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47)
147. 그때와 지금 -1
“밥 좀 더 줄까?”
“아, 아니요. 괜찮아요.”
“왜 더 안 먹구. 벌써 배부른 건 아니지?”
“···”
지우 어머니의 물음에 괜히 어색한 웃음만 짓는다.
벌써··· 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미 밥 두 공기는 먹은 것 같은데. 그것도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으로.
배가 부르다기보단 터질 것 같은데, 왠지 더 못 먹겠다고 하면 실망하실 듯한 눈빛이시라.
애꿎은 젓가락만 만지작거리니, 옆에 있던 지우가 커버를 들어와 준다.
“엄마. 얘 식단 관리 해야 돼. 이미 많이 먹었는데 뭘 더 먹으래.”
“응? 식단 관리?”
“그래. 원래는 이렇게 달고 짠 것도 안 먹어. 엄마가 해주니까 먹은 거지.”
“어머. 난 운동선수니까 그냥 무조건 많이 먹어야 되는 줄 알았지. 말을 하지, 지안아.”
“아, 아니요. 다 잘 먹었어요.”
“그래도 맛은 있었지?”
“네, 진짜 맛있어요. 전부다···”
이거는 눈치가 보여서 하는 소리가 아닌 게, 진짜로 젓가락이 닿는 모든 게 맛있긴 했다.
지우가 괜히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요리 솜씨도 유전인가 싶은데, 그럼 우리 아빠도 축구선수를 했으면 잘했을 거란 얘기일까.
···아빠도 아빠답지 않게 벌써 두 그릇을 클리어하셨다.
“와, 쟤 봐라. 벌써 막 챙기네?”
“···뭐래.”
“이탈리아에선 네가 식단도 챙겨주고 그러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음···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만.
지우의 언니 중 한 분이 얘기하자 지우가 콧방귀를 뀐다.
“그냥 뭐, 아저씨께서 주방 써도 된다고 해주셔서 연습하는 겸 해주는 거지. 하숙집에선 주방 막 쓰기 좀 그렇잖아.”
“오올, 그럼 뭐 사실상 둘이···”
“야, 야. 애들 두고 뭔 소리를 하려고. 정신 안 챙길래.”
“뭐야. 내가 뭐라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둘이 식구나 다름없다고.”
아까, 집에 들어오자마자부터 느낀 거지만··· 이렇게 지우네 가족 사이에 있으려니 실시간으로 기가 빨려 나가는 느낌이다.
뭐 딱히 한 것도 없이 그냥 밥만 먹었을 뿐인데. 거의 전반전은 뛴 것처럼 체력이 소진되는 느낌이랄까.
그런 이유야 간단한 게, 지우가 여러 명이었다.
일단 진짜 김지우가 있고.
지우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김지우, 조금 더 많은 김지우, 좀 많이 많은 김지우.
외모며 성격이며 말투며.
온통 김지우 세상이라 기가 안 빨리는 게 이상한 일.
마치 지우가 나이대 별로 나눠져서, 현재의 지우와 미래의 지우를 같이 보는 느낌이었다.
···아마 지금 아빠의 표정이 내 표정이 아닐까 싶다.
아빠도 되게 지쳐 보이거든.
그나마 내가 파주에 있을 때 아빠는 여기 계셨던 터라 적응이 좀 되셨을 텐데, 그래도 여전히 적응이 안되시나 보다.
“···끅.”
어쨌거나, 목구멍까지 차오른 배부름에 간신히 입을 틀어막고 있는 와중.
U17 지우가 날 툭툭 치며 말했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 동네 산책이나 가자. 너 밥 먹고 그냥 누우면 안 되잖아.”
“···어.”
안 그래도 잠깐 바람이나 좀 쐬고 싶다 생각하던 중이었던 건 어떻게 알았는지.
지우가 먼저 일어나며 말하는데, 다들 아직 식사 중인 터라 먼저 일어나기 눈치가 보여 밍기적대고 있으니.
“잠깐 나갔다 올게.”
“응, 응. 그래. 다녀와.”
“야, 가자.”
지우가 내 어깨를 잡아당기며 강제로 날 일으켜 세운다.
그 손에 못 이기는 척 끌려가듯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제야 숨통이 조금 트인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에 땀이 흥건했다.
*
“여기도 다 그대로네.”
“그대로지.”
“어··· 저기 빵집. 저기도 아직 있구나.”
“···야. 자꾸 할아버지처럼 말할래?”
지우와 잠시 나와 동네를 걷는 중.
어렴풋하면서도 익숙한 동네 풍경에,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지우가 혀를 찬다.
자꾸 여긴 그대로니, 옛날엔 여기 뭐가 있었는데 없어졌느니 하니까 할아버지같이 그러지 좀 말라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돌아온, 지우와 시도 때도 없이 쏘다니던 동네다.
거길 다시 지우와 같이 걷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바뀐 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비록 그때와 달리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처럼 나는 바뀌었으나.
여전히 그대로인 동네 풍경에,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예전 생각이 난다.
“야, 놀이터 가자.”
“아, 거기.”
그렇게 묘한 한숨을 내쉬며 걷던 중, 놀이터로 가자는 지우의 말에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자주 가던 놀이터가 있다.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 작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였는데 거기서 자주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흔한 놀이터지만 나에겐 나름 추억의 장소다.
“···와. 여기도 그대로네.”
“아, 진짜. 할아부지.”
정겨운 골목을 지나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놀이터를 보니 왠지 코끝이 찡한 느낌이 든다.
발 때가 묻어 거뭇거뭇한 우레탄 바닥.
그네 두 개에 스프링 목마 네 개.
그리고 미끄럼틀이 하나 있는, 정말 평범하다 하기에도 자그마한 이 놀이터가··· 내겐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던 공간이었다.
그 놀이터가 오랜만에 잠깐 숨 좀 돌리고 가라는 듯,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모습이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것이다.
끼익-
홀린 듯 그네에 앉으니 삐걱대는 쇳소리가 정겨움을 자극한다.
자연스럽게 옆 그네에 앉는 지우를 흘끗 보며 말했다.
“기억나냐.”
“어떤 거.”
“학교 끝나면 여기서 놀다가 집 갔던 거.”
“기억 안 나겠냐. 너 맨날 집 가기 싫다고 해서 누나가 같이 놀아줬잖아.”
뭐래··· 라며 반박을 하고 싶지만, 사실인지라 그저 피식 웃고 만다.
그땐 그랬다.
딱 이 놀이터에서 이쪽으로 가면 우리 집이고, 저쪽으로 가면 지우네 집 방향인지라.
여기가 헤어지는 갈림길이었는데, 헤어지기 전에 항상 우린 여기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냥 뭐, 어릴 때다 보니 놀이터에서 노는 게 재밌기도 했었고.
지우 말대로 내가 집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린 적도 있었고.
사실 딱히 집에 가기 싫은 건 아닌데, 왠지 뭔가 아쉬워서 조금만 놀다 가자고 한 적도 있었다.
그땐 왜 그렇게 곧장 집에 가는 게 아쉬웠는지···
“요즘은 애들이 별로 안 보이네. 옛날엔 여기 그네 비어 있으면 운 좋은 거였는데.”
“그러게.”
“기억나냐? 먼저 가서 그네 맡아 놓으라고 너 보냈는데 네가 애들한테 말도 못 해서 그네 빼앗겼던 거?”
“···아니. 그건 기억 안 나는데.”
“웃기시네. 너 때문에 그네 빼앗긴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기억 안 나긴.”
···기억력도 좋지.
자꾸만 반박을 차단하는 지우의 말에 괜히 발을 구르며 그네를 바이킹으로 만든다.
그땐 이 놀이터에도 아이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한산하기 짝이 없다.
덕분에 이용하기 적정한 나이가 아님에도 그네를 탈 수 있는 건 좋지만, 왠지 허전한 마음도 드는 것이.
한때 인기 최고였던 은퇴하고 사람들에게 잊혀진 걸 보는 느낌이랄까.
···으음.
그러고 보면 나도 쓸데없이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우에게 물었다.
“그럼 그건 기억나냐.”
“뭐. 너 저기 미끄럼틀 타다가 앞으로 넘어져서 울었던 거?”
“···그런 적은 없고. 여기서 맨날 술래잡기하고 놀았던 거.”
“아아, 기억나지.”
그때 생각이 나는 듯 지우가 피식 웃자 나도 피식 웃는다.
쟤도 참 웃긴 게, 여자애인데도 제일 좋아하던 놀이가 술래잡기였다.
그땐 뭐 웬만한 남자애들보다도 더 남자애 같았으니.
“그땐 내가 너보다 빨랐었는데. 맞지?”
“···비슷했지.”
“뭔 소리야. 내가 너보다 빨랐어. 너 맨날 나한테 잡혔었잖아.”
으음.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지만, 그건 지우가 착각하는 거다.
어릴 때도 달리기는 내가 더 빨랐다.
다만 지우가 술래가 되면 일부러 잡혀줬을 뿐이지.
···이 악물고 안 잡혀줬다간, 나중에 잡혀서 두들겨 맞을 게 뻔했으니 말이다.
“밥 먹으러 갈 땐 네가 더 빠르긴 했지.”
“죽을래? 그냥도 내가 더 빨랐거든.”
“아니라니까.”
“맞다니까. 야, 너 일어나 봐.”
“···?”
“지금도 할 만할 거 같은데? 일어나 봐.”
갑자기 그네에서 일어나 한 판 붙어보자는 듯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는 지우의 모습에, 콧방귀를 뀐다.
어릴 땐 그렇다 쳐도 지금은 게임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의 난 날아다니는 선수들이랑 달리기 시합을 하는 몸인데.
그런데도 지우는 자신만만한 듯 도발할 뿐이다.
“왜, 자신 없냐?”
“···까불다가 다친다.”
“쫄? 쫄?”
“···”
부럽다.
저 자신감이.
그래도 너무 자신감이 과하면 안 된다는 걸 가르쳐 줄 필요가 있어 보여, 그네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지우가 후다닥 도망가며 제멋대로 날 술래로 만든다.
“5초 세!”
“일··· 이··· 삼···”
지나가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옛날 룰 대로 5초를 센다.
다 커서 이러고 있는 걸 누가 본다면 쯧쯧 혀를 찰 게 분명하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 대충할 수는 없다.
“사, 오!”
5초를 세는 동시에 호흡을 뱉으며 우레탄 바닥을 박차고 튕겨 나간다.
그리고 마치 시합 중이기라도 한 듯, 정석적인 달리기 자세로 지우를 추격한다.
어릴 때와 달리··· 도망가는 지우의 등이 너무나 빠르게 가까워졌다.
“꺄아아악!”
“야, 야! 소리는 지르지 마···!”
아니, 누가 보면 어쩌려고.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 아닌가.
소리 지르면서 도망가는 여자랑, 그걸 잡으려고 전력으로 뛰는 남자가 있으면.
···누가 보기 전에 빨리 잡아야겠다.
“잡았다.”
“아!”
재빨리 달려 지우의 어깨를 툭 쳤다.
이걸로 술래 역할은 지우에게 넘어간다.
이젠 내가 도망가고, 지우가 날 잡을 차례인 것이다.
도망쳐!
“일로와!”
무섭게 추격하는 지우에게서 달아난다.
“잡히면 죽는다!”
그건 알지.
그래서 도망가는 건데.
등골이 서늘한 감각에 일단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러다 흘끔 뒤를 돌아보니, 지우가 저 멀리 있는 게 보인다.
···순간 머쓱한 기분이 들 정도의 거리 차이였다.
너무 진심으로 달렸나.
그래도 난 남자고, 상대는 여자인데.
게다가 난 축구선수가 아니던가.
에휴.
조금은 봐줘야겠다.
“어, 어!”
속도를 늦추고, 괜히 아슬아슬한 척 연기를 하며 지우의 속도에 장단을 맞춰 준다.
그러다가, 지우가 힘들어서 진짜로 화가 나기 전에··· 적당히 잡혀준다.
“잡았다!”
끝까지 도망가서 평생 안 볼 게 아니라면, 내가 이겨봤자 남는 게 없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도 이런 생각으로 잡혀줬던 것 같다.
“헤엑, 헤엑. 봐··· 봤지? 지금도 이 정도면, 그땐 내가 더··· 빨랐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숨을 헐떡이면서도 자기가 이겼다고 좋아하는 걸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근데 너도 운동 좀 해야겠다.”
“휴우, 휴우.”
“옛날엔 그렇게 뛰어도 멀쩡하더만. 지금은 죽으려고 그러네.”
“야, 그거야 옛날이고. 아, 죽을 것 같애.”
허리도 못 펴고 다시 그네에 가서 앉는 지우에 혀를 쯧쯧 차며 옆 그네에 앉는다.
옛날엔 그렇게 쌩쌩했는데.
지금은 그거 조금 뛰었다고 헥헥 대는 걸 보니 느껴지는 이 짠함은 뭘까.
아무래도 이탈리아로 돌아가면 지우도 운동을 좀 시켜야겠다.
“간만에 뛰었더니 죽겠네. 야, 어릴 땐 어떻게 맨날 이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땐 뭐···”
어쨌거나, 잠시 숨을 고르며-물론 나는 숨이 차오르지도 않았다-, 그네에 앉아 다시 옛날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밖에 없던 놀이터에 누군가 나타남에, 동시에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초등학생 4학년, 5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맹이 둘이었다.
“야, 돼지!”
“뭐? 죽을래?”
까불거리며 놀이터에 들어선 녀석들은, 이내 투닥거리더니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남자애가 놀리고, 여자애가 살벌한 얼굴을 한 채 그 뒤를 쫓아가고.
“···웃기네.”
“···그러게.”
그 모습을 보다가, 나와 지우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왠지 모르게···
“쟤네가 커서 된 게 우리 같지 않냐.”
“···음.”
우리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각에, 지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