신의 어깨에 척 얹혀 놓았다.
그 모습이 서진이 자주 취하던 자세와도 같았다.
“구천제께서 하신 말씀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
현천의 입에서 기어코 구천제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 말을 듣기 무섭게 검천의 표정도 조금 전 여유만만한 표정과는 완벽히 달라졌다.
“잊지…… 않았다.”
“허면 이렇게 나서시면 안 되는 것도 아시지 않습니까?”
기회를 포착한 현천맥은 검천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틈을 주지 않았다.
“내가 움직인다고 너희가 눈 하나 깜빡할 놈들이더냐?”
“적어도 이 마교는 쓸어 버리시겠지요.”
현천맥의 담담한 말에 놀란 것은 오히려 가주들이었다.
그들은 그 말을 듣기 무섭게, 검천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고수다운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현천맥은 검천에게 너무도 정중하고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마교 하나 어찌 되든 너희에게는 터럭만큼의 손해도 입지 않을 텐데?”
“그러니까요.”
현천맥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 저희를 잘 아시면서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시려 하냔 말입니다.”
“내 그간 고민하고 고민했다.”
검천이 천천히 검 자루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구천제의 곁에 잠깐이지만 머물면서 느낀 것도 많았지.”
“…….”
“그는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생각지 않는 자다.”
검천이 말과 함께, 검을 반쯤 뽑았다.
고작 검을 반만 뽑았을 뿐인데, 그에게서 터져 나온 살기가 좌중을 모조리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금 그 칼을 뽑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검주.”
현천맥의 표정도 싸늘해졌다.
연신 웃고 있던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법이구나, 현천제도 감히 내게 그런 말은 하지 못했거늘.”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검주. 세상을 보시지요.”
현천맥은 말과 함께, 자세를 낮췄다.
즉시 발검할 태세를 갖춘 것이다.
“오호라? 네놈이 정녕 미친 게로구나.”
검천은 오히려 좋다는 듯, 완벽히 검을 뽑아 들었다.
챙! 채앵!
그가 검을 뽑아 들기 무섭게 다른 가주들도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럴 필요 없다, 현천맥.”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 실린 자욱한 마기에 마인들이 잘게 몸을 떨었다.
순수하고 농도 짙은 마기.
이것이 진짜 천마의 기운이다.
“…….”
검천의 표정은 똥 씹은 듯 잔뜩 일그러졌다.
‘미친…….’
고작 단기간에 이 정도의 마기라니.
‘설마 파천마황공을 익혔단 말인가?’
내심 안심한 것도 있었다.
진마가 아무리 뛰어난 무재였어도 파천마황공은 그 수준을 달리하는 마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마는 보란 듯이 익혔다.
검천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현천맥의 표정을 살폈다.
‘저놈…….’
현천맥이 술수를 부린 거다.
검천은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설마…….’
그의 머릿속으로 주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하니 ‘그것’이 아직 남았다면, 진마가 파천마황공을 배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역시 폐기했어야 했다. 주군의 말이 맞는 거였어.’
검천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후회해 봤자 뭐 하겠는가, 이미 늦은 것을.
“검천신장이라…… 전에는 삼신급의 인물이다, 하면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진마가 헤죽 웃었다.
검은 운무에 쌓인 그의 모습은 마치 아수라와도 같았다.
붉은 안광을 휘날리며, 허공을 사뿐히 지르밟으며 나타난 그의 모습에 마인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혔다.
“대성을 감축드립니다!”
“대성을 감축드립니다!”
검천이 곁에 있어도 그들은 오로지 진마…… 아니, 당대 천마를 향해 공경의 예를 표할 뿐이었다.
번쩍!
동시에 하늘에서 난데없이 마른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붉은색의 벼락은 검천을 그대로 직격했다.
투콰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좌중을 휩쓸었다.
“후욱.”
검천은 빠르게 번개를 쳐 냈다.
뭔가 노린다 싶은 순간, 이미 가공할 기운은 그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고 그는 전력을 다해 번개의 결을 갈라 냈다.
시퍼런 검강으로 휩싸인 그의 검은 벼락을 저미듯이 잘라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부들부들.
검을 잡은 검천의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커헉.”
동시에 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단 일격에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이것이…….”
파천마황공.
심지어 대성의 경지다.
검천은 황급히 눈알을 굴렸다.
진마의 경지를 가늠해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세는 조금도 읽히질 않았다.
‘최소한 혼마경의 경지.’
마인들의 기준에서는 혼마경.
무림인들이 흔히 말하는 경지에서는 현경 그 이상의 경지를 뜻한다.
아니나다를까.
번쩍!
진마는 그대로 손을 들어 기류를 통제했다.
파천마황공의 구결이 그의 입에서 낮게 읊어지자, 불길한 붉은 기류는 그대로 검천신장을 향해 뻗어 나갔다.
크와아아-!
마치 용이 아가리를 쩍 벌리듯이.
잔뜩 성난 용은 그대로 검천을 집어삼켰다.
단 두 합 만에 검천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물론 파천마황공의 기운도 말끔히 사라진 채였다.
“검천을 단 두 합에…….”
현천맥의 입이 떡 벌어졌다.
‘건곤고의 효능이 이리 좋다니…….’
시험해 보길 잘했다.
저런 굉장한 무공이라면 자신도 먹고 싶어질 정도였다.
물론 부작용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그들이 승리를 자신할 때였다.
진마의 표정은 어딘가 이상했다.
번쩍!
그리고 검천이 있던 자리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콰창-!
동시에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기파가 이리저리 휘날렸다.
이내 기파의 후폭풍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피투성이의 검천이 검을 지팡이 삼아 짚은 채, 우뚝 서 있었다.
“호오?”
진마가 삐딱하게 고개를 꺾었다.
설마설마하니 구성의 공력이 담긴 파천마황공을 파훼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파훼는 했어도 검천의 상태는 그리 정상적이지 않아 보였다.
반면 진마는 아직 여유가 철철 흘러넘쳤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태였다.
스륵.
그가 다시 손을 치켜들었다.
검은 운무와 함께, 붉은 기류가 또다시 그의 손을 빨려 들어갔다.
십만대산 전역이 뒤흔들리는 듯한 굉음과 지진이 일었다.
검천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이건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싸움이 아니었다.
‘구천제…… 미친 자.’
구천제가 괴물을 만들어 냈다.
그 건곤고는…… 절대 사람에게 사용하면 안 되는 물건이거늘.
그렇게 검천이 자신의 검을 막 놓으려 할 때였다.
파밧-!
느닷없이 일어난 섬광과 함께, 검천의 신형이 붕 떠올랐다.
검천은 갑작스런 상황에 가물거리는 눈을 애써 떠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검천을 부드럽게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고는 마치 허공을 유영하듯, 사뿐히 봉우리를 넘어 빠르게 산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허…….”
검천이 피식 웃었다.
상대를 알아본 탓이었다.
“늦었네요, 검천.”
듣기만 해도 혼이 빨려 나갈 것만 같은 미성의 목소리.
더군다나 가물거리는 시야임에도 불구하고 보인 상대의 모습은 마치 선녀처럼 아리따웠다.
고작 삼십 대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여인은 사실 검천신장과 나이가 비슷했다.
고절한 내력으로 인해 노화조차 비껴 나간 탓에 그녀의 외모는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았다.
“그리 불러도 답을 주지 않더니…….”
검천이 쥐어짜 내듯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 검천의 말에 여인이 미안하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믿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됐어요. 제가 봤고, 또…….”
투콰아앙-!
봉우리 하나가 쩍 갈라졌다.
그러고는 거대한 대부를 든 중년 사내가 단 한걸음 만에 여인의 뒤를 따라잡았다.
“굉천대부도 왔답니다.”
“허, 죽을 때가 되니 다 모이는구만.”
검천이 허탈하다는 피식 웃었다.
굉천대부 그리고 천뢰신장.
삼신급의 절대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 * *
콰앙-!
난 가볍게 검에 묻은 피를 털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량의 목을 베고, 날 뒤쫓던 진천마가의 마인들을 모조리 벤 참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튀는 파편과 함께, 거구의 사내가 나타났다.
“누구…….”
난 잔뜩 긴장한 채 기세를 일으켰다.
상대가 이토록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그 어떤 기척도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쩌정-!
상대는 거대한 도끼를 그대로 땅에다 내려찍은 뒤, 거만한 자세로 날 내려다보았다.
나 또한 키가 작은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대는 나보다 머리통 세 개는 더 얹어 놓은 것만큼 컸다.
“네놈이 주서진이구나.”
반말.
하지만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럽다고 생각이 들 만큼 상대의 기세는 패도적이었고, 위엄이 넘쳐흘렀다.
“난 굉천대부, 방극이라 한다.”
큰형보다도 젊어 보이는 외모 하지만 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경지는 단순히 나이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도 깊고 고절하다고.
“네 사부가 검천, 그 늙은이가 맞겠지?”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극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무림인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그의 별호.
굉천대부.
거대한 이백 근의 도끼로 하급무사에서부터 삼신급이 되기까지 그가 세운 수많은 업적은 이제는 전설이 되어 세간을 떠돌고 있다.
그런 그가 자취를 감춘 것도 삼십 년은 족히 되었다 들었는데.
“따라와라.”
굉천대부는 가만히 날 쏘아보는가 싶더니, 이내 팩하고 돌아섰다.
그가 도끼를 한 손으로 가볍게 어깨에 얹히고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고작 발돋움 한 번에 허공을 격해 수백 장을 날아가는 그의 모습에 난 입을 떡 벌렸다.
하필이면 난 경공에 제일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섬전보.’
결국 섬보가 아닌, 단순 경공술의 묘리만 따서 그대로 몸을 운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십이성 극성의 내력을 모조리 퍼부어서야 간신히 굉천대부의 뒤를 잡을 수 있었다.
“저를 왜 찾으신 겁니까?”
난 굉천대부를 향해 물었다.
그는 잠시 날 흘끗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너희 집으로 갈 것이다. 들려줄 얘기가 많으니.”
“그럼 마교는…….”
“마교는 움직이지 못한다, 나와 요요의 모습을 봤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할 터.”
굉천대부의 말에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요라는 이름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굉천대부가 편하게 부르는 이름이니만큼 나머지 삼신의 한 분이 아닐까 싶다.
“근데 왜 저희 집입니까?”
내 질문에 굉천대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곳이…… 모든 것의 시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