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303
제303화
“응애!”
카렌이 태어나고 모든 이들의 관심이 아이에게로 쏠렸다.
“어쩜 이리 이쁠까요?”
“아이가 다 이쁘지 뭐가 그리 대수라고 그러느냐?”
멜리사는 퉁명스레 말했지만, 눈빛만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부드러웠다.
“카리나를 아주 쏙 빼닮았습니다.”
“남자아인데 닮았으면 너를 더 닮았지. 아무튼 이 아이에게는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
카리나는 잠들어 있기에 멜리사는 렌에게 물었다.
모두가 궁금해했다. 과연 렌과 카리나의 첫 아이인 카렌은 무엇을 배울까?
카리나는 마법의 천재이지만, 렌은 검술로서 대륙 제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렌은 마법도, 신성력도, 궁술도 잘했고 모든 방면에서 웬만한 이들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재능을 보였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그 아이는 과연 그러한 재능들 중 무엇을 물려받을지.
그리고 무엇을 하게 될지.
렌은 아이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웃었다.
“아무것도 안 가르칠 겁니다.”
* * *
“카렌, 카렌 어딨니?”
프레이 아르젠이 다급히 카렌을 찾았다. 렌이 잠시 그녀에게 맡겨두었는데 잠깐 한눈판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아우! 어쩌면 좋아…….”
프레이가 허둥지둥 대며 숲속을 뒤졌다. 이제 막 3살이 된 녀석이 뒤뚱뒤뚱 어찌나 잘 뛰어다니는지.
하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아름다운 꽃들이 깔린 평원을 보여주려 데려왔는데 잠깐 먹을 것을 챙기는 사이에 숲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렇게 빨리 사라질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아무리 카렌이 잘 뛰어다닌다고 해도 이리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녀가 최대한 기감을 펼쳐서 주변을 살폈다.
그때,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혹시나 카렌이 늑대에게 해코지라도 당했다간 정말 큰 일 나기 때문이었다.
파사사삭.
그때, 사냥을 갔다 돌아온 리안이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카렌은?”
“그게…, 사라졌어.”
“……뭐?”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리안의 얼굴도 덩달아 급격히 굳어졌다.
그리고는 조금 전 늑대 울음이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프레이도 곧장 따랐다.
나무 풀숲을 헤치며 공터에 도착하자, 늑대들의 등에 업힌 카렌의 모습이 보였다.
털을 붙들고 늑대의 머리를 탁탁! 치며 웃고 있는 녀석.
“어머, 어떡해! 빨리 구해야-.”
“잠깐.”
그 모습에 리안이 멈칫하며 프레이를 제지했다.
이곳 아르젠 영지 근처에 서식하는 적랑(赤狼)들은 제법 사나운 놈들로 주변 다른 괴수들을 죄다 잡아먹을 정도로 강한 놈들이다.
인간들을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영역을 넘어선 인간이 약하다 싶으면 물어뜯는 걸 주저하지 않는 놈들이다.
근데 카렌을 등에 태우면서 같이 모여 있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아빠빠!”
“쿠릉! 쿠르륵!”
“시인기해애! 아빠빠! 타!”
“쿠르르륵! 카라락!”
“가! 가!”
“카락!”
카렌이 적랑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의 머리를 퍽퍽 치면서 어딘가를 손가락질하자, 녀석이 그곳으로 달렸다.
리안과 프레이는 당황하며 몰래 따라갔다.
“미친, 저거 대화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두 사람이 침을 꿀꺽 삼키며 적랑과 카렌의 동행을 감시했다.
적랑의 우두머리는 카렌을 태우고 이 근방을 돌아다니며 구경시켜주었고 그러다가 처음 카렌을 잃어버린 곳으로 돌아와 내려주었다.
“빠빠이!”
카렌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적랑들이 그에 화답하듯 울며 돌아갔다.
“카렌!”
“이모! 사암촌!”
카렌이 아장아장 걸어가 프레이에게 안겼다. 두 사람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카렌을 보다가 물었다.
“카렌, 너 적랑들이랑 뭐한 거니?”
“노라써!”
“네가 놀자고 했어?”
“응!”
“허어…….”
그 시각, 렌은 플레처와 함께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주 얼굴이 폈구나.”
“살도 많이 찌고 말이죠.”
그리 말했지만 실상 얼굴에 살 조금 붙은 정도였다.
“아버지는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래, 많이 피곤하지.”
그 말을 하며 플레처가 웃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 다음 나올 말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 것만 같아 렌이 벌떡 일어서려는데 무형의 힘이 그를 억눌렀다.
“……몸이 많이 회복되셨군요?”
“그래.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슬슬 욕심이 나는구나.”
플레처의 나이도 이제 벌써 중년을 지나 노년을 바라보고 있다.
렌은 조금씩 흰머리가 보이는 플레처를 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그리 보지 말거라.”
“보이는 걸 어쩝니까?”
“쯧, 그래서 말인데-.”
“그, 그만! 그 이상 말하지 마세요!”
렌이 손을 내저었지만, 플레처는 끝내 입을 열었다.
“이제 가주가 되거라.”
“…….”
할 말을 잃은 렌이 눈동자만 굴리며 그의 눈치를 보았다.
“아직 카렌도 키워야 하고 지금 카리나에게 둘째도…….”
“왜 그렇게 싫어하는 것이냐? 다른 이들은 죄다 아르젠의 가주가 되고 싶어 난리인데 말이야.”
“원래 가지지 못하는 떡이 더 맛있어 보이는 법이죠.”
“너도 가주가 되고 싶어 했다.”
“언제든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흥미가 떨어졌습니다.”
사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일부러 이리 말했다.
아버지가 이 말에 짜증이라도 나서 됐다! 꺼져라! 라고 말해주길 바라며.
“언제든지 될 수 있으니 지금 되면 되겠구나.”
하지만 그런 렌의 생각을 정확히 꿰뚫고 있던 플레처는 그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지금 너무 바쁩니다.”
“뭐가 바쁘냐? 이제 대륙이 너무 평화로워서 따분할 정도지 않던가?”
“카렌을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내겐 10명의 자식이 있었다.”
“……많이도 키우셨군요.”
할 말을 잃었다. 하긴 아버지도 나름 어릴 때 나를 봐주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직은 안 됩니다.”
“왜지?”
“어……, 그냥 조금만 더 쉽시다!”
딱히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막 나가기로 했다.
“…….”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렌이 멋쩍게 웃으며 일어섰다. 이럴 땐 얼굴을 안 보이는 게 최선이다.
“생각해보니 조상님과의 약속이….”
“2년.”
“예?”
“마지막으로 2년 주겠다. 2년 후에는 정말로 가주가 되어야 한다.”
정말로 이 땡깡을 받아줄 줄이야.
렌은 새삼 자신의 아버지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느끼며 밝게 웃었다.
“그때는 정말 그 자리에 앉겠습니다.”
“그래.”
* * *
브릴런트의 데케인.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그곳은 더 이상 방치되지 않고 브릴런트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며 영웅들의 묘역으로 지정되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전문 관리자들을 뽑아 그곳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마음대로 통행할 수 있는 이는 렌 아르젠을 포함한 왕실의 몇몇 인원들뿐.
나머지는 왕실에서 지정한 기간에만 드나들 수 있게 바뀌었다.
“이야…! 이 녀석 진짜 물건이란 말이지? 5살짜리 꼬맹이가 벌써부터 이 돌덩이를 든단 말이야?”
“포터 아저씨! 나도 그거 가르쳐줘! 나도 쾅! 하고 막! 나무도 쓰러트리고! 막! 바위도 들고! 할래!”
포터가 카렌 앞에서 자랑스럽게 거력을 자랑하자 녀석이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안 돼, 인마! 너희 아빠한테 혼나!”
“히잉.”
카렌이 울먹이자 안절부절못하며 턱뼈를 딱딱거리는 포터.
“야, 야, 야. 울지는 말고!”
“흐아아아아앙!”
급기야 눈물을 쏟아내는 카렌에 포터가 땀도 흐르지 않는 두개골을 팔로 비비며 카렌을 안았다.
“너는 내가 무섭지도 않냐?”
“응? 왜?”
“해골이잖아?”
“다른 아저씨, 할아버지들도 그러잖아?”
“그렇긴 한데…, 그럼 다 같이 무서워해야지 않나?”
“포터! 왜 또 애를 울리고 그래?”
데케인 마법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고 로브를 눌러쓴 그녀가 다가가 소리쳤다.
“내가 울린 게 아니라…….”
“카렌? 저런 멍청한 아저씨 기술 배울 거 없이 너는 마법을 배우면 돼.”
“정말?”
“그럼, 이 언니가 마법을 정말 잘 쓰거든! 너희 아빠도 나한테 배웠다?”
“우아! 나도! 나도 배울래!”
울음을 뚝 그친 카렌이 소리치자, 다른 영웅들도 슬그머니 다가와 대화에 끼어든다.
“마법은 무슨? 손이 고운 게, 조각술하면 딱이겠구만?”
젬마가 조각칼을 들이밀며 말했고.
“쯧쯧, 다들 참 무지하시네요. 어릴 때부터 음률을 배워야 귀가 좋아집니다. 특히 저 잘생긴 얼굴이 딱 내 어릴 적 같은데, 악기 배우면 세상 모든 여자를 꼬실 수 있죠. 어때? 카렌, 나와 악기나 배우자.”
“미래를 알아야 삶이 편해지는 거야.”
평소에 하루에 말 한마디도 잘 안 하던 그레이스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뭘 보는 거야? 밤 아니면 너 아무것도 못 보잖아?”
젬마가 비웃으며 말했고 그녀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살아가려면 몸이 단단해야지!”
“공부가 중요합니다. 마법에 대한 이론은 어릴 때부터 익힐수록 유용하죠.”
“쯧, 뭘 모르는군! 남자라면 뜨거운 불길 앞에서 쇠를 두드리는 게 진짜 삶이지!”
“아까 보니, 그림자를 의식하더군. 그림자술을 배울 재능이 있다.”
“이 녀석은 뜀박질을 잘한다! 각술을 배워볼 생각 없나?”
“카렌, 너를 괴롭히는 놈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법을 알려줄게.”
“궁금한 게 생기면 나를 찾아오십시오. 카렌 님.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데케인에 잠들어 있던 영웅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카렌을 자신이 가르치겠다며 달려들었다.
“쯧, 애를 왜 이리 괴롭혀?”
그때 그들 사이로 하벤베르크가 들어가 카렌에게 작은 검을 건넨다.
“대장 할아부지!”
렌이 항상 하벤베르크가 최고라고 말하며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대장 할아부지가 되어 있었다.
“너는 검을 배워야 한다.”
“왜?”
“그야 당연히 네가 렌의 자식이니까.”
그 말에도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카렌.
그때 둘째를 업고 있던 카리나가 다가와 한숨을 푹 내쉬며 마력을 이용해 카렌을 품으로 데려왔다.
“애 좀 그만 괴롭히세요!”
카리나가 도끼눈을 뜨며 영웅들을 노려보자, 그들이 주춤하며 시선을 돌린다.
“머저리들. 뭔 애를 그리 가르친다고. 렌이 아무것도 안 가르친다고 한 거 못 들었나?”
존 레반이 고개를 절레 저으며 비웃자, 아엘리나가 피식 웃으며 반박한다.
“악마의 힘 때문에 못 가르쳐줘서 그러는 거지?”
“뭐, 뭐? 그따위 것 없어도 너희들보다는-!”
“그만, 다들 그만 좀 하십시오. 애 앞에서 어른답지 못하게 왜들 이러십니까?”
보다 못한 렌이 다가와 말한다.
“제가 아무것도 안 가르치겠다고 한 건, 그냥 카렌이 하고 싶은 거 하게 하려고 한 겁니다. 카렌.”
“응!”
“너는 뭘 하고 싶니? 이 중에서 제일 흥미가 가는 게 뭐야?”
영웅들의 긴장된 시선이 일제히 카렌에게 쏠렸다.
렌과 카리나도 조금은 긴장했다. 카렌이 무엇을 고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다!”
“응?”
“다 할래!”
렌과 카리나가 멍하니 서로를 바라봤다.
그 대답을 들은 영웅들이 박장대소하며 웃었고 하벤베르크가 다시 검을 쥐여주며 말한다.
“제 아비를 똑 닮았군. 그렇다면 검이 가장 먼저다.”
* * *
드디어 약속했던 2년이 흘렀다.
가문의 새로운 가주를 맞이하기 위해 외부로 임무를 나갔던 이들까지 모두 돌아와 가문으로 모였다.
지난 흑성과의 마지막 결전에서의 공식적인 선언 이후 8년 만이었다.
“지금부터 아르젠 가문의 소가주는 가문의 가주가 된다.”
플레처가 선언하고 아르젠의 가주를 상징하는 가보인 ‘대자연의 검’을 건네주었다.
검신에 은은한 푸른 빛이 도는 검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연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검.
아버지는 이 검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고 실제로 그는 사대 유파의 검술을 쓰지 않았다.
우웅-
대자연의 검을 잡으니 검이 울었다.
“제 주인을 만난 듯이 기뻐하는군.”
“감사합니다.”
이제 아버지는 원로원으로 넘어가 가문의 대소사에는 관여하지 않은 채 여생을 즐길 것이다.
검의 입회식도 사라졌으니 그들이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검을 들 필요도 없어졌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검의 입회식을 없앤 이유에는 이 이유도 있었다.
아버지 또한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웃음을 지었다. 눈빛으로는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라고 말하는 듯했다.
저벅…, 저벅….
권좌로 향하는 카펫을 구둣발로 지르밟으며 걸어간다.
양옆으로 도열한 가문의 기사들 사이를 걸으며 그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기억에 담았다.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탁. 탁. 탁.
권좌로 향하는 대리석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오를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 정말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마지막에는 시간을 끌며 권좌에 오르는 것을 미루기까지 했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군.’
권좌에 앉았다.
아르젠의 가신들이 일제히 군기 잡힌 모습으로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가주의 선언을 기다리고 있다.
전율이 일었다.
이러한 기사들이 전부 자신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맹세하며 따르리라는 것이.
과거, 꿈에만 그리던 대륙 최고 검가의 가주가 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저들의 긴장된 시선, 희미한 떨림, 불안정한 호흡까지.
눈을 감고 아버지가 앉았던 가주의 권좌를 느꼈다.
딱딱한 팔걸이의 감촉과 불편한 등받이. 화려함과 위엄있는 모습에 집중한 탓에 나타난 부작용이었다.
이렇게나 불편한 자리였던가.
아버지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새삼 또 느껴지는 순간이었고, 동시에 이 자리가 가진 책임감과 부담감이 몰려왔다.
저 멀리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쳤다. ‘어떠냐? 그 자리에 있을 만 하느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불편하군.”
그 말을 들은 가신들의 표정이 나름 볼만하다. 권좌에 앉아 처음 말하는 것이 ‘불편하군.’이라니…, 라는 듯한 얼굴들.
“그만큼 가주라는 자리가 마냥 편한 곳은 아니라는 거겠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혹시나 이 자리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을까 봐, 하는 말이지만 가주라는 위치는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가주를 물려받지 않았었지.”
대자연의 검을 들었다. 검신에서 청광이 흘러나와 웅혼한 검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이상 모든 소임을 다할 것이며 옛 아르젠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초월에 이른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투기가 위압감을 자아내며 가주실 전체를 뒤덮었다.
그들 모두가 대단한 기사들이었지만 렌이 내뿜는 투기는 그 격이 달랐다.
그것을 받아내던 아르젠의 기사들이 침음을 삼켰다.
한동안 풀어진 모습만 보였던 렌이라는 기사가 대륙 최강의 기사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 렌 아르젠이 아르젠 가문의 가주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스릉! 스릉! 스릉!
그의 말과 동시에 가문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저마다 내뿜을 수 있는 기세를 최대한 드러내며 새로운 가주를 향한 경의와 충의를 표한다.
“위대한 아르젠의 기사를 위해 충성을 맹세합니다!”
사대 유파의 장들이 모두 선창하고 가문의 기사들이 따라 선언한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검을 납검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모든 장면이 느리게 흘러가듯 모든 것들이 세세하게 눈에 담겼다.
지난 기억들을 되새기며 다짐했다.
‘다시는 과거를 잊지 않으리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과거의 실수가 대물림되지 않도록.
– 멸망한 왕국의 묘지기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