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46)
평가전이 끝나고, 다음 날 간단한 회복 훈련을 마친 뒤.
앞으로의 일정과 각오에 대한 감독님의 연설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대표팀 일정은 끝이었다.
이후 선수단은 해산했고, 나는 멀리 파주까지 데리러 와주신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구단과 협의한 복귀일까지는 나흘이 남아 있었고, 그중 이틀은 한국에서 보낼 계획.
컨디션 관리를 생각하면 바로 돌아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으나, 정말 오랜만에 온 거기도 하고.
지우를 생각해서도 좀 더 있다 가기로 했다.
처음 이탈리아에 왔을 때 자긴 유럽 체질이니 뭐니 하더니.
역시 자기 집보다 좋은 건 없나 보더라.
매일 삼시 세끼마다 집밥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데, 맨날 밥 해주기만 하다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며 행복해하던 지우였다.
으음.
근데 그저께, 경기가 끝난 직후엔 뭔가 화난 것 같은 목소리던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전화해서 여자 팬들 많아 좋겠다고, 무슨 아이돌인 줄 알았다고 괜히 시비를 걸길래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어쨌거나, 시합도 끝났고.
뭔가 큰 숙제를 끝낸 것 같아 기분이 후련하기는 하다.
그래서인지 마음은 가벼운데 몸은 축 늘어지는 느낌.
조수석 매너가 아닌 건 알지만, 거의 눕듯이 등받이를 젖히고 시트에 몸을 파묻는다.
“피곤하지? 몸은 좀 괜찮아?”
“괜찮아요. 뭐, 얼마 뛰지도 않았으니까.”
“그래도 고생했다. 왔다 갔다 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 아빠는 와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몸이 무겁더라고.”
“···저는 어리잖아요.”
“그래. 부럽네, 인마.”
···음.
아빠의 나이를 디스하려는 의도로 한 말은 아닌데.
어깨를 으쓱이며 화제를 전환하기로 한다.
“근데 이 차는 어디서 빌리신 거예요?”
“아, 이거? 사··· 아니. 지우네 아버님이 빌려주셨어.”
“···아.”
“어찌나 잘 챙겨주셨는지 몰라. 매 끼니를 수라상처럼 차려주시는데 살찐 거 아닌가 모르겠다. 지우가 왜 그렇게 음식을 잘하는지 알겠더라고.”
“하하···”
“너 온다고 아침부터 뭐 막 준비하시던데. 배고프지?”
“···네.”
으음.
아빠의 말에, 편하게 누워있던 자세를 조금 고쳐 앉는다.
방금까지만 해도 마음이 편안했는데 왠지 모르게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한 탓이다.
···이유는 정말로 모르겠다만.
한국에 가기로 했을 때부터, 지우가 자기 집에서 며칠 있다 가자고 했을 때부터 그 생각만 하면 왠지 긴장이 되더라.
긴장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물론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진다는 게 조심스러워지는 일은 맞지만, 그래도 지우네 집이라면 어릴 때 가끔 가보지 않았나.
그럴 때마다 친부모님보다도 더 친근하게 잘 챙겨주셨고.
그런데, 흐음.
지금은 긴장이 된다.
왜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
“이거면 될까요?”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
“음. 저거, 사과도 한 상자만 사 가요.”
“···들 수 있을까?”
큼직한 사과 박스를 가리키는 내 손짓에 아빠가 머리를 긁적인다.
생각보다 금방 서울에 도착하긴 했으나 바로 지우네 집으로 가지 않고,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한 채 근처 마트에 먼저 들렀다.
그래도 신세를 지는 건데 빈손으로 가긴 뭐해서 뭐라도 사갈 생각.
“읏차.”
“들 수 있어?”
“네.”
“허 참. 이 정도면 부담스러워하시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카트는 이미 꽉 찬지 오래라, 직접 묵직한 사과 상자를 들어 올린다.
음. 조금 많긴 한가.
고기도 바다와 육지 가릴 것 없이 종류별로 샀고, 한국 어른들한테 인기라는 술도 샀고, 과일까지 제철이라는 건 모두 담았으니.
카트를 미는 것조차 꽤 힘이 들어갈 정도기는 했다.
“이제 갈까?”
“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넘치는 것 같은데, 지안아.”
“알겠어요.”
근데도 내 눈엔 왜 뭔가 부족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조금 더 사 가면 딱 맞을 것 같은데.
어쨌든 부족한 것보단 넉넉한 게 좋잖아.
덕분에 한 보따리를 담고도 더 담을 게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와중.
“···어?”
이탈리아에선 보기 힘든 물건이 보여,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다가갔다.
그리고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건 어떻게 들고 가는 거예요?”
“음··· 지안아.”
“네.”
“가자. 이 정도면 충분해.”
“···네.”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아빠의 표정에 머리를 긁적이며 물건을 바라본다.
뭔가 치료실에 두면 좋을 것 같은 안마 의자였는데, 음.
확실히 이건 좀 오바려나.
“얼른 가자.”
“네···”
그래도 왠지 발걸음이 안 떨어져, 아빠를 따라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흘끔거렸다.
이렇게나 잔뜩 샀는데.
그런데도 뭔가 모자라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도 모를 일이었다.
*
“엑? 이게 다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차 트렁크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물건들에, 1층으로 마중을 나온 지우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보니까 좀 많기는 하다.
아빠와 내가 양손 가득 들고도 들 게 남아, 지우까지 낑낑대며 짐을 들어야 했다.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샀어.”
“그··· 신세 지는 거니까.”
“그래도 무슨 이사 온 줄 알았잖아. 으으, 무거워. 뭐야 이건? 고기? 잘 사 오긴 했네.”
뭘 이렇게 많이 사 왔냐면서도 고기를 보곤 지우의 입가가 올라간다.
어쨌거나, 셋이 함께 낑낑대며 올라가는 길.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어 다행이다 싶은데, 그나저나···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풍경을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대로네.”
“응? 뭐가?”
“여기. 옛날이랑 똑같아.”
현관부터 엘리베이터 안을 둘러보면서 말하니, 지우가 피식 웃는다.
“옛날이라기엔 얼마 안 되지 않았냐. 당연히 똑같지.”
“···그런가.”
“너 여기 마지막으로 왔을 때라고 해봐야··· 음. 4년 전? 5년 전이잖아.”
“응.”
지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새삼 그렇게밖에 안 됐다 싶다.
물론 4, 5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긴 하다만··· 체감상으론 그것보다 훨씬 옛날 같은데.
어쩌면, 그 시간 동안 많은 게 바뀌어서 더 옛날처럼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다.
내가 말이다.
예전 여기에 놀러 오던 난 그저 코찔찔이 꼬맹이에 불과했었는데, 지금은··· 그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바뀌었으니, 자연히 시간도 많이 흘렀고 세상도 바뀌었을 것 같이 느껴지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것들이 눈에 들어오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뭔가 표현이 이상하기는 하다만.
그대로여서 고맙다는 느낌이랄까.
그냥 그랬다.
“야, 무거워?”
“···응?”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아, 하긴. 힘들긴 하겠다. 시합 끝나고 바로 온 거라서.”
“···아, 응. 그래도 괜찮아.”
“좀 쉬어. 얼굴 되게 안 좋아, 너.”
지우의 말에 문득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바라보는데, 음.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다.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졌다곤 하나, 사실 긴장이 되고 있기는 여전했다.
올 때부터 궁금했던 거지만 대체 왜 일까.
왜 긴장이 되는 걸까.
띵-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이내 지우가 먼저 내리고 뒤따라 우리도 내린 뒤.
지우가 현관문의 초인종을 누르는데, 나는 그제야 왜 긴장이 되는지, 이게 무슨 기분인지 조금은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거··· 딱 테스트 볼 때의 느낌인데.
그러니까, 뭔가 합격과 불합격을 두고 면접을 볼 때의 기분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긴장이 되고, 마트에 들렀을 때도 뭐 하나라도 더 사고 싶었던 거고.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말이다.
아니, 물론 순수한 마음도 있었지만··· 부정하기 어렵다.
잘 보이고 싶다.
잘 보이고 싶은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건지까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
“저기, 혹시 사진도 한 번 괜찮을까···?”
“아, 네.”
“어머, 어머. 웬일이야. 핸드폰, 핸드폰!”
난리가 난 집안 꼴을 바라보며, 김지우는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지안이가 온다는 소식에 평소 바쁘다던 언니들부터 사촌들까지 죄다 모여 안 그래도 북적였는데, 지안이가 도착하자 완전히 난장판이 벌어진 것이다.
다들 입을 틀어막으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모습에, 김지우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런 언니들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글쎄.
그동안 언니들에게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할머니부터 내려져 온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유독 딸만 많은 집이라서 그런지.
언니들은 다들 결혼을 일찍 한 편이었다.
덕분에 가족들끼리 모이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남편을 자랑하는 경연 대회가 펼쳐지곤 했다.
이상하게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가도 꼭 그쪽으로 흘러가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
그렇다고 해서 뭐 대 놓고 하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눈에도 딱 보였다고나 할까.
그 은근한 기 싸움이 말이었다.
뭐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어느 날 누가 못 보던 가방을 들고 나타나선, 그이가 필요도 없는데 이런 비싼 가방을 사 와서 혼냈다며 푸념을 하는 거다.
실은 그게 진짜 푸념이 아니라 은근한 자랑이라는 건 초등학생이 봐도 알겠더라.
그래서 또 그걸 들은 다른 언니가 자기도 그런 적 있다고, 남자들은 왜 그러냐면서 은근히 또 맞장구를 가장한 자랑을 하고.
결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 싸움으로 이어지는 식이었달까.
덕분에 형부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언니들이 만날 때마다 그러니, 언니들 기 살려주겠다고 갖은 노력을 다해야 했으니 말이다.
어떤 날은 누가 좋은 일, 예를 들어 직장에서 승진을 했다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그렇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보일 수가 없더라.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무슨 왕이 행차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 언니들을 보면서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어린 시절의 김지우였다.
대체 왜들 저럴까 싶었지.
근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언니들을 다 이겨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짜증이 날 정도로 자랑질들을 해댔기 때문이었다.
그 자랑질을 못하게 입을 꽉 막아버릴 수 있을 정도로 멋진 남자를 데려와야지, 라며 각오를 다졌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뭐 비록 친구기는 하지만.
“얘, 대박이다 진짜.”
“실제로 보니까 키가 꽤 크네? 얼굴만 소년소년하지, 축구선수 느낌이 확 나네.”
“야, 김지우. 너 친구 잘 사귀긴 했다?”
수군대는 언니들을 보니 괜히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가는 거다.
김지우는 그런 언니들에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친구는 쟤가 잘 사귄 거지.”
그러면서도 새어 나오는 웃음은 참기가 어려워, 광대가 제멋대로 씰룩씰룩거렸다.
어쨌거나···
“아이고,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그대로 잘 자랐어? 응?”
“아, 아니에요···”
“일단 그 좀 쉬고 있어. 아줌마가 빨리 밥해 줄 테니까. 아이고,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그냥 와도 되는데.”
“아, 하하···”
그 어떤 형부들보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엄마나, 그 뒤에서 수줍게 허허 웃고 계시는 아빠나.
그 앞에서 왠지 모르게 쩔쩔매고 있는 지안이를 보니 김지우는 어딘가 기분이 묘했다.
그냥 오갈 데 없는 친구, 집에서 자라고 데려온 것뿐인데.
왜 언니들 결혼할 때의 분위기가 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김지우는 그런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았다.
또한···
“···야. 어디 좀 들어가 있을 데 없냐.”
“내 방 가 있어.”
“같이 가 줘. 눈치 보여···”
“뭐가 눈치가 보여. 그냥 편하게 있어.”
“아, 같이 가 줘.”
“에휴, 알았어.”
어딘가 잔뜩 긴장한 듯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쫄래쫄래 와서 속삭이는 지안이가 오늘따라 귀엽게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