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07)
107. 뱉은 말은 지키는 타입 -4
꽤 낮은 위치에서 공을 잡았기에 막아서는 상대가 많다.
툭-!
디딤발인 왼발에 체중을 싣고, 오른발은 힘을 뺀 채 발등 바깥면으로 공을 툭툭 치며 상대가 먼저 들어오길 기다린다.
최종 수비수가 아닌 미드필더들은 공을 뺏기 위해 달려드는 경향이 있다.
압박을 가해 빼앗으면 좋은 거고, 못 뺏어도 뒤에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럴 거다.
그걸 역이용하면 압박을 벗겨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타타탓-!
상대가 위협을 가하듯 발을 구르며 다가온다.
그런 상대를 유심히 바라보다, 상대의 왼발이 뻗어 나오는 순간 오른쪽으로 공을 친다.
왼발을 뻗은 상대이기에 그쪽으로 공을 치면 상대로서는 2차 저지 수단이 없다.
발에 걸리지 않게끔 각도만 충분히 벌려 공을 움직이면 된다.
타탓-!
그렇게 한 명을 뒤로 보내고, 슬슬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다.
둘러싸인 채로 가만히 서 있다간 신체적인 압박을 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파울을 유도해내며 공을 지켜낼 수도 있겠으나··· 그걸론 부족하다.
분위기를 가져오기 위해선 말이다.
나는, 관중들의 탄성을 이끌어내 경기장의 분위기를 우리 쪽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타타탓-!
내가 전진하자 다가오던 상대가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낮추는 게 보인다.
그런 상대가 눈앞 거리에만 둘.
나는 겁도 없이, 그런 상대의 정면을 향해 달려든다.
그러다 우리의 거리가 세 걸음 이내로 가까워지는 순간···
파아앙-!
왼쪽으로 공을 내주고, 상대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가는 사이 등 뒤로 돌아 뛴다.
너무 보이더라.
공을 빼앗으면 곧바로 역습이 가능한 위치인 만큼, 빼앗겠다는 생각에 공만 바라보는 게 보였다는 얘기다.
덕분에 패스를 받아주기 위해 접근하는 보나벤투라 선배를 인지한 건 나뿐인 듯했고, 가볍게 패스를 내준 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헤이!”
파아앙-!
보나벤투라 선배가 내준 리턴이 내 발 앞으로 향하고, 나는 퍼스트 터치를 앞쪽으로 밀어놓으며 속도를 살려 전진한다.
그 움직임으로 하프 라인을 순식간에 넘는다.
워어어어어-!
이에 우리 쪽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탄성이 들려오나, 아직은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
더 크게··· 이 경기장을 뒤덮어 버려야 한다.
타타탓-!
좁은 공간에서 빠져나왔으니 속도를 더욱 끌어올린다. 스파이크로 잔디를 힘 있게 밀어내고, 공을 세심하게 건드려 한 보폭 안에서 끌고 간다.
귀 옆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전방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역시나 상대는 수비 대열을 좁게 서며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사이드 공간은 내줘도 중앙 공간은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사포나라 선배와 로메로가 좌우로 크게 벌리고 있긴 하지만 결국 공이 중앙으로 넘어왔을 때, 박스 안에서의 경쟁력은 우리가 밀리므로 꽤 적절한 대처로 보인다.
그러나 적의 수비를 칭찬하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다.
옳은 것도 틀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
타타탓-!
우측 하프 스페이스를 따라 박스 근처까지 진입한다. 일렬로 늘어선 수비가 모두 자세를 잔뜩 낮춘 채 나만을 바라본다.
수비와 수비 사이, 그 애매한 공간을 노려야겠다는 판단이 선다.
타탓-!
속도를 줄이고, 왼발 바깥쪽으로 공을 컨트롤 하며 왼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동시에 왼쪽의 사포나라가 박스 중앙으로 쇄도하는 움직임을, 오른쪽의 로메로가 풀백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을 가져가는 게 주변 시야를 통해 감지된다.
그 움직임에 좌우 수비수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고, 나는 수비 하나를 앞에 둔 채 주춤주춤하며 왼발을 나풀거렸다.
금방이라도 스루 패스를 찔러 넣을 것처럼.
타탓-!
···재밌다.
내 작은 움직임에 움찔거리는 상대의 꼴이.
더군다나 붙을 생각은 못 하고 그저 뒷짐을 진 채 거리를 유지하는 게, 달려들었다간 벗겨져 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상대도 나를 인정하고 있는 거다.
16살짜리 꼬맹이가 아니라··· 세리에 A의 득점왕, 이 나라에서 제일 골을 잘 넣는 선수로서 말이다.
그 사실에 긴장감이 달아나고, 대신 자신감이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슈팅을 마음먹는 것으로 이어진다.
탓-!
왼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살짝 민 뒤, 디딤발인 오른발을 지면에 단단히 박아 넣으며 왼발을 뒤로 당긴다.
이내 상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서 정석적인 슈팅 자세가 만들어지진 않았으나, 애당초 반 박자 빠른 슈팅이 목적이었기에 개의치 않고 왼발을 그대로 뻗는다.
발목을 끝까지 펴고, 힘 있게 밀 듯이 공의 중앙을 맞춘다.
뻐어어어어어어엉-!
···상쾌한 감각이 왼발을 타고 올라온다.
지금처럼 묵직한 느낌이 아니라 가벼운 느낌이 들 때는, 발등에 제대로 걸렸을 때다.
슈우우우우우웅-
뒷짐 진 수비를 지나친 공이 낮게 날아간다.
무릎 아래 높이. 코스는 왼쪽 골대 방향.
회전은 없다.
결승전 용 공인구의 무늬가 그대로 보인다.
그 슈팅을 향해 몸을 날리는 골키퍼가 보이는데, 공은 그 바로 앞에서 제멋대로 춤을 춘다.
제멋대로 춤을 추며, 골키퍼의 손을 비껴간다.
철썩-!!!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적당히 분위기만 가져올 생각이었는데···
와아아아아아아아앗-!!!
경기장이 우리 것이 되고 만 것이다.
“야아아아아!”
“우와아···!”
“너! 너! 막내 너!”
약간은 어안이 벙벙한 사이, 이내 가까운 곳에서도 찢어지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선배들이 머리를 감싸 쥔 채 나를 향해 달려오는데, 그 표정들이 다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냐는 듯한 표정들이다.
···왜들 이렇게 놀라지?
난 득점왕이고, 득점왕다운 모습을 보여줬을 뿐인데.
“이 자식!”
“끼얏호우!”
그러나 나의 과한 자기 암시는 이내 내게 달려드는 물리적 힘에 의해 곧바로 깨지고 만다.
나를 쥐고 흔들어대는 선배들의 손아귀에 내가 우리 팀 막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만 것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만큼 이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
상대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보나벤투라 선배에게 접근해 목소리를 낸다.
“헤이-”
그러자 보나벤투라 선배는 내 상황을 확인도 하지 않고 노 룩 패스를 건넨다.
파아앙-!
노 룩 치고는 꽤 정확한 패스에 작게 감탄하는 동시에, 내가 패스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뭐, 애초에 받을 상황이 아니면 공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을 테니 앞뒤가 안 맞긴 하네.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공을 부드럽게 잡아놓는다.
파아앙-!
득점 이후, 나는 공을 터치하는 횟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일단 우리가 공 소유권을 가져오게 되면 모두가 나부터 찾은 까닭이다.
타타탓-!
등 뒤에서 달려드는 상대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 기운을 감각으로 느끼며 거리를 계산하다, 그대로 부딪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몸을 왼쪽으로 기울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아선다.
툭-!
이런 게 투우사의 심정일까.
충돌 직전의 순간엔 등골이 서늘하기도 한데, 돌진을 피해내고 나면 희열이 솟구친다.
그 희열을 맛봄과 동시에, 이번엔 정면에서 달려드는 흑우를 상대한다.
이름이 둠프리스였던가.
툭-!
이번엔 공을 툭 쳐서 상대 다리 사이로 빼낸다.
다리 사이를 노리는 건 자칫하면 소들의 눈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위험한 행동이긴 하나, 다행히 이번 소는 고개를 젖히며 하늘을 바라볼 뿐 다시 달려들진 않는다.
스르륵-
공을 발바닥으로 굴리며 다음 돌진에 대비한다.
그러나 이 소들은 학습 능력이 있는 소들인 모양이다.
정직하게 달려드는 것으론 날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건지,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며 지켜볼 뿐이다.
이에 나는 느긋하게 반대편을 바라보며 연습하듯 롱킥을 때린다.
뻐어어어어엉-!
오른쪽 넓은 공간으로 향하는 패스에, 상대 선수들의 고개가 모두 돌아간다.
다들 내 패스를 감상이라도 하는 듯 잠시 바라보는데···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자기 진영을 향해 우다다 뛰어간다.
그 모습에 나는 새어 나오는 만족감을 숨기며 천천히 뛰어 그 뒤를 따른다.
어느덧 전반 20분이 지나고 있는 상황.
나는 여러모로 묘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경기 시작 직후, 선배들의 얼굴을 보고 U17 때의 아이들이 떠올랐었는데.
지금은 상대 선수들마저 U17 아이들처럼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긴장을 날리기 위해 중얼거렸던 자기 암시가 과했나. 왼발로 뽑아낸 득점이 날개를 달아준 것 같기도 하고.
득점 직후 내게 달려오는 선배들의 표정이나 관중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함성 덕분도 있다.
그 이유가 어찌 됐든, 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긴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고 과할 정도의 자신감만이 남았다.
지우가 그랬었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맞는 말인 모양이다.
득점왕 한 번 탔다고, 모두가 내 발아래로 보이는 중인 것이다.
이렇게 건방져도 되는가 싶지만··· 아까도 말했듯 지금은 미쳐야 뛸 수 있는 결승전이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미친 채로 있으련다.
뻐어어어어엉-!
어느새 박스 근처까지 진입한 순간 로메로에게서 크로스가 올라온다.
파아앙-!
그러나 낮게 찬 크로스가 바로 앞 수비에게 굴절되며 하늘 높이 떠오른다.
슈우우웅-
높게 떠올랐다가, 천천히 떨어지는데···
그것이 묘하게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떨어진다.
타탓-!
동시에 내 몸이 멋대로 움직인다.
주변에 수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고개를 든 채 떨어지는 공을 주시하며 그대로 오른발을 장전한 것이다.
왼발을 디딤발로 딛고, 상체를 자연스럽게 뒤로 눕히며 오른발을 높이 든다.
그리고 공이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마치 어릴 때 배웠던 태권도를 하듯 발을 휘두른다.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공을, 가로로 때려 맞춘다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나.
지금은 왠지 될 것만 같다.
뻐어어어어엉-!
봐봐.
오늘은 된다니까.
슈우우우우웅-
발등에 정확히 얹히는 감각과 함께 공이 쏘아져 나간다. 동시에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골키퍼의 모습이 보인다.
그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골인데···
파아아아앙-!
그러나 반갑지 않은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선수들이 허겁지겁 튀어나오는 공을 향해 달려든다.
골대를 강타한 것이다.
다시 높게 뜬 공을 향해 선수들이 달려들고, 우당탕탕 경합이 이뤄지다 공은 골 라인을 벗어나고 만다.
판정은 상대의 골킥으로 인정됐으나, 정작 표정이 굳은 건 상대고 우리 팀 선배들은 박수를 친다.
“나이스, 나이스!”
“오늘 컨디션 발딱 섰구나!”
“하고 싶은 거 다 해, 우리 막내!”
···내가 이렇게 건방져진 것에는 선배들의 탓이 크다.
이렇게 내가 뭘 해도 다 좋다고 박수만 쳐주니까 나도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거다.
“후우-”
좌우 동료들에게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시한 뒤 등을 돌려 우리 진영으로 돌아간다.
동시에 문득 예전 생각이 떠오른다.
U17에 있을 때, 경기를 준비하는 내게 토니 감독님은 항상 ‘너 하고 싶은대로 해라’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하지만 정말 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던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근데, 그 지시를 이제야 수행하는구나 싶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그대로 다 하고 있었다.
*
하나의 팀을 이끄는 중책을 맡은 사람은 개인의 기질을 떠나 자연히 보수적인 성향을 띌 수밖에 없다.
항상 최상의 시나리오보단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생각하고, 이에 대처할 방법을 마련해두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
이번 경기를 앞두고, 인테르의 사령탑 시모네 인자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즌 막바지지만 부상으로 이탈한 핵심 전력도 없고, 결승전의 경험도 상대에 비해 충분한 편이고, 트로피를 향한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강하게 형성되어 있고.
여러 호재들이 많았으나, 인자기 감독은 그런 것들을 제쳐두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악재들부터 떠올리며 경기를 준비했다.
우선 결승전이 가지는 그 자체의 변수.
단판으로 치러지는 결승전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이상하지 않은, 그 자체로 변수 덩어리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인자기 감독은 팀 내 베테랑 선수들에게 경기 초반 분위기를 주도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대책을 세웠다.
변수를 최대한 제거하고 상수로 경기를 채우기 위해 최대한 평소대로 이끌어갈 것을 지시한 것이다.
그건 그렇게 넘어가고.
두 번째 예상 가능한 악재라면 체력 문제가 있었다.
이번 시즌 인테르는 참가 가능한 거의 모든 대회에 참가한 팀이었다.
리그, 챔스, 코파 이탈리아.
그다지 젊지 않은 선수단을 데리고 무려 세 개의 대회를 소화했기에, 시즌 막판인 지금 체력적인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는 건 예상 가능한 바.
이에 인자기 감독은 벤치 자원으로 분류되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으로 대비했다.
또한 리그 마지막 경기 이후 주전 선수들에게 무조건 휴식을 부여하며 체력 비축을 위해 최대한 힘을 쓰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여러 것들이 있었고, 대부분은 자잘한 것들이었지만 가볍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모든 면에서 철저히 대비하고 방비했다.
인테르는 분명 탑독의 위치에 있는 팀이었지만, 인자기 감독은 이토록 보수적으로 이번 결승전을 준비한 것이다.
다만, 딱 하나.
분명히 예상되는 악재임에도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한 채, 그저 희망적인 면만을 바라보며 넘어갔던 것이 하나 있었다.
심지어 그게 가장 최악의 악재였음에도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만약 그런 악재가 발생한다면, 이건 어찌할 도리가 없는 문제기 때문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피오렌티나의 이지안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결승전에 나서는 것이었다.
이건 방법이 없었다.
떠오르는 것이라곤 그저 두세 명이 협력해 막아라, 압박해라, 쉽게 공을 주지 말아라 하는 것 따위의 진부한 것들뿐.
그러나 그런 것들도 냉정하게, 이지안의 컨디션이 좋다면 무용지물이 될 게 뻔한지라.
모든 것에 보수적으로 접근한 인자기 감독조차 이 부분에선 희망을 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승전에 나서는 이지안이 리그를 씹어먹은 MVP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결승전이 처음인 16세 애송이의 모습으로 나타나길.
그러한 희망만 품을 뿐, 구체적인 대비책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
마른 입술만 만지작거리는 인자기 감독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필 제일 외면했던 악재가 터져 버리고 말았다.
오늘 이지안의 모습은 16세 소년이 아니라 득점왕 이지안이었다.
그렇기에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자연재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