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5
천하제일 시한부 (35)
주서진.
그 세 글자 이름을 읊는 것만으로 창룡전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남궁천은 그게 사실이냐는 듯 남궁진천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자체 조사는 따로 해 봐야겠지만, 그간 행실을 봤을 때 진성이 저놈의 말이 진실일 확률은 현저히 적지 않소?”
남궁진천의 말에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뻐 하는 거야 이뻐 하는 거고 세가의 명운이 달린 일에서는 당연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신기검성의 위치는 우리 호법 중 하나가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외다. 내가 직접 다녀오려 하는데 허락해 주시겠소?”
“형님께서 가신다면 믿을 수 있겠지요. 당연히 허합니다.”
“너무 맹신하진 마시오. 신기검성 그자가…… 어디 뜻대로 되던 인물이오?”
“그것도 그렇지요.”
남궁천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저놈도 데려가시지요.”
남궁천이 남궁진성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남궁진천은 당연하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아, 아버지…….”
남궁진성이 당황한 듯 얼버무렸다.
“가서 용서를 빌거라. 만약 네가 잘못했다면…… 응당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 말뜻은…….”
“신기검성께서 자결하라 이르시면 자결하라.”
쿵!
남궁진성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심정이었다.
단순한 행동 하나가 가져온 여파로 목숨을 내걸어야 한다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어리석은 놈. 내 일이 바빠 널 교육시키지 못하고 감싸고 돌기만 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구나.”
남궁천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자신을 자책했다.
어찌 보면 남궁진성을 너무 오냐오냐 풀어 주고 보듬어 준 것이 화근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책임을 지거라.”
단순한 말이었지만 무게감은 절대 단순하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남궁진성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따르라. 곧장 움직일 것이다.”
남궁진천은 할 얘기가 끝나자마자, 검을 차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불안한 표정의 남궁진성이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좌사, 장로들을 소집하게. 창룡전에서 천급 회의를 열 것이니.”
천급 회의.
남궁세가가 주최하는 가장 최고위급의 회의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준비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 전하겠습니다. 가주님.”
좌사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이내 좌사마저 창룡전을 빠져나가고, 홀로 남은 남궁천의 표정이 돌연 싸늘하게 굳었다.
* * *
“이게 맞아?”
난 잔뜩 인상을 쓴 채, 하오문의 장로를 노려보았다.
정확히 두 시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사당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는 내게 허름한 누더기 한 벌을 건네주었다.
“어쩔 수 없네. 묵가가 운영하는 주루에 찻잎을 납품하는 업체가 하나 있거든. 그 업체에 짐꾼으로 위장해 뒀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게 어디겠는가.
“시간은 딱 한 시진. 이 신분패를 들고 들어갔다가 그냥 쓱 나오면 끝이네.”
장로는 말과 함께, 내가 명패 하나를 내밀었다.
나와는 다른 이름이 새겨진 명패였다.
“장 씨라 소개해 뒀으니, 그냥 그렇게 알게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보이지? 저 일행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면 될걸세. 말 거는 이는 따로 없을 테니 걱정 말고.”
제법 일 처리가 깔끔하다.
왜 하오문이 뒷 세계 정보 공작에서 으뜸으로 쳐 주는지 알 만한 대목이었다.
난 곧바로 장로가 알려 준 일행들과 섞여 걷기 시작했다.
커다란 마차와 함께, 이동하기 시작한 일행들은 정말 말 한마디 없이 남창묵가까지 움직였다.
으레 있어 왔던 일이었는지, 별다른 검사도 없이 일행들은 묵가의 내원으로 안내되었다.
커다란 창고 앞에 도착한 나는 천천히 기감을 돋워 주변을 살폈다.
‘크기는 제법. 철주검문보다는 살짝 작은 정도.’
그래도 세가 치고는 꽤 큰 규모다.
과연 남창 제일가라는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니라는 듯, 보유한 무사들 숫자도 제법 되는 듯했다.
‘내원에 이백, 외원에 삼백 정도인가.’
그 중 특별한 기척은 잡히질 않았다.
철주검문에서 느꼈던 자호 무사 특유의 기척이 단 하나도 잡히질 않았다.
즉, 지금 이곳에 조카가 없을 확률이 높단 뜻이다.
‘이류에서 일류. 절정이 둘.’
남창묵가는 흑호방과 비슷한 규모의 무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난 계속해서 눈치를 살폈다.
무사들은 이쪽으로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꽤 자유로운 분위기. 경계가 삼엄하지도 않고…… 뭘까.’
기본적으로 자호 무사가 된 조카 놈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외원에서는 자호 무사가 품은 기운 자체가 느껴지질 않았다.
그렇다면 일단은 내원을 조사해 본다.
‘이곳이 내원이니까, 이곳 중에서 자호 무사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곳은 역시 가주의 집무실.’
말이야 쉽지, 사실 내원도 상당히 큰 규모다.
거기에 가주의 집무실을 찾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어딜 어떻게 뒤져야 할지 막막하긴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주변을 훑던 중, 나는 꽤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곳.’
후원으로 이어진 길.
다른 곳보다 유독 경비가 삼엄하다.
‘뭔가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
다른 곳보다 경비가 삼엄하다는 것은 곧 그곳에 지켜야 할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뜻도 된다.
‘지금이다.’
눈치를 보다 난 이내 기척을 감췄다.
빠르게 내원을 돌파해, 후원 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들 따위가 내 기척을 잡아낼 리는 만무하니, 나는 이내 마음을 놓고 전각 위 지붕 한편에 몸을 얹었다.
“…….”
우웅!
무복이 팽배하게 부풀어 올랐다.
기감을 끌어 올려 전각 내부를 샅샅이 훑어봤다.
하지만 걸리는 것은 없었다.
자호 무사가 가진 내기의 향을 알고 있기에, 금방 찾으리라 생각했건만, 이곳 역시 그 느낌을 주는 기척은 아예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조금 더 대담해질 수밖에 없었다.
난 그대로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느꼈던 것처럼 전각 내부는 상당히 조용했다.
바깥 경계가 삼엄한 것 치고는 내부에는 단 한 명의 경비조차 보이지 않았다.
“흠.”
근데 왤까?
이 기분 나쁜 느낌은.
피부 위로 소름이 오스스 돋아났다.
조금 더 신중히 기감을 널리 펼쳤다.
그래도 딱히 걸리는 것은 없었다.
“흠, 잘못 선택했나?”
차라리 가주의 집무실을 찾을 걸 그랬다.
수상해 보이길래 들어왔더니, 별다를 게 없는, 그냥 버려진 전각인 듯싶었다.
그래서 그냥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흠칫!
또다시 오싹한 느낌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
뒤를 돌았다.
텅 빈 복도, 그리고 적막.
“이럼, 궁금하잖아?”
궁금함은 역시 참을 수 없다.
이번에는 안쪽까지 쭉 걸어 들어갔다.
“후.”
역시나, 또다.
안쪽으로 몇 걸음 뗀 순간, 조금 전 느꼈던 그 오싹한 느낌이 마치 허상처럼 깨끗하게 사라졌다.
조금 더 신중히 주변을 살폈다.
복도 양옆으로 닫힌 문들.
그 너머로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난 걸어 들어가 첫 번째 방문을 슬쩍 열어 보았다.
과연, 텅 빈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방 한가운데에 쓰레기 같은 나뭇가지가 몇 개 떨어져 있는 것 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다음으로 두 번째 방을 열어 보았다.
두 번째 방도 첫 번째와 같았다.
텅 빈 내부와 함께, 치우지 못한 돌조각 같은 것들이 중앙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뭐야, 대체.”
시간만 날린 기분이다.
그렇게 두 번째 방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전각을 나가기 위해 빠르게 복도를 거닐었다.
그때였다.
“호오.”
기감을 툭툭 건드리는 그 오싹한 느낌의 정체를 알아냈다.
저벅, 저벅.
아무리 걸어도 복도가 끝이 나질 않았기에.
“진법이군.”
더군다나 출구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복도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 현상이 가리키는 것은 단 하나.
“환영진.”
환상 속에 빠진 것이다.
그제야 첫 번째, 두 번째 방에서 보았던 나뭇가지와 돌멩이들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여겼는데, 사실은 그게 진의 기둥 역할을 하는 진축인 듯했다.
“부숴? 말어?”
이따위 수준의 진법.
부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냥 건물째 날려 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그리했다간 내가 이곳에 굳이 잠입한 이유가 사라진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밖에 경비가 많다는 것은 이곳에 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렇다면 진법을 찾아서 정석대로 파훼하는 수밖에 없다.
우웅!
가볍게 기운을 끌어 올렸다.
일식호흡의 순하결을 통해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벼렸다.
진법이 내뿜는 왜곡된 기운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곳을 찾았다.
“의외네.”
기운이 풍겨 나오는 곳은 지하였다.
기운이 진하다는 것은 곧 진의 중심부와 같아진다는 의미기도 했다.
“중심축이 지하라…… 올 때 계단은 못 봤는데.”
우웅!
순하결을 이내 독맥을 따로 상단전 쪽으로 천천히 끌어 올렸다.
두 눈이 확 하고 트이는 듯했다.
“역시.”
안력을 돋우기 무섭게 주변이 말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진법의 기운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텁!
일정 거리를 걸어 기운이 가장 진하게 풍겨 나오는 위치를 찾아 섰다.
“아래쪽인가.”
계단을 완벽히 가린 구조.
아무래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지하로 향하는 또 다른 통로가 있는 듯했지만.
상관없다.
“부수면 되지.”
우지직!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기운을 세밀하게 다듬고 또 다듬었다.
이윽고 두 손을 통해 발출된 형상화된 기운이 깔끔하게 바닥 장판을 송두리째 뜯어내 버렸다.
이내 텅 빈 공동이 시야 안에 들어왔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팟!
그대로 난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그 순간,
“웁.”
훅하고 비릿하고 눅진한 혈 향이 코를 찔러 왔다.
다급히 숨을 멈추고 주변을 훑었다.
횃불 하나 없이 어둡고 컴컴한 공간, 무언가 발에 걸렸다.
툭!
“…….”
전신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속이 끓어올랐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에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그렇다.
내 눈을 가득 메운 것은 다름 아닌 시체들이었다.
심지어 어찌나 오래됐는지 누렇게 변색된 채, 반쯤 가루가 된 백골도 간간이 보였다.
온갖 구더기와 벌레들이 시체들 틈에서 우글우글 기어 나오고.
마치 지옥도가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수많은 전쟁을 치뤘어도 이런 참혹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대체 뭘 숨기고 있기에.”
아직도 피가 새어 나오는 그나마 가장 최근의 것으로 보이는 시체들을 발견하고는 난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시체들을 뒤져보던 중,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검흔.”
몸에 난 자상들이 너무도 잔인했다.
마치 일부러 오랫동안 피를 흘리게 만든 것처럼.
“단번에 끝낼 수 있음에도 목숨을 부지하게 했다…… 이건 전형적인 고문 방식인데.”
쯧, 됐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무림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어도, 최소한 죽고 난 뒤에 최소한의 명예를 위해 화장을 시켜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화륵!
난 그대로 기운을 끌어 올렸다.
내 손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삼매진화.
고도로 응축된 내공을 자연 발화시켜 한 줄기 불꽃을 내뿜는 기공술의 일종이다.
난 그대로 시체를 향해 불길을 던지려 했다.
“…….”
아, 하지만 던지지 못했다.
어찌 말해야 할까.
“왜…….”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두 눈을 의심했다.
왜냐, 한눈에 알아봤으니까.
“조카야.”
철주검문에서 봤던 자호 무사의 의복을 갖춘 채, 형의 젊을 적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한 구의 시체.
비록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만.
“왜 이러고 있느냐.”
조카는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한 이 삼촌을 반기듯 환한 미소로…… 죽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