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4
천하제일 시한부 (34)
“저 자인가?”
슬쩍 광흑에게 물었다.
광흑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이거 난감하네.”
그럴 수밖에.
하오문은 날 아주 잘 알고 있다.
나와 신기검단이 작정하고 하오문을 멸문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니까.
그런 하오문의 장로라는 자와 마주하려니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은 내가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알고 계시겠지만, 하오문의 장로는 저희 개방의 분타주와 비슷하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훨씬 자유로운 조직도를 가지고 있고, 장로는 그들의 점들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광흑의 설명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광흑의 말처럼 하오문은 엄청 큰 규모를 보유한 세력이었다.
하오문주가 누구인지는 역사상 단 한 번도 밝혀진 적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정보력 또한 개방과 함께 일이 등을 다투는 지경이다.
“좋아, 만나 보지.”
하오문이 도와주면 좋은 거고 안 도와줘도 굳이 내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도와드리지.”
헌데, 예상외의 답변이 들려왔다.
“너희 내가 누군지 알지?”
“알고 있소.”
하오문 장로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내가 누군지 알면서 승낙한다고? 이 요구를?’
“마치 그대가 누군지 다 알면서 왜 이 의뢰를 승낙했는지 궁금한 듯한 표정이로군.”
장로가 내 표정을 읽고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글쎄, 막 궁금하진 않은데…… 그냥 신기할 뿐.”
“끌끌끌, 걱정 말게. 자네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어 본 문도 매사 조심하고 있거든.”
장로의 눈빛이 사특하게 빛났다.
“그러니까 말인데, 내 이번 일을 도와줄 테니. 대신 약속 하나만 해 주게.”
“약속?”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슬쩍 고개를 돌려 광흑을 바라봤다.
장로의 눈치를 받은 광흑이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말해 보쇼. 뭔 약속?”
내 입에서 저절로 짜증스런 어투가 튀어나왔다.
들어 보고 귀찮은 일이면 단박에 거절할 생각이었다.
“별 건 아니고, 추후에 우리 일을 딱 하나만 도와줬으면 하네만.”
“흠, 그 일이 내 마음에 안 들면?”
“불법적인 일이나 자네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이었으면 부탁하지도 않았을 걸세. 때에 따라서는 정말이지 가벼운 부탁이 될 수도 있고.”
“그것참, 애매하네.”
뭔가 꺼림칙했다.
한마디로 그냥 빚을 져 두고 싶다는 뜻 같은데…….
“어떤가?”
내가 한참을 고민하자 장로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개방과는 어느 정도 정보전에서 협력 자세를 취하고 있네. 우리와 당연히 걷는 길이 다르기에 방법은 다를지언정 서로 갈구하는 목표점은 같다고 볼 수 있네.”
장로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목표가 같을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은 수없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 점에서 사도와 정도로 많이들 나뉘곤 하니까.
어느 게 맞다, 아니다를 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좋아, 도와주지. 대신 확실히 처리해 줘야 할 거야.”
“물론이네.”
장로가 활짝 웃었다.
‘후, 이게 잘하는 짓이려나.’
개방에 이어 하오문이다.
양지와 음지 둘 다 끌어안은 셈이었다.
반대로 좋은 점도 있었다.
먼저 개방과 하오문은 무림에서 정보전이라면 으뜸으로 쳐주는 세력들이다.
이 세력이 날 돕는다는 것은 곧 어느 정보든 선점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과도 같았다.
“그럼, 말씀해 보시게. 본 문이 무엇을 어떻게 해 드렸으면 하는지.”
“좋아.”
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마저 정리했다.
남창묵가를 조사하는 일.
개방이었어도 충분히 했을 일이다.
다만 시일이 좀 걸릴 뿐.
그렇다면 하오문 역시도 시일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날 남창묵가에 넣어 줘.”
“흠. 신분을 위조해 달라는 말씀이신가?”
“응.”
장로가 잠시 고민하다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것도 없군.”
“그렇게 쉽게?”
“신분 위조야 늘 하던 일이니, 어려울 게 뭐 있겠나?”
말 되네.
쟤네들한테는 그게 밥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겠지?
“그럼 잘됐네. 남창묵가로 들여보내 줘.”
“기간은?”
“잠깐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정도. 두 시진 정도만 출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 정도면 사실 하오문을 시켜 정보를 빼 오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오문에게 내 사연을 알려야 한다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내 눈으로 직접 파악하고 확인하고 싶은 이유가 컸다.
“흠, 그 정도면 우리 쪽 사람을 써서 들어갔다 나와도 되겠는데?”
장로가 바로 내 생각과 같은 의견을 표했다.
“아냐. 내가 직접 확인하고 싶거든.”
“음…… 좋네. 두 시진 뒤에 여기서 다시 보지. 마침 꽤 괜찮은 자리가 날 듯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장로가 모습을 감췄다.
“광흑.”
“예 단주.”
문득 궁금해졌다.
“하오문은 왜 저리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지?”
“흠, 잘은 모르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감정?”
“알아보니까 남창묵가가 여기저기 적을 많이 만들고 다녔더군요.”
“하긴…….”
이해가 갔다.
고작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무력으로 세 개의 방파를 흡수하고 사업체를 쭉쭉 흡수할 정도면 뭐…….
적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아무튼 준비가 되는 대로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이내 광흑이 대답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 * *
안휘성 합비, 남궁세가.
남궁세가가 때아닌 소란으로 야단법석이었다.
“뭐라!”
남궁가의 호법당에서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청해의 혀, 혈공성이라 했느냐!”
총호법 남궁진천의 안색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그의 고함에 보고를 올리던 우호법은 차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부, 분명 그리 들었습니다만…….”
“제기랄! 문상이 이 자식은 어디로 갔느냐!”
우문상.
서진을 따라갔던 좌호법의 이름이었다.
“염려 마십시오, 총호법. 총호법의 지시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그냥 감시만 하는 걸로…….”
“이런 미친! 누가 누굴 감시해!”
총호법이 일갈을 내질렀다.
“당장 진성이 이놈을 내 앞으로 끌고 와라!”
“저, 총호법 왜 그러시는지…….”
우호법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상처를 입고 돌아온 쪽은 남궁진성이었고, 남궁가의 무사들 또한 모조리 죽임당했다.
그럼 그쪽으로 화를 내야지 왜 대체 자신에게 이리 역정을 내는지 총호법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다. 내 당장 가주님께 고할 터이니, 진성이 그놈을 창룡전으로 끌고 와라. 말을 듣지 않는다면 반 죽여서라도!”
“초, 총호법!”
우호법이 놀라 소리쳤다.
“아니다. 네가 못한다면…… 좌사! 우사!”
“예, 총호법.”
횃불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총호법의 좌우로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등장에 우호법이 다시 바짝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호법좌사, 호법우사.
총호법을 보필하는 호법당의 제 이인자들이다.
총호법이 그들을 향해 명을 내렸다.
“남궁진성, 그놈을 당장 창룡전으로 데려와라.”
우호법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총호법이 직접 가주에게 보고하는 사안이다.
사태가 이리 심각하게 흘러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대체…… 혈공성 그자가 뭐길래……?’
“궁금한가?”
총호법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호법이 침을 꿀꺽 집어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혈공성 주서진. 세상 사람들은 모르나, 알 만한 사람들…… 특히 구파일방과 천마신교, 흑련의 주요 수뇌부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
총호법이 검자루를 꽉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전율이 일었다.
“가장 무인답지 않으나, 가장 천하제일인에 근접한 자.”
“…….”
“정파인도 사파인도 아니기에 가장 자유롭기에 가장 조심해야 될 자다.”
우호법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전혀 들어 보지 못했다.
“삼신이나 삼성 노선배님들이 계시잖습니까? 그분들의 존함은 들어 봤어도…… 주서진이라는 이름은…….”
“그분들은 역사다. 전설이고 지금은 기록되지 않는 한 줄기 역사! 하지만 혈공성은 다르다. 그는 지금 새로 써지는 역사다. 잘못 건들었다간…… 가문이 멸한다.”
총호법의 말에 우호법이 푹 고개를 떨구었다.
그제야 남궁진성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아무튼 시위는 당겨졌다. 그자의 눈에 들었다면 남궁세가는 이미 위험할 수밖에 없어. 그토록 조심하고 조심했거늘!”
총호법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남궁진성, 그놈 때문에 세가가 위험하게 생겼다. 내 그렇게 행실을 조심하라 일렀거늘!”
총호법은 싸늘한 한마디를 남기고 호법당을 나가 버렸다.
그는 곧바로 창룡전으로 향했다.
창룡전에는 그의 동생이자, 남궁가의 가주인 남궁천이 있었다.
“가주, 안에 계십니까?”
동생임에도 공과 사는 구별하는 총호법, 남궁진천이다.
남궁진천의 부름에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던 남궁천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형님. 들어오시지요.”
남궁천이 인자한 미소로 남궁진천을 반갑게 맞았다.
“표정이 왜 그러시오?”
수십 년을 함께 산 형제답게 굳은 표정으로 들어서는 남궁진천을 보고는 뭔가 일이 터졌음을 직감한 남궁천이었다.
“큰일났소, 가주.”
남궁진천이 대뜸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시길래…….”
“잠깐 기다리시오. 내 썩을 놈 하나를 잡아 오라 일렀으니.”
남궁진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룡전 앞이 시끄러워졌다.
좌사의 손에 들려 남궁진성이 볼품없이 땅을 뒹굴었다.
“진성이…… 아니, 형님!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저놈이 세가를 말아먹으려 아주 작정을 했소이다. 내 그간 가주의 체면을 생각해 참고 또 참았소만 이번에는 격이 다르오!”
남궁진천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던 형이었기에, 남궁천 역시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고 남궁진천의 말을 경청했다.
“네 이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옥화산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모두 고하거라!”
“배, 백부님……? 왜 제게…….”
“사실대로 고하라 일렀다!”
남궁진성은 남궁진성 대로 당황했다.
한 번도 이렇게 엄하게 혼나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인자하고 자상하게 돌봐 주시던 분들이 이러니 당연히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말해 보거라.”
남궁천마저 자리에 앉아 가만히 남궁진성을 내려다보았다.
‘그 개자식 때문인가?’
남궁진성이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생각보다 뒷배경이 대단한 놈이었나 보네?’
물론 끝까지 정신을 차릴 성격은 아니었다.
“그냥 작은 시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자가 남궁을 모욕했고 제 호위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사실대로 말한 것이 맞느냐?”
“예, 사실입니다. 백부님.”
남궁진성이 가증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내 그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울어 주면 금방 날 위로하려 하겠지.’
여태껏 그래 왔듯이.
남궁진성은 진짜 억울한 사람처럼 몸까지 떨어 가며 눈물을 흘렸다.
‘음?’
하지만 어째선지 주변이 조용했다.
지금쯤이면 아버지가 달려와 일으켜 세우며 오냐오냐하며 다독여야 정상인데…….
남궁진성이 곁눈질로 슬쩍 곁을 살폈다.
그곳엔 남궁진천이 매서운 눈빛으로 남궁진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때에 따라서 우리는 널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흠칫!
엄청난 충격이 좌중을 휩쓸었다.
남궁진성은 직계다.
그것도 가주의 직계혈족이자, 외가도 엄청난 세력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 남궁진성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남궁진천의 말에 남궁천 역시 놀라 그를 돌아봤다.
“저놈이 누굴 건드렸는지 아오?”
남궁진천이 남궁천을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혈공성…… 아니. 신기검성 주서진. 삼강들조차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그를…… 건드렸소이다.”
남궁진성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때보다, 더한 충격이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