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63)
다행이었다.
정말로.
만약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걸, 그리고 이브는 뭔가 해야 하는 날이란 걸 미리 알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지우에게 얻어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이거 어때? 괜찮아?”
“···괜찮아.”
“아니, 좀 자세히 보고 성의 있게 대답해 봐. 진짜 괜찮아?”
“자세히 봤어. 괜찮다니까.”
“자세히 봤다고? 어디를?”
“···.”
장난을 치며 킥킥대는 지우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내쉰다.
지우와는 저녁때 시내에 놀러 가기로 했고, 지금은 그때 입을 옷을 고르는 걸 도와주고 있었다.
그냥 아무거나 입으면 될 것 같은데 뭘 저렇게 고민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어제 저녁에 지우가 슬쩍 물었었다.
“내일도 훈련하는 거지?”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거, 잘 대답해야 되는 질문이었다.
“내일··· 내일은 안 하려고.”
“···안 해? 왜?”
“그래도 휴가인데, 쉬는 날도 있어야지.”
“흠. 그래?”
내일은 쉴 거라고 대답하니 아닌 척하면서도 지우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는 듯 물었지만 사실 아니었던 거다.
“그럼··· 뭐 할 건데?”
“글쎄. 그냥 뭐··· 시내라도 갔다 올까.”
“아저씨랑 같이?”
“아빠? 아빠는 감독님이랑 코치님이랑 골프 치러 가신댔어.”
“흠. 그래?”
아빠와 감독, 코치님. 이 세 남자가 약속이 있다고 하니 지우의 목소리는 더 밝아졌다.
“그, 지노라는 형은?”
“오늘 저녁에 팔레르모로 돌아간대. 가족들 만날 거라고.”
“아, 그래? 음··· 그럼 뭐 우리 둘이서 다녀와야겠네.”
“뭐··· 그렇지.”
“그래, 뭐. 그럼 그러던가.”
지노가 간다는 소식엔 입가를 씰룩이더니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리는 지우였다.
그리고 지금···
“아무래도 이거 입고 가야겠다.”
“···어차피 네 맘대로 고를 거면 왜 물어본 거야.”
“그야 내가 입을 거니까 내 맘이지. 이제 나가. 옷 갈아입을 거니까.”
“···”
“뭐해? 나가라니까?”
“알았어.”
있는 옷 없는 옷 다 꺼내놓고 패션쇼를 벌인 지우의 텐션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러고 보면 지우도 참 아이 같은 면이 있다.
표정을 잘 못 숨긴다.
기분이 좋으면 좋아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이고, 우울해지면 우울해지는 게 보인다.
왜 식당에 보면 ‘OPEN’, ‘CLOSE’ 팻말이 있는 것처럼, 얼굴에 ‘나 지금 기분 좋음’ 혹은 ‘나 지금 기분 안 좋음’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어린애들이 딱 저러잖아.
요즘 그런 지우를 볼 때마다, 나는 종종 신기한 느낌을 받곤 한다.
지우가 자칭 누나라고 할 때마다 한 번도 반응해주지 않긴 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론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이 있긴 했었다.
뭔가 친구 같다기보단 누나 같은 느낌.
뭐, 얼굴이 나이 들어 보인다는 얘긴 아니고.
그냥 어릴 때부터 지우는 나보다 용기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그랬었으니까.
나보다 좀 더 어른 같다는 느낌이 항상 있었던 거다.
근데 요즘은 이렇게 지우가 어린아이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왜일까.
그만큼 내가 큰 걸까?
으음.
모르겠다.
*
적당히 어둑해진 하늘과, 그 어둠을 주황색으로 밝히는 불빛들의 풍경은 꽤 아늑한 느낌을 준다.
저녁이 되어 지우와 함께 작은 시내로 나왔는데, 시내는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복작복작한 느낌이었다.
“Buon Natale!”
거리엔 온통 행복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뿐이고, 그들은 다들 같은 인사를 건네온다.
Buon Natale.
즐거운 성탄절,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뜻이다.
“부온 나탈레!”
지우가 오가는 사람들과 신나게 인사를 나눈다.
얘는 어쩜 이렇게 나와 정반대인지 모르겠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무슨 오래 알던 친구인 것처럼 인사를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고 달려가 꼭 구경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진짜 딱 강아지 같다.
욕이 아니라, 말 그대로 꼬리 프로펠러를 돌리며 뽈뽈뽈 돌아다니는 귀여운 강아지 말이다.
“우와, 이건 뭐야? 맛있겠다!”
“Provalo! (드셔 보세요!)”
“엥? 주시는 거야?”
“응. 먹어 보래.”
“땡큐! 감사합니다! 그라찌에!”
“Hahaha!”
마을 사람들도 그런 지우가 귀여운지, 쪼르르 가서 구경하고 있으면 꼭 먹을 걸 하나씩 줬다.
무슨 강아지 간식 주듯이 말이다.
덕분에 나도 옆에서 하나씩 얻어먹었는데, 지우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돈 안 쓰고도 배를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 다 맛있어? 대박. 그치?”
“응.”
“사람들도 다 친절하구. 크리스마스라서 그런가? 진짜 좋다···”
“···그러게. 좋네.”
아무튼, 좋았다.
거리는 아늑하면서도 활기찼고, 모든 것들이 다 맛있었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모두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밝은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뭐랄까.
지금만큼은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와, 엄청 큰 트리다! 가서 사진 찍자!”
“어, 어.”
사실 내게 크리스마스란 별 의미가 없는 날에 불과했었다. 그냥 1년 365일 중 하루일 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감독님의 말을 듣고 크리스마스라는 걸 깨달았을 정도였으니까.
오히려 어릴 땐 크리스마스를 싫어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까진 꼭 교회를 갔어야 했는데, 그게 그땐 되게 싫었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하루 종일 인사하고, 같이 밥도 먹어야 되고.
그냥 그 복작복작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나랑은 맞지 않았다.
“나 저 앞에 설 테니까 잘 찍어줘! 다리 길게, 얼굴 작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몰라.”
“아, 진짜! 저번에 가르쳐줬잖아. 내 발끝을 화면 아래에 맞추면 된다구.”
“알겠어.”
하지만 오늘은, 모르겠다.
여전히 사람들로 복작거리고 모두 활기찬 기운을 내뿜고 있지만.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아니, 도리어 즐거웠다.
그냥 이 순간이 꽤 즐거웠다.
“잘 나왔어?”
“뭐··· 그냥 있는 그대로 나왔어.”
“봐봐. 음··· 그러네? 실물 그대로 나왔네?”
큼지막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서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지우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사실 실물보다 훨씬 키가 크게 나왔는데, 가끔은 이런 쓸데없는 거짓말이 효과가 좋을 때가 있다.
나는 요즘 삶의 지혜라는 걸 배워가고 있다.
“저건 또 뭐야? 사람들 엄청 몰려 있어.”
“그러게.”
“우리도 가보자!”
비글의 체력은 주체가 안 된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기 무섭게, 지우에게 팔을 붙잡힌 채 또 끌려간다.
나름 체력 훈련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왜 지우의 체력이 더 좋은 것 같지.
이런 게 재능이라는 건가?
아무튼.
그렇게 끌려간 곳엔 작은 아치형 문 같은 게 있었다. 뭐 하는 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우리도 하자!”
“뭔데, 저게···”
“뭐 그런 거 아니야? 저기 지나가면 소원이 이뤄진다거나, 그런 거 있잖아.”
줄 서서 뭐 하는 건 싫어하지만, 지우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줄을 섰다.
다들 지나가면서 기뻐하는 걸 보니 어떤 의미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우리 차례가 왔다.
“모든 일 잘 되게 해주세요!”
“···”
지우는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소원을 빌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지나쳤다.
대신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앞으로도 이 행복이 깨지지 않게 해달라고.
“어, 여기 뭐라고 쓰여 있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그렇게 문을 지나왔는데, 작은 표지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안내문 비슷한 거 같아서 읽어보는데······
···엥?
“왜? 무슨 의미라는데?”
나는 해석을 하고도 지우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난 그냥 진짜 지우의 말대로 소원이 이뤄진다거나, 건강해진다거나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뭐야, 어려운 말이야? 기다려 봐.”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대답을 않자 지우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사진을 찍으면 자동으로 번역이 되는 어플을 켜서 안내문을 해석했다.
“······영원한 사랑을 이어주는 사랑의 문?”
“···”
“···”
“···가자.”
“어, 어. 그래···”
크흠.
괜히 어색해진 우리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뭐··· 아무튼.
아마도 처음일 듯했다. 오늘이.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될 크리스마스 말이었다.
ㆍㆍㆍ
2주간의 휴가가 끝났다.
시칠리아 섬에서 꽤 뜨거운 겨울을 보낸 우리는 피렌체로 돌아왔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돌아온 훈련장은 달라진 게 없었다.
2주 만에 보는 거지만 선배들 역시 그대로였다.
다들 잘 쉬고 왔는지 얼굴들이 밝았고, 전보다 활기찬 분위기에서 훈련을 했다.
다만 달라진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사실 엄청 중요한 게 달라졌다.
보여야 할 얼굴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블라호비치 선배의 모습을 훈련장에서 볼 수 없었다.
“오면서 봤지? 그 험악한 거.”
“···네.”
“하필 또 거기로 가 가지고···”
휴가 동안은 아예 핸드폰을 손에 놓고 살아서 몰랐는데··· 뒤늦게 접한 소식에 따르면 블라호비치 선배는 팀을 떠났다고 했다.
이적을 한 것이다.
유벤투스로.
그 덕분인지 훈련장으로 오는 길엔 살벌한 문구의 낙서들이 즐비했다.
입에 담기도 뭣한 험악한 말들이었다. 죽이네, 살리네, 가만 안 두네······
공통적으로는 배신자라는 단어가 꼭 뒤에 붙어있었다.
“이럴 때 성적 못 내면 분위기 더 살벌해지니까, 남은 우리가 잘 해야지 뭐.”
당연하겠지만, 팬들이 화가 많이 난 상황이라고 했다. 블라호비치에겐 물론이고, 그를 지키지 못한 구단에게도 화가 났다고.
특히 그가 유벤투스로 간 것 때문에 더더욱 민심이 좋지 않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기분이 좀 그렇긴 했다.
프로의 세계가 냉정한 법이라곤 하지만··· 함께 유벤투스를 이기고 그렇게 기뻐했었던 게 불과 몇 주 전인데.
하필 우리가 이겼던 그 팀으로 가버렸다니 약간의 배신감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남의 일은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고, 남의 일에 신경 쓰는 건 애초에 내 취미가 아니었다.
난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에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하다.
다만···
“그, 있잖아요. 이번 시즌에.”
“응?”
“우리가 유벤투스보다 순위가 높았으면 좋겠어요.”
“유벤투스보다?”
“네. 그냥,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냥 그런 생각은 들었다.
여름이 되었을 때, 우리가 몇 위를 하건.
유벤투스보다는 높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야, 막내야. 한 가지 부탁해도 되냐?”
“···무슨 부탁이요?”
“이번 주 경기 이기고, 혹시 네가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말이야.”
“네.”
“방금 했던 얘기, 그대로 한 번만 해주라.”
“···인터뷰에서요? 왜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장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한다.
“네가 그렇게 말해주면 험악해진 지금 민심, 한 방에 뒤집을 수 있을 것 같거든.”
음··· 그런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경기에서 이기는 거랑, 인터뷰를 하는 게 어려운 거지.
ㆍㆍㆍ
휴식기 이후 우리의 첫 리그 상대는 엠폴리 FC라는 팀이었다.
낯설지 않은 팀이었다. 비록 U17에서긴 하지만 한 번 만나본 적이 있는 팀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아마, 내가 2골에 도움 1개를 기록했을 거다. 사실 난 내 기록이 어떤지 잘 모르고, 딱히 기억도 하지 않으려는 편인데.
그 경기가 기억나는 이유는, 그 경기를 하고 나서 프로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니까 뭐, 결론은 엠폴리라는 팀과의 기억이 좋다는 얘기였다.
다만, 그런 것과 별개로 경기장에 나선 나는 사뭇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난 아니구만.”
“오늘 지면 X된다. 얘들아.”
선배들의 말처럼, 지면 진짜 큰일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달까.
여기저기서 피운 홍염 때문에 공기가 매캐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관중석 여기저기선 험악한 문구의 걸개들이 걸려 있었다.
전부다 우리 팀을 비난하는 내용들 뿐이었다.
돈밖에 모르는 장사꾼들이라느니, 이 팀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느니···
그나마 이 정도가 입에 담을 수 있는 수준의 문구들이었고, 그 외의 것들은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걸 보니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긴장이 바짝 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사실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말이다.
“삐이익-!”
아무튼, 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저번 컵 대회 경기 때처럼 최전방 공격수이자 가짜 공격수의 역할을 맡았고, 그때의 기억을 살려 경기에 임했다.
그래도 한 번 해본 경험 덕분인지, 그때보단 경기를 풀어나가는 게 어렵진 않았다.
나는 나름 익숙하게 내가 해야 할 플레이들에 집중했다.
일단 컨디션이 좀 좋았다.
확실히 훈련의 성과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몸이 꽤 가벼웠고, 뭔가 스피드도 좀 빨라진 것 같았다.
물론 느낌적인 느낌일 것이었다.
휴가 내내 모래사장을 뛰다가 매끄러운 잔디 위를 뛰니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어쨌든 중요한 건, 그 덕분에 나도 모르는 사이 자신감이 꽤 차올랐다는 것이었다.
난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플레이했다.
그리고 그게 좋은 효과를 발휘했다.
와아아아아아-!
전반 20분쯤, 우리의 선제골이 터졌고 나는 도움을 기록했다.
아크 정면에서 내준 내 스루 패스를 사포나라 선배가 마무리한 것이었다.
게다가, 후반 15분쯤엔 내가 직접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오른쪽 윙어인 카예혼과 주고받는 패스로 공간을 만들어낸 뒤, 박스 오른편에서 때린 슈팅이 골망을 갈랐다.
휴가 내내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던 보람이 있는 순간들이었다.
“자, 안녕하세요! 승리 축하합니다!”
그렇게 2대0 승리로 시합이 끝난 뒤.
나는 마이크를 든 기자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서게 됐다.
시합을 뛰는 건 익숙해져도 인터뷰는 도저히 익숙해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해나갈 때쯤···
기자는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좋은 호흡을 자랑했던 블라호비치가 유벤투스로 이적했어요. 혹시 이에 대한 감정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그 질문을 받자마자 순간 주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관중석 곳곳에 걸린 험악한 걸개들을 보며 대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