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51)
축구선수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세상이 넓다는 거, 아니 더럽게 넓다는 거다.
그냥, 뭐랄까.
며칠 간격으로 비행기를 타고 여기저기를 누비다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세상이 참으로 넓다.
조그만 다락방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볼 땐 이 세상이 먼지 한 톨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모든 건 상대적인 것 아니겠나.
그 먼지 한 톨조차 안 되는 우리이기에, 세상은 참으로 넓은 것이다.
“신혼여행 이후로 처음이네.”
“신혼여행을 파리로 왔었어?”
“응. 파리랑 니스에 갔었지. 각각 3일씩 있었나. 개인적으론 니스가 훨씬 좋았어.”
“니스가 바닷가던가?”
“응. 이탈리아 느낌 나는 동네더라. 반면 파리는 좀 우중충하지. 지저분한 느낌도 있고.”
“지저분하다고?”
“관광지에서 조금만 들어가 봐. 냄새가 장난이 아니야.”
비행기에서 내리기 무섭게 버스에 실려 시내를 달리는 길.
뒷자리에 앉은 선배들의 시시콜콜한 대화를 엿들으며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잔 탓인지 눈꺼풀이 천근만근. 다만 창밖으로 지나가는 이국적인 풍경이 시선을 잡아끌어, 간신히 눈을 뜬 채 동태 같은 눈으로 시내를 구경한다.
“에펠탑이네.”
“저건 언제 봐도 징그럽단 말이지.”
“징그럽다고? 왜?”
“몰라. 그냥 징그러워.”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탑의 모습이, 이곳이 프랑스의 수도임을 뽐낸다.
빵 봉지에서만 보던 건데 실제로 보니 규모가 꽤나 웅장하다.
유럽에서 나고 자란 선배들이야 그저 옆 동네에 온 것 같은 반응들이다만.
내게는 거리의 풍경이 충분히 이국적인지라, 다시 또 새로운 곳에 왔구나 하는 감상을 받기엔 충분한 모습이다.
요즘은 눈을 뜨면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눈을 감았다 뜨면 한국이었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이탈리아였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여기, 프랑스 파리인 생활.
지우는 공짜로, 아니 돈까지 받으면서 세계를 여행하고 다니는 게 부럽다고 하던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만 이게 여행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다.
가끔 선배들 손에 이끌려 밥을 먹으러 나간다거나 한 적은 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시간은 호텔과 경기장을 왔다 갔다할 뿐이었으니.
무엇보다 여행이라고 하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게 나에겐 일상이니, 음.
새로운 도시에 원정을 간다고 해서 여행을 가는 것처럼 들뜨거나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감사해야 하는 걸까.
그래야겠지.
누가 강요해서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어쨌거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눈앞에 파리 시내의 전경이 펼쳐져 있음에도 내 신경은 중동의 사막으로 향한다.
엊그제, 한국에서 날아든 소식에 정신없는 축하 세례를 받았다.
월드컵에 가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이다.
특히나, 월드컵에 가지 못하는 선배들에게 집중적인 축하를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엄청 부러운 눈치들이라 월드컵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겠더라.
사실 정작 나는 별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이지안과 월드컵.
도무지 연관 관계가 잘 연상이 안 되는, 서로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않나.
그래서 딱히 목표로 둔 적도 없었다.
물론 내가 아닌 누군가는 월드컵에서 뛰는 걸 꼭 바랐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덕분에 지금도 별생각이 없다.
오히려··· 정말 솔직히 얘기하자면.
썩 반갑지 않기까지 하다.
왜냐고 한다면, 글쎄.
시트에 축 늘어져 있는 몸과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이 그에 대한 답이 아닐까 싶다.
물론 부질없는 징징거림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3일 간격으로, 그것도 국경을 오고 가며 시합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리그 경기, 컵 대회 경기, 챔피언스 리그 경기까지.
지금 소화하고 있는 시합들만 해도 충분히 소화 불량이 걸릴 지경.
덕분에 지금도 시합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현실인 것이다.
호텔에 도착해 푹 쉬고, 적응 훈련까지 마친다 하더라도··· 내일까지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말이다.
더군다나 제일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건, 아직 시즌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일 거다.
반환점을 돌기도 전인데 벌써 이렇게 지치면 어떡하자는 건지, 조금 막막해지는 기분.
학교 아이들은 방학 때 뭘 하고 놀 지 고민하고 있던데.
그런 친구들이 부럽다고 한다면 배부른 소리일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래도 부러운 건 부러운 건데.
“···.”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한 달간 사막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해야 한다니 걱정부터 드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그것도 무슨 적당한 규모의 대회도 아니고, 이 넓은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대회에.
나라의 명예가 걸린 대회이기까지 하니.
잘 해내긴커녕 해낼 수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가득한 게 사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산 정상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쉬운 길로만 갈 수 없다는 걸.
과정 없이 결과만 얻고자 하는 건 욕심이 아니던가.
바라는 건 저 꼭대기에 있는데, 힘들게 올라갈 생각 대신 꼭대기가 낮아지길 바라는 건 맞지 않는 일이라는 걸··· 머리론 알고 있는 거다.
하지만··· 으음.
이미 충분히 험난한 길을 기어 올라온 상황에서, 더 험난한 길을 마주했을 때.
잠시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을까.
흐음.
문득 정신력이라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이 힘들어지니 정신도 몸을 따라가는데, 정신이 몸을 이끈다는 게 가능한 걸까.
“···.”
이런저런 생각들에 잠겨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호텔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힘드나?”
옆에서 나지막이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다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를 짓는 중년의 남성이 보인다.
···음.
중년이라기엔 실례인가.
“괜찮아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니, 안토니오 로사티 선배··· 가 혀를 쯧쯧 찬다.
선배라는 호칭이 유독 입에 안 붙는 것이, 사실 로사티는 선배라기보단 코치에 가까운 느낌이라 그렇다.
그러니까, 올해 나이 서른아홉.
서브 골키퍼 역할을 맡고 있는 그는 우리 선수단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
실제로 몇몇 코치님들과는 나이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라, 동료나 선배보다는 코치님처럼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물론 나이뿐만 아니라, 진짜 코치님들처럼 잔소리가 많은 타입이라는 것도 한몫할 것이고.
으음.
그러고 보니, 그래서 오늘 유독 버스 좌석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건가.
“괜찮긴. 힘들어 죽겠다는 얼굴인데.”
“···아니에요.”
“안 힘든 게 이상한 거야. 이런 일정은 경기 안 뛰는 나도 힘든데, 너는 오죽하겠어.”
말로는 아니라고 했는데, 얼굴에 다 쓰여 있었나.
안 힘든 게 이상한 거라는 그의 말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된다.
사실, 다들 축하만 하는 통에 거기다 대고 힘들다는 말은 할 수가 없어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을 들킨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반가운 느낌이랄까.
이에 마음이 열린 탓인지.
나는 문득 떠오른 순수한 궁금증을 중년의 현역 선수에게 내던진다.
“비결이 뭐에요?”
“응? 무슨 비결?”
“그···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 비결.”
그 나이까지 지치지 않고, 어떻게 이 바닥에서 버틸 수 있었냐고 물으려다가.
의도와 다르게 전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돌려 묻는다.
그러자 로사티는 피식 웃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대답했다.
“난 골키퍼잖아.”
···으음.
생각보다 너무 명쾌한 답인데.
“자, 내립시다.”
어느덧 파리 시내를 달리던 버스가 멈추고, 모두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역시 좀비처럼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이틀간 잠자리를 제공해줄 호텔로 캐리어를 질질 끌고 들어선다.
이번에 묵을 호텔의 이름은··· 관심 없다.
호텔 이름에까지 일일이 관심을 둘 수 있을 만큼 여력이 있는 건 아닌지라.
곧장 방으로 들어가 전력 분석지나 좀 읽다가 잠에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ㆍㆍㆍ
호텔 이름은 몰라도, 내가 뛸 경기장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최소한의 도리일 거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파리 생제르망과의 2차전을 위해 찾은 파르크 데 프랭스(Parc des Princes)의 첫인상은··· 매캐하다였다.
“···후우-”
뿌연 연기가 자욱해 입바람을 후 불어보지만, 그런다고 정화될 공기가 아니다.
어찌나 홍염을 많이 피워댄 것인지.
경기장 전체가 매캐해 관중석에 구름이 낀 것 같다.
이런 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다간 금세 폐가 망가지는 건 아닐까, 상대 팀 선수들의 호흡기까지 걱정하는 쓸데없는 짓까지 하게 된다.
어쨌거나, 그러는 사이.
어느새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로 도열하고, 서로 악수를 나눈 뒤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이젠 처음 보는 게 아닌 만큼 덤덤해질 법도 하건만, 메시와 악수를 나눌 땐 나도 모르게 홈 팬들과 비슷한 눈을 하고 말았다.
분명히 꺾어야 하는 적에 불과하니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아도 모자랄 것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은 까닭은, 부러움을 숨길 수 없는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 내 음습한 욕망이 인간으로 실현된 것이 메시기 때문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천재.
누구보다 큰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자, 정상에 서 있는 존재.
롤모델로 삼는 것조차 부끄럽게 느껴질 만큼 대단한 존재인지라, 나도 모르게 눈을 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러나저러나, 쓸데없는 생각은 던져두고 시합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킥오프를 위해 센터 서클에 서 있는 메시를 바라보며 다리를 툭툭 털어 본다.
현재 우리는 조에서 1위에 올라있기는 하나, 파리에게 득실차에서 앞설 뿐 승점에서 앞서는 건 아닌지라.
오늘 경기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우리가 2위로 밀려나게 되는 상황.
따라서 서로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기라, 더욱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합이다.
그런 면에서 집중하기 싫어도 집중을 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득시글한 팀이 상대라는 건 되려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만.
문제는··· 어쩌면 오늘 지더라도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것엔 문제가 없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삐이이익-!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할 때에도, 정신만 차리면 충분히 제 몫을 다해낼 수 있다.
경험이라는 게 이래서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경험을 통해 배운 점들을 떠올리며, 전광판의 시계에 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상대 선수들 사이를 누빈다.
경기 초반.
홈팀 파리가 상당히 공격적으로 나오며 시합을 주도하고 있고, 우리는 수비를 단단히 세우며 일단은 넘기고 보자는 태세를 취하고 있는 그런 모양새.
오늘 요주의 인물은 메시나 네이마르보다도 음바페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가 공만 잡았다 하면 수비진이 출렁, 출렁대고 있었다.
그는 오늘 우측면 공격수로 나온 듯했는데, 따라서 그를 맞상대하는 건 우리 주장.
1차전과 달리 하키미가 선발 출장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나, 후방의 도움이 없어도 충분하다는 듯 주장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음바페의 몸놀림을 보니.
괜히 파리 에이스를 두고 메시나 네이마르보다 그의 이름이 먼저 꼽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메시가 지혜로운 대마법사 같은 느낌이라면, 음바페는 팔팔한 한 마리의 맹수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1차원적으로 더 위협적이었다.
“버텨! 흐름만 넘기자!”
“정신 바짝! 견디면 돼!”
그런 맹수 앞에서 인간들은 그들의 최대 무기인 소통으로 단합한다.
계속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정신을 놓지 않도록 거친 단어들이 오고 간다.
축구는 흐름 싸움이라고 많이들 얘기하는데, 흐름이 왔을 때 득점을 할 수 있냐 없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좌우되기도 하니 틀린 말은 아닐 터.
경기 초반부터 이어진 상대의 흐름 속에서, 그 흐름에 빨려들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와중.
전반 14분경.
왼쪽 모서리에서 상대의 코너킥이 주어졌다.
키커는 네이마르.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박스 안을 주시하는 사이, 문전에서는 1평도 안 되는 공간을 놓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다 주심이 몇몇 선수들을 불러내 주의를 주기까지 할 정도로 싸움이 치열해, 코너킥 하나를 차는데 수 분이 소요될 지경.
그리고 네이마르의 코너킥이 간신히 골대 앞으로 올라온다.
조금 높이 떠 애매한 공간으로 향하는 공.
타타탓-!
그 공을 향해 골키퍼 테라차노가 뛰어나온다.
그 위치가 사뭇 골대와 멀어 보이긴 했으나, 공이 높게 뜬 만큼 캐칭을 해야겠다는 판단이 선 모양.
그런데··· 이내 그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그라운드 위에 울려 퍼진다.
“크악!”
공만 보고 달려가던 두 거구가 부딪친 탓.
그 와중에도 공을 품에 안은 그가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함에, 벤치에서 구급상자를 든 닥터들이 튀어나오고.
경기가 잠시 중단되며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