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41)
어른이 되고 싶어 -3
“어때, 더 뛸 수 있겠어?”
“예. 괜찮아요.”
“힘들겠다 싶으면 곧바로 손을 들어. 감독님께서 그렇게 얘기하셨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의무 트레이너님에게 마사지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안 그래도 몸이 좀 무겁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더욱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다.
꽤 힘든 전반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태까지 뛰어본 전반전 중 가장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만 따진다면 말이다.
상대 7번과 시합 내내 부딪친 게 문제였다.
내게 수비 임무가 주어졌기에 그랬고, 상대도 라인을 높게 올려서 경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서 그랬다.
자주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그저 그런 팀이었다면 아마 감독님께서 나에게 따로 수비적인 역할을 주지 않으셨을 거다. 제노아, 삼프도리아와의 경기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로마는 확실히 달랐다.
단순히 순위만 보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경기장에서 직접 만나보니 알 것 같다.
로마는 공수 밸런스가 좋은, 탄탄한 팀이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수비 가담을 적극적으로 해야만 했다. 덕분에 이렇게 90분이라도 뛴 것처럼 축 늘어져 다리를 풀고 있어야 하는 거고.
몸이 힘들어서 다른 잡생각이 나지 않는 건 좋긴 한데, 아직 후반전이 남아 있다는 게 문제다.
“후우···”
손바닥 크기의 아이스팩을 이마에 올려놓는다.
지금은 다른 곳보다 머리를 차갑게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음에 안 든 전반전 때문에, 솔직히 아직도 혼자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컨디션이 평소보다 별로였다는 건 변명에 불과하니 뒤로 제쳐두고.
일단은 수비에서.
상대 7번과 1대1로 맞붙는 상황이 몇 번이나 나왔었지. 거기서 몇 번은 다시 뒤로 무르도록 하는데 성공했지만, 몇 번은 돌아서는 걸 허용했고 몇 번은 돌파까지 허용했다.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애초에 난 내가 수비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거기다 상대는 로마라는 큰 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맡고 있는 선수다.
몇 번은 돌파를 허용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얘기다.
감독님이 내게 주문한 것도 1차적인 압박과 지연이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지시가 아니었다.
그런데, 고작 그 몇 번 경합에서 진 거 가지고 감정적으로 플레이했다.
맞아. 좀 더 냉정했어야 하는데 바보 같았다.
여러모로··· 내 몸 상태 때문이었다.
우선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몸이 무거웠던 거.
오늘따라 몸이 생각을 못 따라와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엔 몸과 생각이 같이 움직였는데, 오늘은 계속 몸이 한 박자씩 느렸다.
상대와 몸으로 경합하는 상황이 자주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한 박자 늦게 움직이니까 몸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 나올 수밖에.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자꾸 밀리면서 더 감정적이 되었던 것 같다.
분명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할 수 있었고, 실제로 상대가 그렇게 움직이기도 했는데.
알면서도 막지 못한다는 게 짜증이 났다.
더군다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동료들에게 걱정을 끼칠 것 같아 일부러 더 덤빈 것도 있다.
힘들어하는 날 보고 가만히 있을 선배들이 아니니까. 선배들을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근데··· 머리를 식히고 나서 생각해 보니 너무 멍청했다.
감정적으로 플레이한 게 아니라, 정확히 얘기하면 멍청하게 플레이한 거다.
그래놓고 변명만 하면서 억울해하기나 했다.
나중에, 다 커서 만났으면 이겼을 거라고?
야, 이지안.
어른이 되고 싶다면서?
근데 왜 정작 불리하니까 나이 핑계나 대고 있는 거냐.
“···.”
이마에 올려두었던 아이스팩을 치운다.
내 머리가 그렇게 뜨거웠는지 아이스팩이 금세 물렁해졌다.
후반전엔 좀 더 똑똑하게 플레이해야 한다.
몸이 평소보다 한 박자 느리게 움직이면, 판단을 한 박자 더 빠르게 하면 될 일이다.
애초에 너무 건방졌다.
나는 잘하고 싶었다. 더 오래 뛰고 싶었고, 지난 경기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근데··· 내가 언제부터 90분을 뛰고, 로마 정도 되는 팀의 에이스를 이길 수 있는 선수였다고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나에게 누구보다 큰 기대를 하고 있던 건 사실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자, 다시 가보자!”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해보자!”
이기고 싶어서 졌던 전반전이었다.
그러니 후반전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딱 10분만 더 뛴다는 생각으로 집중해보는 거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료들을 따라 라커룸을 나섰다.
*
“한마디 안 하셔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아.”
“그래도 방향을 다시 잡아줄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놔둬.”
코치의 말에 빈첸초 감독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이지안 얘기다.
전반전 동안 조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거든.
아니, 사실 객관적으로 본다면 힘들어했다는 표현은 부적절할 수도 있다.
어쨌든 잘했으니까.
상대 공격의 핵심인 펠레그리니를 압박하면서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고, 공격 상황에서도 압박을 이겨내고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첫 선발이고, 여긴 로마이며, 16살이다.
득점이나 어시스트를 올리지 못했다고 고전했다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한 평가였다.
오히려 극찬을 받아도 모자랄 판이었지.
힘들어했다는 건 본인 스스로가 느끼기에 힘들어 보였다는 뜻이었다. 경기 내내 그다지 표정이 좋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한 마디 해주고 싶긴 했다.
잘 하고 있다고. 엄청나게 잘 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말 하면 이상한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빈첸초 감독은 혼자 화가 나서 씩씩대는 이지안의 모습이 섹시하게 느껴졌다.
항상 뽀송뽀송한 어린애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 모습이 꽤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혼자 끙끙대는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
이지안은 실시간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좋은 방법은 없을지 스스로 생각해 보고.
발전이 빠른 선수들은 뭐 특별한 비법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죽어도 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가졌을 뿐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이지안에겐 그런 모습을 보긴 힘들었다. 어쩌면 이지안을 힘들게 만들 정도의 선수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펠레그리니라는 꽤 어려운 문제가 이지안의 골치를 아프게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이지안은 스스로 해답을 찾고 있다.
상대가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문제를 풀고 싶어 끙끙대던 이지안이, 문제를 풀어내고 나면 훌쩍 성장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지안은 똑똑한 선수다.
어차피 스스로 정답을 찾아낼 수 있는 선수기에, 일부러 말을 아꼈다.
빈첸초 감독은 반드시 정답을 찾아 보여줄 것이라 믿었다.
*
머리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른다.
짜증이나 화가 나서는 아니다.
그저 팽팽 돌아가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주변을 둘러본다.
동료들의 위치, 그리고 상대의 위치를 파악해 머리에 담아둔다. 그리고 한 명 한 명을 체스 말이라 생각하며 하나씩 움직여본다.
전반전 득점에 실패한 상대는 조금 위로 올라온 모습이다. 펠레그리니도 우리 진영으로 올라가 있고, 상대 수비수들은 나와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우리의 중앙 수비는 두텁다.
단순히 최후방 라인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중원에서부터 줄을 세워두고 있다.
전반전 동안 펠레그리니가 자주 아래로 내려온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자리를 잘 고립시켜두고 있었기에, 공을 받기 위해선 자리를 벗어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가 내려오는 대신, 후방 라인이 앞으로 올라오는 것으로 방법을 바꾼 듯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위치가 조금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게 달라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상대는 펠레그리니에게 공을 주려 할 것이고, 그를 이용해 공격하려고 할 것이다.
그 접근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상대의 움직임과 볼의 흐름을 읽으면서, 펠레그리니에게 공이 흘러갈 수 있는 루트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근처에 서 있어야 한다.
상대는 득점이 필요하기에 위로 올라왔다.
그렇다는 건, 공을 끊어냈을 때 내가 뚫어내야 할 수비의 겹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기회다.
파아앙-
파아앙-!
상대가 횡패스를 돌리며 눈치를 살핀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다 보여서일까.
어떻게든 펠레그리니에게 공을 줄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것이다.
나는 그 루트를 계속해서 막고 있다가··· 잠깐 발을 멈췄다. 생각해 보니 굳이 막고 서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열어주자.
패스가 그에게 향하게끔 하는 거다.
패스를 차단하기 위해선 일단 패스가 나와야 하니까 말이다.
한 발짝 먼저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그럼 충분히 끊어낼 수 있다.
파아앙-
파아앙-
횡패스와 눈치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다가··· 내가 발을 멈추는 순간.
“···”
습관적으로 횡패스를 하려던 수비수의 발이 멈칫하는 게 보인다.
내가 비워둔 길로 펠레그리니의 모습이 보인 것일까.
그런 듯하다.
옆으로 접었던 다리가 뒤로 접힌다.
앞으로 패스를 넣으려는 동작이다.
타타탓-!
그 순간 뛴다.
일부러 열어두었던 길을 향해 재빨리 달린다.
파아아앙-!
이미 다리를 멈추기엔 늦은 상대다.
내가 달리는 방향으로 패스가 향하기 시작한다.
옆을 슬쩍 보니 펠레그리니가 패스의 진행 방향 끝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몸으론 그를 이길 수 없을지 모르나, 머리로는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파아아앙-!
패스를 중간에서 끊어낸다.
동시에 몸의 밸런스를 되찾고, 앞으로 공을 차 놓고 달리기 시작한다.
타타탓-!
전방의 움직임을 읽는다.
내 앞엔 상대 수비 넷, 그리고 블라호비치가 있다.
무려 수비가 넷이나 되지만, 다들 함부로 내게 달려들 생각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블라호비치 때문일 거다.
그가 폭발적인 속도로 박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이용하자.
공을 몰고 달리는 동시에, 계속 블라호비치에게 시선을 보내며 수비수들이 그를 더 의식하게끔 만든다.
타타탓-!
덕분에 꽤 편하게 박스 근처까지 공을 몰고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상대도 나를 놔둘 수 없을 거다.
또 이용한다.
타탓-!
패스 길목을 차단하던 수비 둘이 이제야 내게 붙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파아아앙-!
오프사이드를 피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던 블라호비치에게 패스를 넘긴다.
타타탓-!
나는 멈추지 않고 박스 안을 향해 달린다.
패스를 한 덕에 내게 달려들던 수비수들의 시선이 공 쪽으로 팔렸다.
덕분에 내 침투가 더 빠르다.
파아앙-!
블라호비치가 원터치로 공을 툭 찍어 차는 게 보인다. 그 공이 수비 머리 위를 넘긴 뒤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공에 가장 가까운 건 나다.
다만 이걸 잡아놓고 때리면, 금세 붙은 수비에게 방해를 받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든다.
이건 논스톱으로 때리는 수밖에 없다.
골대는 보지 않고, 공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떨어지는 공에 타이밍을 맞춰서······
뻐어어어어엉-!
몸을 뒤틀며 그대로 오른발 슈팅을 때린다.
타이밍은 제대로 맞췄다.
덕분에 힘이 잔뜩 실렸으니, 적당한 코스로만 날아가면 되는데···
슈우우우우웅-
내 슈팅은 적당하다 못해 완벽한 코스로 날아가고 있었다.
철썩-!!
골망이 흔들린다.
그리고 시끄럽던 경기장이 일순 조용해졌다.
동시에 작은 환호성이 들려온다.
한 줌에 불과했던 우리 팀 팬들이 수만 명의 홈 팬들을 목소리로 이겨 먹었다.
ㆍㆍㆍ
AS 로마의 7번, 로렌초 펠레그리니는 세리에 내에서 평가가 매우 괜찮은 선수다.
로마 내부에서야 프란체스코 토티, 다니엘레 데 로시의 뒤를 잇는 ‘차기 황제’로 불리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직접적인 라이벌 관계인 SS 라치오나 나폴리를 제외하면, 타 구단 팬들도 펠레그리니에 대해선 좋은 선수라는 평가를 내릴 정도다.
그만큼 펠레그리니는 평판이 좋은 선수다.
그런데, 그래서 AS 로마와 피오렌티나의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중계] 11R 피오렌티나 1 : 0 AS 로마└피오렌티나 20번 누구냐?
└쟤? 오늘이 프로 3번째 경기인 신인임
└16살이라는데
└16살이라고? 근데 펠레그리니보다 나은 것 같은데?
└뭐가 어떻게 된 거냐. 16살짜리가 펠레그리니를 지우고 자기가 더 돋보인다고?
└와··· 뭔 신인이 저래?
└저 나이 때 펠레그리니는 뭐하고 있었지?
└유스에 있었겠지
└펠레그리니도 천재라고 불리는 선수인데···
└차원이 다른 천재인 거네 그럼 ㅋㅋㅋㅋ
└무리뉴 표정 봐 ㅋㅋ 어이없어서 웃는다
└나도 지금 헛웃음 나오긴 함
중계방의 실시간 댓글이 미친 듯이 올라간다.
모두 펠레그리니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피오렌티나의 20번, 이지안에 대한 이야기 뿐이다.
“후후···”
그리고 그것을 김지우는 모두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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