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35
천하제일 시한부 (235)
악안 번화가.
곱추, 애꾸, 외팔이의 노인이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주천맥의 암계 중 서열 이 위에 자리한 혈막거였다.
복면을 모조리 벗어 던진 그들은 한낱 시골 촌부의 모습들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눈에 띄는 외모인지라, 서로 찢어져서 주변을 탐색 중이었다.
그중 혈막거의 둘째인 곱추 노인은 신기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악안이 언제부터 이리 번화한 동네가 되었누?”
악안이라면 그도 인연이 있는 곳이었다.
그 역시 한때 흑련 소속으로 사파의 유명한 거두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흑련의 세력권 안에 포함된 악안 역시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때와 비교해서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악안을 보며 그는 눈을 빛냈다.
“주서진, 그놈 때문인가?”
흑련은 악안을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돈을 투자해서 도시를 키워야 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창이나 다른 번잡한 도시들과 달리 악안은 자랑할 만한 그 무엇도 없었다.
한데 지금의 악안은 또 과거 남창에도 버금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확실히 난 놈이여, 그 싸가지 없는 새끼가, 클클.”
곱추 노인이 음흉하게 웃었다.
주변을 순찰하는 무사들의 수준도 생각보다 그리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주씨세가의 놈들인가 보구만, 그렇다면…….”
곱추 노인이 무사들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한 놈 잡아다가 주씨세가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어 볼 심산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자신만큼이나 못생긴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저놈이다.”
독해 보이긴 했지만, 그런 놈일수록 꿇리는 맛이 제법이다.
파밧―!
생각을 정리한 곱추노인이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은밀하던지, 번화가에 오고 가는 수많은 인파들 중 단 하나도 그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귀면탈혼은 아침 일정대로 악안의 번화가를 순찰 중이었다.
본래라면 가주의 호위를 맡는 것이 그의 주 임무였지만, 요즘 소가주의 지시에 따라 수준에 미치지 않는 무사들을 대거 해산한지라 인력이 조금 부족했다.
갑자기 비워버린 구멍을 메꾸기 위해 귀면탈혼까지도 직접 나서야 할 정도였으니까.
“오늘은 연화루나 들러 볼까?”
귀면탈혼이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옮겼다.
과거 흑호방에 장로직으로 있을 때보다 요즘이 그는 더 즐거웠다.
“안녕하십니까? 일찍 나오셨네요.”
“어이쿠, 귀혼님 아니십니까?”
여기저기서 귀면탈혼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마을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을 지켜주는 주씨세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이었다.
귀면탈혼은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는 잘되나?”
“아휴, 요즘 미쳤지요. 주씨세가가 소문이 그렇게도 많이 났는지 손님들이 아주 끊이질 않어유.”
아닌 게 아니라, 여인의 말처럼 요즘 주씨세가 근처에는 수많은 무인들로 득시글거렸다.
정천맹이 해산하고 그 유명한 신기검단주가 고향인 악안에 정착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를 동경하고, 또 그를 보기 위한 무인들로 악안은 항시 인산인해인 상태였다.
귀면탈혼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연화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연화루는 가주인 주상진이 자신에게 직접 하사한 건물이었다.
즉, 자신이 루주인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가주의 호위임무를 해야 했기에 루주는 현재 자신이 아끼는 수하가 대신 맡아 주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막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길 때였다.
흠칫.
‘살기.’
귀면탈혼의 목뒤로 삐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뭐지?’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자신에게 고도로 집중된 살기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목이 날아갈 것처럼,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호오, 예민한 녀석이로고.
그런 귀면탈혼의 귓가로 전음성이 들려왔다.
―천천히 내색하지 않고 돌아 나오거라, 아니면 그 자리에서 목을 꺾어 버릴 터이니.
“…….”
귀면탈혼은 굳이 답하지 않고 천천히 번화가를 빠져나왔다.
사람들이 많으니 최대한 한적한 곳으로 피하기 위함이었다.
“클클, 말은 잘 듣는구나. 일이 쉬워지겠어.”
마을 어귀까지 나와서야 살기의 진원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못생겼다.’
귀면탈혼이 곱추 노인을 보자마자 처음 든 생각이었다.
“더럽게 못생겼구나.”
물론 곱추 노인도 귀면탈혼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말이다.
“누구시오?”
귀면탈혼은 발끈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침착하게 물었다.
“그건 알 바 없고, 네 놈 주씨세가에서 나온 놈이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이 짧구나.”
오스스!
눈에 쌍심지를 켠 곱추 노인이 가볍게 기세를 일으키자, 귀면탈혼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단순히 기세만으로 초절정을 넘긴 귀면탈혼의 기세를 가뿐히 눌러 버린 것이다.
‘제길.’
귀면탈혼이 입술을 짓깨물었다.
단순한 기세만으로도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우위에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튀어야 한다.’
상대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딱히 좋은 결말을 불러올 것 같진 않다는 것이 귀면탈혼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내 질문에 착실히 답을 해 준다면 내 특별히 고통 없이 죽여 주마. 하나 만약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
귀면탈혼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살황의 무공을 배웠는데.’
과연 그것이 통할까?
살수로도 제황의 별호를 받은, 전설적인 살수의 무공을 배웠음에도 딱히 자신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간 수련을 너무 느슨하게 했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자신은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여겼다.
“듣고 있느냐?”
곱추 노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도 귀면탈혼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귀면탈혼은 이미 흑호방을 한번 배신한 전적이 있었다.
때문에 현재 흑호각 식구들에게서도 좋은 시선을 받진 못한다.
그건 모두 본인이 감당해 내야 할 몫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좋지 않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 곱추 노인에게서는 살기와 더불어 진득한 피 냄새가 물씬 풍겼다.
수많은 생명을 해했을 주서진에게서도 이러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놈이 내 말을 무시…….”
“뭘 물어보려는 건지 들어나 보자.”
귀면탈혼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대답에 곱추 노인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감히 반말을…….”
“어차피 죽인다며? 이런 x벌 놈이. 소가주한테도 욕하고도 살아남았는데 하물며 네깟 거라고 다를까?”
귀면탈혼은 막 나가자는 식이었다.
사실 그렇게 답하면서도 그의 머릿속은 민첩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오냐, 그냥 너부터 죽여 버리고 다른 놈을 찾는 것이 빠르겠구나.”
‘쉽다.’
귀면탈혼의 눈이 반짝였다.
상대는 도발이 쉽게 먹혔다.
괄괄한 성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무공에 대한 깊은 자부심이 깃들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방심한 찰나를 노린다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지.’
귀면탈혼은 무심한 눈으로 그렇게 다가오는 곱추 노인을 바라봤다.
스가악―!
그때 곱추 노인의 허리춤에서 뭔가 빛이 발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면전을 향해 빛줄기가 쏘아져 나왔다.
“어이쿠.”
본능적으로 허리를 틀어 빛줄기를 피해 낸 귀면탈혼의 눈앞으로 잘린 앞머리 몇 가닥이 흩날렸다.
‘엄청난 속도.’
상대의 무기가 무엇인지조차 감지하질 못했다.
“오호.”
곱추 노인은 가볍게 자신의 공격을 흘린 귀면탈혼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한 가닥 하는 놈이었군.”
스가악―!
한번 뻗은 겸을 그대로 회수해 다시금 귀면탈혼의 얼굴을 찍어 내려가는 곱추 노인.
그의 공세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귀면탈혼도 만만찮았다.
파밧―!
그의 왼발이 기괴하게 꺾였다.
동시에, 삼 보를 뒤로 물러난 귀면탈혼이 아찔한 표정으로 곱추 노인을 삐딱하게 바라봤다.
“…….”
가공할 반응속도에 곱추 노인의 표정도 조금 달라졌다.
“너…… 그 무공…….”
“왜? 놀랐수?”
귀면탈혼이 씩 웃었다.
‘먹혔다.’
살황의 무공이 먹힌다.
아직 삼성의 경지밖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저만한 고수를 놀라게 만들기엔 충분한 것이다.
‘역시 살황님이셔.’
기분이 짜릿했다.
귀면탈혼은 천천히 자신의 허리춤 뒤에 매달아 놓은 소검을 끌러 내렸다.
“살수였느냐?”
곱추 노인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그가 자신의 애병인 혈겸을 꺼내 들고, 자세를 잡아갔다.
‘겸?’
상대의 무기를 확인한 귀면탈혼이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살수 놈이 정면 대결로 내게 승산이 있으리라 보는 거냐? 멍청한 놈이로구나, 클클.”
곱추 노인이 말과 함께, 그대로 귀면탈혼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발출된 그의 내공이 전신을 뜨겁게 달구고, 들끓는 진기는 그대로 두 다리를 통해 뻗어 나갔다.
텅―!
뜨거운 열양지력이 귀면탈혼을 화끈하게 덮쳐 왔다.
‘어……?’
귀면탈혼의 고개가 비스듬히 꺾였다.
‘이 무공…….’
기억이 난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무공이다.
아니면 들은 적이 있던가.
화우웅―!
공기를 뜨겁게 덥히며 날아든 겸의 궤적을 이리저리 피해 내며, 귀면탈혼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어디서 봤던가.’
순간, 번뜩이는 그의 머릿속.
“화령열주?”
“오호라, 이 노부의 예전 별호를 기억하는 자가 있었다니.”
곱추 노인, 화령열주의 대답에 귀면탈혼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흑련의 화령단을 맡아 관리하던 열 명의 관리자들 중 하나.’
승산이 없다.
만약 진짜 화령열주라면 자신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필패였다.
‘이미 이십 년 전에 화경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알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이는구나, 끌끌.”
화륵―!
뜨거운 화기가 넘실거렸다.
붉게 달아오른 혈겸이 귀면탈혼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마치 길이가 늘어나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혈검은 수십 장밖에 서 있는 귀면탈혼의 옷가지를 태워 버릴 정도였다.
‘아차차.’
다급히 신형을 움직여, 화령열주의 공세를 피해낸 귀면탈혼은 최대한 몸을 낮췄다.
‘인단세.’
살황의 무공.
인간을 죽이는 가장 기본적인 검세.
‘마음을 죽인다.’
슷―!
귀면탈혼의 눈빛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무미건조한 그의 표정은, 그의 못생긴 얼굴과 섞이자 마치 야차처럼 보일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섬뜩!
찰나간이지만, 그 순간 화령열주가 멈칫거렸다.
‘이게 대체…….’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인 것처럼.
너무도 고요하고, 조용하다.
살심이 일지 않고, 감각 기관이 모조리 죽어 버린 것처럼 고즈넉하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터덩―!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화령열주는 단번에 겸을 치켜올렸다.
불꽃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귀면탈혼의 신형이 튕겨져 나갔다.
‘아차.’
화령열주의 표정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수작질인지는 몰라도, 대단하구나.”
만약 넋을 놓고 있었다면 자신의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만큼 귀면탈혼의 한 수는 고절했다.
하지만 본능적인 반격에 귀면탈혼의 회심의 한 수는 이미 무력화됐다.
털푸덕―!
수십 장을 날아가 버린 귀면탈혼이 그대로 허무하게 땅바닥을 뒹굴었다.
팟―!
단번에 그를 향해 몸을 날린 화령열주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귀면탈혼을 향해 겸을 치켜들었다.
아쉽지만 더 쉬운 다른 놈을 찾아 주씨세가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
그의 치켜 올라간 겸이 미처 내려오질 않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겸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질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단세(人斷勢).”
깊은 어둠보다 더욱 싸늘한, 살황의 숨결이 불어왔기에.
촤악―!
피가 튀었다.
동시에, 화령열주의 손목이 그대로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피 안개 뒤로, 방갓을 깊게 눌러쓴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나이 많은 사제에게 무슨 짓인가?”
묵야.
그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화령열주를 아래로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