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 신살(2)
콰직.. 콰직. 콰득. 까득. 까드득.
기괴한 소음이 들려온다. 강철과 원목이 찢겨나가는 듯한 굉음.
쿵!
이윽고 드러나는 것은 광기의 향연이다.
조각난 세계 속에서 두 명의 신들이 서로의 몸을 찢어내고 있었다.
한쪽은 상대의 팔을 물어뜯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상대의 심장에 손을 박아넣고 있다.
물론 어느 쪽이 더 치명적인가는 명백했다.
승패는 시간이 흐를수록 명확해져 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마신이 곤혹스럽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사실, 그가 이 전투가 꿈속에서 재현한 대로 이뤄졌더라면 이토록 고전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외신의 몸을 흡수하는 것보다 그의 몸이 죽는 게 더 빨랐다.
전력을 낸 외신의 힘은 그가 상정하고 있던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서고 있었다.
하기야 그가 생각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꿈속의 외신이다. 현실과 오차가 있는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겠지.
‘그럼 이건 어떠냐..!’
하지만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역순환을 그려내는 마신의 손.
물론, 지금의 마신이 가진 힘으로는 세계를 완벽하게 되감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건드리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내고 말겠지.
‘예상한 대로야..’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마신의 목적이기도 했다.
맞물리는 회전. 어설픈 역순환에 반발하듯 외려 순환의 힘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런 거였군.. 네놈들을 모조리 죽여야 이 짓도 끝난다는 거구나!”
이윽고 부활한 태양신. 그러나 태양신의 합류에도 불구하고 외신의 우세는 여전했다.
하기야 상대는 지금껏 수많은 세계를 삼키며 초월에 닿은 존재다.
그런 존재를 겨우 두 명이서 막기는 힘들겠지.
결국, 마신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태양신.”
“..그래, 지금이 그때인 거군?”
“..미안하다.”
그 순간 태양신은 한때 마신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스스로도 자신의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던 마신의 계획.
“미안할 필요 없다. 사실, 내가 더 미안해야지.”
태양신이 전장을 이탈했다.
외신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판단이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 두 신이 장난을 칠 것 같진 않았으니까.
“…”
이렇게 되면 체면 같은 걸 차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번쩍이는 눈동자. 외신의 눈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광선이 태양신을 향해 날아든다.
“그렇게는 안 되지!”
물론 마신이 그걸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호선을 그려내는 마신의 손톱.
그 어떤 검술과도 궤를 달리하는 초식이 펼쳐진다.
파삭!
외신의 반신이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차마 외신이 반응할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사실상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라면 마신은 이미 외신을 압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외신의 신력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부족했더라면, 전황은 뒤집혔을 테지.
‘놈이 신력을 쌓는 걸 막아야 해..!’
외신의 마음이 불안으로 젖어 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다.
그의 생애 전체를 통틀어 처음으로 느껴본 위기감이었다.
“..저건.”
그러나 초조함이 깃드는 순간, 때마침 외신의 시야에 들어온 물건 하나가 있었다.
이 텅 빈 공간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그것.
그 정체는 신룡이 남기고 간 신좌였다.
‘..저걸 이용하면.’
사실, 본래라면 외신이 저런 것에 손을 대는 일은 없었을 거다.
신좌에 손을 댄다는 건 그 자신을 이 세계의 규칙에 속박시킨다는 것.
그렇게 되면 설령 외신이 초월을 손에 넣는다 해도 수많은 제약이 가해질 테니까.
사실상, 외신의 계획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러나 이대로 가면 외신의 계획은 시작도 전에 좌절해 버릴 거다.
외신은 차라리 돌아가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눈앞의 적은 더 이상 손속에 사정을 두어 이길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이걸 왜 내버려 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외신의 손아귀가 신룡의 신좌를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부풀어 오르는 그의 몸.
외신은 스스로가 한층 더 초월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크흐흐..”
그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수히 늘어서 있던 팔들이 한 쌍의 팔로 합쳐진다.
하나에 불과했던 눈은 두 개가 되었고, 구체를 이루고 있었던 몸은 늘어났다.
그렇게 변화를 마친 외신의 몸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것을 닮아 있었다.
마신은 그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인간이라는 종족과는 참 연이 깊네.”
쿵!
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힌다. 폭풍과도 같은 충격이 대기를 휩쓴다.
“크헉!”
충돌의 결과는 마신의 패배였다. 단숨에 으스러진 반신이 힘겨운 재생을 거듭한다.
표면적이 줄어서일까. 이전과는 달리 외신의 힘을 빼앗기가 쉽지 않았다.
“크하하하하!”
외신은 그런 마신을 비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아니, 저런 걸 진정 걷는다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
콰앙!
마구잡이로 휘두른 팔다리가 외신의 몸을 포탄처럼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직은 인간의 몸에 익숙지 않은 까닭이겠지.
외신의 몸짓은 사실상 움직인다기보다는 발악에 가까워 보였다.
콰직!
다만 행동은 어색할지 몰라도 위력은 대단했다.
휘둘러지는 외신의 주먹이 마신의 전신을 으스러트린다.
콰득!
물론 마신 역시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날아드는 주먹을 그대로 물어뜯는 마신.
“퉤! 젠장..!”
그러나 이전과는 다르게 이가 들어가지 않는다.
작아진 만큼 몸이 더 단단해진 듯한 기분이다.
“쓸데없는 발버둥은 그만둬라!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외신은 이미 스스로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지금의 마신만으로는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지?”
그러나 마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뭐라고?”
그 순간 외신의 전신을 관통하는 것은 강렬한 위기감이었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변한 감각이다.
“뭘 하려는 거냐!”
이변을 깨달은 외신이 곧바로 인과의 흐름에 개입하려 했다.
뭔지는 몰라도 이대로 보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다.
“제, 젠장.. 이게 대체..!”
그러나 인과에 개입할 수 있는 건 외신만이 아니었다.
결국 실패로 돌아간 외신의 시도.
“수고했다. 태양신.”
“그래, 뒤는 너에게 맡기마.”
태양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신격이 마신의 몸에 깃들고 있었다.
다음 순간, 외신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칠채색의 흐름이었다.
순환과 역순환을 거듭하며 이 세상 모든 섭리를 거부하는 그것.
아니,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태극.
“..아.”
그것을 보는 순간, 외신은 본능적으로 저 태극이 자신이 바라던 것임을 알아보았다.
본래라면 이 세계의 멸망을 제물 삼아 빚어내려 했던 초월의 단서.
‘저것만 있으면..!’
아마 저걸 삼킬 수만 있다면, 외신은 그토록 바라던 존재가 될 수 있겠지.
신의 경지를 초월한, 지금껏 그를 구속하던 모든 섭리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어 모든 걸 부술 수 있을 거다.
“아아..!”
외신의 얼굴이 환희에 물들었다.
뻗어지는 양손이 태극을 이룬 구체를 더없이 소중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그 순간, 외신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듯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제 마신이나 태양신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기분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내 거야.”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가 움켜쥐고 있던 태극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어?”
멍하니 움직인 시선. 흘러 나간 태극이 도달한 곳에는 마신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본 외신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것은 그가 나유타의 시간을 지새우며 기다려 왔던 물건이다.
고작 하급 신 따위가 움켜쥘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건 내 거다!”
외신은 곧바로 마신을 향해 달렸다.
마신이 그것을 집어삼킨 건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식간에 절망으로 젖어 드는 외신의 얼굴.
마신은 그런 외신을 마주하며 웃었다.
“아니, 내 거야.”
허망하기 그지없는 결말이었다. 아마 본래의 외신이었다면 분노했겠지.
그의 염원을 눈앞에서 빼앗아 간 범인을 보며 괴성을 질렀을 거다.
“..아.”
그러나 이 순간, 외신의 마음을 잠식한 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안타까움도, 슬픔도, 탄식도, 그 어떤 감정도 아니었다.
“아아아..!”
그저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공포가 있었을 뿐.
“그아아아아악!”
다음 순간, 외신의 몸이 갈라졌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재생이 이뤄지질 않았다.
외신은 제 영혼이 찢어지는 것만 감각을 느꼈다.
뒤집혀 버린 힘의 천칭. 외신의 마음에는 어느덧 공포가 깃들고 있었다.
“뭐냐,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물론, 마신이 태극을 삼켰다고 해서 그가 신을 초월한 건 아니었다.
초월이라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고, 외신쯤 되는 존재가 아니고서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말했잖아. 너를 삼킬 거라고.”
그러나 힘의 균형이 맞춰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가 같다면, 유리한 건 마신이었으니까.
그는 운명이 마련한 외신의 천적. 대적자였다.
“끄아아악! 그, 그만둬!”
끔찍한 고통이 외신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외신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고통 따위가 아니었다.
“내, 내 힘을 가져가지 마!”
그가 영겁이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것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
그의 삶 모두가 부정당하는 것에 비하면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외신은 발버둥 쳤다.
그 자신을 삼키려 드는 마신에게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너를 저주한다! 마신! 너는 결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너의 영혼은 저주받아 영원토록 시간에 귀속될 거다!”
그러나 실패했다. 남은 것은 최후의 발버둥뿐이었다.
외신은 자신의 모든 힘이 사라지기 전 마신에게 저주를 남겼다.
외신은 마신이 자신의 꿈을 망친 이상, 마신에게도 같은 고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나 클락! 니콜라스! 네가 사랑하는 것들은 영원토록 구원받지 못할 거다! 크하하하!”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걸고 행한 저주가 펼쳐진다.
저것에 당한다면 제아무리 마신이라 한들 견뎌낼 도리가 없을 테지.
그렇게 되면 설령 이 시간선을 구했다 하더라도 그의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파라켈수스는 승리하고, 세계는 결국 멸망하고 말겠지.
외신은 그렇게 멸망한 세계에서 다시 한번 부활을 노릴 수 있을 터다.
“그걸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나 마신은 웃었다. 마치 외신이 저주를 걸기만을 기다려 왔다는 것처럼.
“..왜 저주가 걸리지 않은 거지?”
그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외신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저주를 걸었는데 그것이 느껴지질 않는다니.
“아니, 저주는 걸렸어. 다만 내가 아니라 태양신에게 걸렸지만.”
마신은 그런 외신을 보며 말했다.
네가 건 저주를 대신 감당해 준 존재가 있노라고.
그 말을 들은 외신의 눈이 찢어질 듯 치떠졌다.
“서, 설마..”
“그래, 나는 일부러 너의 저주를 유도한 거야.”
“아니야!”
“설마 잊은 거야? 태양신은 원래 너에게 저주받아 죽을 운명이었어. 아니, 그래야만 했지. 그러지 않으면 인과가 꼬여버릴 테니까.”
“그래서 내 저주를 대신 받았다고? 설마..”
“그래, 우리가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지.”
외신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태양신은 그 자리에 죽어 있었다.
“물론, 세계를 원래의 흐름대로 돌리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그러나 아직 마신에게는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외신의 눈이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다.
마신은 그런 외신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래, 오늘 죽어야 하는 건 태양신만이 아니거든.”
마신이 손을 들어 올렸다.
외신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
끝내 소리가 되지 못한 외침이었다.
길었던 전쟁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