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비밀 -5
“야.”
“···응?”
“너 뭐 할 말 있냐?”
“아, 아니. 왜?”
흘끔흘끔.
지우의 눈치를 살피며 괜히 주변을 맴돌던 중.
지우가 갑자기 날 째려보며 묻기에 시치미를 떼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지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없어?”
“···없는데.”
“근데 왜 아까부터 내 눈치 보냐?”
“내가 언제···”
“맞잖아. 무슨 똥 마려운 개 마냥 안절부절못하는 게 다 보이는데.”
···똥 마려운 개라니.
틀린 말은 아니다만, 말이 좀 심하네.
“너 뭐 잘못한 거 있지? 빨리 말해.”
“···없다니까.”
“말할 거면 빨리 말해라. 뭔진 몰라도 나중에 들키면 안 봐준다.”
지우가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부엌으로 사라지고.
나는 거실 소파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쉰다.
···흐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네.
용기가 안 난다, 용기가.
마테오와의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음을 느끼면서도 한 편으론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털어놓으며, 마치 화장실에 다녀온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긴 했으나.
마테오가 내준 숙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된 것.
쉽지 않은 숙제였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비밀 하나를 털어놓아 보라니.
사실 한두 개가 아니다.
부끄러워서든,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껴서든, 아니면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서든.
이유를 불문하고 지우에게 말 못 한 비밀들이야 한두 개가 아니지.
예를 들어보자면, 뭐··· 초등학생 때였나.
지우가 자리에 없을 때, 어떤 남자애가 지우 자리에 초콜릿이랑 쪽지를 두고 가길래 몰래 내 가방에 넣고 모른 척한 적이 있다.
무슨 같잖은 질투심이나 이런 게 아니고 그 남자애, 되게 질 나쁜 애라 엮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랬었지.
그리고 또 뭐··· 체육 수행 평가 볼 때였나.
내가 축구부라는 이유로 선생님께서 기록 측정을 시키셨었는데, 지우 몰래 기록을 좀 더 올려서 적어주기도 했었다.
팔굽혀 펴기 5개면 7개라 써주고, 윗몸 일으키기 6개면 8개라고 써주고.
지우도 웃긴 게, 자기가 몇 개 했는지도 모르고 나중에 1등급 나왔다며 그저 좋아하더라.
뭐 다 이런 것들이다.
자잘자잘, 사소한 것들.
이탈리아에 온 뒤 적응 잘하고 있다고 거짓말한 것만 빼면 다 별거 아닌 것들이지.
근데 이런 걸 굳이 말해야 하나.
마테오가 해보라고 했으니 고민은 해보고 있다만, 굳이 비밀을 말해서 뭐 한단 말인가.
애초에 비밀이라기에도 너무 별거 아닌 것들뿐이다.
“···”
···흐음.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별거 아닌 데도 왜 말을 잘 못 하겠는 건지 모르겠기도 하다.
그냥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웃어넘기면 그만인 것을.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
문득 마테오가 해줬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다고 했나.
하긴, 예전에도 한 번 느낀 적이 있긴 하다.
나한테 가장 큰 기대를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실 나였다는 거.
나만큼 나에게 많은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 말이다.
갈수록 느끼는 건데, 난 정말 욕심이 많다.
난 욕심 같은 거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난 완벽해지고 싶어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것만큼 욕심쟁이가 어딨겠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딨다고.
아, 물론 어딘가엔 있을 수도 있겠지.
다만 그게 나일 리는 없을 뿐.
그럼 난 언제부터 욕심쟁이가 됐을까.
태어날 때부터 그랬나.
아니면 커가면서 그렇게 된 건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꽤 어릴 때부터 그랬었다는 거다.
최소한 기억이 있을 때부터 나는 그랬다.
어쩌면 기억이 없을 때부터 그랬을 수도 있고.
나는 항상 완벽한 아들이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모든 면에서 말이다.
그게 축구를 시작하면서 심해졌을 뿐, 그 전부터 그랬다.
단순히 혼나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냥 엄마 아빠가 날 바라볼 때.
내게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거짓말도 많이 하고, 연기도 많이 했었지.
하기 싫을 때도 괜찮은 척하고, 힘들 때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그래서일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때부터 거짓말과 연기에 소질이 생긴 건가 보다.
내가 유독 부끄러운 걸 못 참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뭐,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싫어하는 감정일 테지만.
내가 봐온 주변 사람들에 날 비추어 보면, 난 그 정도가 병적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니까.
그래.
어쩌면 이건 정말 병일지도 모른다.
마테오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려면, 일단 먼저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말.
나는 과연 나를 사랑하나.
···고개가 저어진다.
딱히 사랑까지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 사랑은커녕 되게 싫을 때도 많다.
그렇다는 건, 마테오의 말에 따르면 나는 날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게 아닐까 싶다.
대단한 존재가 아닌데, 대단한 존재라 착각하고 있으니.
순간순간 내가 평범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져 나가는 거다.
“···”
솔직히 말하면, 굳이··· 라는 생각도 없진 않다.
굳이 내가 날 사랑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 말이다.
다만, 힘들어지는 건 나일 뿐이다.
당연히 힘들고 싶지 않다.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다.
병이라는 건 가만히 놔둘수록 커지는 법이다.
커지기 전에 일찍 치료해야지, 모르는 척한다고 알아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외면하면 나중에 크게 터질 뿐.
그러고 보면 내가 그랬다.
힘들 때 힘들다고 하고, 하기 싫을 때 하기 싫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완벽한 아들이 되길 포기하더라도, 미움받는 아들이 되더라도.
내가 좀 더 솔직했다면··· 아빠가 혼자가 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이탈리아에 온 뒤로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도 없는 척하지 않았다면 아빠가 그렇게 죄책감을 느끼시지도 않았겠지.
어쩌면 지금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어찌저찌 참을 만할지 몰라도.
나중엔 참을 수 없을 만큼 병이 커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뻥- 하고 터져 버리겠지.
난 축구 선수를 그래도 꽤 오랫동안은 하고 싶다.
예전엔 아니었는데, 점점 생각이 바뀌어 왔다.
단순히 숙제처럼 느껴지고 무서운 것으로 느껴지던 축구가 재밌는 놀이로 느껴지기도 하고.
마테오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기쁨이라는 진통제를 줄 수 있다는 특권을 가진 것도 좋다.
그러기 위해선 영 내키지 않더라도.
마테오의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휴우.”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고, 소파에서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부엌으로 향한다.
아까부터 이미 좋은 냄새가 풍기는 중.
지우가 또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크흠.”
괜히 물컵에 물을 따르며 헛기침을 하니, 지우가 흘끗 내 쪽을 바라보곤 다시 요리에 집중하며 묻는다.
“야. 그, 시즌 끝나는 게 정확히 언제였지?”
“시즌? 우리 팀은 6월 3일. 다른 팀들까지 다 끝나는 건 12일이고. 왜?”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하니 지우가 어깨를 으쓱인다.
“아니, 그. 나 학교 이제 수료하잖아. 2년 과정이라서.”
“응.”
“6월 17일인가 그때 수료식 하는데, 혹시 안 바쁘면 올 수 있나 해서.”
“아, 수료식···”
“아니, 다른 애들은 가족들도 오고 한다는데. 난 올 사람이 없으니까. 안 바쁘면 말야, 안 바쁘면. 물론 바쁘겠지만.”
음.
사실 시즌이 끝난다고 해서 한가해지는 게 아니기는 하다.
개인 훈련도 해야 하고, 이번 여름은 기존 계약이 끝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엄청 바쁠 게 분명하다.
“음. 안 바쁠 거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지우가 부르면 가야지.
지금도 나랑 우리 아빠, 이 끔찍한 요리 솜씨를 가진 두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 봉사해주고 있는 지우인데.
염치라는 게 있으면 시간을 비워둬야 하지 않을까.
“그래? 뭐, 안 바쁘면 와주면 좋지.”
“아빠한테도 말해볼게.”
“응, 응.”
피식.
대답을 하는 지우의 등과 뒤통수를 보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라는 식으로 말하면서도.
내심 와주길 바랐는지 뒷모습만으로도 기분 좋아진 게 보인다.
“···”
으음.
그러고 보니 비밀을 털어놓으려고 왔는데.
수료식 얘기하니까 갑자기 졸업식 때의 일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의 일 말이다.
“···야. 그, 수료식 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응?”
“우리 초등학교 졸업식 때 기억나냐.”
“초등학교 졸업식?”
“응.”
지우가 고개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을 더듬고는 말했다.
“그때··· 크흠. 나 너한테 거짓말 한 거 있었는데.”
내심 용기를 내서 말하자, 그제야 지우가 뒤를 돌아본다.
···그냥 앞에 보고 있지.
“무슨 거짓말?”
“···그, 우리 중학교 1지망 어디 썼는지 그런 거 얘기한 적 있었잖아.”
“그랬나? 그랬겠지? 근데?”
갑자기 온몸이 간지럽다.
진실을 털어놓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심지어 몇 년도 더 된 얘기고, 별거 아닌 얘기기도 한데 그렇다.
하지만,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지금은 더 크기에.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을 옴짝달싹 움직이려 노력해본다.
“그때 네가 1지망 매일중이라고 그랬었잖아.”
“어. 난 매일중이었지. 네가 화영중학교였나?”
“···응. 1지망 화영중 썼다고 했었어. 근데 그거······ 거짓말이었거든.”
···후아.
뱉어냈다.
갑자기 머리를 박박 긁고 싶다.
지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뭔 소리야?”
“나도 1지망은 매일중이었어.”
“2지망이 매일중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같은 중학교 됐을 때 신기해하고 그랬었는데. 근데 그런 거짓말을 왜?”
그러게.
왜 했을까.
“···들키기 싫어서.”
“뭘?”
“···친구가 너 하나밖에 없는 거.”
“···잉?”
휴우.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 같은 축구부에 있는 다른 친구랑 같이 갈 거라고. 그래서 화영중 1지망으로 쓸 거라고 했었는데. 그거 뻥이었어. 친구라곤 너밖에 없어서 매일중 썼는데. 쪽팔리니까 괜히 거짓말했지.”
···부끄럽다기보단 쪽팔린다.
그냥 옛날 이야기하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푹 숙여진다.
그러자 뒤통수로 지우의 웃음소리가 꽂혀 들어온다.
“푸하하! 어이구, 그랬쪄? 우리 지안이, 친구 없는 거 들키기 싫어서 거짓말했어? 쫄래쫄래 나 따라오고 싶은데 말은 못 하고?”
“···”
“이야, 근데 어쩌냐. 난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니 지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다.
“내가 몰랐겠냐? 너 친구 나밖에 없는 거? 누굴 바보 멍청이로 아나.”
“···”
“당연히 친구가 나밖에 없지. 네가 무슨 친구가 있다고. 맨날 나랑만 놀았으면서.”
···허허.
사실 알고 있었다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왠지 쪽팔리면서도 속은 후련해 기분은 좋은데, 낄낄거리는 지우의 웃음소리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이구, 그랬구나아. 우리 지안이, 나 따라서 중학교까지 따라왔던 거구나아. 으휴, 으휴. 넌 진짜 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
“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해 봐. 내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졸졸 따라다닌 거야?”
“···”
울컥.
저 말투랑 표정, 상당히 열 받네.
솔직히 말해보라면 누가 못할 줄 아나.
나도 이제 마테오 덕분에 달라질 거다.
그래도 한번 용기를 내보니까,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그냥 좀 얼굴만 화끈거리고 쪽팔릴 뿐, 별거 아니다.
“어? 솔직히 말해보라니까? 뭐가 그렇게 좋았어? 어?”
나는 침을 꿀꺽 삼킨 뒤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