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302
제302화
라실렌 대륙에서 올해 가장 큰 행사가 신성 왕국에서 거행되었다.
아르젠의 소가주인 렌 아르젠과 로자리아의 차기 여왕으로 유력한 카리나 엘리엇의 결혼이 브릴런트나 바란, 로자리아가 아닌 신성 왕국에서 진행된 것이다.
멜리사 엘리엇 여왕은 로자리아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렌 아르젠이라는 기사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보니, 바란이나 브릴런트의 고위 인사들은 두 사람의 혼약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이어지게 되면 결국 렌 아르젠의 힘이 로자리아에 실릴 수밖에 없으니.
“오랜만에 오는군. 바스티안은.”
“예, 폐하.”
브릴런트의 국왕으로서 렌의 결혼식에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다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달려온 루이즈와 알란이 바스티안에 도착했다.
“큰일이군. 이래서 렌과 부인의 얼굴을 볼 수나 있겠나?”
“걱정 마십시오. 이미 로자리아 측에서 따로 시간을 잡아두었습니다. 폐하.”
“다행이군.”
“제국의 3검주와 1검주가 와 있다고 합니다.”
“알겠네. 그들을 보고 시간이 남으면 발렌베리의 가주도 한 번 만나봐야겠군.”
“현명한 생각이십니다.”
알란은 루이즈를 흐뭇하게 보았다.
과거의 루이즈는 다른 이들과의 교류를 어색해하고 잘 다가가지도 못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능숙하게 다른 귀족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외교력을 계속해서 증진했다.
점점 더 그는 왕에 어울리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많이도 왔군.”
“두카스 전 교황의 추모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폐하.”
그들이 아는 유력 귀족들이란 귀족들은 죄다 온 것 같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들도 많은데 벌써부터 바스티안의 성문은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이래서야 갑자기 적이라도 쳐들어오면 큰일이 아닌가?”
“그만큼 대륙이 평화로워졌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알란의 말에 루이즈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드는 것이겠군. 배워야겠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때, 뒤쪽에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돌아갔다.
제복을 입고 정돈된 기세를 내뿜는 아르젠 검사들의 모습에 좌중들이 홍해처럼 갈라지고 그 사이로 그들이 걸어왔다.
“반갑습니다. 브릴런트의 국왕이시여. 레오노라 아르젠입니다.”
“루이즈 헤르티아입니다. 렌 경의 결혼을 축하해주시러 오셨군요.”
뜻밖의 만남임에도 루이즈는 여유롭게 그녀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알란은 일부러 나서지 않았다.
“맞습니다. 국왕 폐하와의 만남이 더 일찍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하하, 제 취임식 때 뵙길 기대했었습니다만, 바쁘셨던 것 같습니다.”
“예, 그 당시에 아르젠의 일을 제가 다 도맡다 보니 시간이 없었네요.”
상대가 브릴런트의 국왕임에도 레오노라의 기세는 그대로였다.
그저 위와 아래가 아닌 동등한 위치임을 각인시키듯, 그녀는 그를 대했다.
현재 아르젠의 위상은 그 정도였다. 바란 제국의 황제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될 만큼.
하지만 알란은 그녀의 무례에 기분이 나빠 끼어들까 하다가 이어지는 루이즈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근데 카리나 부인께서 아이를 가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르젠의 후계자입니까? 로자리아의 후계자입니까?”
알란은 그 물음에 놀랐지만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서 이런 민감한 이야기를 불쑥 내던질 줄이야.
천하의 레오노라조차 조금은 당황했는지 곧장 대답하지는 못했다.
대화의 주도권이 루이즈에게로 넘어온 것이다.
“저는 부인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 말에 고민하던 그녀가 대답했다.
“아르젠의 후계자가 되겠죠. 물론, 경쟁은 해야 하겠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부인. 렌 경도 그리 생각하겠습니까? 그는 브릴런트의 귀인이며 대륙을 구한 영웅입니다. 로자리아의 공주가 렌 경과 어울리는 배필이긴 하나, 결국은 로자리아 사람. 타국에서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루이즈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고, 알란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본다.
루이즈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줄은 그조차 상상도 못 했다.
“지금 그 말은 타국에서도 렌과의 혼약을 진행하자는 건가요?”
“굳이 타국이 아니더라도 기회를 주자는 말입니다.”
“그건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 생각하네요. 우선은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어요.”
레오노라가 먼저 자리를 떴다.
“폐하, 진심으로 그리 말씀하신 겁니까? 사실 저도 그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대들이 원할 것 같아 생각은 해보았지만, 사실 렌이 원할지는 모르겠군.”
“영웅은 삼처사첩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 정치적으로 이게 맞습니다. 렌 아르젠 경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카리나 공주가 자식을 두셋만 나아도…, 어우.”
알란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근데 이 이야기를 카리나 공주가 들으면 매우 싫어하겠군.”
“걱정 마십시오. 그녀도 일국의 공주입니다. 그 정도는 이해할 겁니다. 설령 싫어한다고 해도 제가 제안한 것으로 하시죠. 제가 다 가림막이 되겠습니다.”
사실 이리 말해도 루이즈는 자신이 했다고 말할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알란이 더욱 자신이 이런 일들을 도맡으려 하는 것이었고.
“……그게 좋겠군.”
“예?”
“카리나 공주가 아이를 가지면서 상당히 날카로워졌다고 하더군. 모건 경이 그러는데, 과거 멜리사 여왕을 쏙 빼닮은 게 조심하라던데…, 잘 부탁하네. 재상.”
“……알겠습니다.”
알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근데 렌 경에게 누구를 보낼 생각이십니까?”
“내 동생이 있지 않나?”
“……미리암 왕녀를 말하시는 겁니까?”
“그래, 렌과의 인연도 있고 미리암 정도면 브릴런트 내에서도 그 미모를 따라올 자가 없지 않나? 거기다가 총명하기도 하지.”
루이즈가 자랑하듯 말했고 알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암이 이어진다면 저희에게 매부가 생기는 거군요.”
“그렇지, 그것도 최강의 기사가 매부가 되는 셈이네. 하하.”
* * *
성대한 결혼식이 시작되고 각국의 인사들이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제국의 전 황제인 아서 세르펜티우스부터 현 황제인 에드워드 세르펜티우스까지 친히 이 먼 성국까지 올 정도로 렌의 위상은 대단했다.
결혼식은 성황리에 끝이 나고 이어지는 피로연으로 하객들이 모여들었다.
렌은 카리나와 함께 피로연의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축하하러 와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축하하네.”
바란의 황제인 에드워드가 다가온 렌과 카리나를 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이리 직접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오래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군.”
황제는 렌과의 인사만 잠깐 하고 바로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와주신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그래, 음……, 이 자리에서 이런 말 하기 조금 그럴지 모르겠지만, 나는 효율적인 걸 추구해서 말이지.”
“말씀하십시오.”
“나의 배다른 여동생 중에 천하절색인 아이가 있네. 한 번 만나보겠는가?”
렌이 놀라 카리나의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카리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감사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없습니다. 폐하.”
렌은 정중히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에드워드 또한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다음에는 제국에서 보지.”
“예.”
황제가 떠나자 이번엔 전 황제가 다가왔다.
“방금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껏 취한 듯한 모습의 아서가 술잔을 들이밀며 말한다.
“생각이 있기는 한 건가?”
그렇다고 말하면 자신의 딸들을 죄다 데려올 것 같은 눈빛에, 렌이 고개를 저었다.
“벌써 생각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가.”
“아휴!!”
그때 뒤쪽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에 렌이 고개를 돌렸다.
레시아와 프랜시스가 렌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고, 그 옆에선 세이아가 ‘우리 아들 힘내렴.’이라고 입 모양만으로 말하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녀와 같이 있던 멜리사 여왕은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고.
‘……내가 뭘 잘못했지?’
분명 나름 정중히 거절했는데.
혹시 몰라 카리나를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렌을 보며 레시아가 구시렁거렸다.
“저 바보 오빠가. 오히려 정적인 게 진짜 무서운 법인데.”
“폭풍전야라는 말이 있지. 저런 놈은 한 번 크게 당해봐야 정신 차려.”
“에휴…, 언니,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런가요?”
레시아의 물음에 프랜시스가 당황을 애써 숨기며 대답한다.
“어…? 어……, 그렇지?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
“에이든도 나중에 그러려나…….”
“레시아, 의료원에서 내가 아카데미 소문도 많이 듣거든? 근데 에이든 걔 소문 별로 안 좋던데?”
“네? 에이, 에이든이 얼마나 착한데요?”
“매번 같이 있는 여자들이 바뀐다고 그랬는데.”
“그거 다 친구들이에요!”
“그, 그렇겠지? 설마 천하의 렌 아르젠 동생을 만나면서 그런 대담한 짓거리를 하겠어?”
“그럼요!”
렌은 피로연에 온 여러 귀족들과 모두 짧은 인사를 나누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피로연의 단상 위에 올라섰다.
“저희 부부를 축하하러 와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이곳에 계신 모두에게 앞으로 행복과 축복이 깃들기를!”
카리나와 서로 잔을 부딪치며 술잔을 비운 후 두 사람은 피로연을 나왔다.
교황성으로 향한 둘은 그곳에 모여 있던 추기경들과 교황을 만났다.
“두 분의 영원을 기원합니다.”
애스턴과 추기경들이 두 사람의 축복을 기원했다.
“오늘 주례를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국의 교황 성하께서 직접 결혼의 주례를 맡아주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카리나가 감사 인사를 전하자, 애스턴이 웃으며 대답했다.
“렌 경의 부탁이라면 이제 태어날 아이 아카데미 입학식에도 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렌과 카리나가 웃었다. 농담인 걸 알지만, 정말로 부탁하면 올 것도 같다는 게 더 웃겼다.
“성하…, 그것은 조금.”
옆에 있던 뽀글머리 헤론이 그를 말렸고 렌은 그럴 일 없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럼 이제 두 분은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렌과 카리나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였다.
애스턴과 추기경들이 그 아기를 위한 축복을 내려주는 의식을 진행했다.
신의 문양이 그려지고 그곳에 룬어가 여기저기 새겨졌다.
“렌 경과 같은 위대한 영웅으로 자라나길, 카리나 공주처럼 아름답고 총명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며 신의 축복을 내리겠습니다.”
신성 마법진의 중앙에 렌과 카리나가 섰고 그들의 정면에 애스턴이, 나머지 추기경들이 마법진을 빙 둘러싸며 신성력을 뿜어냈다.
밤하늘에 황금빛 신성력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 옅은 장막처럼 다시 내려와 두 사람을 감쌌다.
그들의 위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신의 형상이 떠오르다 이내 사라진다.
“아이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애스턴이 물었고 두 사람이 서로의 시선을 마주치며 씩 웃고는 대답한다.
“카렌입니다.”
“저희 두 사람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어요.”
“하하하, 좋은 이름입니다. 카렌이 무사히 태어나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