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48)
148. 그때와 지금 -2
“어, 너희들 왔니.”
“왔구나. 우리 딸, 우리 아들!”
추억 여행을 겸한 동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을 열고 들어서니 끈적한 공기와 걸쭉한 목소리가 우릴 반긴다.
문을 열 때부터 시끌벅적한 게 이 집의 특징이다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서니··· 파티가 벌어져 있다.
이탈리아식 홈 파티는 아니고, 큰 상을 여러 개 이어붙이고 앉아 다들 알코올 냄새를 풀풀 풍기는 한국식 홈 파티.
“어, 그래. 다녀 왔니.”
“···술 드셨어요?”
“조금. 조금 마셨어.”
아빠 옆에 쪼르르 가서 앉으니 얼굴이 벌게진 아빠가 괜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그 모습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술에 취한 아빠의 모습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까닭.
그건 한국에 있을 때나 이탈리아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였던지라, 벌게진 아빠의 얼굴이 꽤 낯설다.
“조금이 아니라 꽤 드신 것 같은데요.”
“아냐, 아냐. 진짜 조금 마셨어. 왜, 냄새나서 싫어? 그만 마실까?”
“···아뇨. 싫은 건 아니고요.”
아빠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아빠가 머쓱하게 웃는다.
조금 낯선 아빠의 모습이기는 하나··· 그 미소가 되게 행복해 보여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된다.
그러고 보면 어떻게 한 번도 술 마시는 걸 본 적이 없는 걸까.
이렇게 기분 좋아 보이시는 걸 보면 술을 아예 못 마시거나 싫어하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한국에 있을 때야 집에서도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로 바쁘셨으니 시간이 없으셨을 테고.
물 만큼 와인을 많이 마시는 이탈리아에서도 입에 대는 것조차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마음 놓고 취할 수가 없으셨던 거 아닐까.
아빠와 나, 온전히 둘 뿐이었으니까.
내게 문제가 생기면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빠뿐이니, 항상 맨정신을 유지하고 계셨던 게 아닐까 하는 거다.
뭐, 아니면 그냥 안 마신 건데 괜히 내가 의미 부여를 하는 걸 수도 있고.
어쨌거나, 다들 너무나 잘 해주시지만.
아직 낯가림이 다 사라진 건 아니라, 그렇게 아빠 옆에 무릎을 가슴에 모으고 앉아 흥이 넘치는 K-홈 파티를 지켜본다.
“자, 다들 잔 채우고!”
“어어, 요 지지배 밑 잔 깐 거 봐?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어?”
“아, 엄마. 딸한테 밑 잔 깐다고 뭐라 하는 엄마가 세상에 어딨냐고.”
“여기 있다, 여기.”
한국에서나 이탈리아에서나 우리 집은 항상 조용하기만 했기에.
이렇게 떠들썩한 분위기가 여전히 적응이 안 되기는 하나, 싫으냐고 한다면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뭐랄까.
이런 걸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하나.
왠지 모르게 포근한 느낌이 느껴져, 가슴 앞에 모은 무릎을 폭 끌어안는다.
극과 극은 통하는 게 있다더니.
우리 집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지우네의 분위기가 재밌으면서도 한 편으론 부럽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랐으니 지우도 밝고 쾌활한 성격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만약 나도 이런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음, 글쎄. 그래도 활발한 내 모습이 잘 상상은 안 간다만.
어쨌거나.
뭐 그렇다고 해서 내 가정사가 불우하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고.
원래 사람이라는 게 내가 가지지 못한 걸 부러워하기 마련 아닌가.
큰 덩치에 몸싸움이 뛰어난 선수를 보면 부러운 것처럼, 그냥 그런 느낌일 뿐이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런 가족의 분위기가 보기 좋아, 퍽 부럽게 느껴졌다.
우리 가족도··· 이렇게 다들 사이가 좋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설날이나 추석처럼 가족들이 모이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이 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었고.
뭐 때문인진 몰라도 만났다 하면 싸우기 일쑤라 미묘하게 흐르는 냉담한 분위기도 싫었다.
가족들끼리 있으면 더 편해야 하는 것을.
우린 되려 모이면 모일수록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오죽하면 친척들이 다 가고, 겨우 방에 나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엄청난 해방감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뭐··· 그래 봤자 1년에 한두 번이니까.
그리고 냉기가 흐르는 집의 분위기엔 익숙할 대로 익숙했던지라.
그거 가지고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렇게 보니까 그저 조금 부러울 뿐이었다. 이런 모습의 가족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부러움이 들 만큼 이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자, 이번엔 우리 사돈이 건배사 한 번 하시죠! 예?”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지우네 아버지가 잔을 들더니 말한다.
그러자 우리 아빠가 답했다.
“예? 하하. 그럴까요.”
···음.
방금 부른 게 아빠 이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한국에 딸 친구의 아빠를 부르는, 지나치게 구체적인 호칭이 따로 있었던가.
어쨌거나, 잔을 든 아빠는 꽤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항상, 예. 귀한 따님 저 먼 나라에 보내놓고 노심초사하실 텐데, 이렇게 챙겨주신 것처럼 저도 가족이다 생각하고 잘 챙겨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위하여!”
“위하여이!”
아빠가 말을 이렇게 잘하셨던가.
새삼 놀라는 와중, 모두 시원하게 잔을 들이킨다.
그리곤 지우 아버지가 말했다.
“가족 같은 게 아니고, 진짜 가족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농담으로 사돈, 사돈 하는 게 아니고. 하하!”
그러면서 나와 지우를 보며 웃으시는데,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곤 동시에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진짜 가족이 된담···
*
“추우니까 창문은 열지 말까?”
“맘대로 해.”
“맘대로? 그럼 연다? 감기 걸려도 책임 안 져.”
“어···”
꽤 깊은 밤.
저걸 선루프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창문이라고 해야 하는지.
지우가 사선으로 비스듬한 천장에 뚫린 창문을 열어젖힌다.
“···쌀쌀하긴 하다.”
“말했잖아. 닫아?”
“아냐. 괜찮아.”
“그래. 좀 참아. 엄살 부리지 말고.”
“···”
열린 창문으로 차디찬 11월 밤공기가 쏟아져 들어와 어깨를 움츠린다.
동시에, 시릴 만큼 밝은 달빛도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불 꺼진 방을 밝히기 시작한다.
“으으읏차.”
홀린 듯 그 달빛을 맞으며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지우가 옆에 와서 앉는다.
슬쩍 바라보니··· 치사하게 자기 혼자 이불을 둘러쓰고 있다.
“···뭐.”
“좀 쌀쌀하네.”
“괜찮다며. 이불 하나밖에 없어.”
하나라도 같이··· 아니지.
크흠.
괜히 헛기침을 하며 다시 밤하늘로 고개를 돌린다.
“···창문 닫아?”
“아냐. 좋아.”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왠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알코올이 섞인 공기를 오래 맡아서 그런가 조금 알딸딸한 느낌이었는데.
크게 숨을 들이키니 오염된 몸 안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그렇게 둘 다 말없이 밤하늘을 바라보던 중.
“···또 옛날 생각나네.”
지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지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나도 어릴 때, 지우 집에 놀러 와 지금처럼 창문을 열어놓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때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네. 거실은 여전히 시끄럽고. 저기 별들도 제자리에 그대로 있고.”
정말 그런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왠지 모르게 그날, 그때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 모든 게 기억난다.
좀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공기와 습도마저도 생생할 정도로.
아마 처음으로 해 본 일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방 침대가 아닌 곳에서 하룻밤을 잔다는 것 자체가 그때의 내겐 엄청난 일탈이었다.
지방으로 대회를 가거나 할 때도 항상 날 따라다니는 분이 계신 덕분에 혼자 잘 일이 없었던 거다.
어쨌거나.
덕분에 안 그래도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같은 상황에 놓이자 어제 일처럼, 아니 지금 일처럼 느껴진다.
그때도 이렇게 쌀쌀했고, 어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저 멀리 거실에서 들려왔으며,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저 자리에서 그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 혼자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사람까지 똑같다.
그래서 왠지 기분이 묘하다.
그때와 지금, 바뀐 건 나뿐인 것 같아서···
“야, 저기. 북두칠성이다. 오늘은 엄청 밝게 보이네.”
“어디···?”
“저기! 저기 제일 반짝이는 거랑,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으면 북두칠성이잖아.”
괜히 혼자 감상에 빠져 있던 중, 하늘을 향해 손을 가리키며 호들갑을 떠는 지우 덕에 감상에서 벗어난다.
···어디가 북두칠성이라는 거지.
그러고 보면 그때도 지우가 북두칠성 찾는 법을 가르쳐줬던 것 같은데, 내 눈엔 다 똑같이 보여서 잘 못 찾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웃긴 게 쓸데없는 건 다 기억하면서도 그건 북두칠성 찾는 법은 기억이 안 나네.
“보이지?”
“···모르겠어.”
“내가 옛날에 분명히 가르쳐 주지 않았냐? 까먹었어?”
“어.”
“아, 진짜. 자, 봐봐. 얼굴 이리 대 봐.”
“···!”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지우가 내 얼굴을 끌어당기더니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자기 손에 가져다 댄다.
그리곤 내 시선을 수동으로 조정해··· 밝게 빛나는 별에 조준한다.
“봐.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으면 국자 모양이잖아. 보이지?”
“···응.”
“그게 북두칠성이라고. 오케이?”
“···오케이.”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대충 알아들은 척한다.
또 못 알아들으면 한 대 맞을 게 분명하니.
그나저나 난 왜 봐도 모르겠는지 모르겠다.
그냥··· 전부 다 반짝이는 게 예쁘게 보이기만 할 뿐.
뭐가 뭔지 구분해내는 지우가 신기하기만 하다.
북두칠성이고 뭐고, 그냥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은 아름답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야.”
“어.”
“그때 기억나냐. 우리 별 보면서 소원 빌었었잖아. 여기서.”
“···응.”
소원··· 빌었었지.
그땐 참 순수했다.
진짜로 저 별들이 소원을 이뤄주길 바라면서, 정말 진지하게 빌었었으니까.
“그때, 뭐 빌었었냐?”
“···소원?”
“응. 이젠 말할 수 있잖아.”
“너부터 말해.”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너부터 말해.”
···음.
그때 뭘 소원으로 빌었었냐면···
“···축구 잘하게 해달라고.”
“그게 다야?”
“···응.”
고개를 끄덕이니 지우가 싱겁다는 듯 픽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리곤 이내 말했다.
“이뤄졌네?”
“이뤄지긴 무슨.”
“이뤄졌잖아. 잘하게 됐잖아. 얘 욕심 봐라. 얼마나 더 잘해져야 되는데.”
어이가 없다는 듯 지우가 날 쳐다보는데, 나도 픽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사실 앞뒤 자르고 얘기한 거야.”
“뭔 소리야? 앞뒤를 자르다니?”
“그냥 잘하게 해달라고 한 게 아니고··· 세상에서 제일 잘하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괜히 쑥스러워 툭 던지듯 빠르게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냥 잘하게 해달라고 빈 게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었다.
적당히 잘해봤자 바뀌는 게 없을 거라고,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그래도 뭐, 이뤄지고 있는 중이네. 뭐.”
“···그럼 좋겠다.”
“야, 봐봐. 저기 보이는 별빛이 언제적 별빛일 것 같아?”
“뭔 말이야?”
“그니까, 아 씨. 너 과학 시간에 졸았지.”
“응. 잤지.”
“···너무 당당한 거 아냐? 그 아무튼, 빛도 여기까지 열심히 오는데 시간이 걸릴 거 아냐. 아무리 빨라도 거리가 엄청 머니까, 지금 우리가 보는 저 빛이 사실은 몇 광년 전의 빛일 수도 있다는 거야.”
열 띤 설명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알아듣진 못했으나, 선생님이 만족스러워하기만 하면 된다.
“근데 그게 뭐.”
“그니까, 결국 시간이 좀 걸린다는 거지. 소원도 바로 짠! 이뤄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이뤄져 가는 거지.”
“···그렇네.”
오늘따라 얘가 왜 이렇게 말을 잘 할까.
지우의 말에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밤하늘을 바라본다.
역시 새벽 감성의 힘일까.
“···”
그러다가, 문득 잊고 그냥 넘어갈 뻔한 걸 짚는다.
“그래서 너는.”
“나 뭐.”
“넌 소원 뭐 빌었냐고.”
“···나?”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니.
대답을 않고 잠시 기다리자, 지우가 좀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나는··· 음···”
대체 무슨 소원을 빌었길래 뜸을 들이는 걸까.
잠자코 기다려도 취사 완료가 될 생각을 안 하길래 지우를 쳐다봤더니, 지우가 초딩처럼 메롱을 하더니 말했다.
“비밀이다. 멍충아.”
“···”
“소원은 남한테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거든요. 바보야.”
···그럼 나한텐 왜 말하라고 한 건데.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지우도 웃긴 듯 왜 이렇게 순진하냐며 놀려대는데, 딱히 화는 나지 않았다.
어차피 나도 다 말한 건 아니었으니까.
축구 잘하게 해달라고 한 건 소원 중에 하나였을 뿐이고.
실은 더 있다.
더 있는데, 왠지 말할 수는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소원만큼은 이뤄진 게 확실했다.
그때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지우가 옆에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