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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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끝났지만, 관중들은 집에 갈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인사를 하는데 여전히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딱 원정석 만큼만 구멍이 났을 뿐, 홈 팬들은 제자리에 남아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덕분에 우리의 인사는 오랫동안 이어졌고, 나는 하마터면 관중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뻔했다.
앞에 나가 응원가를 불러보라고 선배들이 등을 떠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침 코치님이 타이밍 좋게 날 끌고 갔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사실 이게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다.
관중들 앞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거나, 시커먼 카메라들 앞에 서는거나 비슷한 일이니까.
수많은 카메라엔 언제쯤 적응이 될까.
침이 꿀꺽 삼켜진다.
“경기 전에 했던 것처럼만 해줘요.”
“···”
덕지덕지 붙은 광고판 앞에 서서 기다리는데, 인터뷰를 준비하던 기자가 씨익 웃으며 말한다.
이틀 전에 했던 인터뷰를 말하는 걸까.
이 사람들은 괜히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다니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크게 전달하고, 멀리 보내는 게 이 사람들의 역할이다.
그래서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Uno, due, tre!”
관계자의 신호에 맞춰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에 맞춰 침을 한 번 삼키곤 마이크를 쥔다.
“네! 세리에 25라운드, 피오렌티나와 아탈란타의 경기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경기의 주인공과 인터뷰를 나눠볼게요. 안녕하세요!”
인사에 고개를 끄덕.
“4대1, 아탈란타를 완벽히 제압한 오늘이었어요. 리, 그 중심에 당신이 있었고요. 대단한 활약이었네요. 지난주의 결장이 확실히 부상 때문은 아니었군요?”
“네. 아니었어요.”
몇 번이나 말했듯이, 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기로 한다.
기분 좋은 날이니까.
“감히 주제넘은 얘길 하자면, 최고의 활약이었어요. 오늘 기록을 한번 말해드릴게요. 리, 패스 성공률 87.4퍼센트. 드리블 성공 8회. 1개의 골과 2개의 도움. 총합 평점 9.7점. 음, 나머지 0.3점은 어디로 간 거죠? 기계가 낭만 점수를 캐치하지 못했군요.”
기자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을 이었다.
“골 이야기부터 해봐요.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나요?”
기자의 질문에 잠시 당시를 떠올린다.
그러자 약간의 소름이 돋는다.
나는 어깨를 으쓱인 뒤 대답했다.
“훈련한 대로였어요. 제가 중앙에서 공을 잡으면, 양쪽 사이드에서 깊숙이 전진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패스를 보냈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죠.”
“음, 그렇군요.”
마음 같아선 막 필드가 훤히 내려다 보였어요! 마치 내가 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니까요? 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싶지만.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기자가 뭔가 아쉬운 듯 날 쳐다보는데, 나는 그들이 원하는 걸 줄 생각이 없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예민한 상태가 아니었다.
“사실 오늘 더 놀라웠던 건 어시스트 장면들이었죠? 패스가 무슨 스페인 미드필더들을 보는 것 같았달까요. 뭔가 눈이 뜨였다는 느낌을 받았단 말이죠. 날카로운 패스로 후반전을 지배했는데, 좀 더 낮은 위치에서 뛰는걸 스스로도 선호하는 편인가요?”
이어진 질문에도 마찬가지로 넉넉히 텀을 두고 생각에 잠긴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이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질문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 능구렁이 같은 속셈에 휘말려 의도치 않은 헛소리를 뱉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닌 만큼, 나는 두 번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오늘 동료들의 플레이가 매우 좋았어요. 모두 이기고 싶어했고, 우리는 그럴 능력이 있었죠. 위치는 상관하지 않아요.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디든지 뛸 수 있어요.”
···어떠냐.
대답을 마치곤 내심 의기양양해하며 기자를 흘끗 바라본다.
밋밋한 대답에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는 얼굴을 상상했는데··· 왜인지 기자는 활짝 웃을 뿐이다.
“어디든지 뛸 수 있다. 엄청난 자신감이네요. 아주 좋아요.”
···그 앞에,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라는 문장은 왜 빼먹는 걸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이제, 다음 경기 얘기를 좀 해보자고요. 유벤투스와 만나게 되네요. 전반기엔 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으나,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달라요. 함께 승리를 일궈냈던 블라호비치가 이젠 그쪽에 있으니까요.”
으음.
다시 또 예민해지려 한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기자의 질문을 끝까지 듣는다.
“다음 경기에 대한 각오 한마디 부탁할게요. 혹은 전 동료인 블라호비치에게 한마디 해도 좋고요.”
흠. 그냥 각오만 물으면 될 것이지, 굳이 저 말을 뒤에 덧붙인다는 건.
사실상 블라호비치에게 한마디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음흉한 인간들.
내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또 그거 가지고 불을 이만큼 크게 피우겠지.
참 피곤한 사람들이다.
“···”
나는 대답을 신중히 생각하는 겸, 잠시 손에 든 마이크를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터뷰 중인 날 배려한 건진 몰라도, 귀가 먹먹해질 만큼 울려 퍼지던 응원가는 잠잠해진 상태지만.
팬들은 여전히 자리에 남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문득, 경기 전에 했던 생각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나는 꽃이다.
나이가 어리고, 골을 넣는 포지션에서 뛴다는 이유로 쉽게 주목을 받고 있기에 그렇다.
꽃은 모두의 결실이다.
그렇기에 내가 화려하게 돋보이지 않으면, 그 결실을 위해 묵묵히 노력한 이들이 속상할 거다.
날 지켜보고 있는 팬들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우리 팀의 꽃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길 바라지, 다른 꽃들에 비해 볼품없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을 거다.
“저는···”
천천히 입을 뗀다.
되도 않는 비유들을 해대느라 머리가 조금 복잡했지만, 최대한 차분히 정리했다.
그러니까, 결국.
피오렌티나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이상, 이 대답엔 겸손할 수 없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저는 블라호비치를 좋아했어요. 그와 호흡을 맞췄던 경기들 모두 좋은 기억이었어요. 그는 항상 절 잘 챙겨줬었고, 그에게 배운 점도 많았어요. 아무것도 모른 채 1군에 올라온 제가 경기에 나설 수 있었던 건, 그가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정리, 정리.
자꾸 뒤죽박죽 섞이려는 단어들을 다시 정리한 뒤 대답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지금도 싫어하는 마음을 갖고 있진 않아요. 그냥 아쉬울 뿐이에요. 더 오래 함께 뛰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차였죠. 그래서··· 미안하지만, 다음 경기가 끝나면 그가 후회했으면 좋겠어요.”
생각나는 대로 말을 쏟아내다 보니 숨이 차다.
숨을 한번 고르고 말을 덧붙인다.
“이 아름다운 곳을 떠난 것을요.”
이건 피렌체와 피오렌티나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질문이었고, 나는 피오렌티나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나까짓게 겸손을 떨 수는 없었다.
*
“······못생겼어.”
얼음물에 발을 담그고 있던 중, 나도 모르게 본심이 툭 하고 튀어나온다.
왼발 오른발아, 미안.
근데 너희 진짜 못생기긴 했어.
그렇잖아.
발가락도 좀 휘었고, 굳은살도 덕지덕지 붙어 있고. 오늘은 발톱에 멍까지 들어서 진짜 진짜 못생겼다, 야.
근데 어쩌겠냐.
내 발로 태어난걸.
“···미안.”
그래서 미안하다.
너희도 처음엔 이렇게 못생기게 태어나지 않았을 텐데. 주인만 잘 만났으면 발가락 휠 일도 없었을 거고, 굳은살 하나 없이 매끈함을 자랑했을 텐데 말이다.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하네.
그래도··· 앞으로 좀만 더 고생하자.
너희 덕분에 나도 고개 들고 다닐 수 있고, 팬들도 좋아해 주시잖아.
고마워.
그러니까, 앞으로 좀만 더 괴롭힐게.
좀 봐주라.
내가 미안해서 이렇게 얼굴에도 안 하는 얼음찜질까지 해주잖아.
좀만 더 힘내자. 응?
“밥 먹어!”
“······어, 알았어.”
거실에서 들려온 지우의 목소리에 생쇼를 그만두고 일어난다.
대야에 받아뒀던 얼음물을 버리고, 발을 닦은 뒤 화장실에서 나오자 맛있는 냄새가 났다.
지우가 있는 저녁은 항상 기대되고 즐겁다.
···오늘은 어떤 메뉴일까 궁금해서다.
“카레네?”
“응! 냄새 좋지?”
“카레도 양식으로 치나.”
“몰라. 이건 그냥 김지우식이야.”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양식 전공자의 카레는 어떤 맛일까.
일단 보기엔 완벽한 카레다.
당근은 보이지 않고, 감자와 고기가 수북이 쌓여 있다.
“사실 카레 별거 없거든. 그냥 고기 팍팍! 때려 넣으면 맛없을 수가 없다니까.”
지우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옆자리에 앉은 아빠를 흘끗 바라보고 말았다.
그러자 나와 눈을 마주친 아빠가 헛기침을 한다.
예전에 아빠가 해줬던 카레··· 그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여러모로, 지우가 이곳에 온 건 참 다행인 일이다.
“어때? 맛있지?”
“······응.”
한입을 먹기 무섭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지우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자 지우가 안심이라는 듯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이내 헤헤 웃더니 자기도 밥을 떠먹는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긴 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와서 공짜로(물론 재료값은 내가 낸다만) 이렇게 맛있는 밥을 해주면.
항상 내가 고마워해도 모자랄 진데, 지우는 언제나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 오히려 자기가 고마워한다.
예전에 한 번 이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와서 밥 해주는 거,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지우는 그렇게 말했었다.
자기는 자기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는 게 제일 뿌듯하다고.
자기가 맛있는 걸 먹는 것보다 남이 맛있는 걸 먹고 행복해하는 걸 보는 게 더 행복하다고 말이다.
이런 말 하면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그 말을 듣고 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나도 나 혼자 행복한 것보단,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행복하니까.
“오늘 너, 컨디션 좋아 보이더라?”
한창 고기 카레를 퍼먹던 와중 지우가 묻는다.
나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닥 좋진 않았어.”
“엥? 그래? 난 좋은 줄 알았는데. 되게 잘했잖아?”
“한 골은 더 넣었어야 됐어.”
“한 골 넣었으면 됐지. 그거, 어시스트도 두 개 했고.”
1골 2어시도 잘한거라는 지우의 말에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잖아. 더 넣었어야 돼.”
“헐··· 나 갑자기 밥맛 없어졌어.”
숟가락을 내려놓는 시늉을 하면서도, 지우는 실실 웃는다.
흐음.
오늘은 그래도 양심에 덜 찔릴 줄 알았는데.
아직은 부족한 모양이다.
좀 찔린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럼 다음 경기에 두 골 넣던지. 아니, 세 골.”
“응.”
“약속했다? 약속?”
“···밥 좀 더 먹어야겠다.”
“밥? 오올, 진짜 맛있나 보네? 그릇 줘. 내가 퍼줄게.”
휴우.
말 돌리기 성공.
약속 같은 건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자!”
“감사.”
첫 번째 그릇과 거의 같은 양이 담긴 카레가 좀 부답스럽지만, 근육 회복과 생성을 위해 군말 않고 다시 숟가락을 잡는다.
“아, 근데 약속하니까 갑자기 생각나네. 아저씨, 저희 사촌 언니 작년에 약혼했었는데 내년에 결혼한대요.”
“그래? 사촌 언니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
“어··· 저보다 아홉 살 많으니까 스물다섯이요.”
“스물다섯? 되게 빨리하시네?”
저녁 식탁의 흐름은 항상 이런 식이다.
방향키를 잡은 게 지우인데, 지우는 항상 즉흥적으로 방향키를 틀어댄다.
내 경기에서 갑자기 사촌 언니 결혼 얘기로 주제가 넘어간다.
빌드업이라는 게 없다.
“근데 웃긴 게 뭔 줄 알아요?”
“뭔데?”
“그게 우리 집에서는 별로 안 빠른 거예요. 다른 언니들은 더 일찍 했거든요. 제일 빠른 건 우리 엄마고.”
“어머니가 몇 살 때 하셨길래?”
“스물둘이요. 완전 대박이죠?”
“와아, 대박이네.”
그나마 아빠가 옆에서 보조를 잘해줘서, 지우가 마구 방향을 틀어도 티가 잘 나지 않는다.
확실히 아빠는 나보다 대화에 능숙하다.
역시 유부남은 다른가.
······과거형이긴 하지만.
“근데, 왜들 그렇게 일찍 하셔? 뭐 이유가 따로 있나?”
“음,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다들 빨리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그리구 이번에 결혼하는 언니는 어릴 때부터 꿈이 일찍 결혼하는 거였대요.”
“일찍 결혼하는 게 꿈이었대? 왜?”
아빠의 되물음에 지우가 고개를 한 번 갸웃이더니, 이내 배시시 웃고는 말했다.
“그 언니도 집에서 요리하고 그러는 거 좋아하거든요. 자기 꿈이 집에서 남편 기다리다가, 남편 오면 맛있는 거 해주는 게 꿈이래요. 그래서 빨리 결혼하고 싶었대요.”
“그래? 재밌네. 하하.”
화기애애.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고 떠드는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나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