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좋아하니까 -1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 음. 글쎄?”
슬쩍.
지우를 흘끗이며 물으니 지우가 어깨를 으쓱인다.
“잘 모르겠어.”
“모르면 어떡해.”
“생각 좀 더 해봐야지. 올해까지는 시간 있으니까.”
앞으로의 이야기다.
진로 말이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지우에겐 꽤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 진학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여기서 더 공부를 하거나. 혹은 어디에서든 일을 시작하거나.
사실 이걸로 꽤 예전부터 고민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되게 중요한 문제다 보니.
아직도 결정을 내리진 못한 듯했다.
“그러는 너는.”
“···나?”
지우가 나한테 되묻는다.
“너도 결정해야 하잖아. 아니야?”
“음··· 맞지.”
“어떻게 할 건데?”
“···이제 얘기해 봐야지.”
물론 나도 마찬가지긴 하다.
아직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늘부터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오후에 에이전트님이 오시면 얘기해 볼 텐데, 왠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흥분하신 상태인 것 같다는 게 문자로도 느껴지더라.
대충 듣기론 이적시장이 열리자마자 팩스에 불이 났다던가.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문의가 들어왔다는 듯했다.
뭐, 나로선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헷갈린다만.
확실한 건 이제부터 제일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 거다.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
그리고 결정.
예전이었다면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에이전트님에게 모든 걸 맡겼겠지.
이탈리아로 온 게 내 결정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한가지 배운 게 있다.
그것은 어쩌면 선택 자체가 가장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다.
어떠한 선택을 내리든, 그다음부터는 무조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러다 보면 결국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으니까.
최선이 최선을 만드는 셈이다.
뭐, 어쩌면 그렇게 생각해야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니까 하는 나만의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 생각은 그렇다.
우우웅-
주머니에서 느껴진 진동에 핸드폰을 꺼낸다.
에이전트님에게서 온 전화다.
이야기를 해 볼 시간이었다.
*
“우선 한 가지 먼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만약 이적을 선택하신다면 제일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조건이 뭘까요?”
에이전트님의 질문에 순간, 기자와 인터뷰 중인 듯한 착각에 빠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처음부터 되게 직설적인 질문이 날아와 조금 당황스럽지만, 지금은 이런 걸 얘기하는 시간이다.
“우선순위라면···”
“선수분들께서 고려하시는 조건이라면 대충 이런 게 있죠. 돈! 생활 환경! 주전 출장 여부! 팀의 비전!”
그 문제라면 이미 생각한 것이 있다.
만약이긴 하지만, 만약.
내가 다른 팀으로 가게 된다면··· 가장 중요한 건 하나뿐이다.
“이적료요.”
“아? 이적료요?”
고개를 끄덕이니 에이전트님이 조금은 예상 못 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그, 혹시 이적료가 어떤 개념인지는 알고 계시는 거죠?”
“···사는 팀이 파는 팀에게 내는 돈 아닌가요.”
“아, 예! 쉽게 얘기하면 맞죠! 그럼, 그 이적료라는 건 구단에서 온전히 다 챙겨간다는 것도 알고 계시는 거네요?”
“네.”
애시당초.
내가 피오렌티나라는 팀을 떠나게 된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일 거다.
그건 바로 돈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필요한 돈이라고 해봐야 그저··· 지우에게 가끔 비싼 밥을 사줄 수 있는 정도, 아빠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집값을 낼 수 있는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돈은 지금도 매주 쌓여만 갈 정도로 부족하지 않다.
근데··· 우리 팀은 아닌 것 같더라.
내가 말하는 돈이란 건, 우리 팀의 이야기다.
“음, 그렇군요! 사실 이적료라는 건 소속 팀에서 부르는 거고, 또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결정되는 부분이긴 한데··· 어쨌든 그럼 돈이 많은 구단으로 추려질 수밖에 없겠네요!”
고개를 끄덕인 에이전트님이 파일을 뒤적이며 종이를 한 장씩 빼내 탁자 위에 올려두기 시작한다.
“돈 많은 구단, 혹은 많이 쓸 수 있고 그럴 의지가 있을 만한 구단···”
그리곤 잠시 후, 그 종이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름을 불러준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파리 생제르망.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첼시. 아스날. 뉴캐슬 유나이티드. 이 정도가 소위 큰손들이 되겠습니다!”
···화려하기도 하다.
저런 팀들이 날 부른다는 게 현실성 없이 느껴지지만, 마테오 덕분에 객관적인 사실마저 부정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그런 팀들이라면··· 어느 정도의 이적료를 줄 수 있을까요.”
“그게, 글쎄요. 제가 가늠해봤자 오차범위가 너무 넓어서 말이죠. 저번 계약 때 바이아웃도 설정하지 않은 터라 부르는 게 값이고요. 그래도 최근 이적 흐름으로 기준을 잡아 예상을 해보자면······”
내가 이해하기엔 조금 복잡한 설명들이 에이전트님 입에서 줄줄 쏟아져 나온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는데, 대충 요약해보자면 이런 얘기인 것 같다.
못해도 1,500억 이상의 이적료는 발생할 것 같다는 것.
다만 내가 가늠하기엔 너무 천문학적인 액수라, 설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묻는다.
“그럼 어쨌든··· 그 돈이면 팀을 운영하는데 여유가 생길 만한 돈인가요.”
“뭐, 그렇죠! 사실 팀의 의지나 운영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피오렌티나 정도 되는 규모의 구단에겐 어마어마한 돈임이 분명하죠!”
음.
모르긴 몰라도 어마어마한 정도라면··· 그걸로 됐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에이전트님이 묻는다.
“아무래도 많이 신경이 쓰이시나 봅니다. 구단의 재정 문제가요.”
“···네.”
“고민되실 문제기는 하네요! 결국 팀을 사랑해서 생기는 고민이니까요. 남는 게 팀에 도움이 될지, 떠나는 게 팀에 도움이 될지. 이런 경우가 가장 힘들기는 합니다. 차라리 팀에 불만이 있는 거라면 더 쉬울 텐데 말이죠!”
확실히 혼자 고민을 하는 것보단, 전문가와 고민을 나눌 때 마음이 편해진다.
내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에이전트님의 공감에 속절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판단해야 할 건 하나뿐이다.
어느 쪽이 더 팀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다.
그 외의 것들은··· 어쩌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좀 더 고민해 보는 걸로 하시죠!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느 상황에서든 선수님이 갑이라는 겁니다! 그래도 제가 에이전트고, 조력자인 만큼 말씀을 드리자면요!”
에이전트님을 바라본다.
에이전트님의 조언이라면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고래를 어항에서 키우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아무리 고래가 어항을 좋아하고, 키우는 사람이 고래를 좋아한다고 해도 말이죠! 현실적인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 말입니다!”
···음.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ㆍㆍㆍ
“얘기 잘하고 왔어?”
“뭐··· 응.”
저녁노을이 근사하게 내려앉는 무렵.
지우와 함께 거리를 걷고 있다.
아빠가 저녁을 밖에서 드시고 온다고 하셔서, 우리도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향하는 길.
지우가 가자는 곳으로 가는 중이라 지우의 기분은 좋아 보이는데, 나는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직도 고민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야, 그 미적지근한 대답은 아니었나 본데?”
지우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인다.
점심쯤, 에이전트님과 함께 구단과 다시 미팅을 하고 왔다.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 미팅.
다만 차이점은 크게 없었다.
구단에서 내놓았던 첫 번째 제안과 두 번째 제안이 말이다.
구단 쪽에서 설명하길, 지난번에 내놓은 제안이 이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으므로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듯했다.
뭐··· 나도 그 이상을 바란 건 아니었다.
되려 구단과 반대편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야··· 이 정도까지도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재계약서에 사인을 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글쎄.
조금은, 아니 많이.
절박해 보이는 구단 관계자들의 모습이 내겐 오히려 사인을 하면 안 되는 이유처럼 다가왔기 때문이었을까.
“시간 맞춰서 잘 왔당.”
“···응.”
어느새 식당에 도착해, 야트막한 언덕을 걸어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가니 종업원이 우릴 맞이해주고, 안내를 받아 발치로 흐르는 강과 도시가 보이는 자리에 앉는다.
여기, 지난번에 지우와 함께 왔었던 곳이다.
같이 사진도 찍었던 것 같은데.
“내가 알아서 시킨다?”
“응.”
지우와 함께 다니면 이런 게 좋다.
쓸데없는 고민을 줄여준달까.
뭐, 물론 메뉴를 정하는 게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건 아닌데.
어쨌든 지우는 나와 달리 결단력이 있는 편이라 나는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지우를 따라갔을 때 후회한 적도 딱히 없다.
“아, 좋다. 여긴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네.”
지우가 넓게 펼쳐져 있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지우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언제나 고민을 없애주던 지우인데, 되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지우 때문에 고민이 길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지우만 아니었다면 이미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
시즌이 후반기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느꼈던 것들이 있었으니까.
다만··· 나로서는 지우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어떤 의미에서든, 지우는 나에게 중요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지우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이곳에 적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도시를 내 집처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 그랬을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그랬을 확률이 훨씬 높을 거다.
“···”
지우의 시선을 따라 나 역시 도시의 풍경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말없이 잠시 있는다.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에, 시선을 옮기지 않은 채 말한다.
“···있잖아.”
“응?”
“이제 이탈리아 음식은 다 할 줄 아는 거야?”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이었는지, 대답은 잠시 후 들려온다.
“웬만한 건 다 할 줄 알지? 나도 이제 자격증 있으니까?”
···음.
“···그럼 다른 나라 음식은?”
“갑자기 뭔 소리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뭐지. 흐으으음. 아직 배울 게 많긴 하지. 뭐 프랑스 요리도 있고, 스페인 요리도 있고. 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조금씩 차이가 있거든. 한식, 중식, 일식 다 다른 것처럼.”
그런가.
지우 정도 되는 실력자도 아직 배울 게 많구나.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고?”
“그야, 당연하지? 아직 내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음··· 그래서 아직 고민 중인 거지?”
“뭐, 그렇지?”
지우의 대답에, 여전히 도시를 바라본 채 고개를 끄덕여 본다.
동시에 입이 옴짝달싹, 근육들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진다.
사실 진짜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좀처럼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놓기가 어렵다.
나도 이제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 예전에 비하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이 정도면 옛날엔 얼마나 바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냥 물어보면 되는데.
괜히 나만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질문은 질문일 뿐인데 말이다.
“···”
이게 뭐라고 큰 용기까지 내어야 하는 걸까.
진짜 묻고 싶은 질문을 속에서 꺼내기 위해 크게 한숨을 들이켜 본다.
그리고 내뱉는 숨에 슬쩍, 내 진심을 섞어 내보내려 하는데···
이내 등장한 방해꾼 때문에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모르겠다.
한숨을 내쉬며 다시 도시의 풍경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에이전트님의 말이 내겐 크게 와닿았다.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사랑하기 위해 떠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하고 싶은 존재가 있는 것이다.
“와, 보자마자 침 나와. 먹자, 빨리. 배고파 죽겠다.”
“···응.”
음식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는 지우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