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40)
어른이 되고 싶어 -2
“흐아아아암···”
턱이 빠질 듯 하품을 하며 버스에서 내린다.
아이고. 졸리다.
으으으읏차.
두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켜보는데, 그래도 쉽게 졸음이 가시지 않는다.
왜 이렇게 졸리지.
웬만하면 버스에선 자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오는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어젯밤에 잠을 좀 설쳐서 그런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짐을 꺼내주시는 스태프분께 꾸벅 인사를 한 뒤, 가방을 짊어지고 숙소로 향한다.
3시간이 조금 넘는 이동 끝에 우리는 원정지인 로마에 도착을 했다.
“피곤하지?”
“아, 괜찮습니다.”
“들어가서 푹 쉬자.”
“넵.”
선배들이 말하길, 국내 원정 경기 중엔 로마 원정이 가장 힘든 편에 속하는 원정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AS 로마가 꽤 좋은 팀이기도 하고, 특히 우리와는 상성이 별로 안 좋아 매번 어려운 경기를 한다는 이유도 있는데.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그것은 로마가 버스로 이동하는 원정지 중 가장 멀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피렌체와 로마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진 않다.
남쪽 끝에 위치한 도시 크로토네나, 아예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사르데냐 섬의 칼리아리 같은 곳들에 비하면 로마는 옆 동네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재밌게도 칼리아리 원정보다 로마 원정이 더 오래 걸린다고 한다. 시간으로만 따졌을 때 말이다.
로마 원정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칼리아리 원정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 가장 피곤한 원정지인 이유는 비행기를 타고 갈 만큼 멀지는 않아서라는 얘기였다.
-컨퍼런스라도 나가면 로마 원정도 항공 편성을 해주겠다고 약속 받았었는데. 못난 선배들이 미안하다.
자세하게까지는 모르지만, 우리 팀은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알고 있다.
유벤투스나 양 밀란, 나폴리 같은 팀들에 비해선 말이다.
그런 팀들은 인기도 엄청 많고, 덕분에 스폰서도 빵빵하고, 축구도 잘해 많은 대회에 나가니 돈이 많지만, 우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대항전 중 하나인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 나가게 되면, 구단에서 항공 지원을 늘려주기로 했다는데···
지난 시즌 우리는 13위에 머무르며 티켓을 따내지 못했고, 덕분에 올해도 비행기보단 버스를 더 많이 타게 되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 내가 이렇게 많은 주급을 받아도 되는 걸까?
여러모로 축구를 잘해야만 하는 이유들이 참 많다.
“자, 여기. 카드키 쓸 줄은 알지?”
“···알아요.”
“먼저 올라가서 푹 쉬어.”
“네, 감사합니다.”
로비에서 호실이 적힌 카드를 받은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향한다.
다른 선배들은 안 피곤한지 로비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어서 나 혼자였다.
오늘은 방도 혼자 쓰게 됐다. 내일 선발로 출장하기 때문이었다. 1인 1실은 선발 예정자들만의 특권이란다.
막내 주제에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건가 싶다. 덕분에 내일 꼭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812호··· 812호···”
호텔의 구조는 또 왜 이리 복잡한지, 내 방을 찾기 위해선 복도를 한참이나 헤매야 했다.
807호 옆에 왜 821호가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저기네.”
겨우 복도 끝에서 812호를 발견하곤 문을 열려는데, 이번엔 문이 또 문제다.
왜 열쇠가 아니고 카드를 준 걸까?
딱히 카드를 꽂을 곳도, 긁을 곳도 보이지 않는데···
띠릭-
···아.
그냥 갖다 대면 되는 거였구나.
머리를 긁적이며 방으로 들어섰다.
ㆍㆍㆍ
“잠은 잘 잤나?”
“예.”
“컨디션은? 어디 불편한 곳 있는 건 아니지?”
라커룸에서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코치님이 내게 와서 묻는다.
“예. 괜찮아요.”
괜찮다고 대답하자 코치님은 고개를 끄덕인 뒤 오늘 내 역할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어차피 훈련 때 다 숙지했던 내용이고, 확인차 말씀하시는 거지만 그래도 집중해서 듣는다.
“이해했지?”
“예. 이해했습니다.”
“좋아. 믿고 있어. 자신 있게 가보자고.”
코치님이 자리를 뜬 이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전술에 대해 상기하며 중얼중얼 되뇌인다.
로마는 어떤 축구를 하는 팀이고, 누굴 경계할 필요가 있으며, 어떻게 공략을 해야 하는지 등등.
이젠 다 외울 정도라 굳이 복습을 할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난 지금 집중할 게 필요했다.
솔직히 말하면, 컨디션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지난주나 지지난주에 비하면 몸이 좀 무겁게 느껴진다. 이미 한 20분 정도는 뛴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코치님껜 잘 잤다고 대답했었지만, 사실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진 못했다.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버스에서 내내 졸았기 때문일까. 잘 시간이 지났음에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물론 오늘 경기에 대한 긴장과 걱정이 더 큰 이유이긴 했다.
자꾸만 잡생각이 들어 머리가 복잡했다.
때문에 방 안에서라도 운동을 해서 땀을 좀 빼고 자야 했다.
“자, 가자. 가자!”
“가자!”
어쨌든 그런 건 지금 신경 쓸 게 아니다.
당장 시합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선배들이 박수와 파이팅을 외치며 라커룸을 빠져나가고, 나도 그 뒤를 따라 나간다.
그리고 잠시 터널에서 대기하다가, 맨 앞에 선 주장을 필두로 필드를 향해 걸어나간다.
와아아아아-!
터널을 빠져나오자 거대한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온통 버건디색의 물결이다. 곳곳에선 홍염이라 불리는 것들이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보라색은 관중석의 한구석, 한 줌 정도만 보일 뿐이다.
이곳, 로마의 홈구장인 스타디오 올림피코는 7만 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한다고 들었다.
수만 명의 홈 팬들이 불러대는 응원가가 우릴 짓누르는 느낌이다.
확실히 분위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러모로 오늘은 유독 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좋은 게임.”
“좋은 게임.”
이윽고 상대 선수들과 스쳐 지나가며 악수를 나눈다.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저 손만 바라보며 악수를 했는데, 그중 한 선수와 만큼은 눈을 마주치고 악수를 나눴다.
등번호 7번, 로렌초 펠레그리니라는 선수였다.
훈련 때 워낙 많이 들었던 이름이라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다.
가까이서 보니 키는 나보다 10센티 정도 더 큰 것 같고, 꽤 강인하게 생겼다.
이 선수가 유독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나와 같은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기 때문이다.
4-2-3-1의 포메이션에서 3의 가운데 자리.
공격형 미드필더 혹은 처진 공격수 말이다.
덕분에 오늘 나는 그와 계속해서 비교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누가 더 공격에 큰 기여를 하느냐에 따라 경기 내용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거다.
펠레그리니는 굉장히 잘하는 선수라고 들었다.
현재 로마의 에이스고,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수라고 했다.
그런 대단한 선수와 내가 비교라도 될 수 있으려면, 나로선 200퍼센트의 힘으로 뛰는 수밖엔 없다.
나는 그 나머지 100퍼센트를 수비 쪽에 쏟는 것으로 포인트를 잡았다.
감독님은 지난 경기나 지지난 경기에서 내게 따로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하지 않으셨지만, 오늘은 달랐다.
펠레그리니가 내려가 빌드업에 관여하는 걸 1차적으로 내가 막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뛰어야 하는 오늘이다.
상대와의 악수를 마친 뒤 동료들과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삐이이익-!”
그리고 상대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된다.
파아앙-
파아앙-!
후방에서 천천히 공을 돌리는 것으로 경기를 시작하는 상대.
그러나저러나 나는 상대 7번에게만 시선을 두고 움직인다.
그가 우리 진영으로 깊게 올라간다면 그때부턴 내 소관이 아니지만, 아래로 내려간다면 1차 담당자가 되는 건 나다.
어차피 우리로선 높게 압박을 올라가지 않고 기다리면서 수비를 하는 것으로 전반의 가닥을 잡았기에, 나는 펠레그리니의 근처에 머물면서 언제든 그의 움직임에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물론 그는 딱히 날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지만, 어쨌든.
그렇게 나만의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타타탓-!
“···!”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펠레그리니가 드디어 움직인다.
나 역시 곧바로 그 뒤를 따른다.
하프 라인을 향해 움직이는 걸 보니, 아래로 내려가서 1차 빌드업을 도울 생각인 듯하다.
나 역시 그런 플레이를 자주 하는 편이기에, 상대가 어떻게 나올 때 가장 까다로운지 알고 있다. 그러니 반대로 내가 그렇게 하면 된다.
파아아앙-!
상대 센터백이 펠레그리니에게 곧바로 패스를 넣는 것이 보인다.
그걸 보자마자, 나는 주변을 한 번 살핀 뒤 펠레그리니의 등을 향해 바짝 붙는다.
1차 목표는 역시나 상대가 공을 잡고 곧바로 돌아서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공이 오기 전에 미리 붙어 신경이 쓰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게 포인트다.
그래야 도전적인 선택을 하기 어려워지니까.
툭-!
등 뒤에 바짝 붙어, 슬쩍 손으로 상대의 등을 밀며 귀찮게 군다.
솔직히 말하면 꽤 세게 밀었는데, 등을 진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상대도 뒤로 손을 뻗으며 나를 저지했고, 그 탓에 내가 오히려 밀려나는 느낌도 든다.
파아아앙-!
그래도 내 수비가 심리적인 저항을 만들어냈는지, 등을 진 채 공을 받은 펠레그리니가 다시 뒤로 백 패스를 보낸다.
곧바로 돌아서는 것을 막아내는 데엔 성공했다.
고작 나의 수비에, 이렇게 대단한 선수가 안전한 선택을 하는 걸 보니 일순 기쁜 마음이 든다.
타타탓-!
하지만 마냥 기뻐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백 패스를 보낸 펠레그리니가 다시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번엔 왼쪽으로 움직인다.
나 역시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가 위치를 잡는다.
그리고, 또다시 그에게 패스가 향해 온다.
이번에도 역시 공이 굴러오는 동안 그의 등을 향해 붙으려는데···
“···큭.”
방금과 달리, 이번엔 오히려 그가 먼저 내 가슴팍을 등으로 밀었다.
그 탓에 뒤로 밀려난 순간, 그는 공을 잡고 재빨리 돌아선다.
젠장. 어제 한 끼를 더 먹었다면 밀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어쨌든 간에 그와 두 발 정도 거리를 두고 자세를 낮춘다.
돌아서는 걸 허용하긴 했어도, 전진 패스만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괜찮다.
“···”
펠레그리니가 흘끔흘끔 시선을 흩뿌리며 줄 곳을 찾는 게 보인다.
그러나 마땅치는 않을 거다.
우리 동료들과 상대 선수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해두고, 패스가 향할 수 있는 유일한 길목에 내가 서 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다시 백 패스를 하는 것밖엔 선택지가······
타타탓-!
아니네.
펠레그리니가 그대로 나를 향해 공을 몰고 오기 시작한다. 복잡하게 가지 않고 단순하게 뚫겠다는 생각인가?
더욱 더 자세를 낮추고 상대의 두 다리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드리블이 막 엄청 좋은 수준까진 아니라고 들었다. 그러니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뒤를 흘끔 바라본 그가 내 오른쪽으로 공을 차 놓고 달린다.
별다른 페인팅 동작은 없었기에 반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재빨리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공이 지나간 길목에 먼저 몸을 집어넣는다.
공은 이미 지나갔어도 사람만 막아내면 된···
“···크윽!”
···다고 생각한 순간, 몸의 밸런스가 무너지며 상체가 앞으로 기운다.
간신히 손으로 땅을 짚으며 넘어지진 않았으나, 이미 완벽히 밀려났다.
뒤늦게 고개를 들어보니 7번의 등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그가 이미 나를 지나쳐 공을 몰고 올라가고 있었다.
저런 단순하고 투박한 드리블에, 고작 힘이 부족해서 돌파를 허용해야 한다니.
“Che cazzo···”
그 사실에 울컥해,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
나는 펠레그리니를 쉽게 막지 못했지만, 어쨌든 우리의 수비는 꽤나 견고했다.
이따금씩 펠레그리니의 직접 슈팅이나 상대 스트라이커인 태미 에이브러햄의 슈팅이 나오긴 했으나, 우리는 쉽게 골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행일 뿐인 거고.
난 계속해서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뛸 수밖에 없었다.
처음 펠레그리니에게 돌파를 허용한 이후로도, 몇 번이나 비슷한 장면을 허용했던 나다.
공중볼이나 세컨볼 경합에서 밀려나 공을 내준다든지, 돌파 방향을 예측하고도 뻗은 다리가 짧아 공에 다리가 닿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다.
드물게 우리에게 주어진 공격 상황에서도 비슷했다.
내가 공을 잡을 때마다, 펠레그리니는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나를 방해했다.
그는 내 수비를 몸으로 버텨내거나 뚫었지만, 나는 불가능했다.
때문에 더 머리를 굴리고, 한 발 두 발을 더 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몇 번 그를 뚫어낸 뒤 전진 패스를 넣는데 성공해도 위협적인 장면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그렇게 되니 결과적으론 내 체력만 갉아 먹혔다는 생각이 들어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
솔직히 억울했다.
모르고 당했다면 반성이라도 할 텐데, 다 알고도 당했다는 게 더 열 받았다.
정말, 여러모로 짜증이 나는 전반전이었다.
“삐익, 삐이익-!”
어쨌든 전반은 0대0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팀으로선 나름 성공적인 전반을 마친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씩씩대며 필드를 빠져나왔다.
한 2년 뒤, 아니 1년 뒤에만 만났어도 이렇게 밀리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어른일 때 만났으면 이겼을 것 같은데.
진짜 억울하다. 실력만 놓고 보면···
“···”
혼자서 그렇게 중얼중얼대다가, 나는 문득 나 스스로에게 놀랐다.
분명, 방금 이렇게 생각했다.
축구 실력만 보면 내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억울하다고.
“···하.”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라커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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