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33)
쟤 누구냐 -3
솔직히 말하면··· 꿈에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관중들의 함성에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듯한 느낌.
와아아아아아아-!
쨍그랑.
창문의 유리가 깨지듯 날 둘러싼 세상의 막이 깨지고,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던 유리 너머의 것들이 이제야 선명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제야 공기가 느껴지고, 내가 밟고 있는 잔디의 촉감이 느껴지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 뺨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진다.
나는 꿈을 꾸고 있던 것일까.
하긴.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감히 내가 1군 경기에 후반 교체로 들어와서 골을 넣는다고?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그렇지.
누구에게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터무니 없는 꿈이다. 속으로만 생각하던 나만의 망상이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아 부끄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아빠가 보는 앞에서, 그리고 지우가 보는 앞에서. 그리고 이 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골을 넣는다니.
나는 꿈에 나올 만큼 이런 순간을 원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다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1군에 불려온 시점부터, 아니면 유벤투스를 이겼을 때부터, 어쩌면 프로 계약을 했을 때, 아니야. 지우가 이탈리아에 온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꿈이었을 거다.
그래.
이 터무니 없이, 모든 게 꿈만 같은 이 상황이 현실일 리가 없다.
“···.”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두려움이 밀려든다.
감은 이 두 눈을 다시 뜨면,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돌아가 있을 것만 같다.
원래의 나로, 현실의 나로.
어두컴컴한 방구석이 내 앞에 펼쳐져 있을 것 같아 두렵다.
하지만 마주해야만 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눈을 떴다.
그러자···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블라호비치였다.
어두컴컴한 방구석이 아니었다.
“헤에에에이-!! 꼬맹아-!”
블라호비치 선배의 거대한 몸이 나를 와락 덮쳐든다. 이어 옆에서, 뒤에서도 하나둘씩 나를 끌어안는 선배들의 손이 느껴진다.
“꼬맹이, 사고 쳤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더니, 다 연기였던 거냐!”
“와, 진짜 어디서 이런 게 튀어나왔지?”
“우리가 괜히 얘한테 털린 게 아니었다니까!”
···숨이 막힌다.
코를 훅 파고드는 시큼한 냄새 덕분에 이제야 깨닫는다.
와, 이거 꿈이 아니다.
지독한 현실이다.
그래서 너무나 다행이긴 한데··· 이거 현실이면 나 숨 막혀서 죽는다···!
“야, 야! 다 나와! 애 죽는다!”
압사, 혹은 질식사를 당하기 전에.
다행히 구원의 손길이 나를 구했다.
누군가 했더니 주장인 비라기 선배다.
다른 선배들을 비집으며 숨통을 틔워준 비라기 선배는 손바닥으로 내 정수리를 통통 치더니 말했다.
“얘 데뷔전 데뷔골인데 이 모양으로 만들거냐, 짜식들아!”
그리고선 내 어깨를 잡고 돌려 세우더니, 내 등을 떠밀었다.
“가랏!”
그렇게 떠밀리고 나니··· 나는 홀로 서서 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와아아아아아-!
여전히 함성은 쏟아지고 있었다.
그 함성이 나를 향한 것이라는 생각에 문득 고개를 숙이고 싶어졌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고개를 들고 그 시선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아빠와 지우를 찾고 싶었다.
근데 찾을 수 있을까···?
“···.”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빠와 지우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그 둘을 못 봐도 그 둘은 나를 보고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그 둘을 향해, 나는 주먹을 쥐어 하늘 높이 뻗었다.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와 지우가 해준 응원이 날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그걸 보여준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이지안의 아버지 이원훈일 것이었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아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
일어난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입을 벌리고 있는 이원훈의 모습은 다 큰 어른으로서 적절한 모습이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아들이 골을 넣었다.
처음 1군 엔트리에 들어 벤치에 앉게 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은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심지어 골까지 넣었단 말이다.
그것도 꽤나 아름답게.
축구를 깊게 아는 편이 아닌 자신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골이었다.
“허···”
하지만 사실 골 따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들이 수천 명의 관중들 앞에서 당당히 서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당당히 서 있었다.
수천 명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어깨를 당당히 펴고 서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부끄러움이 많던 아들이었다. 응원을 부담으로 느끼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한두 명도 아니고 수천 명의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녀석은 그 응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심지어 얼굴엔 미소를 띠고 있기까지 하다.
이젠 응원을 응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일까. 이젠 더 이상 그것이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부담스럽고, 부끄럽지만 참아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대견하기 짝이 없었다. 이젠 마음 편히 아들을 응원해도 되는 걸까. 가슴이 홀가분해지는 기분이다.
대체 무엇이 아들을 저렇게 성장시켜 주었을까.
“와, 이지안. 나를 못 찾아? 끝나고 혼 날 준비해라!”
한참을 방방 뛰던 김지우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얘기한다.
씨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흔들었는데 자신을 발견 못 하다니. 경기 끝나면 한 소리 해줘야겠다.
“그래도 세레머니는 나한테 한 거겠지, 이지안?”
뭐··· 그래도 지안이가 한 세레머니는 자신을 향한 것임이 분명할 테니, 한 번은 봐줄까.
치. 만약 아니라고 하면 옆구리를 꼬집어 줄 테다.
“진짜 대박 컸다니까, 이지안. 진짜···”
아무튼 자랑스러웠다.
친동생보다 더 챙겨준 보람이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지안이를 향해 환호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자신이 더 뿌듯했다. 물론 대부분 아저씨들이라 안심하고 뿌듯해할 수 있었다.
그랬다.
이지안을 향해 환호하는 사람은 이 둘 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지금 내가 뭘 본 거야?”
“무슨 골이야, 이게.”
머리를 감싸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난 관중들이 수군댄다. 한바탕 환호가 지나간 뒤, 다들 이제야 어안이 벙벙한 모습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생전 처음 보는 꼬맹이가 교체로 들어오더니 예상도 못 한 골을 터뜨리지 않았는가.
교체든 골이든 모두 상상도 못 한 것들 뿐이었다. 그래서 감탄 역시 후폭풍처럼 다가왔다.
“원투 주고 들어가는 거 봤어?”
“애초에 중원에서부터 끌고 올라간 것도 저 녀석이었잖아?”
“마무리는 어떻고. 와, 무진장 침착하대?”
다들 방금의 골 장면을 복기해보며 혀를 내두른다. 그냥 골을 넣은 것도 아니고, 기가 막히게 골을 넣었다.
하프 라인 근처에서부터 공을 잡고 올라가더니, 그다음엔 간결한 드리블로 한 명을 제쳤었지.
그리곤 수비가 밀집해 있는 정면으로 돌격해, 블라호비치와 빠르게 원투 패스를 주고받았고.
그 원투 패스 두 번으로 수비를 완벽히 허문 다음, 침착한 마무리로 골망을 흔들기까지.
사실 상황 자체는 이렇게 환호할 상황이 아니긴 했다. 상대가 제노아이기도 했고, 이미 2대0으로 앞서고 있던 만큼 극적인 골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무전술 원 패턴 공격에 지쳐있던 피오렌티나 팬들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골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열광적으로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식으로 중앙을 잘게 부수고 들어가 골을 넣는 모습을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또한 블라호비치라는 좋은 공격수를 제대로 활용한 공격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게 보고 싶었던 거다, 이게!
“간만에 마음에 드네!”
결국, 경기가 재개되고 나서도.
관중석의 관중들은 다들 같은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서 누군데?”
“쟤 누구냐?”
“20번, 지안 리? 들어본 적 있어?”
“처음 들어보지, 당연히.”
그래서, 저 깜짝 선물처럼 나타난 앳된 외모의 동양인은 대체 누구인가.
아무리 축구가 일상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해도, 유소년 팀 선수들까지 줄줄 꿰고 있는 하드 팬들은 그리 많지 않다.
유망주들에게 관심이 있다 해도 대부분은 U19 팀 정도까지만 알지, 그 아래 팀인 U17까지 팔로우하는 팬들은 더더욱 적고.
덕분에 대부분의 팬들은 부랴부랴 핸드폰을 들어 인터넷을 뒤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 지난주까지 17세 이하 팀 경기를 뛰었었네. 이번 시즌에··· 10골 2도움이나 기록했어?”
“완전 유망주였네? 근데 왜 전혀 몰랐지?”
“그게··· 6경기밖에 안 뛰었거든. 그니까, 데뷔전을 치른 게 아직 석 달이 안 됐어.”
“잠깐만. 유스 리그에 데뷔한 지 석 달 만에 1군에 데뷔한 거라고?”
“어. 심지어 그 데뷔전에서 데뷔 골을 넣은 거지.”
빠르게 정보를 찾아본 팬이 또 한 번 혀를 내두른다.
나이는 고작 열여섯. 팀에 입단한 건 올해 초긴 한데, 경기에 나서기 시작한 건 불과 두 달여 전.
그 두 달 만에 17세 이하 리그를 씹어 먹고, 오늘 1군에 콜업. 그리고 교체로 출장해 데뷔 골을 터뜨렸다는 얘기다.
이런 떠오르는 샛별을 봤나.
“야, 게다가··· 이전엔 유벤투스에 있었네?”
“그 도둑 새끼들한테 있었다고?”
“어. 15살까지 거기 있다가 왔었나 봐.”
“이야,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에 드는 녀석인데!”
심지어 과거 이력까지 마음에 든다.
유벤투스 유스에서 이쪽으로 넘어왔단다.
피오렌티나의 팬들은 유벤투스를 ‘Ladri(도둑들)’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유벤투스에게 도둑맞은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양 팀이 리그 우승을 놓고 경쟁하던 81/82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유벤투스에게 트로피를 내준 것이 그 시작이었고.
그 뒤 89/90시즌 UEFA컵 결승에서도 억울한 판정 때문에 우승컵을 내주면서 앙금은 악화되었다.
거기다 최근엔 팀의 최고 유망주였던 베르나르데스키와 페데리코 키에사까지 유벤투스로 넘어가는 일까지 있었으니.
피오렌티나 팬들에게 유벤투스는 무언가를 빼앗아가는 도둑들이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오히려 유벤투스에서 이쪽으로 넘어왔다?
이런 떠오르는 샛별이면서도 통쾌한 녀석을 봤나!
“완전히 보물이 나타났구만!”
“하, 대가리 깨졌다고 해도 모르겠다. 다음 주엔 경기장 안 오려고 했는데, 이러면 와야지!”
“나도 저 문어 대가리 한 번 더 믿어볼란다!”
“문어 대가리? 거 말조심하쇼! 섹시 대머리라오!”
“역시 감독은 대머리지!”
관중석에 왁자지껄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즐거운 웃음이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 팬들은 내친김에 응원가를 목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Oh Fiorentina-!
di ogni squadra ti vogliam regina-!
Oh Fiorentina-!
combatti ovunque ardita e con valor-!
Nell’ora di sconforto e di vittoria-!
ricorda che del calcio è tua la storia-!
그 힘찬 응원가가 경기장 밖에서도 들릴 만큼 관중석에 넘실거렸다.
*
“너, 이제 큰일 났다.”
“그래. 각오해라. 큰일 났어, 너.”
“와, 나 같으면 뒷문으로 도망쳤다.”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을 나설 때였다.
고작 20분여를 뛰어놓고 기가 다 빨린 채 라커룸을 나서는데, 선배들이 내게 저렇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큰일 났다뇨?”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선배들이 대답 대신 빵 터지면서 웃는다.
···뭐지?
아니, 큰일 났다며요. 왜들 웃기만 하시는 거야.
뭐가 큰일인지를 가르쳐줘야지!
“···.”
하지만 아무도 대답을 안 해주고 웃기만 하길래,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근심 가득하게 걷는데.
누군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주장 비라기 선배다.
“야, 꼬맹아.”
“네···?”
“어쩌려고 그랬냐?”
“뭐, 뭐가요?”
“어쩌려고 데뷔전에 그런 골을 넣었냔 말이다. 감당할 수 있겠어?”
선배들 중에선 가장 친절한 타입이었던 비라기 선배까지 이러시니,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불안해진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어쩌려고 데뷔전에 그런 골을 넣었냐니···
혹시 막내는 골을 넣으면 안 된다는 규율이라도 있는 건가? 너무 건방지니까?
“···.”
돌아가면 선배들에게 ‘기강’이라도 잡히는 걸까.
그렇게 울상을 지은 채로 경기장 출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비라기 선배가 앞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자, 네가 치러야 할 대가다.”
“······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큰일 났다는 게, 내가 치러야 할 대가라는 게 뭔지를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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