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65
제65화. 귀환
-쿵! 쿵!
급하게 계단 밟는 소리가 여기까지 선명히 전해진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이미 브릴리스가 보낸 전문을 통해 내 상황을 전해 들은 마당에,
이렇게 빨리 왔다는 것 자체가 매우 많이 놀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니.
오히려 조용히 오는 게 이상하지.
-벌컥!
대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발소리의 주인인 이사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곧바로 소파에 앉은 나와 눈을 마주했다.
반가움, 환희 그리고 혼란이 뒤섞인 그야말로 기묘한 눈빛이다.
내 안위를 확인한 그녀는 천천히 내 뒤쪽으로 눈을 돌렸다.
내 뒤론 이사벨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의 메이와 브릴리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질투의 종주 이사벨 이뉘디아 님을 뵙습니다.”
이 집에 원래 없던 낯선 마족이 있었다.
정갈한 수염과 인자한 웃음이 트레이드 마크인…….
졸지에 그의 인사를 받은 이사벨은 그제야 내 무릎 위에서 달콤한 숙면을 취하고 계신 어느 당돌한 마족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마족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안녕, 이사벨?”
그러곤 이사벨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입을 한참 머뭇거리던 이사벨은 겨우내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세, 세나 후보?”
* * *
“키융!”
와이번들의 기운찬 울음소리가 창문을 통해 들려 온다.
당연히 내 소유의 와이번은 아니며 전부 피그리티아 가 소유의 와이번들이다.
나와의 동행을 결정한 세나를 위해 제임스가 준비한 것이다.
덕분에 두 발로 걸어갔을 땐 한 달은 걸렸던 것을 무려 3일로 단축해서 왔다.
마계 대표 이동 수단의 성능을 아주 제대로 체감했다.
일단 이사벨에게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따로 자리를 마련했으며, 세나는 집구경을 하고 싶다기에 우선 메이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대체 청해에서 뭘 하고 온 거예요?”
이사벨은 아직 삭히지 못한 흥분을 드러내며 바로 캐물었다.
“오목이랑, 지구 이야기요…….”
“그건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예요? 그런 허무맹랑 소리나 듣자고 내가 한달음에 달려온 줄 알아요?”
진짠데.
누군가 내게 세나와 손을 잡을 수 있던 이유가 뭐였냐고 묻거든, 난 당당하게 오목과 지구 이야기 덕분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인데 뭐 어쩌라고?
걔한테 물어봐도 그렇게 답할걸?
“하, 정말 당신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나태의 종주를 만났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데, 그녀와 아예 단일화까지 하고 올 줄은…….”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계획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조건 같은 건 없었나요? 단일화하는 대가로 요구한 거라든지…….”
“아, 있긴 했습니다.”
이사벨은 그게 중요하다며 빨리 말하라고 닦달했다.
“재밌게 해달라던데요?”
순간 이사벨의 눈빛에 분노와 살기가 불꽃처럼 번졌다.
자꾸 헛소리하면 태워버리겠다는 속내가 버젓이 보였다.
아, 진짜라니까 그러네.
못 믿겠으면 직접 가서 물어보시라니까?
“허허. 두 분의 사이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좋으시군요.”
손자들의 재롱잔치를 보듯 우릴 흐뭇하게 지켜보던 제임스가 웃으며 말했다.
이에 나는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이제 와서 여쭙는 것도 웃기지만,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세나 후보가 저와 단일화를 해도?”
“전 세나 님의 퍼밀리어로서 세나 님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중시합니다. 오히려 벨져 님껜 감사할 따름입니다. 세나 님에게 새로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셨으니 말입니다.”
제임스는 전혀 문제없다는 대답을 내었다.
“세나 님과 피그리티아 가는 오늘부로 벨져 님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드립니다.”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지원 같은 건 솔직히 잘 모르겠고, 그냥 내 입장에선 적이 안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사벨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듯 팔짱을 끼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이거지만, 이사벨 님과 또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짝 떠 있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나는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급 달라진 내 어조에 이사벨도 경청하는 자세로 바뀌는 듯했지만,
“뭐라고요!!!”
내 이야기를 듣고선 얼마 못 가 다시 흥분 모드로 변해버렸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예요! 네로 이……!”
차마 내 입으론 되새길 수 없는 험한 말들이 이사벨의 입에서 속사포처럼 터져 나왔다.
오죽 심했으면 제임스조차 표정이 변할 정도였다.
“다친 덴 없어요? 그 자식들이 이상한 술수 같은 거 안 부렸어요? 이럴까 봐 내가 옆에 있으려고 했던 건데!”
“이, 이사벨 님 일단 이것 좀 놓고……!”
이사벨은 급기야 내 몸을 꽉 붙들며 얼굴을 시작으로 전신을 훑기 시작했다.
없던 상처도 지금 당신 때문에 생길 지경이야!
그러다 스스로도 꼴사나운 행위라는 걸 깨달았는지 내 몸에서 후다닥 떨어졌다.
“미,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이리 흥분하실 필요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전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합니다.”
“어떻게 흥분을 안 하라는 거예요! 내가 없는 곳에서 당신이 큰일을 당할 뻔했다는데!”
일단 말로 안심을 주려 했으나, 이사벨의 터진 흥분은 단시간에 가라앉지 못했다.
“진정하고, 차후 방안을 의논하도록 하죠. 그걸 위해서 이 이야기를 꺼낸 겁니다. 이런 건 이사벨 님의 전문이지 않습니까?”
“나,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이제는 알 때도 됐다고 봅니다.”
그 말에 이사벨의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수차례 부채질한 후에야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후 모든 전말을 듣고 나선, 입술을 어루만지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기어이 네로 후보 쪽에서 본격적으로 무력 행위를 시작했네요. 사실 그동안은 서로의 힘을 가늠해보기 위한 눈치 싸움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후보의 측근도 아니고, 후보 본인을 직접 공격할 줄은…….”
자신이 한 방 먹었다는 것에 분함을 느꼈는지 이사벨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 와중에 다일 후보의 행보도 참 의문이네요. 네로 후보와 손을 잡은 것까진 그럴 수 있다 해도, 굳이 벨져에게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린 이유가 뭘까요? 환심을 사기 위한 수작이라기엔 근거가 부족한데…….”
“저도 그 부분이 좀 의문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사실을 듣고도 함정으로 가려는 저를, 그 페르라는 마족은 말리지 않더군요. 제가 가면 전력으로 상대할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희가 갔을 때도 양쪽의 분위기는 그리 좋진 않았습니다. 내전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더군요.”
함께 이야기를 듣던 제임스도 한마디 거들었다.
“한편으론 벨져 후보님을 너무 얕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 후보께서 진심으로 벨져 후보님이 죽길 원하셨다면, 최소 한 분 정도는 그 자리에 계셨어야 했을 텐데 말이죠. 정말 퍼밀리어와 수하들만으로도 가능할 거라 본 건지…….”
비만 마족이라면 몰라도, 그 다일이란 놈은 아마 알고 있었을 거다.
그들만으론 절대로 날 죽일 수 없을 거란 걸.
근거는 없지만, 왠지 느낌이 그렇다.
“아무튼, 결과 자체는 재밌어졌네요. 세나 후보가 우리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퍼지면, 아무리 뒤 없이 내지르는 네로 후보라도 벨져를 섣불리 건들려 들진 않을 거예요.”
그렇겠지.
그나마 2대2로 맞출뻔한 구도가 이제는 3대1이 되어버렸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일을 절대로! 그냥 넘길 순 없어요! 조금 감정적인 해도, 우리도 반격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어요!”
“반격이라 하시면……?”
“그야 당연히 네로 후보를 향한 무력 행위죠.”
이사벨의 날 선 눈빛에선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무력 행위라.
그녀의 말마따나, 지금까지의 후보 경합은 일종의 눈치 싸움과도 같았다.
서로가 서로의 모든 것을 차지하기 위한 노골적인 무력 행위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한 후보와 다른 후보의 멸망전이 벌어지면 결과 여부와는 상관없이, 싸움을 치르느라 힘이 소진된 후보는 그 즉시 다른 후보의 먹잇감이 될 것이니.
지금 내가 그 비만 마족과 뒤 없는 단두대 싸움을 시작하면, 아직 내가 접촉하지 않은 다른 후보들이 내 빈틈을 노릴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 꼴을 또 다른 후보들이 그냥 냅두겠는가?
얼마 못 가 모든 후보가 참여한 총력전이 시작될 것이다.
이 대책 없는 종족들이 가진 힘을 고려하자면, 여간 큰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겠지.
마계의 혼란을 해결하고자 하는 선출된 마왕 후보들이, 마계의 새로운 혼란을 일으키는 셈이다.
이게 과연 맞을까?
이사벨의 제안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그리 썩 내키진 않는다.
“네 생각은 어때 브릴리스?”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듣고자 문 앞에 있는 브릴리스에게 의견을 물었다.
“예?”
방에서 대화가 시작된 이후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평소답지 않은 매우 당황한 반응이었다.
“아, 저야 당연히, 벨져 후보님의 뜻을 우선적으로 존중할 생각입니다.”
“난 지금 내 뜻 말고, 네 뜻을 물어보는 거야 브릴리스. 우리가 무력 행위를 하는 게 정말 옳다고 생각해?”
브릴리스는 내 후견인이기 전에 마계의 평화를 지향하는 온건파의 수장이다.
그런 차원에서 방금 이사벨이 제안한 반격의 준비는 명백히 말해, 온건파가 추구하는 평화로운 마계에서 멀어지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온건파의 뜻을 따르는 마왕 후보가 되겠다고 선언한 나로선, 이 제안을 막연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브릴리스에게 의견을 구해본 것인데,
“저, 저는…….”
브릴리스는 어째서인지 대답을 매우 주저했다.
부담 갖지 말고 편히 얘기하라고 다독여주려는 순간,
“벨져 여기 있어?”
방문이 열리며 세나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다들 모여서 뭐 하고 있어? 나 빼고 노는 거야?”
“세, 세나 님 저희는 지금 아주 중요한 대화 중이었습니다!”
“중요한 대화? 언제 끝나는데?”
제임스는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하나 싶어 난처한 신음을 흘렸다.
대충 세나의 얼굴을 보니 대충 집 구경 다 했으니까, 이제 놀아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마냥 방치하는 건 예의가 아닐 터.
당장 얘기한다 해서 방향이 정해질 사안도 아니니, 잠시 그녀와 놀아주면서 머리를 식히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내 방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가서 재밌는 새 게임 알려 줄게.”
“새 게임? 알겠어!”
세나는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을 지르며 후닥닥 내 방으로 달려갔다.
“지금이 한가롭게 게임이나 할 때는 아니지 않아요?”
“이게 조건이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 얘기는 일단 나중으로 좀 미루죠.”
이사벨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단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알겠다며 방을 나갔다.
“좀 있다 다시 얘기하자 브릴리스.”
“예…….”
브릴리스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눈치였다.
나중에 다시 듣자는 생각에 일단은 내색하지 않았으며, 그대로 내 방으로 향했다.
* * *
어후.
잠깐 놀아준다는 게,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와버렸다.
나태를 상징하긴 개뿔.
선조들이 마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무슨 카드 게임을 9시간 연속으로 하는 마족이 어딨어?
거짓말 안 하고, 진짜 9시간 동안 카드 게임만 하다 왔다. (시작은 원 카드)
처음엔 메이까지 껴서 셋이 시작했다.
무슨 이런 유치한 게임을 하냐면서 뒤에서 관전하던 이사벨은 나중에 본인도 하고 싶었는지, 슬그머니 옆에 앉아 게임에 참여했다.
지쳐서 빠져나온 나와 다르게, 저 세 여인은 도무지 지칠 기미가 안 보인다. (지금은 조커 뽑기 중)
저러다 밤새도 난 몰라.
그러고 보니 게임 하는 내내 브릴리스의 얼굴을 못 본 것 같다.
아까 상태를 보니,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던데.
그녀라면 아직 안 자고 있을 걸 알기에, 일단 브릴리스의 방으로 가보았다.
“안에 있어, 브릴리스?”
노크를 하며 그녀를 불렀지만, 대답은 들려 오지 않았다.
한 번 더 두드렸음에도 반응이 없자,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방 안.
책상엔 방금 전까지 집무를 본 흔적이 남아있었다.
차라도 타러 갔나?
잠깐 있으며 오겠지 싶어, 일단 방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무심코 책상을 보니, 책상 위뿐만 아니라 아래에도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온건파 관련 업무들인가?
내가 없는 동안에도 정말 쉬지 않고 일했다는 것이 몸소 느껴졌다.
그중 눈에 띄는 서류가 하나 보였다.
‘영지 계획서’
영지 계획서?
온건파에서 따로 추진 중인 사업 같은 건가?
묘한 호기심이 들어서 서류를 들어 올린 순간,
-쨍그랑!
난데없는 잔 깨지는 소리에 몸이 화들짝 들썩였다.
“베, 벨져 님?!”
산산조각이 난 유리잔과 그 안에서 흘러넘치는 뜨끈한 차.
그 위론 마치 0점짜리 시험지를 부모에게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잔뜩 굳은 브릴리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
“나 아직 이거 안 봤다?”
당장 할 수 있는 해명은 그거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