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42)
내가 더 어림 -1
대다수의 유럽 축구 팬들은 좀 억울할지도 모른다. 미디어를 통해 대외적으로 비춰지는 그들의 이미지가 솔직히 말해 그닥 좋은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식하고, 거칠고, 폭력적이고, 등등.
물론 그런 팬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당연히 그런 팬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외 대다수의 팬들은 그저 축구라는 문화 자체를 사랑할 뿐이다.
심지어 상대 선수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아량까지 갖춘 팬들도 있다.
짝짝짝짝-
스타디오 올림피코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필드를 걸어나가고 있는 한 어린 소년을 향한 박수다.
교체로 그라운드를 나가는 피오렌티나의 20번, 이지안에게 로마 팬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어린 게 되게 잘 뛰네.”
“인상적이었어.”
“어디서 저런 친구가 나온 건지. 부러운걸.”
“펠레그리니와 함께 세우면 엄청 위협적일 것 같지 않아?”
“우리 선수였다면 ‘5대 황제’ 자리를 예약해뒀을 텐데.”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로마의 팬들은 로마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다.
이들에게 유럽 최고의 팀은 로마고, 세계 최고의 팬들은 로마의 팬들이며, 세계 최고의 경기장은 스타디오 올림피코다.
그 말을 조금 바꾸면 이렇게 된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유럽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팀은 로마이며, 원정팀에게 가장 어려운 경기장은 스타디오 올림피코라고.
지금의 박수는 그러한 자부심 덕분에 나올 수 있는 박수였다.
유럽 최고의 팀을 상대로, 가장 어려운 경기장에서 저 정도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니.
심지어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말이다.
인정.
“나였으면 벌벌 떨었을 텐데. 용감한 녀석인걸.”
“저런 멘탈이라면 앞으로도 골치 아픈 적이 되겠구만.”
“우리가 데려오면 되지.”
물론 소년이 그라운드를 빠져나간 뒤, 경기가 재개됐을 땐 다시 로마의 응원가가 흘러나오긴 했지만.
16살 소년의 당찬 도전은 적의 마음에도 불을 지필 만큼 아름다운 일이었다.
*
“지안?”
“예···”
“그, 지금 같은 상황에선 뛰어서 나올 필요 없는데 말이지.”
“예? 아···”
“하하. 잘했다. 얼른 앉아서 쉬어라.”
빈첸초 감독님의 거친 손길에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벤치로 향한다.
아, 그렇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면서 나왔어야 하는데.
빨리 벤치에 앉고 싶은 마음에 뛰어나왔다.
어쩐지 상대 팀 팬들이 박수를 치더라.
의도치 않게 페어 플레이어가 됐다.
“잘했어.”
“좋았다! 막내.”
“어이구, 이 귀여운 것.”
선배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쓰러지듯 벤치에 앉는다.
휴우우.
골을 넣고, 선배들에게 축하를 받고.
곧바로 손을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뛰어야 할 것 같다고.
마음 같아선 더 뛰고 싶었다. 나도.
더 뛰고 싶었는데, 그라운드에 남아 있다간 팀에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었다.
덕분에 마음에 들진 않는다.
오늘 내 플레이가 말이다.
고작 55분밖에 뛰지 못했고, 다행히 한 골을 넣긴 했지만 잘한 건 딱 그것뿐이었다.
컨디션 관리를 좀만 더 잘했다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전반전이 못내 아쉽다.
하프 타임 때 깨달았던 걸 전반에 깨달았다면 1골은 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마음 편하게 그라운드를 나올 수 있었을 텐데···
“···”
으음.
그렇게 벤치에 앉아서도 아쉬운 부분에 대해 곱씹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로마라는 쉽지 않은 원정지에 와서, 무려 55분을 뛰고 골도 한 골을 넣었다.
무려 내가 말이다.
그런데도 아쉬움이 먼저 든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저 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생각했을 텐데.
문득 귓가에 지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우리 지안이, 진짜 많이 컸네?
···그럴까.
아직 진짜 어른이 되려면 멀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도 어른이 되어가는 길에 서 있는 정도는 되는 거 아닐까.
“···”
모르겠다.
당장은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
경기가 끝났을 때, 아쉬움은 후회로 바뀌었다.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후반 30분경, 우리는 상대 공격수 에이브러햄에게 실점을 내주며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국 1대1.
경기는 무승부로 끝이 났고 우리의 연승도 잠시 멈추게 되었다.
“···”
라커룸으로 돌아가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정작 다른 선배들의 분위기는 좋아 보였는데 나는 좋아할 수 없었다.
하필 내가 선발 출전을 하자마자 연승이 끊긴 거니까.
으으음···
팬들의 반응이 어떨까.
나에게 기대한다고 말했던 동네 팬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묵직한 느낌이다.
“휴우···”
그렇게 라커룸에 도착해 유니폼을 벗고 잠시 쉬다가··· 조금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든다.
팬들의 반응은 두 번째고.
우선은 지우의 반응이 먼저 걱정이다.
“···”
차마 똑바로는 못 쳐다보겠고, 주변시를 이용해 핸드폰을 켜 메시지 화면을 띄운다.
역시나 지우의 메시지가 제일 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쌓인 메시지가 10개가 넘는다.
덜컥 불안해져서, 이걸 열어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지는데···
도저히 안 볼 수가 없다.
지우: [사진] ⓬
이걸 어떻게 참냐고.
“···”
실눈을 뜨고 메시지를 누른다.
그리고 맨 첫 번째 메시지부터 확인해 보는데···
음.
다행히 나쁜 말은 없는 것 같아 눈을 완전히 뜨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지우: 야 야 오바하지마
지우: 다치면 어쩌려고 이놈아!!!
지우: 다쳐서 오면 밥 없다!!!
지우: 아니 상대 7번 뭐임??
지우: 왜 자꾸 몸으로 미는데 ㅡㅡ 겁나 비겁하네
지우: 걔 전화번호 좀 알아와바
지우: 축구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마디 하게
지우: 집에 무서운 누나 있다고 까불지 말라고 해라
···여기까진 전반전 때 보낸 메시지고.
지우: 야ㅑㅑㅑㅑㅑㅑ
지우: 미쳣어 진짜ㅏㅏ
지우: 잘햇어잘햇어잘햇어 ㅜㅜㅜㅜㅜ
지우: [사진]
이건 내가 골을 넣었을 때 같은데.
사진엔 웬 정신 나간 사람이 하나 있어서 자세히 봤더니······ 아빠?
아니, 얼마나 방방 뛰어야 이렇게 사진이 찍힐 수 있는 거지. 거의 유체이탈하는 중에 찍힌 것처럼 잔상만 남아 있다.
“···푸흣.”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
이럼 됐다.
아빠와 지우만 실망하지 않았다면 일단은 됐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든 뒤 답장을 보냈다.
나: 너 사진도
나: 보고 싶어
그렇게 별생각 없이 답장을 보냈다가··· 잠깐만. 이거 뭔가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 싶어 급하게 메시지를 덧붙이려는데···
그새 답장이 바로 온다.
지우: 어머
지우: 누나 보고 싶어?
지우: 우리 지안이 많이 솔직해졌네??
아니··· 뭔 소리야.
아빠 사진이 웃겨서 너 웃긴 사진도 보고 싶다는 뜻이었는데···
지우: 이따 보내줄게
지우: 지금은 쌩얼이라 안댕
지우: 아랐지??
끄응.
모르겠다.
이미 해명할 타이밍은 지나간 것 같아, 그냥 알았다고 답장을 보냈다.
사진이 진짜 받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진짜로.
“흠.”
근데 쌩얼이어도 상관없는데······
ㆍㆍㆍ
“하루에 다섯 끼씩을 먹었다고?”
“네? 네.”
“밤늦게까지 개인 훈련도 하고?”
“아, 그건 그냥 가볍게 땀 빼는 정도로···”
“내 이 양반을 그냥. 뭐라고 했길래 애 마음을 급하게 만들어. 안 되겠다. 전화를···”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노발대발하며 핸드폰을 꺼내려는 토니 감독님을 간신히 말린다.
아무래도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다.
“에라이. 조만간 한 번 또 찾아가야겠다. 내가 그렇게 당부를 해놨는데···”
“···무슨 당부요?”
“응? 아, 아니다. 그런 게 있어. 그래서, 지금은 좀 어때. 몸 상태가.”
“아, 지금은 괜찮아요. 좀 힘든 거야 경기 뛰었으니까 당연한 거고···”
로마에서 돌아온 뒤.
나는 간단히 회복 훈련을 마치고 U17 팀 훈련장을 찾았다.
토니 감독님과 루카 코치님을 좀 뵈러.
저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문득문득 두 분이 생각날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금 이렇게 거짓말을 들키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건 두 분 덕분인 것 같아서 찾아오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감독님이나 코치님이나 날 격하게 반겨주셨다.
“어쨌든 멋있었다. 그 골. 어제 처리할 업무가 많아서 늦게까지 있다가, 감독님이랑 나랑 경기 같이 봤거든. 둘이 막 같이 소리쳤지. 쟤가 내 제자다! 자랑스러운 제자! 하면서.”
“하하···”
“아니, 거기서 어떻게 발리로 때릴 생각을 한 거야? 그냥 본능적으로?”
“어, 그야··· 코치님이랑 슈팅 훈련 열심히 했었잖아요. 코치님 덕분이죠.”
“응? 하하하! 이 녀석이 이제 말도 예쁘게 할 줄 아네.”
“1군에 괴팍한 놈들이 좀 많냐. 얘도 사회생활을 배워가는 거지. 지안아. 걔들 쉽지 않지?”
“···조, 조금요.”
“하하!”
사실 그렇게 오랜만도 아닌데, 여기 오니까 되게 감회가 새로운 기분이었다.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랄까.
그러고 보면 여기서 뛸 때가 편하긴 했다.
날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고, 시합 때 수만 명의 관중이 있던 것도 아니고.
좀 못하더라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고.
물론 그땐 그것조차도 떨리고 무서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다.
돌이켜 보면 정말 별것 아니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지금을 돌아보면, 그때 가서 보기엔 지금도 별것 아니었던 게 될 수도 있겠다고.
뭐, 모르겠다.
아무튼 생각이 좀 바뀌는 기분이다.
요 며칠 동안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달까.
분명 어릴 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말이다. 지안.”
“네.”
미소를 짓고 계시던 감독님이 진지한 표정이 되며 말씀하신다.
“너무 벅차게까지 식단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훈련도 마찬가지고. 뭐든지 급하게 가면 넘어지는 법이다.”
“네···”
“제일 조심해야 할 건 부상이다. 안 그래도 한창 크고 있는 나이인데, 벌크 욕심까지 부리다간 다치기 십상이거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카 코치님도 한마디 거든다.
“마음 편하게 먹어. 급할 거 하나도 없으니까. 야, 10년이 지나도 스물여섯이다. 급할 게 뭐가 있겠어. 천천히 가. 사실 지금도 너무 빨라.”
“명심할게요.”
나는 두 분의 말씀을 흘려듣지 않고 새겨들었다.
맞는 말씀이다.
이제와서 보면 약간 아찔하기도 하다.
어쩌자고 속이 더부룩할 때까지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고, 밤늦게까지 훈련을 했을까.
그러니 몸이 무거운 게 당연한데··· 그 상태에서 경기까지 뛰었으니.
안 다친 게 기적이다.
다쳤으면 당분간 경기에도 못 나갔을 테고, 지우한테 도시락도 못 얻어먹을 뻔했으니.
여러모로 참 다행이다 싶다.
어른은 좀 천천히 돼야겠다.
“야아, 아무튼 어제 비겨서 정말 다행이야.”
“로마 원정에서 승점 1점, 이거 귀하죠.”
“아직 우리가 한 경기 덜 치르지 않았나?”
“아 그래요? 그럼 이번 시즌에 컨퍼런스 정도는 기대해봐도 되는 건가?”
나름 진지한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다시 분위기는 편해졌고, 두 분은 축구밖에 모르는 분들 아니랄까 봐 또 축구 얘기를 시작하셨다.
현재 리그 순위부터 해서 요즘 어디가 어떻냐느니, 누가 잘한다느니 하는 얘기들을 하시다가.
루카 코치님이 뭔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다음 경기가 라치오 아닌가?”
“맞아.”
“감독님. 그 왜, 걔 알죠? 라키였나 리카였나.”
“리카 로메로?”
“맞다. 로메로. 걔가 라치오 맞죠?”
“응. 맞아.”
토니 감독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루카 코치님이 짜증 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내게 말했다.
“지안. 이런 말 하긴 뭐한데, 만약에 다음 경기에 나가게 되면 꼭 그 리카 머시기인가 보다는 잘해야 한다.”
“···왜요?”
“내가 라치오 유스에 아는 코치가 한 명 있거든. 걔가 그 리카 머시기 가지고 자랑질을 엄청 해댔단 말이야. 걔도 열여섯 살인데, 아마 8월에 1군 데뷔했나 그래. 골도 지금 3골인가 넣었나 그렇고.”
“아···”
“궁금하지도 않은데 얼마나 자랑질을 해대던지, 차단해버렸거든? 그러니까 이번에 네가 보여줘라. 누가 진짜 천재인지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진짜 짜증이 나셨었나 보다.
알겠다고 대답하려는데 토니 감독님이 그런 소리는 왜 하냐고 핀잔을 준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럴게요. 제가 보여줄게요. 누구 제자가 더 천재인지.”
“그래, 그래. 너만 믿는다. 아, 얘가 보여준다잖아요. 왜 저한테 뭐라고 하세요.”
“에라이···”
혀를 쯧쯧 차는 감독님과 궁시렁대는 코치님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두 분도 얼마든지 내게 기대하셔도 좋다.
전혀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으니까.
“저, 근데요.”
“응?”
“걔도 열여섯 살이에요?”
“그렇다더라.”
“혹시··· 생일이 언제래요?”
“생일?”
내 물음에 루카 코치님이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한 뒤 대답한다.
“2005년 3월 14일인데. 왜?”
“아···”
3월 14일이면 나보다 3달이나 형이네.
난 6월 20일이니까.
“제가 더 어리네요.”
어제까지만 해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젠 내가 더 어리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랬다저랬다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뭐.
어리면 그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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