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17
제117화. 밥 한번 먹기 힘드네
떠날 땐 와이번, 올 땐 드래곤.
탈것의 변화가 다소 극단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솔직히 큰 차이는 없다.
기껏해야 좀 더 넓고 승차감이 좋다는 것 정도?
추가로 삼 일은 걸릴 거리를 하루로 단축시킬 만큼 빠르다는 장점도 있다.
자랑하는 거냐고?
그럼 셈이지.
이 세상 어느 누가 드래곤을 수하로 데리고 다니겠어?
어쨌든 수호의 편안한 보호를 받으며 대륙으로 돌아온 우리는 일단 저택을 지나, 브릴리스가 있을 영지로 향했다.
영지 입구에 도착해서 첫발을 내디딘 감정을 표현해보자면,
어……. 내가 다른 곳에 잘못 왔나?
이거였다.
그만큼 영지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내 옆에서 눈은 휘둥그레 뜬 메이가 감탄을 표했다.
“완전 다른 땅에 온 것 같아요!”
전에는 끽해야 논밭이랑 집 몇 채만 있었다.
허나 지금은 집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에 이어 주점, 가게, 광장 등 영지를 넘어 도시에 가까운 형태가 구축되어 있었다.
놀란 건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다.
영지민으로 보이는 이름 모를 마족들이 하나둘 집 안에서 나왔다.
낯선 이가 온 것에 경계심이 돋은 듯, 죄다 얼굴엔 초조함이 가득했다.
뒤에 있는 수호를 보고 놀란 걸 수도 있단 생각도 들었다.
다급히 수호를 인간형으로 변신시키니, 곧바로 영지 안에서 브릴리스가 달려왔다.
“오셨습니까, 벨져 님!”
그녀는 못 본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돼 있었다.
얼떨결에 내 이름이 알려지게 되자, 마족들 사이에서 격한 반응이 일어났다.
“벨져? 벨져 님이라고?”
“그럼 저분이?”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베, 벨져 영주님을 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족들은 졸지에 내 앞으로 달려와선 대뜸 머리를 박고 엎드리기 시작했다.
누가 지시한 게 아닌, 영지의 주인한테 예를 표하기 위한 행위로 보였다.
그래 뭐,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나로선 불편하다 못해 속이 울렁거릴 상황이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죠?”
“무, 무슨 말을 하라는 겁니까?”
“나름 새로 온 영지민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데, 이 영지에서 지켜야 할 규율 같은 걸 근엄하게 말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이사벨은 영주로서의 위엄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나를 자꾸만 재촉했다.
근엄 좋아하시네.
마음 같아선 굳이 그런 걸 할 필요가 있냐며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메이, 세나 심지어 수호까지 나를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로선 말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목을 가다듬으며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싸우지 말고 알아서들 잘 사세요.”
영지민들은 그게 끝이냐는 듯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더 말하지 않고 브릴리스를 따라 영지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 * *
영지에 입주한 마족들의 수는 약 200여 명.
훨씬 더 많은 수의 마족들이 입장을 희망했지만, 아직은 주거 시설이 부족해서 이 정도만 받은 것이라고 브릴리스는 설명했다.
대부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유랑민 출신의 마족들이었다.
나는 보고서를 읽다 말고 브릴리스를 보며 물었다.
“새로 온 마족들. 전부 오고 싶어서 온 마족들이야?”
“물론입니다. 아무래도 최근 적림에 다녀오셨던 일이 크게 작용해서 지금의 결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적림으로 이주하는 마족들의 수도 비약적으로 늘었다더군요.”
그쪽의 마족들이 꽤 소문을 퍼트린 모양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다.
아무도 오려는 이 없이, 먼지만 휘날리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현 상황은 저희도 예상 밖의 일인지라, 일단 이곳 외에 새로 영지를 구축할 땅도 물색 중입니다. 조만간 벨져 님께 보고를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래. 늘 말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고.”
나는 보고서를 옆에 살포시 내려놓은 뒤, 자리에서 일었다.
백 장에 달하는 보고서를 가만히 앉아서 하라고?그건 내게 고문과도 같은 일이다.
곧장 도망치듯 문으로 향했다.
“어디 둘러보실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어. 아까 보니까 무슨 주점 비슷한 것도 있더라? 거기서 밥이나 먹을까 해서.”
“그, 그렇군요.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벨져 님.”
브릴리스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나를 배웅했다.
허나 나는 나가지 않은 채, 문 앞에 서서 브릴리스를 빤히 바라봤다.
“뭐,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
“안 나오고 뭐 해?”
“……예?”
브릴리스는 멍하니 선 채로 눈을 깜빡였다.
“너 얼굴이 지금 반쪽이야. 영지 운영한답시고,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안 봐도 빤히 보일 정도라고.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었지?”
“그게 업무가 너무 바쁘다 보니…….”
“그거 다 내려놓고 당장 따라와. 내가 내리는 새로운 업무지시야.”
갈팡질팡 주저하던 브릴리스는 업무란 말에 후다닥 따라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주점으로 이동했다.
때마침 메이와 세나는 게임 하러 가고, 이사벨은 뒤처리할 일이 있다며 본가로 복귀했다.
수호는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피로가 몰려왔는지, 바로 잠이 들었다.
좀처럼 잘 가지지 못했던 브릴리스와의 둘만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브릴리스는 나와 한걸음 정도 거리를 벌린 채 속도를 맞추며 뒤따라왔다.
“거, 검술 수련은 안 해도 되시는지요?”
“수련도 밥은 먹고 해야지. 저 주점 음식 먹어봤어?”
“예. 제 입맛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과연 벨져 님 입맛에도 맞으실지는…….”
그녀가 맛있었다면, 얼추 내 입맛에도 맞을 것이다.
어느새 도착한 주점 앞.
새 나무 냄새를 풍기는 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 어이구! 영주님 오셨습니까!!”
주인장으로 보이는 중년 마족은 나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달려 나왔다.
덩달아 주점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밥들 드세요.”
손을 휘휘 저으며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해봤지만, 영지민들은 긴장한 눈으로 나를 계속해서 의식했다.
우리는 대충 보이는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
“다들 아직은 내가 불편한 모양이네.”
“아마 벨져 님께서 이런 곳에 밥을 드시러 오실 줄은 몰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더 자주 와야겠네. 난 이런 데서 밥 먹는 걸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마족이라는 걸. 모두에게 인지시켜줘야지.”
평범하다는 말에 브릴리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양손을 그릇을 든 점원이 우리 테이블로 음식을 가져왔다.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십 대의 소녀 마족이었다.
“이,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소녀의 목소리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음식이 담긴 그릇을 보니 익숙한 열매가 있었다.
“이거 체르타 열매네?”
“예. 저희도 여기 와서 처음 맛본 열매인데, 과즙이 풍부하고 아삭한 식감이 있어서 볶음 요리로 만들어봤습니다.”
“요리는 네가 한 거야?”
“아닙니다. 주방에 계신 저희 어머니가 하십니다.”
세 식구가 운영하는 주점이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열매 하나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어보았다.
향신료와 기름이 어우러진 체르타 열매의 새로운 맛이 입안에 감미롭게 퍼졌다.
“맛있네.”
“가, 감사합니다!”
소녀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주점 운영하는 데 어려운 점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내가 없으면 여기 있는 브릴리스에게 말해도 되고.”
“넵!”
싱글벙글한 미소와 함께 소녀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대체로 잘 사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벨져 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신경 쓰겠습니다.”
“영지 상황도 좋은데, 우선 너부터 신경 쓰는 게 어떨까?”
“예?”
“아니야. 밥이나 먹자.”
자잘한 이야기는 뒤로하고, 밥부터 먹잔 마음에 다시 포크를 들었다.
그렇게 두 번째 열매를 먹으려는 순간,
-끼익
주점 문이 열렸다.
“어머~! 이 주점 장사 잘되네? 여기 영주님께서 관리를 잘 해주시나 봐~?”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자리가 없어 보이는 데 이거 어쩌지? 어쩔 수 없이 다른 자리랑 합석해야겠는걸?”
한껏 편안했던 마음에 갑자기 경계심이 훅 돋아났다.
“누님! 저기 익숙한 분이 보이시네요?”
“어디? 어머~! 이게 누구야! 벨져 후보 아니야?”
아주 남매가 쌍으로 쇼를 하고 있다.
상대를 해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마지못해 눈을 돌렸다.
확인할 필요도 없는 루비아, 미켄 남매였다.
“제 영지엔 무슨 일입니까?”
“놀러 왔다고 하면 쫓아낼 거야?”
“예.”
1초의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벨져 후보 너무 야박한 거 아니야? 우리 나름 동맹도 맺은 사이인데, 마주 앉아서 밥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아?”
동맹은 무슨, 끝난 지가 언젠데.
그녀의 마혈석은 보물찾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돌려줬었다.
“나중에 따로 날짜를 잡으시죠. 지금은 제 후견인과 중요한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중요한 이야기? 뭐 이사벨 몰래 둘이 언제 만날지 논의하는 그런 이야기 하던 중이었어?”
“그, 그런 거 아닙니다!”
깜짝 놀란 브릴리스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니, 루비아는 그 모습을 보며 깔깔 웃어댔다.
“농담이야 농담! 뭘 그리 얼굴까지 빨개지면서 흥분하고 그래?”
역시 이 여자랑은 그냥 말을 섞지 말아야 한다.
후보고 뭐고 힘으로 내쫓을까는 하는 생각이 속에서 강하게 피어오른 찰나,
“아무리 나라도 둘의 귀중한 업무 시간을 빼앗을 만큼 염치없진 않아. 아쉽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뭐지? 이렇게 쉽게 물러날 여자는 아닌데?
“대신 다음엔 벨져 후보가 직접 와줘~!”
“어딜 말입니까?”
“어디긴? 그야 당연히 우리 집이지~!”
루비아는 갑자기 자기 엉덩이 뒤로 손을 넣더니, 정체불명의 봉투 하나를 꺼냈다.
초대장처럼 생긴 봉투였다.
“위치는 대충 알지? 언제든 좋으니까 시간 되면 와줘! 문지기한테 이거 보여주고, 내가 초대했다고 하면 들여보내 줄 거야~!”
봉투 겉면엔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붉은 키스(?) 마크가 찍혀 있었다.
“그럼 다음에 봐, 벨져 후보~!”
루비아는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날리고선, 미켄과 주점을 떠났다.
살짝 얼떨떨한 나머지 탁상 위에 놓인 초대장을 잠시 빤히 쳐다봤다.
내 눈치를 보던 브릴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 루비아 후보님과 리고 섬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설명하자면 길어.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니니까, 밥이나 먹자. 다 식겠다.”
“예…….”
그렇게 다시 포크를 든 순간,
“브릴리스 니이임!!”
그녀를 부르는 다급한 외침이 고막을 강타했다.
나도 모르게 포크를 내려놓으며 한탄했다.
밥 한번 먹기 참 힘드네.
주점 문을 박차고 들어온 또 한 명의 낯설지 않은 마족.
“여, 여기 계셨…… 히이익!”
그는 한참을 달려왔는지 헉헉대다가도, 내 얼굴을 보고선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이름이 길리안이었던가?”
“마, 맞습니다!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벨져 님!”
이전에 브릴리스가 실종되었을 때, 그녀의 정체를 알려주러 왔던 온건파 소속의 마족, 길리안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길리안?”
뭔가 급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듯 브릴리스도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그것이…….”
길리안은 보고하려다 말고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로 손을 작게 휘적거렸다.
“온건파 지부가 정체불명의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당했습니다!”
주점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브릴리스는 충격에 말문이 막혔는지 2초 정도 입을 뻐금거렸다.
손은 학질이라도 걸린 듯 달달 떨고 있었다.
“스, 습격이라니요? 대체 누가 우리 온건파를……!”
-쑤욱!
나는 흥분을 금치 못하는 브릴리스 입으로 체르타 열매를 넣어주었다.
“천천히 꼭꼭 심어서 안으로 삼켜.”
브릴리스는 당황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도, 천천히 입을 움직이며 열매를 삼켰다.
“다 먹었어?”
“예.”
“그럼 가자.”
바로 아크베리아를 챙겨서 주점 밖으로 나갔다.
주점 밖에는 어느샌가 드래곤으로 변한 수호가 대기 중이었다.
[부름에 달려왔습니다. 나의 주인이시여.]“자는데 깨워서 미안. 급히 갈 데가 생겨서.”
수호는 괜찮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는 그런 수호의 등 위로 가볍게 뛰어올라 안착했다.
“뭐해 브릴리스?”
뒤따라 나온 브릴리스는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나와 수호를 번갈아 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베, 벨져 님의 뒤에 말입니까?”
나는 당연하지 않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