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44)
내가 더 어림 -3
툭-!
공을 잡고 돌아서자마자, 내게 달려드는 선수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왼쪽 앞에서 하나.
오른쪽 앞에서 또 하나.
뒤에도 한 명이 있긴 한데, 뒤로 갈 생각은 없으니 신경 쓸 필요는 없고.
눈앞의 두 명에게만 집중한다.
타타탓-!
둘 다 이런 압박을 하루 이틀 해 본 솜씨는 아닌 듯하다.
서로 완벽히 거리 유지를 한 채 달려들고 있다.
만약 돌아서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워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빠르게 잘 돌아서기도 했고, 상대의 위치 정돈 미리 파악해뒀기 때문이다.
이미 계산된 상황인 만큼 침착함을 유지하며 둘을 상대한다.
타탓-!
일단은 왼쪽으로 공을 차 놓고 움직인다.
둘과의 거리 차이를 만들기 위함이다.
가만히 서 있으면 둘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되지만, 한쪽으로 도망간다면 반대편의 상대와는 거리를 벌릴 수 있다.
타탓-!
지금처럼, 왼쪽으로 움직이니 왼쪽 앞에서 달려들던 상대와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오른쪽의 상대와는 멀어졌다.
거리 차이를 만들었으니 이젠 1대2가 아니라 1대1을 두 번 하면 될 뿐이다.
툭-
적당한 위치에서 공을 멈춰 세운 뒤, 몸을 돌려 첫 번째 상대를 정면으로 맞이한다.
자세를 잔뜩 낮추고 기다리다가···
상대와의 거리가 세 보폭 정도로 좁혀졌을 때.
스윽-
왼 다리를 들어 올려 왼발이 내 오른 무릎에 오게끔 접은 다음,
탓-!
상체를 왼쪽으로 기울임과 동시에 들었던 왼발을 땅에 내려찍는다.
왼쪽으로 치고 가겠다는 듯 페인팅을 준 건데···
타탓-!
그 페인팅에, 달려들던 상대의 무게 중심이 크게 흔들리는 게 보인다.
거의 엉덩방아를 찧을 듯 오른 다리가 접히며 무너지는 상대.
그 와중에도 왼 다리를 쭉 뻗으며 공을 건드려보려 하지만···
팡-!
왼발로 공을 오른쪽으로 밀며 발을 피해내고,
팡-!
오른발로 공을 받아 다시 앞으로 밀어놓는다.
그리고 앞으로 치고 나간다.
타타탓-!
일단 하나는 됐고.
다음.
남은 한 명을 향해 공을 몰고 달려간다.
그러다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오른발로 슬쩍 공을 밀며 경로를 살짝 튼다.
그리고 오른발을 뒤로 크게 접는다.
마치 우리 우측 풀백에게 패스를 넘길 것처럼.
타타탓-!
그 동작에 상대가 패스를 차단하려는 듯 다리를 뻗는데··· 미안하지만 내 패스는 걸리지 않을 거다. 애초에 패스할 생각이 없었다.
스르륵-
오른발로 공을 밟은 뒤 발바닥으로 긁어 방향을 접어낸다.
공이 내 왼발 뒤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몸을 뒤튼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여 둘에게서 도망친다.
타타탓-!
빠져나왔다.
마침내 넓은 중앙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두 명을 끌어들였고, 떨쳐냈으니 공간이 비는 건 당연한 일.
그 공간을 향해 망설임 없이 치고 달린다.
일단은 됐다.
그러나 탈압박에 성공했다고 기뻐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빠르게 올라가야 한다.
타타탓-!
오늘 감독님이 강조하신 건 두 가지.
하나는 탈압박이었고, 하나는 빠른 공수 전환이었다.
탈압박은 방금 했으니, 이번엔 빠른 공수 전환 차례.
공을 몰고 빠르게 하프 라인을 넘자 상대 인콘트리스타(수비형 미드필더)가 내게 끌려 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 너머에 시선을 두었다.
내가 그렇게 쉽게 압박을 뚫고 나올 줄은 몰랐는지, 상대 수비 대형이 상당히 헐거웠다.
게다가 라인도 높고, 우리 공격수인 블라호비치의 발도 빠른 편이니···
지금은 공간으로 패스를 때려 넣는 게 좋겠다.
뻐어어어엉-!
상대 수비 라인의 뒤, 그러나 키퍼가 달려 나와 잡기엔 애매한 정도의 위치로 낮게 공을 띄워 보낸다.
방향은 골대 왼쪽 방향.
그 패스를 향해 달리는 블라호비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멈추지 않고 박스를 향해 달린다.
만약 블라호비치가 먼저 공을 잡는다면 키퍼와 1대1 찬스를 맞이하게 되니, 굳이 더 뛰어갈 필요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필드 위에선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키퍼가 슈팅을 쳐낼 경우, 공이 내 정면으로 흘러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타타탓-!
확실히 블라호비치는 빨랐다.
수비가 유니폼을 슬쩍 잡는데도 떨쳐내고 달려간 그가 공을 툭 잡아놓더니,
뻐어어어엉-!
그대로 슈팅을 때린다.
다만··· 수비가 붙어있기도 했고, 키퍼가 튀어나온 탓에 살짝 급했다.
너무 정면이다.
파아아아앙-!
슈팅이 키퍼의 몸을 맞고 튕겨 나온다.
그리고 그 공이··· 내 앞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언젠가 루카 코치님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거라고.
역시, 어른들 말 들어서 나쁠 게 없다.
뻐어어어어엉-!
흘러나온 공을 그대로 때린다.
공이 딱 차기 좋게 굴러오기도 했고, 키퍼가 튀어나온 터라 골대가 비어있기도 해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슈우우우우웅-
그렇게 날아간 슈팅은···
철썩-!!
빈 골대에 쏙 들어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야, 김지우.
봤지?
누가 더 천재인지.
*
전광판의 시계가 멈추고, 전반전이 추가 시간에 돌입한다.
스코어는 1대0, 피오렌티나 리드.
“킥킥킥.”
토니 감독이 옆에서 킥킥대는 루카 코치에게 눈을 흘긴다. 아까 전부터 자꾸 쪼개면서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는 루카 코치다.
아마 그 라치오 유스 코치라는 녀석을 실시간으로 약 올리는 중인 듯한데.
그 모습이 참 철없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어떻게 된 게···’
토니 감독이 참 새삼스럽게도 혀를 내두른다.
전반이 끝나가고 있으니 간단히 총평을 하자면··· 단 한 명의 선수 때문에 전체 양상이 바뀐 경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그 한 명은 이지안이었다.
사실 경기의 시작은 되게 불안했었다.
시작과 동시에 상대는 강하게 전방 압박을 걸었고, 그 압박에 침착하게 대처를 하지 못해 슈팅을 내주면서 경기를 시작하고 말았으니까.
라치오는 굉장히 빠른 템포의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다. 그 템포에 한 번 휘말리기 시작하면, 유벤투스나 밀란 같은 팀들도 대량 실점을 내줄 만큼 그들의 축구는 위험하다.
그래서 첫 압박에 공을 내준 게 생각보다도 더 안 좋은 일이었던 거다.
라치오는 거기서 더 강하게 압박을 몰아쳤을 거고, 정돈이 덜 된 상태에서 그 압박을 맞이하는 피오렌티나는 분위기를 완전히 내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딱 거기서.
이지안이 흐름을 단박에 끊어내 버렸다.
미친 수준의 탈압박과, 그에 이은 역습 마무리로 말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저 감탄만 나온다.
그 위험한 위치에서, 혼자 둘을 상대로 탈압박을 시도할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그걸 쉽게 성공해내다니.
참, 유려하다는 말이 딱이었다.
좋은 컨트롤로 공을 발에 딱 붙여놓고, 간결한 페인팅 동작과 양발 드리블, 그리고 방향 전환 하나로 두 명 사이를 빠져나오는 모습은··· 그 순간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판단은 또 어떻고.
탈압박에 성공한 것도 모자라 볼 운반까지 하더니, 미친 퀄리티의 로빙 스루 패스를 블라호비치의 발 앞에 떨궈주기까지 했다.
근데 또 그다음이 백미라는 게 미치는 포인트다. 블라호비치의 슈팅이 아쉽게 막혀 튕겨 나오는데, 거기에 또 녀석이 서 있었다.
누가 보면 한 골 주워 먹었다 볼 수도 있겠으나, 모르는 말씀.
성실하게 뛰지 않으면 잡을 수 없는 기회였다.
녀석이 스스로 만들어낸 골이란 얘기였다.
‘그거 한 방으로 분위기가 확 죽어버렸지. 상대가.’
그렇게 순식간에 실점을 내준 상대는 당연히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남은 시간이 많으니 전방 압박을 완전 포기한 건 아니었는데, 처음처럼 적극적이진 않았다.
특히 이지안이 공을 잡을 땐 압박 대신 라인을 뒤로 무르는 모습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녀석에게 한 번 당했으니 쉽게 압박을 가하기가 무서웠을 거다.
이지안은 또 그걸 영리하게 활용해, 자신이 공을 잡을 때면 템포를 적절히 조절하며 점유율을 우리 쪽으로 가져왔다.
이러니까 전반전 총평을 그렇게 내릴 수밖에 없는 거다. 선수 한 명 때문에 양상이 바뀌어버린 경기였다고.
‘솔직히 말해서···’
토니 감독이 라치오의 17번을 바라본다.
저 친구가 신성이라는 리카 로메로, 그 아이인데. 솔직히 말하면 존재감의 차이가 너무 컸다.
언론에선 오늘 경기를 두고 두 천재 소년들의 대결이라면서 이슈 거리를 만들려 했던데.
이렇게 한 필드 위에서 둘을 놓고 보니, 그냥 이런 생각이 든다.
‘재능의 격이 다르다···’
로메로가 못 한다는 얘긴 아니었다.
저 어린 나이에 라치오 정도 되는 팀에서 1군 공격수로 경기에 나선다는 건, 애초에 미친 수준의 재능이니까.
근데··· 상대가 괴물일 뿐이다.
로메로가 16살치고 대단하다는 수준이라면, 이지안은 그냥 여기서 제일 뛰어난 수준이었다.
그래서 괜히 측은해진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앞으로 쭉 비교를 당하게 될 테니.
뭐··· 경기 전에 ‘진짜 천재가 뭔지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인터뷰를 했던 걸 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건 좀 가혹하잖아.
“와, 이 새끼 나 차단했다. 으하하하하!”
루카 코치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토니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전반 3분.
“한 번 더 줘! 한 번 더!”
전반 10분.
“공 줘! 여기!”
전반 25분.
“여기도 있어···!”
전반 40분.
“공···”
그리고 후반전이 시작됐을 때, 점점 작아지던 리카 로메로의 목소리는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전반이 끝나자마자 교체 아웃 된 탓이다.
“···”
리카 로메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6년 인생, 오로지 자신감 하나로 살아왔던 로메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보다 축구를 잘하는 친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5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던 로메로는 어딜 가나 천재라는 소리만을 들었다.
아카데미에서도, 연령별 팀에서도, 그리고 여기 1군에 올라와서도.
어디서든 제일 어렸고, 제일 천재였다.
그런 인생 배경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지금의 로메로는 오히려 겸손한 편일지도 모른다.
한참 위의 선배들에게 당신을 뛰어넘어줄 테니 1년만 기다리라 말하고 다니는 로메로지만, 그래도 평생 천재 소리만 듣고 살아온 걸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덕분에 로메로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
로메로가 상대 팀 20번을 바라본다.
감독이 훈련 때부터 이야기하긴 했었다.
저 녀석을 경계해야 한다고. 16살의 실력이 아니라고, 저 녀석을 눌러놓아야 게임을 쉽게 풀어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땐 코웃음을 쳤었다.
저 녀석도 05년생인데, 어차피 05년생 중 재능으로 1번은 자신이 아닌가.
쓸데없이 호들갑을 떠는 감독이나 선배들을 보며 혀를 쯧쯧 찼던 로메로였다.
그냥 이번 기회에 아주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진짜 재능이 뭔지.
근데··· 경기가 좀 이상하게 흘러갔다.
시작은 좋았는데··· 어쩌다 보니 저 녀석이 경기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골까지 넣고.
자신은 후반과 동시에 교체되어, 이렇게 벤치에 앉게 되었는데 말이다.
‘그··· 그래도! 돌파는 내가 낫지 않아?’
로메로가 입을 삐죽 내밀며 생각한다.
이대로 패배를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뭐라도 자신이 더 나은 점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래. 그래도 돌파는 내가 더 낫지.
쟨 돌파는 잘못하는 거 같은데?
솔직히 탈압박이나 패스 같은 것보단 드리블 돌파가 훨씬 귀한 재능 아니야?
‘응! 맞지!’
난 엄청 빨라! 돌파도 더 잘해! 할 줄 아는 개인기도 많아!
로메로가 그렇게 자기 위로를 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파아아앙-!
그 녀석이 공을 잡는다.
하필 라치오의 벤치 바로 앞쪽에서다.
왼쪽 터치 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은 녀석이, 수비 하나를 앞에 두고 툭툭 치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타타탓-!
수비를 완벽히 허문 뒤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도, 돌파도 할 줄 안다고?
방금 녀석에게 제쳐진 저 선배, 만만한 선배는 아닌데!?
근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뻐어어어어엉-!
중앙으로 접고 들어간 녀석이, 박스 앞에서 슈팅을 때린다. 파 포스트를 보고 오른발로 감아 때린 슈팅인데···
궤적이··· 그 궤적이···
‘아름답자나!!’
로메로가 보기에도 아름답다.
철썩-!!
또 한 번 골망이 출렁이고, 경기장이 귀가 먹먹할 만큼 시끄러워졌을 때.
리카 로메로의 세상은 무너졌다.
“···”
리카 로메로(16세).
인생 첫 재능의 벽을 느끼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