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53
천하제일 시한부 (253)
사륭회.
솔직히 뭐 하는 놈들일까 한 번쯤은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사륭회는 총 아홉 개로 자신들의 영역을 구분해 놓고 있다.
그중에서 양천(陽天).
“군문가.”
난 주천이 남겨 놓은 기록을 천천히 되짚었다.
양천의 핵심 세력은 바로 군벌이다.
퇴역한, 혹은 아직도 현역인 군관들이 주축을 이루는 집단으로 양천의 기반이 되는 세력들이다.
“방천보라…….”
사실 이 기록을 쉽사리 믿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해도 어찌 보면 같은 편의 약점을 적에게 알려 주는 꼴이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확신은 했다.
이건 진짜라고.
주천맥 이 새끼는 진짜 미친놈인 거다.
그는 권력이나 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재밌는 거다.
지금 이 상황을 하나의 유희쯤으로 여기는 그런 미친놈.
양천의 본거지가 방천보라는 사실도 알았으니 조급해할 건 없었다.
내가 방천보로 향한다는 건 곧 사륭회랑 본격적으로 한판 제대로 뜰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과 같으니까.
대비가 되지 않고는 괜히 저들에게 경계심만 일깨우는 꼴이 될 터.
지금 주천은 잔머리를 굴려 날 양천 쪽으로 몰아놓고 뭔가 다른 수작질을 계획 중이거나 이미 실행 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순순히 끌려가 주는 척을 해 주면 된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해 왔듯이.
“어떻게 할 건가?”
주천맥의 기록을 모두 읽은 묵야가 담담한 신색으로 물었다.
살문의 후예.
살황의 뒤를 이은 후계자.
묵야 역시 사륭회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진 건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무림맹의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챈 것도 바로 묵야였으니까.
“이제 결정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렇지.”
묵야의 말을 들으며 난 생각을 정리했다.
결정해야 할 때.
예전 당가의 주도로 만들어졌던 오대세가의 회합.
그리고 거기서 들었던 말은 날 맹주로 추대하고 싶다는 가주들의 의지였다.
맹주가 된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거절했다.
“정천맹의 역할이 뭐였는지 알고 있나?”
내 고민을 눈치챈 묵야가 입을 열었다.
“정천맹이 있기 때문에 무림맹과 흑련이 뭉친 거다. 견제할 세력이 있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거든.”
“그 점은 나도 알아. 하지만 정천맹은 무너졌다. 어차피 그리될 수순이었어.”
정천맹이 약해서가 아니다.
정천맹은 충분히 마교를 막아 냈다.
물론 마교가 전력을 이끌고 싸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해도 다행인 것이다.
“세가들을 먼저 끌어들여라. 그리고 난 아무래도 맹주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진랑을?”
정천맹에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진랑.
그가 있었다면 정천맹이 저리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아니면 이것조차도 그가 의도한 계략 중 일부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그 어떤 생각을 해도 진랑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없다.
무엇을 해도 그놈은 항시 다른 변수를 생각해 두고 있다는 점.
내가 알았을 사실을 진랑이 몰랐을 리는 절대 없다.
그렇기에 그동안 진랑의 출신이나 정체를 묻지 않아도 서로 믿고 등을 맡겼던 이유였다.
놈이 배신할 거라면 진즉에 내 등에 칼을 꽂고도 남을 놈이었으니까.
그만한 두뇌는 가지고 있는 놈이니까.
“좋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진랑.
그가 필요하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그것이 과연 뭘 위한 일인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이제는 나 자신도 조금 급해졌으니까.
“내가 귀향한 지 일 년이다. 내 챙길 식구들도 늘어 가고 이제는 제법 원대한 포부도 생겼거든.”
서희를 위해 가문을 재건하겠다고.
서희를 위해서 내가 죽고 난 뒤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절대 영역을 구축하겠다고.
하지만 사사건건 방해를 하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다.
정리되지 않은 무림사는 내 발목을 옥죄고.
이제는 천천히 깔끔하게 싹을 도려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흑련과 약속은 약속이니까. 다만 방식을 조금 바꿔야지.”
회유하기 위해, 내가 직접 움직인다.
하지만 이제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내가 왜?
신의가 걸린 약속은 지켜 준다.
내 방식대로.
“전서구를 띄워. 목적지는 무당과 소림. 그 둘에게 내 이름으로 협박을 좀 해 줘야겠어.”
“내가 직접 가지. 맹주도 찾아볼 겸.”
“그래 준다면 고맙고.”
난 이내 묵야의 손을 맞잡았다.
그 역시 무심한 표정으로 내 손을 맞잡았다.
“헤어질 시간이군.”
“다음에 건강하게 보자고.”
그 짧은 인사를 끝으로 묵야의 신형이 유령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난 이내 홀로 뒤로 돌았다.
무당과 소림이 내 말을 들어준다면, 일이 조금 수월해질 것이고 듣지 않는다면 뭐…… 파국이다.
어차피 기대감 따위는 일도 하지 않기에 대비할 수단은 만들어 둬야 했다.
* * *
강서성, 악안.
난 곧장 세가로 돌아왔다.
섬서성에서 꼬박 일주일 정도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그리고는 곧장 무살괴의 거처를 향해 천화상단을 보냈다.
그곳에 있는 서적들과 무공서 그리고 영약들을 모조리 취하기 위함이었다.
천 년 이상 된 하수오 뿌리가 못해도 수백 뿌리는 된다.
거기에 더해 최상품의 대환단이 열 알.
또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를 더불어 무림을 종횡무진 누볐던 고수들의 무공서도 얻었으니 그걸 바탕으로 주씨세가 전체를 강력하게 탈바꿈할 생각이었다.
“가만있어 봐.”
그렇게 또 일주일 정도가 흐르고, 천화상단마저 주씨세가에 도착했다.
각종 물건들을 내 방으로 직접 옮겼다.
하나만 해도 천금을 주고도 못 살 귀중한 것들이었기에 내가 손수 관리할 생각이었다.
그러고는 난 귀면탈혼을 몰래 내 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내가 도착했을 때 묵야가 보이지 않자, 내심 섭섭한 기색을 내비쳤다.
알게 모르게 같은 살황의 무공을 배우는 동문 사형제나 마찬가지였기에, 인사도 없이 사라진 묵야가 야속했던 것이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귀면탈혼이 내 방안으로 들어서고, 난 조용히 방문을 걸어 잠궜다.
“왜, 왜 그러십니까? 하하…….”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귀면탈혼이 주춤대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전신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앉아 봐, 네 몸 상태 좀 봐야겠다.”
귀면탈혼은 군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난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귀면탈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긴장 풀어. 그간 고생했다고 선물 좀 주려고 하니까.”
귀면탈혼은 총호법이다.
평상시엔 가주인 형의 호위를 맡고 있으며, 다른 여섯 개 각의 무사들의 훈련도 지휘한다.
“살 만하냐?”
내 물음에 귀면탈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건 같긴 한데, 그래도 믿어 주시니 해야지요, 허허.”
귀면탈혼의 웃음에 나 역시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처음 봤을 때는 영락없는 흑도 나부랭이였는데.”
“에헤이, 그때가 언젠데요. 저도 뭐 소가주님을 만나서 인생 역전했지요.”
귀면탈혼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일류를 조금 넘어서던 수준에서 이제는 초절정의 경지에 머물고 있으니…… 하, 그래도 무공도 주시고 매번 가르침도 주셔서 매일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그래?”
난 이내 귀면탈혼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널 지금보다 더한 경지로 이끌어 줄 수 있거든?”
“…….”
귀면탈혼 역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제로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모든 혈맥을 씻어 낼 거다. 임독이맥을 완벽히 개통할 것이며 그리되면 넌 새로운 길을 보고, 걷게 될 것이다.”
“제가…… 화경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화경, 그 경지는 그리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니야. 하나, 화경의 문턱에는 발을 걸쳐 볼 수 있겠지. 모든 것은 네 하기 나름이다.”
화경이란 경지는 모든 무인이 꿈에도 그리던 경지다.
아무나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는 수준의 경지도 아니다.
하지만 귀면탈혼은 충분히 자질이 있었다.
무학에 대한 깊이나, 무공 면에서의 성장 속도만 봐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딱 하나.
“흑도들의 전형적인 문제지.”
바로 내공.
“안 그래도 이번에 소가주님께서 하사하신 무심공을 익히고 있긴 한데, 아직 성취가 미약해서 내공이 쭉쭉 쌓이진 않던데요.”
귀면탈혼의 말에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공은 살황의 내공심법이다.
감정을 모조리 털어 내기 위한, 어찌 보면 도가 계열의 심법이라 할 수 있었다.
도가 특유의 성질대로 내공을 쌓는 데는 비교적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무심공도 그런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안정도도 괜찮았고, 살수의 심법치고는 체계 또한 완벽했다.
더군다나 무심공에는 무서운 특징 한 가지가 숨어 있었다.
“칠 성 이상의 공력을 쌓는다면, 그 속도의 갑절 이상 빨라질 것이다. 보통 거기서 주화입마에 빠지는 살수들이 많다 하더군.”
“주, 주화입마요?”
귀면탈혼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놀랄 것은 없어, 네게 선물로 그 단계를 건너뛰게 해줄 생각이니까.”
그리 말하며 난 품에서 준비했던 영약을 꺼내 들었다.
“이게 뭡…….”
이게 뭐냐고 물으려던 귀면탈혼의 입이 절로 꾹 닫혔다.
내가 보인 것은 바로 대환단.
그것도 금빛 광채를 머금은 극상품의 대환단이다.
“대, 대, 대환단!”
귀면탈혼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소림을 턴 겁니까? 아니 대체 어쩌자고 그런 짓을! 소림사가 가만히 있겠냐구요!”
“좀 닥쳐.”
난 이내 인상을 찡그리며 귀면탈혼에게 손짓했다.
그는 쉬이 진정되지 않는지, 그렇게 일다경가량을 더 날뛰고 나서야 그제야 좀 조용해졌다.
“소림사는 가 보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것의 출처는 묻지도 말고 이걸 이용해서 네 내공량을 강제로 늘려 버릴 생각이다. 덤으로 혈맥들도 모조리 개통되겠지.”
문제는 그의 나이다.
너무 늦은 나이에 무공에 입문했기에, 그의 혈맥은 온갖 노폐물이 잔뜩 끼어 있을 터.
그만한 고통은 감수해야 했다.
“준비됐습니다.”
귀면탈혼은 어느새 내 앞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새끼…….”
난 이내 피식 웃으며 그에게 대환단을 건넸다.
“물처럼 녹아들 거다. 당황하지 말고 부드럽게 목으로 넘긴 후, 곧장 무심공을 운기해라. 네 내공에 맞게 대환단의 기운이 변화할 것이니.”
이미 한번 대환단을 경험해 봤던 나는 귀면탈혼에게 대환단을 먹는 요령을 알려 주었다.
흡수율을 완벽히 끌어낸다면 귀면탈혼은 능히 화경에 경지에 올라선 초고수가 된다.
어쩌면 종서조차 한눈에 내려다볼 수도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귀면탈혼은 말없이 곧장 대환단을 입으로 집어넣었다.
쿠구구―!
그가 대환단을 입에 집어넣기 무섭게 그의 전신이 준동했다.
이윽고 그가 무심공을 읊기 시작하고 그의 전신이 황금빛 광채로 물들기 시작했다.
난 그런 그의 천주혈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주화입마의 걱정이 없는 대환단이라지만, 무심공은 명백히 살수의 심법.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에 조금 도와줄 생각이었다.
‘이게 시작이다.’
주천이 무슨 생각으로 내게 이런 영약들을 건넨 것인지는 몰라도.
이걸로 말미암아 난 제대로 벼린 검으로 그들의 목덜미를 갈라 버릴 것이다.
그렇게 천하제일세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밑 작업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