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84)
“귀엽지?”
“아이고, 귀엽네. 여섯 살 됐다고?”
“응. 이제 좀 있으면 학교를 간다, 얘가. 응애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다”
“그러게나 말이야. 애들 크는 거 보면 아파도 쉴 수가 없다.”
스트레칭으로 훈련을 준비하는 와중 선배들의 대화가 들려온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또 아이들 이야기다.
“우리 아들은 어제 축구 시작했어. 아카데미 등록했거든.”
“오, 그래? 진지하게 하고 싶대?”
“그런가 봐. 뭐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아이들 얘기를 많이 하는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가 선배들의 아이들 나이를 알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선배들이 하는 얘기라곤 축구 얘기, 그리고 아이들 얘기밖에 없다.
참··· 단순한 사람들이다.
이 축구 선수라는 사람들은.
축구, 그리고 가족.
관심사가 딱 이 두 개뿐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뭐··· 나도 비슷하고.
“몇 년 있으면 우리 막내랑 같이 뛸 수도 있겠네. 이야.”
“뭐, 애가 재능이 있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우리 아들이 지금 여덟 살이니까. 그러고 보면 막내가 어리긴 진짜 어리다. 나랑 막내랑 나이 차이보다 막내랑 우리 아들 차이가 훨씬 적네.”
“내가 좀만 더 일찍 애 낳았으면 막내만 한 자식이 있었겠지.”
“우리 아들도 막내처럼만 자라면 소원이 없겠다, 내가.”
날 보며 얘기하던 선배들이 낄낄 웃는다.
그러고 보면 신기한 게, 다들 결혼을 엄청 일찍 했다.
그 왜, 초등학교 때 가끔 학부모 참관 수업 같은 거 하면 부모님들이 오시잖아.
그때 오시는 부모님들 보면 진짜 누가 봐도 부모님 같은 느낌이 있었거든.
근데 이 형들이 누군가의 아빠라는 건 잘 믿기지가 않는다.
그냥 동네 형들 같은 뿐인데.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근데, 그 있잖아요.”
“응?”
“축구 선수들이 결혼을 일찍 하는 이유는 뭘까요.”
“결혼을 일찍 하는 이유? 뭐, 그거야···”
내 물음에 보나벤투라 선배가 대답한다.
“헛짓거리 못 하게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거지.”
“···무슨 말이에요?”
“결혼을 하면 아무래도 책임감이 생기잖아. 자유의 몸이 아니니까. 그래서 항상 조심하게 돼. 나도 젊을 땐 문제아 소리 좀 들었다만, 결혼하고 싹 회개했잖아.”
흠. 그런가.
“또,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하게 되거든. 집에서 와이프랑 아기들이 나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 봐.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어.”
“축구 선수라는 게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기도 하고 말야. 나중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
뭐··· 듣고 보니 그럴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장점이 있으니까 선수들 대부분이 일찍 결혼하는 거겠지.
하지만, 사실 나는 좀 부정적이다.
결혼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아직 그런 생각을 할 나이가 아니라서 그렇기도 한데··· 그냥 내 생각은 그렇다.
결혼이라는 거, 굳이 꼭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거다.
죄송한 얘기지만, 아빠의 영향 때문이었다.
물론 아빠가 결혼을 한 덕분에 내가 아빠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었던 건 감사한 일이지만···
솔직히 아빠가 과연 결혼 때문에 행복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빠는 좀 더 편하게, 재밌게 살 수 있으셨지 않았을까.
문득 예전에 아빠가 해주셨던 말이 떠오른다.
나중에 커서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일단 한 번 참으라고.
그렇게 참아도 정말 이 사람이다 싶으면 결혼해도 좋은데, 그런 사람이 없다면 결혼이라는 거 꼭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빠는 결혼은 안 해도 좋으니 아이는 꼭 낳는 게 좋다고 하셨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이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결혼을 안 하고 애를 낳는다는 거지?
이건 마치 슈팅을 하지 말고 골을 넣으라는 얘기랑 똑같잖아.
“막내야. 너는 뭐 성인 되자마자 할 거지? 결혼?”
보나벤투라 선배가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행복하세요?”
“···어, 어?”
“···? 왜 당황을···”
“아, 아니. 당연히 행복하지, 이 친구야.”
···말로는 행복하다면서, 왜 미소가 저리도 어색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
“내가 키엘리니고.”
“내가 더 리흐트다.”
“우리 둘은 무적의 센터백 듀오.”
“뚫을 테면 뚫어봐라.”
전술 훈련을 앞두고.
우리 팀의 센터백 듀오인 밀렌코치비 선배와 나스타시치 선배가 쌍둥이처럼 팔짱을 끼며 내게 말한다.
이러고 있으니 무슨 악당 역할을 해주겠다는 삼촌들과 노는 조카가 된 기분이다.
“···”
그런 선배들을 말없이 빤히 쳐다보자, 무안했는지 선배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수비 위치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보니 살짝 웃음이 나온다.
어쨌거나.
“오케이, 다들 준비하고. 삑-!”
유벤투스전을 대비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다.
보라색 홈 유니폼을 입은 팀과 하얀색 원정 유니폼을 입은 팀.
훈련은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이 되는데···
나는 홀로 유니폼 위에 형광색 조끼를 입었다.
감독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팀 구분 없이, 보라 팀이 공격할 땐 보라 팀 공격수의 역할을 하고, 흰 팀이 공격할 땐 흰 팀 공격수의 역할을 하면 된다고 하셨다.
즉 오늘 훈련은 ‘나 혼자 훈련량 2배’인 셈이다.
저벅저벅-
휘슬이 울린 직후, 나는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했다.
지난 경기에서 불현듯 찾아왔던 그때의 감각.
그 감각을 다시 깨우기 위해 온 신경을 동원했다.
그 경기에서의 난 컨디션이 매우 좋았었다.
직전 경기를 통으로 쉰 다음의 경기였었으니까.
거기에 여러 것들이 겹쳐, 약간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던 것도 한몫해서.
흔히 말하는 각성 상태를 경험했던 거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를 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따라서 유벤투스와의 경기 전까지 훈련 동안 나는 그 감각을 유지하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러한 지금의 훈련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
발은 천천히 움직이되 고개를 수시로 움직이며 선수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한다.
이쪽도 봐야 하고 저쪽도 봐야 한다.
나는 양 팀 모두에 속하는 역할이니까.
사실 말로만 들으면 평소보다 머리를 두 배로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어차피 실전에서도 우리 팀과 상대 팀 모두를 파악하는 건 마찬가지라서.
“···”
계속해서 집중력을 끌어올리자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다만 단순히 지도를 그려내는 것만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지도를 읽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재 공은 보라 팀이 잡고 있다.
즉 지금은 흰 팀의 수비 형태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공략법을 떠올려야 한다.
“···”
포백의 간격이 넓다.
보라 팀 윙어들이 주전 윙어들이라 사이드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일 터.
그럼 난···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하는 게 지금으로선 옳은 움직임이다.
타타탓-!
우측 하프 스페이스로 움직이며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풀백과 센터백이 서로 간격을 좁힌다. 날 의식하는 움직임인 듯하다.
다만 이러면 센터백과 센터백 사이의 간격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그 공간을 향해 왼쪽 윙어가 가운데로 침투해 들어 간다면 틈을 파고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아, 손으로 가운데를 가리키려 할 때였다.
파아앙-!
내게로 공이 흘러온다.
그 공을 보는 순간, 살짝 몸이 굳는 느낌을 받는다.
뇌가 경고하는 느낌이었다.
한 번에 세 가지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선수들의 위치도 파악하고, 동료에게 움직임을 요구하며, 그와 동시에 공을 받을 준비를 하는 건··· 내가 봐도 무리다.
나는 아직 그 정도가 되지 못한다.
판단을 빠르게 내린다.
무엇이 먼저일까.
당연히 공부터 정확히 받는 게 먼저일 거다.
파아앙-!
시선을 내려 정확히 공부터 받아낸다.
그런 뒤 돌아서며 전방의 움직임을 살피나··· 딱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동료들이 침투할만한 길은 모두 막힌 상태다.
하려면 공이 오기 전에 했어야 하는데 늦었다.
되는 타이밍과 안 되는 타이밍의 차이는 찰나에 불과하다.
타타탓-!
하는 수 없이 직접 공을 몰고 올라간다.
곧 거대한 덩치의 밀렌코비치 선배와 마주한다.
선배의 얼굴을 보니 순간 마음이 약해지려 해서, 선배의 흰 유니폼에 검은색 줄무늬를 덧칠한다.
툭, 툭-!
속도를 살리기 위해 얄팍한 개인기는 접어두고, 간단한 방향 전환으로 가짜 유벤투스 수비수를 제쳐낸다.
이어 박스 안에 진입한 나는 가볍게 슈팅을 때리는 것으로 첫 번째 공격을 마무리했다.
뻐어어어엉-!
철썩-!
“하, 막내가 우리 팀이라 다행이지.”
밀렌코비치 선배의 투덜거림을 뒤로 하고, 쉴 틈 없이 하프 라인을 향해 돌아간다.
이젠 반대쪽으로 공격이다.
“후우-”
호흡을 뱉어내자 금세 숨이 뜨거워졌다는 게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면 버겁다.
하지만 원래 버거운 걸 하는 게 훈련이다.
훈련 때 힘든 만큼 경기에서 편해진다.
그러니 불평보단 집중력을 다시 끌어올려 본다.
더군다나··· 단순히 힘들다고 느껴지기보단 재밌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어려운 문제여서 푸는 재미가 있었다.
ㆍㆍㆍ
“···”
유벤투스의 훈련복을 입은 블라호비치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본다.
유벤투스 선수들을 태운 구단 버스가 피오렌티나의 홈구장인 아르테미오 프랑키로 진입하고 있었고, 그 버스는 지금 피오렌티나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
“──!!”
성난 피오렌티나 팬들이 버스를 향해 무어라 외친다. 들리진 않지만 어떤 말들일지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다.
보나 마나 있는 힘껏 저주들을 퍼붓고 있겠지.
심지어 대부분은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손가락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기도 했다.
참 친절들도 하다.
엄청나게 동원된 경찰 인력들이 아니었다면 버스가 이 자리에서 뒤집혔을지도 모르겠다.
촥-!
블라호비치가 창문의 커텐을 쳐 시야를 차단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마음마저 평온할 수는 없었다.
프로이기 전에 사람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오던 팬들이, 순식간에 돌변해 저주를 내리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매우 따갑다.
하지만 상처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 팬들을 보며 후회하고 있지도 않고.
미안함을 느끼거나 후회를 할 거였다면 애초에 이적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거다.
블라호비치는 유벤투스로 이적해 온 것에 대해 아무런 후회도 없었다.
당연히 그랬다.
세리에 내에서 유벤투스가 가진 명성, 인기 등은 그 어떤 팀과도 비교를 불허한다.
밀란 같은 팀들도 그럴진대, 하물며 피오렌티나는 더욱이 그렇다.
작은 연못에서 탈출해 이제야 바다에 나왔는데, 후회를 할 리가 없었다.
자신은 바다에 살아야 하는 고래였으니까.
“내리자.”
이윽고 어렵사리 경기장 안으로 진입한 버스가 멈추고, 선수들이 하나씩 내린다.
클러치백을 옆구리에 낀 블라호비치 역시 버스에서 내려 익숙한 공기를 맡는다.
이어 곧장 라커룸으로 향해 필요한 준비를 마치고, 경기장으로 나가 워밍업을 실시한다.
그리고 돌아와 유니폼을 갖춰 입고, 축구화 끈을 다시 한번 묶는다.
그 모든 것을 냉정하리만큼 무표정으로 마친 블라호비치는 유벤투스 선수들과 함께 라커룸을 나섰다.
라커룸을 나와 복도를 지나, 입장을 기다리는 터널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들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선수들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가족보다 더 가까이 지냈던 전우들이었다.
“···”
“···”
그러나 누구도 눈을 마주치거나 인사를 건네오지는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오늘 경기는 더비 매치다. 더비 경기를 앞두고 희희낙락하며 상대 선수들과 친목을 다지는 얼빠진 선수들은 없다.
블라호비치는 그것이 고마웠다.
그런 전 동료들의 태도가 냉정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다른 건 생각하지 않는다.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저 유벤투스의 선수로서 오늘도 상대를 무참히 박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한 생각으로, 블라호비치가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며 서 있을 때였다.
“···”
누군가 옆에 조용히 선다.
슬쩍 시선을 돌린 블라호비치의 눈에 이지안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지안이 꽤 차분한 얼굴로 피오렌티나 선수들의 줄에 선다.
“···”
그 순간, 블라호비치의 차갑던 마음에 작은 파동이 생긴다. 이내 그 파동은 파문이 되어 마음속으로 퍼져나간다.
다른 건 그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저 녀석만큼은 마음에 남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지안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대체 왜일까.
“···”
블라호비치가 감정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마 블라호비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누군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블라호비치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이지안 때문에 오늘 이적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지안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고,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블라호비치기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얼굴은 너무나 앳되고 귀여울 뿐이지만···
이렇게 상대 팀의 입장으로 서 있을 때.
이지안은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선수였다.
< 후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