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 악마를 죽이는 방법(1)
아르카나의 변화는 급진적이었다. 녹아내리는 몸.
무너지는 육체가 날아드는 칼날을 삼켰다.
아니, 정말로 이런 걸 몸이라고 불러도 되기는 하는 걸까.
형태 없이 일그러진 육체에서는 유황이 끓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몸이 유황으로 변한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사람의 몸에서 날 만한 소리가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그륵.. 그륵..
그래, 사신장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흐르는 몸. 늪처럼 변해버린 아르카나의 육신은 다가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사실, 그조차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삼켜버린 그것은 이내 붕괴하고 말았으니까.
“..저게 뭐지?”
이어지는 것은 폭발이다. 그와 동시에 루멘의 머릿속에 스치는 의문.
그것은 눈앞의 ‘무언가’를 보는 순간 불현듯 찾아든 한 줄기의 이성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지?’
그런데 차라리 미쳐 있는 게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눈앞의 무언가를 보는 순간, 루멘의 얼굴에는 공포가 깃들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공포라는 것은 본디 이성이 있고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감정이었으니까.
“내가 왜..?”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눈앞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생물이, 아니.. 정말로 살아있긴 한 건지조차 의문인 무언가가 그를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루멘은 본능적으로 한 발자국 물러서려 했다.
콰득.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뒤로 물러설 ‘발’이 존재하지 않았다.
저 정체 모를 무언가에 의해 뜯겨나갔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악!”
고통은 없었다. 다만 두려움이 있었을 뿐이다.
팔과 다리가 사라졌는데도, 그의 몸이 저 정체 모를 무언가를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공포.
콰드득!
차디찬 공포에 비하면 고통은 차라리 상냥했다.
루멘은 그저 무력하게, 자신의 육체가 물감처럼 흩어지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물론 그라고 해서 마냥 보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젖혀보기도 했고, 발버둥 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신체의 태반이 사라져 버린 이상, 루멘은 그저 울부짖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지라는 이름의 공포 앞에서는 수백 년을 살아간 전사조차도 어린아이와 다름이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얼마를 두려움에 떨었을까.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이윽고 루멘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에 이르렀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순간 루멘이 떠올린 의문 하나.
그러나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신장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이제 사원에는 정체불명의 검은 물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남은 것은 태양신의 영혼과 그것을 뒤덮은 사념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외부에서 순환하는. 차마 측정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쌓여 있는 마기의 소용돌이.
콰득. 콰드득.. 콰득!
불현듯, 무언가를 씹어 부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무엇을 씹고 있는 건지 모를 정체불명의 소리.
그 소리가 울려 퍼질 때면 어김없이 검은 형체가 꿈틀거렸다.
당장에라도 터져나갈 것처럼 들썩이고 있었다.
그 거대한 마기가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건 남아 있는 한 줌의 오러 덕이었다.
퍼석!
물론, 그런 오러조차 이제는 사라지고 말았지만..
‘드디어 네가 내 손에 들어왔구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의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영혼을 움켜쥐는 거대한 마기.
외신의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기야, 에테르와 오러를 잃어버린 이상, 외신의 등장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육체가 없는 만큼 이름 역시 존재하지 않았고, 이 세계에 영혼을 잡아둘 그릇도 없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그의 영혼은 사실상 손쉬운 먹잇감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지.
‘어서 오거라. 이름 없는 영혼아. 이제 나의 것이 되어 이 세상을 삼켜라..!’
마기의 소용돌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하늘을 떠받치는 것은 거대한 기둥이었다.
용의 승천을 떠오르게 하는 폭풍이 세계를 물들였다.
그 여파에 휩쓸린 주위의 모든 것들이 무력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순식간에 가루처럼 분쇄되어 버릴 것만 같은 맹렬한 바람.
‘너의 힘으로 저 하늘의 태양을 죽여라!’
허나 그런 바람보다도 무서운 것은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의지였다.
마의 종주이자 멸망의 근원. 세계를 삼키는 거대한 눈.
흘러넘치는 광기와 방향성을 잃어버린 폭력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졌지만 그 힘을 휘두르는 데에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도 교활한 두뇌를 가졌지만 결코 세상을 위해 지혜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것은 외신이라 불리며 배척당하고, 세상 만물 온갖 것들의 경외를 받으며 군림하는 것이다.
“음.. 거절할게.”
오직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어떻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거지?’
그 순간 벌어진 것은 외신조차도 차마 예기치 못한 이변이었다.
하기야 설마 외신의 의지 앞에서도 제정신을 유지할 존재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만.
두근!
상대가 아무리 전직 마왕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필멸자에 불과하다.
태양신도, 외신도 되지 못한 반편이.
두근!
그런데 고작 그런 반편이 따위가 그의 뜻을 거절한다고?
아니, 심지어 조롱하기까지 한다고?
“설마 이게 전부야? 이러면 조금 곤란해지는데?”
정체 모를 그것이 외신을 향해 속삭였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진다.
외신으로서는 더없이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공포와 미지를 주는 존재이지 의문을 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콰드득.
영혼을 둘러싼 마기가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영혼을 짓뭉개버릴 듯 움직이는 마기.
‘감히 너 따위가 나를 도발하는 거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지금까지 외신이 보이던 집착과 노력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상 그것은 외신이 지금까지 벌여온 모든 계획을 수포로 돌리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설마 겁이라도 주려는 건가?
허나 단순히 그렇게만 여기기엔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마기가 죄어든다, 강철을 우그러트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무래도 외신은 진심으로 저 영혼을 짓뭉개버리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이제 되었다. 그만 사라져라.’
하기야, 생각해 보면 외신이라는 존재는 늘 그런 존재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계산하며 일을 벌이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대가 더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했다.
세계의 흥망 성패를 변덕스럽게 결정했고, 기분의 여하에 따라 표적을 정했다.
따지고 보면 그가 기계신의 세계를 부순 것도, 이 세계를 노리고 찾아온 것도 한낱 변덕의 소치가 아니던가.
‘어차피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억겁의 시간 후, 이 세계는 피할 수 없는 파멸에 젖어 들 것이다.’
태양신과 외신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의 틈새.
이윽고 외신에게서부터 떨어져 나간 조각 하나가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것의 정체는 세상 그 어떤 산보다도 거대한 ‘외신의 팔’이었다.
‘흔적도 없이 부숴버려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구나.’
이윽고 외신의 명령이 떨어졌다.
저 가당찮은 영혼을 씹어 부수고, 흔적조차 남김없이 지워버리라는 명령.
그런데 그 행동에서부터 까닭 모를 경계심이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조금 전부터 마치 모든 미련을 버렸다는 것처럼 행동하는 외신이지만, 그 이면에는 무언가 다른 감정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하기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의 사태는 분명 외신으로서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을 테니까.
본디 그의 예상대로였다면 저 영혼은 진작에 그의 사도가 되어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그의 힘을 받아 이 세계를 멸할 거대한 군단의 첨병이 되었을 테니까.
“드디어 납셨군.”
마기의 소용돌이가 멈춘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소용돌이 안쪽의 붉은 무언가가 외신을 바라본다.
외신은 눈을 부릅뜬 채 그것을 마주했다.
설마 저 녀석은 처음부터 이렇게 되는 걸 노리고 있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지.’
아니, 그럴 리 없다. 외신의 눈이 분노에 불타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수십 개의 팔을 더 떨어트리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만약 그 순간 태양신의 공격이 이어지지 않았더라면 세계는 또 한 번 감당할 수 없는 재앙에 신음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지.
“태양신..”
그러나 미래는 바뀌었다.
줄곧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태양신은 처음으로 외신을 향해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세계에 미칠 영향이 두려워 가만히 있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날 방해하겠다는 거냐?”
“마치 이 싸움을 내가 시작한 것처럼 말하는군. 나는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자는 것뿐이다.”
“태양신..!”
그렇게 신들의 싸움이 재개되었다.
* * *
눈앞에는 거대한 마기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내가 저지른 짓이지만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순간.
그러나 진정 내가 해야 할 일은 여기서부터가 관건이었다.
과연 내가 이 막대한 마기를 온전히 흡수할 수 있을까?
“일단 해봐야지.”
휘몰아치는 마기를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극히 일부만 떼어놓고 봐도 벨제뷔트의 그것에 필적하는 마기의 양.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는소리를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 모든 마기를 흡수하고 다스릴 적에야 비로소 나는 출발점에 설 수 있을 테니까.
“..후.”
습관적으로 호흡을 내뱉으며 마기를 끌어당긴다.
그려내는 것은 원이다. 마기를 회전하듯 빨아들이는 거다.
막막하기 짝이 없는 시작이었다.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다.
딱히 나를 방해할 만한 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쿵!
아니, 하나 있었군.
“외신의 팔이라니.. 나 하나 잡자고 보내기엔 좀 지나친 거 아닌가?”
아무래도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전력으로 빨아들이기엔 지나치게 거대한 힘이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는 힘을 견뎌내기는커녕 나 스스로가 견뎌내지 못하고 폭주하고 말 테지.
콰드득.
..어쩌면 이미 늦어버린 건지도 모르고.
“이런 미친..”
단 한 번의 실수가 낳은 패착.
균형을 잃은 힘이 나를 떠밀기 시작했다.
발 닿을 곳 없이 치솟은 영육이 구름의 위로 솟구친다.
콰드득!
그런 와중에도 외신의 손은 나를 향해 뻗어오고 있었다.
“좋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의 의지가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내 영혼 자체가 심검이 되어 버린 듯한 감각.
허공에서 제멋대로 뒤섞이는 의지의 힘이 차츰 폭풍의 핵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모조리 삼켜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렇게 방향을 바꿔 가는 폭풍. 나의 시선은 외신의 팔을 향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안에 깃든 마기라고 해야겠지만.
“더 큰 먹이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콰과과광!
쏟아지는 폭풍이 외신의 팔을 관통해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재생하는 외신의 팔.
당연하겠지만 같은 마기로는 저것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거에 삼켜졌다간 모든 게 끝나버리겠지.’
그리고 지금 내 몸은 사실상 거대한 마기의 덩어리와도 같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 손에 붙잡히기라도 했다간 모든 것이 끝나고 말 테지.
물론 내 정신이야 무사할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다.
결국 내 영혼은 저 거대한 마기의 와류 속을 떠다니며 간신히 정신만을 유지하게 될 테니까.
“그런데 내가 널 잡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잡혔을 경우의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사냥당하는 것보다는 사냥하는 쪽이 취향인 사람이었다.
“혹시 술래잡기 좋아해?”
폭풍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저 거대한 팔을, 마기의 결정을 휩쓰는 거대한 파도.
“이 정도로 널 부수진 못하겠지만.. 균형을 무너트리는 정도라면!”
외신의 팔이 격렬한 기세를 견뎌내지 못하고 쓰러진다.
울려 퍼지는 굉음.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뻗어지는 손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그래, 잘 왔다.”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그것에 맞서지 않고 순응했다.
나는 내 안의 모든 마기를 비워버렸다.
기껏 삼켜냈던 마기들은 물론이고 데모닉과 사신장에게서 삼킨 마기조차 남김없이 뱉어버렸다.
마기에 젖어있던 나의 몸이 순식간에 정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텅 빈 그릇처럼 변해버린 나의 영혼.
거기에는 더 이상 태양신도, 벨제뷔트도, 데이브 클락이나 아르카나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콰직!
그곳에는 오직, ‘나’만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