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좋아하니까 -2
“웅, 오늘 하루도 파이팅 하구. 난 잘게용. 네에엥.”
푸르스름한 달빛이 내려앉은 밤.
침대에 앉아 베개를 끌어안고 통화 중이던 김지우가 애교 가득한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는다.
한국에 계신 엄마와의 통화.
김지우가 입맛을 다신다.
“힝. 얘기 좀 하고 싶었는데. 한 시간밖에 얘기 못 했네.”
한 시간이나가 아니라 한 시간 밖에 라니, 뭔가 말이 이상한 듯한데.
뭐, 그럴 만하다.
2, 3시간 넘게 수다를 떨어놓고도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는 사람들이 이 모녀지간이니까.
이 둘에게 한 시간의 통화는 안부 인사만 주고받은 수준인 거다.
“···출근 시간만 아니었어도.”
전화를 끊어놓고도 못내 아쉬운지, 김지우가 입을 삐죽 내민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시차는 8시간.
한국이 8시간 빠르다.
즉 밤 11시 반인 지금 한국은 아침 7시 반인 것.
딱 엄마가 출근하실 시간이라 통화도 멈춰야 했던 거다.
“···”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느낀 건데, 이 8시간이라는 시차가 은근히 애매하더라.
서로 통화하기 편한 시간대가 잘 안 겹친다고 할까.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는 수업을 받으니 못 하고, 또 뭐 이것저것 하다가 저녁이 되어 전화 좀 해볼까 하면 한국은 새벽이고.
다른 사람들에겐 별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엄마와 수다 떠는 게 취미인 김지우에겐 이게 나름 꽤 큰 문제기도 했다.
이탈리아에 온 뒤로 유일하게 힘들었던 게 엄마와 수다 떨 시간이 부족한 것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작년에 지안이 따라서 한국에 갔었을 때 정말 좋았던 거고.
“흐음···”
김지우가 콧바람을 내뱉으며 어두운 천장을 바라본다.
오늘도 그렇고, 요즘 따라 자꾸 자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생각할 것도 많고 고민할 것도 많아서 그렇다.
무엇이 가장 고민이냐면 역시나 앞으로의 계획일 것이었다.
졸업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수료장까지 땄다.
이제부터 뭘 할지는 본인의 선택.
여기서 더 공부할 수도 있고, 아르바이트든 뭐든 취업을 해서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아니면 한국에 돌아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실 원래, 그러니까 유학을 오기 직전 세운 계획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깔끔하게 교육과정 다 이수하고, 돌아가서 부족한 다른 공부들 하면서 입시 준비하고.
그리고 내년에 대학 들어가고.
어떻게 보면 고민할 것도 없었다.
원래 이렇게 하기로 했고, 이게 제일 평범하면서 쉬운 길이기도 했으니까.
그냥 그렇게 하면 될 일인 거다.
이렇게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
근데··· 방금 엄마와의 통화에서도 말했다.
아직 더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그게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에 들어가는 건 아닐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엄마가 물었다.
그 더 하고 싶다는 게 뭐길래 고민이 되느냐고.
엄마 아빠는 다 딸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라는 주의인 분들이시라, 순수하게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근데 명쾌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못했냐면··· 음. 글쎄.
아마 스스로도 조금 헷갈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분명 끌리는 게 있는데, 그게 맞는 건지 아닌지가 말이었다.
“휴우···”
김지우는 이탈리아에 온 뒤로 매일이 즐거웠다.
물론 우울한 날이 아예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행복한 날이 훨씬 많았다는 얘기다.
또한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 치곤 내 집에 있는 듯 안정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역시나 지안이 덕분이었다.
그냥 같이 있으면 재밌는 친구.
얼굴만 봐도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친구.
오늘은 어떻게 놀릴까, 즐거운 고민을 하게 만드는 친구.
그리고··· 앞으로도 쭉 가까이 지내고 싶은 친구.
그런 친구와 지낸 지난 2년이 김지우는 좋았다.
한국에 있을 때, 지안이와 떨어져 있을 때의 일상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음.
그래.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도 계속 지안이 옆에 붙어 다니며 있고 싶었던 거다.
그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지보다 더 끌리는 선택지였다.
다만··· 당연히 그걸 먼저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잖아.
뭐라고 말을 해.
네가 여기 있으면 나도 여기 있고, 네가 다른 곳으로 가면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도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을 어떻게 하냐.
창피하게.
그리고 뭐, 지안이한테 방해가 되기도 싫었다.
지금까지만 해도 지안이 덕분에 받은 도움이 얼마나 많은데.
바쁜데도 놀아줬지, 여기저기 데리고 다녀줬지.
심지어 밥도 자기가 다 사고,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네가 돈이 어딨냐면서 자기 돈으로 사주고.
덕분에 와서 용돈을 써본 적도 거의 없다.
지안이가 다 해결해주는 바람에 말이다.
그러니 되려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을 더 못하겠더라.
그냥 순수하게, 같이 있으면 재밌으니까 그런 건데··· 의도가 다르게 들릴까 봐서.
충분히 그럴 수 있잖아?
막 빌붙으려는 것처럼 느껴질 수가.
게다가 요즘은 지안이도 고민이 많은 상황이었다.
볼 때마다 뭘 계속 생각하고 있고, 얘기하다가도 대답을 안 해서 쳐다보면 또 뭘 고민하고 있고.
그래서 괜히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까 봐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내 욕심만 채울 수는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
자기와 달리 지안이는 중요한 사람이다.
수만 명, 수십만 명이 지안이 때문에 울고 웃는다.
그러니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방해되고 싶지 않았다.
지안이에겐 축구라는, 무엇보다 중요한 게 따로 있고.
거기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틀렸네.”
말똥말똥, 감길 생각이 없는 눈에 김지우가 한숨을 내뱉는다.
오늘도 일찍 자긴 글렀다.
그나마 이제 학교는 안 가니까 다행이려나.
스슥-
김지우가 손으로 머리맡을 훑는다.
그리고 손에 걸린 핸드폰을 집어 든다.
음.
자기 전에 핸드폰 하면 안 되는데.
그럼 안 좋은 습관 생기는데.
힝.
그래도 잠이 안 오는 걸 어떡해.
조금만, 딱 10분만 하다가 자는 건 괜찮지 않을까?
김지우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였다.
우우웅-!
이게 무슨 우연일까.
핸드폰이 진동한다.
지아닝: 자냐
지안이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
“···진짜 안 자고 있었던 거 맞아?”
“응? 어. 왜?”
“아니, 그냥. 뭔가 좀 정신이 없어 보여서. 방금 막 깬 사람처럼···”
“내가 뭐 정신없는 게 하루 이틀인가. 하하···”
이지안의 질문에 김지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자 이지안은 고개를 한번 갸웃이더니, 다시 앞을 바라보곤 걷는다.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거리.
하지만 김지우의 머릿속은 시끄럽다.
‘휴, 다행이다.’
아니, 다 씻고 누웠는데 갑자기 좀 볼 수 있냐길래 비상이 걸렸었다.
급하게 일어나 우당탕탕거리며 화장을 하다가 화장대에 찍힌 무릎이 아직도 시큰거린다.
뭐 어쨌거나.
“···”
“···”
김지우가 곁눈질로 이지안을 슬쩍 흘끗인다.
그나저나 이 늦은 시간에 갑자기 왜 보자고 한 걸까.
먼저 보자고 불러낸 적도 없는 양반이.
게다가 불러내 놓고 말없이 걷기만 하고 있으니 더 궁금해진다.
잠깐 보자더니 진짜 얼굴만 보러 왔나.
답답한 건 못 참는 김지우가 결국 먼저 묻는다.
“···야.”
“응?”
“그래서 갑자기 왜 보자고 했는데?”
“아. 음···”
“뭐야. 뭔데. 이 밤중에 갑자기 불러내서 어디로 끌고 가는 건데. 설마 뭐 이상한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뭔 소리야.”
“뭔 소리는 뭐가 뭔 소리야. 그니까 왜 불렀냐구.”
이지안이 머리를 긁적인다.
“그··· 사실 당연히 자고 있을 줄 알았어.”
“엉?”
“자고 있을 줄 알고 불러본 건데··· 안 자고 있어서 나도 당황했다고.”
“뭐라는 거야. 내가 당황해야지 네가 당황하면 어떡하자는 건데?”
“···그러게.”
그러게는 뭔 또 그러게야.
대체 이게 무슨 대화인가 싶어 김지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하여튼 얘는 진짜 알 수가 없는 애다.
“그럼, 그래서 메시지는 왜 보냈는데.”
“···잠이 안 와서.”
“왜? 뭐 낮에 커피 마셨니?”
“아니. 그냥··· 좀 생각할 것도 있고 그래가지고.”
“아아, 그럼 뭐 고민 상담이라도 해줘? 내일 밥 사. 그럼 해줄게.”
“···알았어.”
뭐야.
얼떨결에 은근슬쩍 약속 잡기 성공.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부여잡은 김지우가 이지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묻는다.
“뭔데. 말해 봐. 편하게 말해, 편하게. 누나가 다 들어줄 테니까.”
“···”
“에이, 편하게 말해보라니까?”
편하게 말해보라는 데도 이지안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한다.
무슨 고민이길래 밤잠까지 설치고 이 밤중에 불러내기까지 한 걸까.
인내심을 발휘하며 입이 열리길 기다리는데,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주먹을 쥐는 순간.
이지안이 천천히 입을 연다.
“가끔 그럴 때가 있는 것 같아.”
“···?”
“너무 좋아하지만, 그래서 곁에 있을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뜬금없는 소리에 김지우가 이지안을 쳐다본다.
이지안이 말을 잇는다.
“우리 팀, 돈이 없거든?”
“응.”
“근데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나한테 주겠대.”
“···고맙네. 근데?”
“고맙지. 고마운데··· 그렇게 되면 나 하나 때문에 팀 상황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어.”
“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려운데, 음. 예를 들면 뭐 이런 거지. 아들 대학 보내려고 다른 가족들 다 하고 싶은 거 참고, 못해가면서 돈을 모아야 하는 거야.”
“응.”
“그럼 결국 아들이 바란 건 아니더라도 가족한테 피해를 주는 게 되는 거잖아.”
“···음.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이지안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고마운데, 그래서 못 받겠어. 난 우리 팀이 좋거든. 그래서 나 때문에 다른 걸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게 싫어.”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네.”
김지우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살짝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자기가 하고 있던 고민이 이지안의 입에서 튀어 나와서 말이다.
“그럼 뭐··· 그래서?”
김지우가 묻자 이지안은 어깨를 으쓱인다.
“내가 다른 팀으로 가면··· 우리 팀은 돈을 많이 벌 수 있거든.”
“응.”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것 같아. 음. 그게 맞는 것 같아.”
다른 팀으로 간다는 건, 멀리 떠나겠다는 얘기인가.
듣기만 해도 뭔가 불안해지는 느낌이지만, 김지우는 애써 담담한 척을 하며 묻는다.
“그래? 가면 어디로 가는데?”
“···아직 몰라. 스페인일 수도 있고 프랑스일 수도 있고 영국일 수도 있어. 아, 독일일 수도 있고.”
“우와, 멀리도 가야 되네.”
“···응.”
“그럼 뭐, 뭐가 문젠데? 그게 맞는 것 같으면 그렇게 하면 되지. 여기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뭐··· 그런 것도 있고.”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잖아. 네 말대로 좋아하니까 떠나야 될 때가 있는 건데. 너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지안의 어깨를 김지우가 세게 두드린다.
근데 그게 너무 셌나, 이지안이 아파하며 어깨를 피하자 김지우가 킥킥댄다.
“야. 머리 아프게 너무 고민하지 마. 남자가 딱 결단을 내릴 줄도 알아야지. 네가 생각했을 때 더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면 되는 거야. 안 그래? 맞잖아.”
“···맞지.”
“그리고나서, 어? 후회만 안 하면 되지. 열심히 해서.”
“응···”
“짜식이 남자가 돼가지고. 아, 남자 아닌가? 하긴. 어떨 때 보면 여자 같기도 해.”
“그건 아니고.”
“그건 맞고.”
“아니고.”
“응, 맞아.”
“응, 아니야.”
유치한 말싸움을 하다, 둘 다 피식 웃어버리고 만다.
“하아···”
그래도 생각을 털어놓자 마음이 좀 편해졌는지.
이지안이 긴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생각을 정리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이지안을 배려해 김지우는 말없이 옆을 걷는다.
“···”
“···”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걷는다.
그러다 보니 김지우의 머릿속에도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던 와중.
이지안이 말한다.
“근데 너는?”
“응? 나 뭐?”
“너는 어떻게 하기로 했냐고.”
“나? 글쎄.”
김지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한다.
“나도 아직 모르겠는데. 왜?”
“···아직도 고민 중이야?”
“그치, 뭐. 고민 중이지.”
고민 중이지.
사실 누가 먼저 딱 말해주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긴 한데, 말을 안 해줘서 고민 중이지.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거지?”
“그렇지.”
“아니면 여기 있을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둘 다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그러기 싫을 수도 있고.
하아.
뭔가 가슴이 답답하다.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마음에 있는 말을 꺼내지 못하겠는 게 이렇게 답답한 일이었나.
김지우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걷고 있을 때였다.
“···?”
문득, 옆에서 느껴져야 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음에 김지우가 발을 멈춘다.
뭐야.
얘 어디 갔어.
김지우가 고개를 돌리니, 저 뒤에 이지안이 가만히 서서 자길 바라보고 있다.
“···뭐해?”
“···”
“돌아갈까? 집에 갈래?”
슬슬 돌아가려는 건가.
근데 묻는데도 대답이 없다.
고개를 갸웃인 김지우가 다시 물으려는데, 이지안이 그제야 말한다.
“만약에 말이야.”
“응?”
“만약에. 내가 다른 곳으로 가면 말이야.”
“···응.”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하지만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재촉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자 한참을 머뭇거린 이지안이 힘겹게 말한다.
“···나랑 같이 갈래?”
“···어딜?”
“···어디든.”
같이 가자.
어디든.
김지우는 당장이라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기분을 가까스로 참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