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3
천하제일 시한부 (33)
좌호법의 목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 어떻게…….’
분명 조금 전까지 객잔을 나와서 저쪽 길로 걸어가는 걸 똑똑히 지켜봤다.
그런데 대체! 왜 여기에 저자가 있는 것인가!
“핫핫!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
“너 나 찾아왔잖아. 남궁 따까리.”
남궁 따까리.
맞는 말이다.
남궁세가의 무인이니까 맞는 말이긴 한데……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어쩔 수 없지.’
좌호법은 방금 전까지 짓던 멍청한 표정을 풀고 서진을 똑바로 쳐다봤다.
“알고 있다면 굳이 연기할 필요 없겠군. 그대가 주서진이오?”
“어, 맞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가 쉽겠군. 본인은 남궁가의 호법이자, 셋째 공자의 호위를 맡고 있는 우문상이라하오.”
“…….”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충 알 것 같았으니까.
“며칠 전, 옥화산 초입 한 객잔에서 본 세가의 공자께 해를 가한 일이 있소?”
“있지.”
대수롭지 않게 답했지만, 속으로는 좀 놀랐다.
가문의 직계가 다쳤는데, 바로 공격하지 않고 이렇게 신중하게 물어봐 주다니.
척!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우문상이 자신의 검자루를 잡아갔다.
“가문의 무사들도 모두 죽여 없앴던데. 왜 그랬소?”
“내 여동생을 희롱하더라고. 내 눈앞에서.”
“…….”
우문상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저 반응으로 봐선, 남궁진성 그놈이 이런 비슷한 짓거릴 많이 한 듯싶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본 세가의 무사들까지 다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말이 짧아진다.
“먼저 칼을 뽑은 건 그쪽이다. 더군다나 내 여동생까지 강제로 끌고 가려 한 것도 그쪽이고. 난 최대한 참아줬다고.”
“말투가 거만하구나.”
“하, 진짜 ×발.”
이유를 설명해 줘도 이렇게 멍청한 놈들은 제대로 알아 처먹지도 못한다.
아니, 듣기 싫은 것이겠지.
“싸우자는 거냐?”
“그 정도 실력을 갖췄다면, 어느 정도 아량을 베풀어도 되지 않았을까? 굳이 그렇게 다 죽여야 했나?”
“아량…… 베풀어 줬다고. 너 이 새끼 말단이지?”
내 말에 우문상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건방 떨지 말거라. 흑련의 입장을 봐서 지금 간신히 참아 주고 있는 것이니.”
“흑련? 여기서 흑련이 왜 나와?”
아, 설마.
내가 철주검문에서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흑련 사람으로 본 건가?
“따로 조사를 받겠느냐? 아니면 흑련에 정식으로 항의를 넣어 볼까?”
“큭.”
웃겼다.
미안하지만 저 말단 호법은 그럴 권한이 단 한 개도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럴 수는 있는 위치고?”
그래서 비꼬아 주었다.
“…….”
우문상의 얼굴이 벌개졌다.
“객기는 이쯤하고. 너네, 내가 친히 이름까지 알려 줬는데 ……상부에 알리지도 않고 그냥 튀어 온 모양이지?”
사실 당연한 결과긴 했다.
남궁진성, 그놈이라면 틀림없이 쪽팔려서라도 보고 없이 제멋대로 움직일 것이 너무도 뻔했으니까.
다만 너무 어중간한 놈이 왔다.
“돌아가라, 더 높은 놈 불러. 그리고…… 상황 좀 자세히 알아보고 오는 편이 좋을 거다. 괜히 나랑 얼굴 붉혔다가는…… 너희만 다쳐.”
“크윽!”
우문상이 이를 악물었다.
검자루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치욕적이겠지.
남궁세가에 소속되면서부터 이런 취급은 받아본 적이 없을 테니까.
‘조금 아쉽네.’
사실 먼저 검을 뽑고 덤볐다면 충분히 밟아 줄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내가 철주검문에서 나오는 걸 목격된 탓에 상황이 조금 재미없게 돌아갔다.
슥!
난 말과 함께, 돌아섰다.
우문상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내가 흑련 소속의 무사라는 걸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굳이 그 생각을 정정해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더 높은 녀석들이 온다면 자연스레 알게 될 문제니까.
그렇게 난 우문상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형의 집으로 향했다.
* * *
그날 밤.
서희와 형수님, 그리고 조카들은 모두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왔느냐?”
마당에서는 때아닌 달밤에 형이 서 있었다.
“기다렸어?”
아무래도 내가 오는 걸 기다렸나 보다.
“기다리긴…… 그냥 잠이 오지 않아서.”
형의 시선이 슬쩍 내 뒤를 향했다.
“미안, 오늘은 없어서 못 데려왔고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냈어.”
“그래? 어디 다친 데는 없다더냐? 무슨 나쁜 짓을 한 건 아니고?”
피식.
아닌 척하지만 꽤나 속앓이를 했던 모양이다.
“큼, 큼.”
내가 웃자 형이 헛기침을 하며 머쓱해 했다.
“다치진 않았을 거야. 누구 핏줄인데.”
“허허, 녀석이 제법 재능이 있긴 했지.”
팔불출이다.
조카 놈 칭찬하기 무섭게 형의 표정이 환해졌다.
“형.”
가만히 형을 불렀다.
형이 날 향해 돌아봤다.
“집에 가자.”
“…….”
말이 없었다.
굳이 구태여 덧붙이지 않아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형은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형이 언제 농사를 지어 봤어? 형수랑 조카들 더 고생시키지 말고…… 내려가자, 악안으로.”
형수야 워낙 심성이 곱고 착해서 아무 말없이 형을 지지해 주겠지만.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형의 시선이 슬쩍 안채를 향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곯아떨어진 조카들의 얼굴이 보였다.
형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겠지.
“돌아가자, 가서…… 세가를 맡아 줘.”
큰형은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다.
총명했고, 무엇보다 먼 미래를 생각하는, 즉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세가의 당장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구축하는 데 있어 형의 도움이 필요했다.
단순한 나로서는 당장을 안정시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벅찼으니까.
“악안이라…….”
형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부탁할게.”
살면서 부탁이란 걸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내가 난생처음 형에게 간청했다.
‘오 년.’
오 년이면 죽는다고.
오 년 뒤 내가 죽더라도 서희를 지켜 줄 사람은 혈육밖에 없을 테니까.
* * *
다음 날 아침.
간밤에 결국 형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난 조만간 형의 대답이 들려오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형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어머니는 서로 다르지만, 그래도 핏줄이다.
모두가 닮은 곳 하나 없다 할지라도, 피로 이어진 사이는 알게 모르게 통하는 구석이 있기 마련.
“서진이 일어났느냐?”
문밖에서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녁에 돌아오거든 어제 못 한 얘기를 하자꾸나.”
“아, 그래.”
됐다.
형의 목소리는 한결 밝아진 듯했다.
이내 형이 밖을 나서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오늘도 조카 놈을 찾으러 가 봐야겠군.”
일어서기 무섭게 대충 세안을 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질끈 묶었다.
“바쁘다, 바뻐.”
난 곧바로 마을 초입 사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광흑이 나와 있었다.
“오셨습니까, 단주.”
“어. 뭣 좀 나왔냐?”
“남창묵가에 대한 건 조사 중입니다. 완전하진 않지만 알려드릴까요?”
“응.”
급했다.
빨리 조카를 찾아 형과 함께, 악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남창묵가. 묵기성 전 가주가 의문의 사고로 죽은 뒤, 약관의 나이인 묵천주 소가주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후 행보는 그야말로 파격적.”
광흑이 품에서 꺼낸 서찰을 넘기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가주로 등극한 뒤, 남창에 있는 세 개의 방파를 무력으로 흡수, 열한 개의 주루를 스무 개로 늘렸으며 남창 제일 상단이던 천하상단을 역시 무력으로 통합시켰습니다.”
“천하상단?”
귀가 번쩍 띄었다.
천하상단은 과거 우리와도 계약을 맺었던 상단이다.
지금 내가 이곳에 온 것도 겸사겸사 그들을 만나 보기 위함이었다.
한데, 광흑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이야.
“천하상단 역시 무력으로 가진 듯 보입…… 아, 그러고 보니 과거 주씨세가 역시 천하상단과 계약 중이었지요?”
“흠, 그놈이 가주가 된 것이 언젠데?”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광흑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일 년 내에 그 많은 짓을 벌였다고?”
“예, 그렇습니다.”
광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입을 열었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깔끔해서…… 문제지요.”
“깔끔한 것이 문제다…… 왜?”
깔끔하다면 그건 나름대로 좋은 것이 아닌가?
피를 토해 내는 것보다야 무력시위로 적당히 겁을 주고 흡수한다…… 뭐, 괜찮은 것 같은데?
“남창묵가에 흡수된 세 방파의 가주들이…… 모두 의문사로 죽었습니다.”
“…….”
음, 이건 확실히 문제다.
“자객을 썼나?”
“그럴 확률이 적어도 칠 할 이상이라 생각합니다.”
칠 할은 무슨.
이건 십 할이다.
“십할남창묵가.”
“예…… 예?”
“아, 십 할이라고. 그 확률이.”
광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통 살수를 이용하는 집단은 사도로 규정된다, 맞지?”
“정확합니다.”
사파.
사파의 길을 걷는 세력을 사도로 규정한다.
사파는 정파와 달리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정파는 암살을 꺼린다.
하지만 사파는 오히려 권장한다.
가장 깔끔하기 때문이다.
“사자무언(死者無言). 확실히 정사 중간을 표방하는 문파가 할 만한 짓은 아니지.”
물론 내가 할 말은 아니다.
나 역시 숱하게 암살도 해 봤으니까.
뭐,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정파라고 여기서 깨끗하게 벗어날 순 없다.
오히려 뒤로 구린 짓을 더 많이 하는 것이 그들이니까.
“거기에 자호 무사가 사용됐을 확률은?”
“거기서부터는 지금 조사 중에 있습니다.”
으, 제일 중요한 것이 빠졌구나.
“저, 단주.”
광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조사를 더 해 봐야겠지만 사실 저희 개방이 얻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남창묵가가 마음먹고 정보를 감추기 시작했다면,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단 뜻입니다. 해서…… 이번 일에 최적화된 이들이 있습니다.”
“이번 일에 최적화된 이들?”
“예.”
광흑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존심 상하긴 하지만…… 이런 쪽으로는 하오문이란 자들이 저희 개방보다 한 수 위라 생각됩니다.”
아, 하오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놈들…… 아직 있냐?”
내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예? 그게 무슨…….”
“하오문 놈들. 잘 살아있냐고.”
“그거야…… 잘 있지 않겠습니까?”
역시나, 광흑은 모르고 있나 보다.
“하오문이라…… 흠. 확실히 그놈들이 이쪽 방면으로는 너희보다 낫긴 하겠지.”
개방은 정파의 한 축답게 선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하오문은 정보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그래서 하오문 역시 사파로 규정되어 있다.
“예, 그래서 하오문을 한번 찾아보시는 것이 어떨까 해서…….”
“너도 한계가 있나 보구나?”
내 말에 광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구역도 아니기에 더욱 힘듭니다. 사실 찾고자 하면 못 찾을 것도 없지만 그랬다가는…….”
광흑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태상방주 노걸개의 눈에 띌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 그런데…… 문제가 있단 말이지.”
내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하오문 놈들이 내 말을 들을까?”
“예? 그게 무슨…….”
하오문 놈들.
“걔네는 날 보면 아주 죽일 듯 달려들 텐데.”
아니면 모습을 감추던가.
광흑의 표정이 더욱 모르겠다는 듯 일그러졌다.
“하오문 놈들. 한때 내가 또 놈들 인구수를 싹 말려 버린 적이 있거든.”
“헙.”
광흑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같은 정보 업계 종사자라고 뭔가 와닿는 모양이다.
“저, 단주님?”
광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을 모르고…… 사실 제가 사람 하나를 데려왔는데…….”
광흑의 얼굴이 벌게졌다.
“하오문의 장로분 중 한 분을 지금 여기 모셔왔습니다만…….”
아, 광흑 이 자식.
일 처리가 너무 뛰어나다.
이제 보니 광흑의 뒤편 사당 건물에 슬쩍 몸을 가린 노인 하나가 날 보며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