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 십검(2)
릴리스가 사라짐과 동시에 거울의 뒤쪽에서 데이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드는 그.
거울을 바라보면, 벨제뷔트의 붉은 눈동자가 그를 마주하고 있다.
“릴리스는 갔나?”
“그래. 가버렸어. 그런데 진짜 신기하네. 내 말이 어떻게 들리고 있는 거야? 같은 몸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 건가?”
“그래, 사실 다행이긴 하지. 내가 벨제뷔트 본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을 거야.”
“반대로 네가 봉인 당한 것도 그래서잖아. 오러가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네가 지는 일은..”
데이브의 물음에 벨제뷔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기 전에 일단 여기서 꺼내 주기나 하지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데이브의 물음에 벨제뷔트의 눈이 가늘어진다.
도대체 저 녀석은 언제쯤 쓸 만해지는 걸까?
같은 몸을 공유한 지가 몇 년인데 그런 것 하나 모르다니.
“지난 몇 년 동안 뭘 한 거야?”
“그야.. 숨어있느라 바빴지. 너 같았으면 안 그랬겠어? 저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네가 알기나..”
“내가 그걸 모른다고?”
“..알겠구나? 미안.”
벨제뷔트의 물음에 데이브가 입을 다물었다.
어째 벨제뷔트의 결혼생활이 순탄치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이쪽인가?”
그러던 중, 벨제뷔트의 손이 거울을 향해 뻗어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집는 손.
“오, 이제 내가 보이는 거야?”
“보이는 게 아니야. 네가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지.”
벨제뷔트의 감각이 날을 세운다.
물론, 꿈속의 세계인 만큼 느껴야 할 것은 오감이 아니다.
정신과 육신의 연결고리.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상대의 위치를 예측하는 것이다.
“여기군.”
벨제뷔트의 걸음이 거울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감탄할 만한 공간 감각이다.
거칠게 뛰는 심장. 데이브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기대하며 가슴을 졸였다.
“..그래서 이제부터 뭘 하려는 건데?”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거울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
하기야 고작 앞에 선 것만으로 뭐가 바뀌겠는가.
봉인이라는 건 그리 간단히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데이브가 몇 년이나 지나도록 방법을 찾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물러서라. 데이브 클락.”
..그런데 왜 뭔가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벨제뷔트의 말에 데이브가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맑은소리.
거울을 바라보면, 벨제뷔트가 수 차례 거울을 노크하고 있었다.
마치 거울의 단단함을 가늠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설마..’
그 모습에 불길함이 느껴지는 건 어째서일까.
사색이 된 데이브의 얼굴.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 직후의 일이었다.
꽤 늦은 감이 있는 판단이다.
“이런 미친!”
검은 마기의 폭포가 거울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끈적거리는 마기가 쏟아져 내리며 순식간에 바닥을 휩쓴다.
물론, 그 대상에는 데이브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이걸 어떻게 피하라는 거야!”
그나마 늦지 않게 오러를 펼쳐 방어할 수 있었던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확실히 이 세계에 갇혔던 지난 수년간 놀고 있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콰아앙!
뒤를 잇는 것은 굉음이다.
간신히 눈을 떠보면, 순식간에 박살이 나버린 거울과 무너진 벽의 모습이 보인다.
안 그래도 폐허에 가까웠던 고성에 구멍이 나는 순간이다.
“뭐, 뭘 어떻게 한 거야? 봉인을 어떻게 연 건데?”
“가장 약한 곳을 노려 부순 거지.”
“..가장 약한 곳이라고?”
“그래. 볼 수 있다는 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거울이 있는 위치를 찾은 거였나?
데이브가 할 말을 잃고 입을 벙긋거린다.
‘그럴 거면 미리 말이나 해 주지! 죽는 줄 알았잖아!’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는 데이브.
그러나 벨제뷔트의 비상식을 따지기엔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쿠구궁..
벨제뷔트에 의해 벽과 기둥을 잃은 고성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만 같은 광경이다.
천장에서부터 떨어져 내린 돌조각이 바닥을 두드린다.
아무래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다.
데이브가 황급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활짝 열린 고성의 문이었다.
“벨제뷔트! 빨리 가자!”
벨제뷔트를 재촉하며 달려가는 데이브.
그런데 어째 벨제뷔트의 반응이 이상하다.
“..너구나.”
데이브를 쫓던 벨제뷔트의 걸음이 불현듯 멈춰 선다.
일순간 시야에 들어온 누군가의 모습이 그를 붙잡은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 무너지는 잔해 너머로 몸을 일으키는 누군가가 보인다.
마치 작별하듯 손을 흔드는 모습.
비록 그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몸짓은 너무도 눈에 익은 것이어서.
“..잘 자렴.”
벨제뷔트는 그만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문밖으로 달려가는 그.
그렇게 릴리스의 성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 * *
라나의 걸음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문제없이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선 조금 더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늦어선 안 돼.’
저 멀리서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로 보아 라나를 쫓아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또다시 괴물끼리의 싸움이 벌어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사이가 안 좋은 건가?’
그러고 보니 저 괴물들은 왜 싸우고 있는 걸까.
라나의 눈에는 다 같은 괴물로 보이지만 저들에게는 아니었던 걸까?
“후우..”
뭐든 간에 지금은 계획을 우선시하자.
라나의 검 끝이 정해진 위치를 겨눈다.
준비하는 것은 아르카나의 힘이다.
‘괴물의 움직임을 쫓기가 힘들다면 반대로 괴물들을 유인하는 거야.’
호흡을 가다듬고 검을 고쳐 쥔다.
아마 조금만 기다리면 티타르와 엘레나가 신호를 보내올 것이다.
라나는 그에 맞춰 아르카나를 쏘아내기만 하면 된다.
‘방향을 모르면 피할 수 없겠지.’
조금 전과는 달리 완벽한 사각에서의 공격을 준비하는 라나.
이 위치에서라면 제아무리 괴물들이라 한들 라나의 공격을 피해내진 못할 거다.
사실상, 라나의 승리는 정해져 있다고 봐야겠지.
‘괴물이라..’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제는 괴물들을 쓰러트릴 일만 남은 지금.
라나는 오히려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묘한 직감.
라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그런 제 생각을 털어냈다.
‘..어쩔 수 없어.’
이제 와서 계획을 바꿀 수는 없다.
계획은 이미 수립되었고, 티타르와 엘레나는 이미 목숨을 걸고 괴물들을 유인하고 있을 테니까.
고작 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물러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왔다..!”
그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타난 괴물들.
그와 동시에 라나의 검 끝에 아르카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성검의 끄트머리로 모여드는 푸른 빛.
빛의 뭉치가 적의 목을 겨눈다.
“..어?”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건 그 직후의 일이었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분명 괴물들을 유인하며 도망치고 있어야 할 두 사람.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두 마리의 괴물이 전부였다.
“이게 대체..”
혹시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라나의 눈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케르륵!”
그러나 라나가 당황한 와중에도 괴물들은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오길 멈추지 않고 있었다.
양손에 달린 손톱들이 날카롭게 빛난다.
저들의 공격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를 생각해 보면 라나는 이미 저들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고 봐야겠지.
아무래도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시간은 없을 것 같다.
흘러내리는 식은땀. 라나의 검이 괴물들의 목을 겨눈다.
그렇게 아르카나를 쏘아내려던 순간.
“그만두세요! 레니 슈나이더!”
그 순간, 정체불명의 남자가 나타나 라나의 몸을 억눌렀다.
라나가 그에 대응하듯 반사적으로 검을 내질렀지만 안타깝게도 방향이 어긋나고 말았다.
콰아앙!
푸른 광선이 허공을 향해 쏘아진다. 라나로서는 기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큭..!”
라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새벽을 펼쳤다. 안개처럼 흩어진 몸.
라나가 태세를 바로잡는 데에는 채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당신은..!”
그렇게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라나가 이를 악문다.
짓씹듯 내뱉어진 이름.
“유찬!”
한때 학생들을 이용해 라나와 엘레나를 죽이려 했던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들끓어 오르는 적대감이 유찬을 향해 치솟는다.
‘괴물들과 손을 잡은 건가?’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라나의 머릿속은 냉정했다.
빠르게 회전하는 생각이 현재 상황을 진단하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황상 유찬이 저 괴물들을 도왔다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진정하십시오. 레니 슈나이더!”
“개벽!”
라나의 검이 유찬의 몸을 노린다.
그와 동시에 펼쳐지는 것은 무려 7서클에 달하는 유찬의 마법. 아케인 실드였다.
“지난 일 년간 놀지는 않았던 모양이네요..!”
눈앞을 막아서는 반투명한 장벽.
라나는 그에 맞서듯 푸른 오러를 내뿜었다.
소드 마스터까지는 단 한 걸음만이 남은 검이다.
콰앙!
눈부신 여명의 검이 유찬의 방패를 두드린다.
“레니 슈나이더! 진정하세요! 당신은 지금 속고 있어요!”
“하! 그렇겠죠..!”
그러나 7서클의 마법을 부수기엔 아직 실력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방패의 단단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튕겨 나간 라나의 몸.
물론, 유찬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토막 난 마법 사이로 유찬의 피가 흘러내린다.
사태를 지켜보던 괴물들이 달려든 것은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큭..!”
라나의 걸음이 다급해졌다.
자칫하면 포위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다급하게 괴물들의 손을 흘려내는 라나의 검.
거리를 벌린 것은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괴물들의 힘이 약했다. 혹시 봐주고 있는 건가?
‘왜 손속에 사정을 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상대의 힘이 그랜드 마스터 급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대로라면 라나의 패배는 확정적이라고 봐야겠지.
라나의 검이 다시금 푸른 빛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대로 거리를 벌려 다시 한번 아르카나를 쏘아낼 작정이었다.
“..어?”
그런데 저 불꽃은 무엇일까.
그 순간, 라나의 눈앞에 원을 그리며 춤추는 불꽃.
마치 그녀를 제지하려는 것만 같은 움직임이다.
“이프리트?”
그 불꽃의 모습에 누군가의 이름이 떠오르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넋이 나간 듯한 라나의 물음에 불꽃이 다시 한번 원을 그린다.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만 같은 기분이다.
라나는 머릿속이 급격히 냉정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면, 괴물들과 유찬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뒤이어 떠오르는 것은 괴물들을 가리키며 십검이라 칭하던 성검의 모습이다.
당시에는 고장이라도 난 게 아닐까 의심했던 모습.
그런데 만약, 고장이 난 게 성검이 아니라 그녀의 머릿속이었다면?
“혹시.. 엘레나야?”
라나가 괴물을 향해 묻는다. 그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괴물.
아니, 엘레나 마이어.
라나는 머리가 핑 도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모든 것이..
“이상한 건 나였다는 건가?”
괴물들을 향해 겨눠졌던 성검이 맥없이 바닥을 향한다.
자칫하면 제 손으로 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라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라나의 시선은 어느덧 유찬에게 닿아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의 해답을 알고 있는 건 그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동하면서 설명하도록 하죠. 이대로 가면 영원히 이 세계에 갇혀버릴지도 모르니까.”
유찬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