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0)
30화 – 인간 적응기(4)
나는 슬슬 용병으로서의 활동을 개시하기로 했다.
C랭크로 오른 것까진 좋지만 랭크를 더 올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타국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B랭크 수준은 되어야 했으니까.
적어도 국경에서 첩자 혐의를 받지 않고 검문을 수월하게 통과하려면 어느 정도의 실적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는 거다.
“어.. 이, 이게 대체 뭐죠?”
“밥값입니다.”
나는 서툰 존댓말로 선물을 건네주고는 곧장 용병 길드로 향했다.
쥴리의 이모라는 사람의 얼굴이 퍽 우스웠다.
하기야 난데없이 목 없는 사슴을 받게 되면 누구나 그런 표정을 짓겠지만.
“오, 또 보는군.”
“할 일이 없는 건가? 용병이 의뢰는 안 가고 뭐 하는 거지?”
“응? 그때와는 말투가 좀 다른 것 같은데..”
“..큼. 실례했군요.”
아무래도 말투 교정에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나는 대충 손을 휘적이며 이 근방에서 할만한 의뢰가 있는지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이 수염 난 용병 놈. 아까부터 날 쫓아오는 기분이다.
“..뭡니까?”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자네가 무슨 의뢰를 받는지가 궁금해서.”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는데 아무래도 기분 탓은 아닌 것 같다.
설마 이렇게까지 대놓고 수작을 부릴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아무리 궁금해도 그렇지 보통 이렇게까지 하나?’
뭐든 간에 귀찮게 되었다. 어쩌면 고를 직업을 잘못 선택한 건지도 모르지.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행상인이 되는 거였는데.
“에휴. 말을 말아야지.”
나는 한숨을 내쉬는 한편, 눈으로는 빠르게 의뢰서들을 살피며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살폈다.
이왕이면 이 거머리 같은 놈을 떼어놓을 수 있는 일을 고르는 게 좋겠지.
‘아니면 반대로 지나치게 어려운 의뢰를 수행하러 가볼까?’
전에 살펴본 바로 추측하건대 이놈의 수준은 기껏해야 C랭크일 가능성이 컸다.
내가 A랭크의 의뢰를 수행하겠다고 나선다면 감히 쫓아올 생각을 하지 못할 거라는 뜻이다.
‘문제는 지금 내가 받을 수 있는 의뢰가 B랭크까지라는 거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용병들이 받을 수 있는 의뢰는 자신의 랭크로부터 한 단계 낮거나 높은 의뢰까지가 한계다.
지금 내 기준으로는 D랭크에서 B랭크까지라는 거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귀찮음은 감수해야만 할 것 같다.
“음? 뭔가 오한이 드는데..”
나는 적당한 의뢰를 받아들고는 그대로 접수처로 향했다.
남자가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음.. 혹시 두 분이 함께 가시려는 건가요?”
“오, 물론이지. 내가 이 친구에게 용병에 대해 알려 줄 생각..”
“아뇨, 혼자 갈 겁니다. 이 사람이랑 저는 모르는 사이거든요.”
“이봐, 그건 좀 섭섭하지 않.. 어딜 가는 거야?”
나는 내 뒤를 따라나서는 남자를 뒤로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대로 속도를 높여 완전히 따돌릴 작정이었다.
“이, 이봐! 뭐, 뭔 놈의 다리가 그렇게 빨.. 가, 같이 가자니까!”
다행히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의 기척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기야 뉴비건 베테랑이건 간에 고작해야 C급 나부랭이다.
용사 시스템을 통해 단련된 내 속도를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나는 그대로 검문소를 통과해 영지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아, 안 되겠다! 둘러싸!”
그런데 저 녀석. 혼자가 아니었던 건가?
나는 어느샌가 내 주위를 둘러싼 이들의 모습에 혀를 찼다.
검문소 주변치고는 이상하게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설마 저 녀석. 인신매매나 강도 집단의 두목 같은 거였나?
아무리 그래도 영지 안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거지?
“후욱.. 후욱. .그, 그러게. 진작에 멈췄으면. 쿨럭. 이런 일도 없잖아.”
나는 잘난 듯 말을 늘어놓는 남자를 노려보다 힐끗 검문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어쩐지 반응이 묘하다.
분명 병사들도 이 소란을 봤을 텐데 제지하러 나서는 기색이 없었다.
설마 이 녀석에게 뇌물이라도 받은 건가?
‘그 망나니한테 뭐라 할 처지가 아니구만? 영지가 전반적으로 썩어 있어.’
이곳을 다스리는 귀족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실패한 건 자식 교육만이 아닌 것 같다.
한때나마 이 영지에 품었던 좋은 감정들이 퇴색되는 기분이다.
‘그냥 이대로 잡혀가는 편이 좋을까?’
여기서 반격에 나섰다가는 괜한 역풍을 맞게 되겠지.
그렇다고 해서 저 병사들까지 단숨에 쓰러트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일단 대화라도 시도해 볼까?
“대체 뭘 하자는 거지?”
“오, 말투가 원래대로 돌아왔군.”
“뭘 노리는 거냐.”
그래, 한 번 물어나 보자.
대체 뭣 때문에 이러는 건지 정도는 들어봐도 괜찮지 않겠나.
“C랭크 용병 데이브 클락. 소집령을 받으시게. 오테 팔레아스 남작께서 자네를 찾으시네.”
“..뭐라고?”
그런데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
설마 저 남자. 용병이 아니라 영지에 소속된 병사였던 건가?
그런데 왜 망나니 놈에게는 그런 짓을 한 거지?
* * *
그래, 사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긴 했다.
아무리 막장 영지여도 그렇지. 대낮부터 이런 짓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내 이름은 카드낙. 팔레아스 경을 모시는 종자라네.”
그런데 보통 귀족씩이나 되는 양반이 이런 짓을 하나?
솔직히 의외인 것을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팔레아스 남작이 기사였을 때 거뒀던 종자라는 거군.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이 용병 짓이나 하고 다니는 거지?”
“자네도 용병이면서 너무 심한 말을 하는군. 해봐서 알겠지만 용병도 그리 나쁜 직업은 아니야.”
“그래서 대답은?”
“정보 수집을 위해서일세. 겉보기엔 이래도 나는 꽤 머리가 좋은 편이거든.”
종자치고는 힘이 약하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실무관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럴 거면 왜 종자가 된 거지? 행정관을 하는 편이 나은 거 아닌가?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고. 머리 좋은 양반. 하지만 그전에 물어볼 게 있다. 대체 왜 날 데려가려는 거지?”
“간단한 이야기지. 팔레아스 경께서 자네를 보고 싶어 하신다네.”
“..뭐 때문에?”
“흠? 자네라면 이미 짐작했을 줄 알았는데. 혹시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나?”
나는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였다.
하긴, 지금 상황은 누가 봐도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데려가려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아야겠지.
사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세상 모든 일이 연구소나 마족에 의해 돌아가지는 않을 테니까.
“그 망나니 때문이군.”
“그래, 역시 머리가 좋군. 아니면 눈치가 좋은 건가? 뭐든 간에 좋은 일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건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뜻이니까.”
“나한테 다 자란 자식 교육이라도 시킬 작정인가?”
“그 점은 내가 말할 부분이 아닌 것 같군. 우선은 따라오게. 그리고 의뢰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내가 보낸 병사들이 자네를 대신에 완료해 줄 테니까.”
그거참 고맙기도 하군.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일단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제외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럴 이유가 없기도 하고. 어쩌면 이 점을 이용해 오히려 내 계획을 진행 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일단은 따라가도록 하지.”
그러니 우선은 이놈들을 따라가자.
나는 한숨과 함께 내 옆에 선 병사에게 검을 건넸다.
혹시나 해서 예이츠의 검을 두고 온 것이 다행이었다.
* * *
같은 시간, 단탈리안과 안드로말리우스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늪처럼 질척이고 진득한 마기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까닭이다.
“왔구나. 단탈리안. 안드로말리우스.”
그래서일까. 단탈리안은 자신의 이름이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대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니, 대답하기는커녕 차마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은 그들.
거기서 조금이라도 고개를 드는 순간, 저 무시무시한 마기에 찢겨 나갈 것만 같은 공포가 그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으니까.
“으윽..”
숨을 쉴 수가 없다. 공기가 끈적거린다.
눈이 빠질 것처럼 아프고 전신의 피부가 불에 타는 것처럼 지끈거렸다.
‘마, 마기가 무거워..’
생전 처음으로 마기라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받아들이기가 힘든 현실이었다.
분명 그들 마족에게 있어 마기라는 건 그 무엇보다도 친숙한 힘일 텐데..
‘이게.. 내가 알고 있는 마기가 맞긴 한 건가? 지금까지 내가 다뤄왔던 힘과 같은 거라고?’
미사여구는 제외하고, 그냥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저 앞에 있는 것은 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천상의 존재라는 생각.
그들 같은 하급 마족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 들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 너희에게는 이곳이 버겁겠구나.”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런 두 마족을 마주한 마왕에게서 서글픔이 묻어나오는 까닭은.
‘마왕님?’
실로 불경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이지만.
단탈리안은 그 목소리가 무척이나 고독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공허하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리고 저 눈빛은 대체 뭐지?
분명 자신들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단탈리안은 그 시선이 무척이나 투명하다고 생각했다.
‘설마 마왕님께서는.. 아니, 그냥 내 착각이겠지.’
파아악!
다음 순간, 마왕성 내의 모든 마기가 사라졌다.
벨제뷔트가 성내의 모든 마기를 제 몸속으로 갈무리한 것이다.
“고개를 들라. 단탈리안. 안드로말리우스.”
“커헉..”
한결 가벼워진 공기. 그러나 안드로말리우스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처럼 어린 마족이 견디기엔 충격이 과했던 거겠지.
“안드로말리우스!”
단탈리안은 마왕 앞에서 추태를 보이는 그를 질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죄, 죄송합니다. 마왕님. 아무래도 안드로말리우스는..”
“이해한다. 오히려 내 배려가 부족했구나. 하급 마족이 이 성에 들어온 적이 드물어 내가 실수했다.”
벨제뷔트 역시 그런 안드로말리우스를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가 안드로말리우스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의 몸을 옥죄고 있는 마기를 풀어헤치는 것이다.
“헉! 여, 여기는..!”
“정신을 차린 모양이구나. 안드로말리우스.”
“마, 마왕님?”
그 덕분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안드로말리우스.
그러나 단탈리안은 차라리 그가 기절해 있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허둥지둥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지금 자기가 마왕님의 망토를 밟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그림자에서 그가 키우는 헬 하운드, 메르까지 떨어트리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이 접견을 빨리 끝내야 할 것 같다.
“그.. 마왕님. 일단 보고를..”
“그럴 필요 없다. 이미 너희의 마기에 담긴 기억을 읽었으니까. 실로 흥미로운 일을 겪었더군. 마기를 지워내는 용사라..”
다행히도 마왕은 이미 사태의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기에서부터 기억을 읽어낸 것이다.
물론, 그런데도 왜 연구원들에 대한 정보가 지워져 있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조금 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할 것 같군. 그런데 단탈리안.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뭐든 간에 이대로만 가면 무사히 접견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단탈리안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네, 마왕님!”
“이 개는 왜 내 발목을 물고 있는 거지?”
그러나 안도하는 것도 잠시, 이어지는 벨제뷔트의 질문에 단탈리안의 머리가 새하얗게 물든다.
혹시 지금 잘못 들은 것일까?
발목을 물다니? 대체 누가 그런 짓을?
“메, 메르!”
허나 현실 부정도 잠시.
이어지는 안드로말리우스의 절규가 냉혹한 현실을 일깨운다.
‘..설마.’
그 절규에 홀린 듯 고개를 내려보면, 자랑스럽다는 듯 마왕의 발목을 물어뜯고 있는 헬 하운드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나 잘했지?’라고 묻는 것처럼 눈을 빛내고 있는 메르의 얼굴.
“허.”
단탈리안은 이제 그만 기절하고 싶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