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02)
화 2년하고 절반 -3
“하아암···”
예전부터 느낀 건데, 학교 강당 마이크엔 분명히 뭔가 있다.
아니면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뭔가 있든지.
일부러 조금 늦은 시간, 지우네 학교에 도착해 강당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듣는 중.
쏟아지는 졸음을 몰아내려 노력해보지만, 자꾸만 하품이 나오는 게 영 쉽지가 않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든 이탈리아든, 교장 선생님들은 모두 말이 많은 걸 보면 말이다.
끝날 듯 안 끝날 듯, 이제 끝나는구나 싶으면 또 이어지고 만다.
교장 선생님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말이 많아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보다.
“···”
어쨌거나 남의 행사에 와서 꾸벅꾸벅 조는 건 예의가 아니므로.
참 좋은 말씀들이긴 하지만, 훈화 말씀은 적당히 한 귀로 흘려내 보내며 목을 길게 빼본다.
그리고 저 앞, 학생들이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며 지우의 뒤통수를 찾아보기로 한다.
어디쯤 앉아 있으려나.
으음···
···아, 저기 있네.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진 않아서 지우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뭐, 물론 많았어도 쉽게 찾았겠지만.
“···”
얌전한 척 조신하게 앉아 있는 지우의 뒤통수를 보니 픽 웃음이 나온다.
그러고 보면 다들 수료라는 생각에 신난 듯, 옆 사람과 소곤소곤 떠들고 있는데.
지우는 가만히 앉아 앞에만 보고 있다.
문득, 그런 지우의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말이다.
사실 졸업식을 앞두고 조금 걱정이 많았던 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걱정됐는지 모르겠다만.
그냥 뭐랄까.
외로운 졸업식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달까.
아무래도 나는 반 친구들과 골고루 친하게 지내던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성격 자체가 그렇기도 하고, 축구부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지라 교실에 있는 시간이 적었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친한 친구라곤 지우밖에 없었다.
그게 싫진 않았고 오히려 좋았지만, 졸업식 때만큼은 조금 느낌이 그렇더라.
다른 아이들은 다 같이 어울려 사진도 찍고 하는데, 나 혼자 덩그러니 있으면 부끄러울 것 같았달까.
차라리 부모님도 오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마저 있었다.
난 괜찮은데, 부모님이 보시면 괜히 걱정할 것 같기도 하고.
뭐라 잔소리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무튼, 그렇게 걱정이 많았는데··· 뭐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그 날만큼은 꼭 오시겠다며 아빠도 휴가를 쓰고 오셨고, 엄마도 왔고.
그런 앞에서 나는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조금은 덩그러니 졸업식을 했다.
그땐··· 평소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선생님들의 훈화 말씀도 짧게만 느껴지더라.
그게 끝나면 아이들끼리 사진도 찍고 인사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나한테 안 오면, 외톨이처럼 있으면 그걸 보는 아빠, 엄마가 어떤 기분일까 걱정이 됐다.
뭐, 지우가 있기는 했지만.
나와 달리 지우는 친구가 나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지우는 다른 친구들과도 사진 찍고 얘기하느라 바쁠 테니 나는 그냥 적당히 있다가 조용히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축구부 애들이랑 끝나고 만나기로 했다고 대충 둘러댈 핑계나 준비해두면서.
덕분에 선생님의 말씀이 끝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기분 나쁘게 두근거리고, 괜히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아빠, 엄마의 시선이 무섭게 느껴지더라.
“···.”
근데, 막상 그 공포의 시간이 다가오자 일은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드디어 아이들끼리의 시간이 됐을 때.
뻘쭘하게 앉아 어버버대고 있던 나에게 지우가 제일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정신없이 나를 끌고 다녔다.
자기네 가족들한테 끌고 가서 사진 찍고, 우리 부모님한테도 사진 찍어달라 해서 찍고.
심지어는 다른 반 친구들과도 돌아가면서 계속 사진을 찍었다.
나랑은 친하지 않은, 지우랑만 친한 친구들한테도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가며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을 찍어주던 아빠, 엄마의 표정이 말이다.
계속 웃으시면서 귀찮은 내색 없이 사진을 찍어주셨었지.
하여튼, 그런 와중에도 난 귀찮다고, 사진 좀 그만 찍고 싶다며 툴툴대는 지독한 새끼였지만.
당연히 속으론 지우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덕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시끌벅적한 졸업식이 되었으니 말이다.
“···.”
새삼 또 느끼는 거지만, 시간이 정말 빠르기는 하다.
그때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벌써 지우의 고등학교 수료식에 와 앉아 있는 걸 보면.
그때는 상상이나 했을까.
이 먼 이탈리아에서 이러고 있을 줄.
심지어 사람들이 나한테 몰려들까 봐 마스크까지 쓰고 앉아 있을 줄을.
“지우가 참 고생이 많았다. 알지?”
“···네.”
옆자리에 앉은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는 아까부터 쉴 새 없이 사진을 찍느라 팔을 내리질 않고 계신다.
마치 진짜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우를 바라보는 아빠를 보니, 괜히 내 입에도 미소가 걸린다.
“낯선 땅에 혼자 와서 공부하느라 얼마나 고생했겠어. 그러면서 이 못난 남정네들 밥까지 챙겨주고. 세상에 저런 친구가 어딨겠냐.”
“···”
맞는 말이다.
세상에 저런 친구는 지우밖에 없다.
“참 부모님들께서 잘 키우셨지. 밝고, 착하고, 긍정적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저런 아이가 어디 있냐고. 맞아, 아니야?”
“···맞아요.”
“그렇지? 네가 생각해도 저런 애가 없지?”
···음.
근데 갑자기 왜 이러시지.
왠지 이상한 느낌에 조금 내키지는 않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아빠가 말한다.
“지안아.”
“네.”
“그러니까 잘 잡아라.”
“···예?”
···잡긴 뭘 잡으라는 건지.
아빠를 쳐다보니 아빠가 말한다.
“꽉 잡으라고, 이 녀석아. 항상 잘해주고, 말도 좀 더 예쁘게 하고. 고맙다, 고맙다 해주라고.”
“···잘해주는데요.”
“지금보다 더 잘해주라는 거지. 아무리 잘해줘도 부족한 친구잖아. 가끔 좀 쓸데없는 소리해도 잘 들어주고. 재미없는 농담해도 웃어주고. 어?”
“···”
갑자기 웬 잔소리람.
그래도 평소엔 이런 말 안 하는 아빠니까,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인다.
“지안아.”
“네.”
“아빠가 그래도 먼저 세상에 태어나서, 몇 년이라도 먼저 살아보다 보니 느낀 건데 말이야.”
아빠의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진다.
“정말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난다는 건 축복이다. 그런 친구 한 명만 있으면 100명, 200명도 다 필요 없어.”
“···”
“그러니까 너는 정말 큰 축복을 받은 거야. 저런 친구를 만났다는 게 말이야.”
그건 뭐··· 내 생각도 비슷하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잘해줘야 한다. 아빠가 뭐 앞으로도 계속 지우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어서 이런 얘길 하는 게 아니야. 알았지?”
“네.”
“잘해줘야 돼.”
“알았다니까요···”
그래서 오늘 하루 일정도 다 비운 거잖아요.
여기 오려고.
뭐, 가끔은 진짜 열 받게 할 때도 있고, 딱밤 한 대만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고마운 게 훨씬 더 크니까.
아빠 말대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보답하려고 노력해야겠지.
“지우 없었으면 남자끼리 심심해서 어떡할 뻔했니. 안 그러냐.”
“···”
“지우가 집에 있을 때랑 없을 때랑 공기부터가 달라. 계속 웃을 일이 생기잖아. 복덩이 같은 아이인 거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가 보면 진짜 아빠 딸인 줄 알겠다.
금방이라도 뚝뚝, 꿀이 떨어질 듯한 눈으로 저 멀리 지우를 바라보던 아빠가 말했다.
“지우 같은 며느리가 생기는 게 아빠의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다.”
“···콜록! 콜록!”
갑자기 사레가 들렸다.
*
여기만 그럴 수도 있는 거라 일반화시키면 안 되겠지만, 말이 긴 걸론 한국 교장 선생님보다 이탈리아 교장 선생님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훈화 말씀은 슬슬 엉덩이가 아파올 때쯤이 돼서야 끝이 보였다.
이어선 학생들이 한 명씩 단상 위로 올라가 수료증을 받는 시간이 있었고, 그다음에야 학생들의 시간이 됐다.
“우리도 가자.”
“네.”
주변에 앉은 학생 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들을 찾으러 가기 시작해, 우리도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조금 뻘쭘한 게, 확실히 오늘은 학생들이 주인공이라 그런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괜히 걱정했나 보다.
어쨌든 그래서 실망이라는 건 아니고, 오히려 좋다.
편하게 인파들을 헤치며 지우를 찾아 앞으로 향한다.
그러길 잠시, 곧 수료증을 들고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지우의 모습이 보인다.
“···”
그 주변엔 다들 가족들을 만나 정겹게 떠드는 학생들로 부산스럽다.
그사이에 조금은 덩그러니 놓여 우릴 기다리고 있는 지우를 보니, 괜히 놀려주고 싶은 짓궂은 생각이 든다만.
오늘만큼은 장난은 조금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냐. 여기 있잖아.”
“···아!”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며 손을 드니 지우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왜 이렇게 늦게 와! 죽을래?”
퍽.
지우의 솜방망이 같은 주먹이 어깨에 날아든다.
얘는 왜 와도 난리람.
이러니 잘해주고 싶어도 좋은 소리를 못 해주는 거다.
“아빠가 여기 복잡하니까 천천히 가자고 한 건데. 우리 아빠한테 뭐라고 하네.”
“미안하다. 지우야.”
“예? 아, 아니. 그건 아니구요. 하하하···”
게다가 이렇게 반응이 재밌으니 자꾸 장난을 치고 싶지.
그래도 오늘은 날이 날이니까, 장난 대신 등 뒤에 숨겨 두었던 걸 꺼내 보인다.
오는 길에 사 온 꽃다발.
꽃다발을 본 지우의 눈이 동그래진다.
“야, 뭐야! 이런 거 사 오지 말랬잖아! 나가서 맛있는 거나 먹으면 되는데.”
“그냥 오다 주운 건데. 길에 널려 있길래.”
어제부터 계속 꽃 같은 건 사 오지 말라고 그러기에, 일부러 사 왔다.
지우가 몇 번이나 아니라고 하면 사실은 맞는 거라.
“아오, 많이도 사 왔다. 뭐, 이렇게 품에 안고 다니라고?”
봐봐.
말로는 왜 사 왔냐면서 미소는 숨기지 못하잖아.
뭐, 주변을 둘러봐도 다 꽃다발 하나씩은 들고 있는데.
지우만 맨손으로 있게 할 순 없지 않나.
“둘이 사진이나 한번 찍어라. 아빠가 찍어줄게.”
어쨌거나.
등을 떠미는 아빠의 손길에 어영부영 지우와 나란히 선다.
“찍을게.”
“넹! 야, 웃어. 억지로라도.”
“···”
이러고 있으니 더 옛날 생각이 난다.
다만 그때와 달리 이번엔 내가 지우한테 왔네.
“오케이. 좋다. 지우야. 다른 친구들이랑도 찍어라. 아저씨가 찍어줄 테니까.”
대충 억지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고 나니 아빠가 지우에게 말한다.
아빠는 오늘 작정을 하고 오신 모양이다.
그런데, 지우는 고개를 젓는다.
“아녜요. 귀찮게 무슨. 힘들게 안 그러셔도 돼요.”
“힘들긴 뭐가 힘드니. 사진 찍는 게 뭐라고. 남는 게 사진이야. 사진 찍고 싶은 친구들 불러 봐.”
“아니, 그··· 괜찮은데···”
아빠가 지우의 등을 떠미는데, 나는 슬쩍 지우의 표정을 살핀다.
지우가 사진 찍는 걸 귀찮아할 리가 없는데.
음.
왠지 무슨 마음인지 알 것도 같다.
···진짜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어쩔 수 없나.
“크흠. 답답하네.”
괜히 실내라 답답한 척, 마스크를 벗는다.
그리고 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문득 혼자 설레발치다 개망신을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데, 그것도 잠시.
“어!?”
하나, 둘.
주변 학생들과 가족들이 시선이 내게로 쏠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주변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리잖아!?”
“왜 여기 있어?”
“와아, 리다! 나 사진 한 번만 찍어줄 수 있어요?”
난 어디까지나 축하를 해주러 온 것뿐인 만큼, 진짜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다.
오늘 주인공이 학생들이라지만, 어쨌든 지우도 학생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 근데 리가 여기 왜 있어요?”
적잖이 놀랐는지 표정이 가관인 친구 하나가 묻기에, 지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답한다.
“이 친구가 제 제일 친한 친구라서···”
그렇게 대답하니 다들 괴상한 소리를 내며 지우를 대단하다는 듯 바라본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오그라드는 일이긴 하다만.
그래도 날 보고 달라지는 학생들의 시선을 보니··· 참 우습게도.
그동안 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