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 신살(1)
다음 순간, 날카로운 광선이 쏟아지며 태양신의 몸이 갈라졌다.
또 한 번의 죽음. 반으로 갈라진 태양신의 시신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마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는 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걸리겠지.
싱거울 정도로 간단한 결말이었다.
‘..뭐지?’
그런데 이겨도 이긴 듯한 기분이 들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태양신을 쓰러트리는 순간, 외신은 피부를 두드리는 기묘한 위기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진정하자. 아마도 괜한 걱정일 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극적인 반전이 벌어지기엔 이른 시간이 아닌가.
태양신을 쓰러트리는 데까지 고작해야 몇 초도 지나지 않았을 거다.
설령 마왕이 신룡의 신격을 삼켰다 한들 고작 하급 신 수준에 불과하겠지.
신을 초월하려 하고 있는 외신을 위협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다.
“..넌, 누구냐.”
아니, 그래야만 했을 터다.
그런데 저건 뭐지? 왜 이토록 몸이 떨리는 거지?
“..대체 넌 누구지?”
그곳에는 처음 보는 무언가가 떠 있었다.
공간에 녹아들어 있는 더없이 모호한 무언가.
황혼 혹은 새벽의 경계를 보는 듯한 어슴푸레한 것.
“뭐냐..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외신은 자신도 모르게 물러서려는 몸을 멈춰 세웠다.
오만함에 가까운 자존심이 도망이라는 선택지를 지워내고 있었다.
그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는 외신이 아닌가. 세상에 멸망과 공포를 흩뿌리는 존재.
그는 두려움을 주는 존재이지 두려움에 떠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다.
애초에 상대는 이제 막 신격을 얻은 존재다.
그가 질 이유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터다.
“..너였군.”
아니나 다를까. 막상 상대의 힘을 재보고 나니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신이 된 것치고는 제법이긴 했지만 그래 봤자다.
태양신은커녕 신룡이나 기계신에 비해서도 약한 힘.
놈이 신이 된 것 자체는 분명 의외였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의 승리는 명백한 진실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신중하게 가자.’
다만 그럼에도 경계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 까닭 모를 위기감 때문이겠지.
외신은 쉽게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팔을 휘둘렀다.
터엉!
쏟아지는 마탄의 비가 적의 몸을 꿰뚫는다.
순식간에 치즈처럼 구멍이 난 채로 허물어지는 적의 몸.
“..뭐지?”
외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시시한 결말에 미간을 모았다.
설마 지금 장난이라도 치자는 건가?
고작 이 정도에 죽어버릴 힘으로 외신에게 싸움을 걸었다고?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그러나 의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순간 외신의 등골을 스치는 기괴한 소름.
꾸물럭.
그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그것의 몸은 콜타르처럼 끈적였다.
몸에 난 구멍들이 서서히 들러붙고 있었다. 완벽한 재생.
마치 외신의 공격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듯한 모습이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건가?’
쉽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다. 분명 신력의 우위는 외신에게 있을 터.
공격이 통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터다.
아마도 허세를 부리는 거겠지.
“웃기지 마라!”
외신은 제 안에서 피어나는 공포를 부정했다.
쏟아져 내리는 검은 탄환이 다시 한번 적의 몸을 꿰뚫는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설마 타격을 입고도 멀쩡한 척 연기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런 것치고는 적의 힘이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겉으로야 연기를 한다 쳐도 그 내면까지 속일 수는 없을 텐데 말이다.
‘아니, 힘이 줄어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설마!’
그 순간, 외신의 뇌리를 스치는 광경이 있었다.
그것은 과거 흐름 속에서 자신의 팔을 집어삼키던 마왕의 모습이었다.
그가 흩뿌려 놓은 권속들을 마치 낟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워 삼키던 마왕의 모습.
‘하지만 신의 힘까지 삼킬 수는 없을 텐데?’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넘겼던 사건들이 이 순간 새로운 의미를 가졌다.
그때만 해도 외신은 제 팔을 집어삼키는 마왕의 모습에 분노했을지언정,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터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계에 떨어진 팔에는 신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신력이 없는 팔은 사실상 원본과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수준이 떨어졌으니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사실, 그렇기에 진짜 외신의 팔을 삼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삼키는 순간 오히려 몸이 박살이 나고도 남을 멍청한 행동.
그러나 이 순간, 마왕은 분명 외신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이 다른 신의 힘을 삼키다니.
그건 사실상 스스로의 신격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애초에 그런 게 가능했다면 외신은 수억 년 단위의 계획을 세우지도, 스스로의 죽음을 가장하지도 않았을 거다.
다른 신을 삼킬 수 있다는 건 이론상 신살을 거듭하기만 하면 신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게.. 이게 대체.”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은 분명 진실이었다.
외신의 마음이 혼란에 젖어 든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 놀랄 것 없잖아?”
‘그것’이 입을 연 것은 그 순간의 일이었다.
“나는 딱히 신을 삼키는 게 아니야. 태양신이나 기계신에게는 이런 짓도 못 한다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검은 폭포 사이로 무언가 붉은 것이 비쳤다.
아마도 눈이겠지. 놈의 눈이 외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외신은 그 사실에 더할 나위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내가 삼킬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
“..뭐라고?”
그러나 그것도 잠시. 외신은 이어지는 놈의 말에 전신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저놈은 지금..
“설마.. 나를 죽이기 위한 업을 쌓아 올렸다는 거냐? 고작 몇 년 사이에 어떻게?”
외신은 마왕의 지난 ‘수만 년’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시간에 새겨지지 않은 진실.
그렇기에 외신은 마왕이 쌓아 올린 살의를, 오직 외신을 죽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힘을 이해하지 못했다.
“업? 그런 건 몰라. 나는 그냥 네가 죽이고 싶은 것뿐이니까.”
사실상 이곳에 있는 것은 마왕이 아니었다.
오직 외신을 죽이기 위해 벼려진 신살검.
지난 수만 년간이라는 시간을 마왕의 정신이 깎아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왕은 마치 쇠를 두드리는 대장장이처럼, 그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들여 제 마음속의 불순물을 제거했다.
그렇게 완성된 집착에 가까운 감정.
그것은 기억을 되찾은 지금에도 여전히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심검이라는 이름의 마검으로 말이다.
“이젠 내 차례야. 외신.”
붉은 눈동자가 외신의 모습을 담는다. 한 치도 떨어지지 않는 눈빛에 몸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다.
기묘한 열기가 느껴지는 시선이다.
“..할 수 있다면 해봐라!”
물론 힘의 격차는 여전하다. 그렇기에 외신은 애써 비웃음을 유지하며 탄환을 쏘아냈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이전 같은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외신의 마음은 이미 공포에 젖어 들고 있었다.
퍼석!
외신은 발악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나를 삼키겠다고?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라!”
외신은 흐름 속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나친 힘의 격류에 휩쓸려 당장에라도 터져 나갈 것만 같았던 그 모습을.
비록 당시의 마왕은 결국 그 힘을 바탕으로 원영신을 구성하긴 했지만 지금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지금의 외신에게는 그때처럼 마왕에게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제약이 없었으니까.
기이잉!
외신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소용돌이.
세계를 부숴버릴 듯한 거대한 바람이 놈의 몸을 몰아친다.
이어지는 것은 빛의 파도였다. 설령 신이라 해도 견뎌내지 못할 위력의 붉은 광선.
“크하하하하하하!”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적의 모습에 외신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그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하는 놈의 모습.
그 모습은 격류에 휩쓸려 사라지는 낙엽과도 같다.
외신은 이대로 끝을 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뭐 잊은 거 없나?”
“태양신!”
문제가 있다면, 삶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외신의 몸이 태양신의 몸에 밀쳐졌다.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회복한 거지?’
외신은 태양신에 대해 잊고 있던 게 아니었다.
단지 그가 이토록 빠르게 전장에 복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뿐.
외신이 알고 있는 태양신이라면 분명 재생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했기 때문이다.
‘설마 지금까지 나를 속이고 있었던 건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
급기야 외신은 태양신이 지금껏 남모르게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게 딱 이런 꼴이었다.
하기야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조금 전 그의 손에 의해 강해진 적이 ‘흐름’을 회복시키고 있다는 걸.
그렇게 회복된 흐름으로 인해 태양신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걸.
“개벽.”
태양신의 손에서 펼쳐진 일섬이 세계를 갈랐다.
지금껏 미동조차 없었던 외신의 운명이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새벽의 검.”
어둠으로 가득했던 틈새가 미약한 빛을 머금었다.
휘둘러지는 것은 아득한 지평을 가르는 여명의 빛이었다.
“젠장.”
외신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조금 전과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물론, 외신은 태양신과 달랐다.
부활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태양신과는 달리 외신에게 있어 이런 상처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외신의 몸이 즉각적으로 합쳐졌다.
사실상 외신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상황이었다.
“너 따위가 감히!”
그러나 외신은 저런 하찮은 존재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쿠구구구궁!
외신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태양신조차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한 외신의 전력이 끌려 나오는 거다.
“이제 그만 사라져라!”
상황은 손쉽게 뒤집혔다. 외신의 팔이 태양신의 목을 분질렀다.
물론 외신의 분노는 고작 그런 정도로 사그라지지 않았다.
촤아악!
그대로 찢겨나가는 날개.
희미하게나마 불타고 있던 세계가 다시금 어둠에 잠겨 든다.
그렇게 얼마를 화풀이에 전념했을까.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외신이 암흑 속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그의 계획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 거다.
“어쩔 수 없지.”
외신은 그대로 태양신의 시신을 붙잡았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이대로 그의 영혼에 저주를 심어버릴 작정이었다.
본래의 계획과는 거리가 있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외신 역시도 순순히 죽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혹시 잊은 거 없어?”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인 걸까.
외신은 제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은 환각을 느꼈다.
뒤돌아선 곳에 있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의 덩어리였다.
‘..그래, 내 힘을 삼킬수록 강해진다는 거냐?’
더 이상 마왕이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가 그곳에 서 있었다.
사조성과도 같은 붉은 눈.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날개.
이렇게 되면 외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자칫하면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할 수 있는 맹견이었다.
운명이 그에게 준비한 대적자였다.
“..너를 무어라 불러야 하는 거지?”
외신의 물음에 그것이 미소 지었다.
요사스러운 빛을 품은 붉은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마신.”
그 직후 두 명의 신이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