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3)
93화 – 라이벌 등장(1)
식사를 막 마쳤을 무렵.
하르트에게서 받은 검들을 손질하고 있으려니 꼬맹이들이 다가왔다.
“아저씨. 아저씨가 그렇게 강해요?”
“..엉?”
“라나가 아저씨가 우리를 구해줬다고 그러던데..”
아무래도 이 꼬마들, 라나에게서 내가 연구소에서 했던 일들을 듣고 찾아온 모양이다.
그런데 뭘 어떻게 설명했길래 저렇게 눈이 빛나는 거지? 마치 우상이라도 만난 것 같은 얼굴이다.
“..그래, 좀 강한 편이긴 하지.”
“오, 그럼 우리한테도 칼 쓰는 법 알려줄 수 있어요? 연구소에서 배운 건 쓸모가 없더라고요.”
“연구소라면.. 너희도 그 이상한 봉술을 배운 건가?”
“네, 근데 그걸로는 고블린밖에 못 잡겠더라고요.”
그야 그렇겠지. 원래 그런 식으로 쓰는 기술이 아니니까.
나는 지난 삶 속에서 보았던 최후의 불꽃을 떠올렸다.
마법소녀, 트윙클 다이아가 쏘아냈던 거대한 광선.
아마도 이들이 배운 봉술은 아마 그 광선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기술일 거다.
“음. 일단 그건 잊는 게 좋을 거다. 그런데 왜 검술을 배우려는 거지?”
그러나 마법소녀가 아닌 사람에게 그 기술은 한낱 몽둥이질에 불과하겠지.
사실상 맨손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 거다.
“이번처럼 흑마법사의 덕을 보긴 싫으니까요. 죽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악에게 빌붙고 싶진 않아요.”
흑마법사의 덕을 봤다라. 제법 껄끄러운 이야기다.
그러나 마냥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
영지 사람들에게야 흑마법사가 재앙이었을지 몰라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다를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흑마법사를 용서한다거나 그놈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애초에 그 녀석이 연금술사들의 접근을 막은 건 딱히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
그놈은 어디까지나 제 목적을 위해 그런 것뿐이다.
다만 아이들 입장에선 적에게 빚을 진 것 같아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인 거겠지.
그렇기에 힘을 바라는 것일 테고.
“우리가 좋자고 남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러면 저희가 연구소 사람들이랑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다분히 용사를 떠오르게 하는 발언이다.
확실히 연금술사 놈들이 사람 보는 눈은 있었던 모양이다.
만약 라나가 없었더라면, 차세대의 용사는 이 아이 중에서 나왔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저희는 힘이 필요해요. 폴 오빠에게만 짐을 지울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군.”
어쩌면 그래서 힘을 필요로 하는 건지도 모른다.
적과 싸우고자 하는 것은 용사의 본능이니까.
하지만 글쎄. 과연 폴이 너희를 지키는 걸 짐이라고 생각할까?
녀석의 사령술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하다.
이번에 어둠의 마력까지 얻었으니 전투력 면에서도 비약적인 성장을 거뒀을 테고.
아마 엘리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아래 단계 정도는 되겠지.
적어도 인간 세상에서는 적수를 찾기 힘들 거다.
“그놈 걱정을 하는 건 아닐 테고.. 폴만 싸우게 하고 싶진 않다는 거냐?”
“네, 맞아요. 만약 우리 중의 한 사람이라도 잡힌다면 폴 오빠는 위험을 감수하려고 할 테니까요.”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폴이라면 그러고도 남겠지.
하지만 곤란한 이야기다.
사정은 알겠지만 세상에는 가능한 일이 있고 불가능한 일이 있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역시 시간이다.
검은 재능만으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멀리 갈 것 없이 라나조차도 하루아침에 검을 익히진 못하지 않았던가.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건 어떠냐?”
“좋은 방법이요?”
“결국 너희가 걱정하는 건 연금술사 놈들의 추격 아니냐”
“네, 맞아요.”
나는 잠시 아이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서른둘. 여기에 폴까지 더해지면 서른셋이 되겠지.
“성녀..가 아니라 이자벨.”
“…”
“왜 그렇게 보는 거야?”
“아뇨, 이름이 불린 게 처음인 것 같아서.”
..하긴, 당황할 만도 하겠군.
나는 이자벨에게 아이들을 보였다.
“저 아이들의 문제, 네가 해결해 줄 수 있나?”
“네? 제가 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라는 건가요?”
“그럴 필요는 없지. 이 근처에 교단에 맡기면 될 거 아니냐. 가능하면 추기경 수준에게 맡기는 게 좋겠지만.”
“아, 그런 거라면 있죠. 하지만 괜찮으시겠어요? 그.. 누가 배신자인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이자벨의 걱정은 합당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라. 아이들의 목숨으로 장난질할 생각은 없으니까.”
“배신자인지 아닌지 알아볼 방법이 있는 건가요?”
“그래, 이 녀석이 있으니까.”
나는 그림자 속에서 마릴 녀석이 들어 있는 상자를 꺼냈다.
“물론 이 녀석이 모를 가능성도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때는 또 방법이 있다.”
나는 염제의 눈을 염두에 두며 이자벨을 안심시켰다.
“그런 것보다 문제는 저 녀석이지.”
“아, 확실히..”
“엥? 나 말이야?”
사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누가 봐도 마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폴 뷔마.
아이들과는 달리 저 녀석을 받아줄 만한 장소는 찾기 힘들 테니까.
“그래, 네가 교단에 몸을 의탁하긴 힘들 거 아니냐.”
“그거 인종 차별 아니야?”
“..진심으로 하는 소린 아니겠지?”
“물론 농담이지. 나도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진 알고 있어.”
그런데 어째 생각했던 것보다 담담한 반응이다.
저 녀석으로선 억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떨어지는 일인데 괜찮은 거냐?”
“뭐, 괜찮다고 하면 거짓이겠지. 하지만 동생들의 짐이 되고 싶진 않아. 무엇보다 내가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다니?”
“사람들이 이런 날 보고 보일 반응이 좀 걱정되거든. 날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하면 솔직히 못 견딜 것 같아.”
음. 그 부분에 대해선 뭐라 돌려줄 말이 없었다.
솔직히 나만 해도 사정을 모른 채 이놈과 마주했다면 검부터 뽑았을 것 같으니까.
“벨한테 환영 마법이라도 배워놔라. 혹시 아냐? 쓸 일이 있을지.”
“오. 그건 미리 배워놔야겠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음이 강한 녀석이다.
남들 같았으면 진작에 주저앉았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폴 뷔마는 꺾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폴의 마음을 높게 샀다.
폴에게 동행 제안을 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니면 우리랑 같이 가는 건 어때? 너도 마족에게 노려지고 있는 처지니 그게 나을지도 모르잖아.”
“그건 사양할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흠. 네 사령술 정도면 꽤 쓸만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를 따라다니다간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할걸?”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도 좀 충동적인 발언이긴 했으니까.
“그래도 고마워. 너답지 않게 그런 말까지 해주고. 전과 비교하면 꽤 인간다워진 거 아니야?”
“..글쎄.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묘한 어색함을 느끼며 고개를 젓는다.
인간답다라.. 그것만큼 나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 또 있을까.
나는 화제를 돌릴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응? 이 골목에서?”
“아니, 당연히 도심지 쪽에서지.”
내 대답에 폴이 고개를 움직였다.
아마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거겠지. 비록 얼굴은 없지만.
“약속 장소가 무너져 있으면 꽤 당황했겠는데?”
“글쎄. 꼭 그렇지만도 않을걸?”
“..그 사람들도 보통은 아니구나?”
그야 보통이 아니지. 무려 당대의 용사씩이나 되는 놈이니까.
당황은 무슨, 니콜라스라면 아마 도시의 몰골을 보는 즉시 우리의 짓이라는 걸 눈치챌 거다.
“그래도 일단 가봐야겠네. 왔을지 안 왔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이제 가는 거야?”
“그래, 기회가 되면 다시 보자고. 뭐, 안 보는 게 제일이긴 하겠지만.”
나는 폴의 말에 답하며 녀석의 몸에 깃든 어둠의 마력을 살폈다.
이번에야 내가 어둠의 정령을 쓰러트렸기에 별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족의 배신자도 이 계획을 하루 이틀 준비한 건 아닐 테니까.
어쩌면 지금도 어디선가 또 다른 어둠의 정령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지.
“..어떻게든 버텨 볼게. 너는 데크 마운틴으로 가는 거지?”
“그래.”
“영감님의 부탁. 잘 들어줘. 저 영감님 없었으면 난 몰라도 동생들은 굶어 죽었을 거야.”
“참고하마.”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자벨이 지부에 연락을 넣는 틈을 타 니콜라스와 합류할 생각이었다.
“가자, 라나.”
“네, 아저씨.”
라나가 내 말에 답하며 아이들을 돌아본다.
미련이 가득한 눈. 그러나 녀석은 그 마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눈이다. 때로는 너무 강하게만 자란 것 같아 안타까울 정도로.
“..또 보자. 라나.”
“건강해야 해!”
“저 아저씨가 괴롭히면 말해! 내가 혼내줄 테니까!”
영지를 떠나기 전에 다시 볼 건데 왜 벌써 작별 인사를 하는 걸까.
그리고 저건 또 무슨 소리지?
고개를 돌려보면 흑심이 가득해 보이는 소년 하나가 보인다.
절로 헛웃음이 나오는 순간이다.
라나 이 녀석. 또 한 놈 홀린 거냐?
‘이제는 놀랍지도 않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라나와 함께 도심지로 향했다.
이자벨은 옆 영지로 가서 연락을 넣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이 영지의 통신 설비가 망가진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호위가 없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폴 녀석이 따라갔으니 그 부분에 있어선 문제가 없을 거다.
“오, 도착했나 본데?”
나는 저 멀리서 니콜라스의 마력을 감지했다.
뒤를 잇는 것은 코끝을 스치는 숲과 재의 냄새. 보아하니 엘리아도 무사한 것 같다.
“다들 무사한 모양이군.”
“음.. 기사님이 안 보이는데요?”
“기사? 무슨 기사?”
“..벤 다이크 경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녀석도 있었지.
나에게 선뜻 검을 빌려줬던 순진한 기사.
“빼앗은 거면서..”
“흠. 그런데 정말로 안 보이는군. 혹시 죽은 건가?”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요. 니콜라스의 표정이 밝아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건 밝다기보다는.”
그런데 못 보던 사이 니콜라스와 엘리아의 분위기가 묘해져 있었다.
설마 그사이에 눈이라도 맞은 건가?
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야, 니콜라스.”
“어? 어! 야! 데이브!”
이름이 불리기가 무섭게 당황하는 니콜라스.
그런 녀석의 뒤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엘리아가 숨어든다.
‘얼씨구?’
혹시나 했던 마음에 확신이 서는 순간이다.
나는 무언으로 니콜라스의 눈을 마주했다.
녀석이 헛기침하며 눈을 피한다.
“그, 뭐냐. 오늘 날씨가 좋지?”
“너, 이 영지 꼴은 보고서 하는 말이냐?”
“..아.”
그제야 입을 다무는 니콜라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벤은 어디로 간 거냐?”
“아, 그게 좀 일이 있어서..”
“..일? 설마 죽었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기사님! 여기 계셨군요!”
“아, 그.. 사라 양.”
그 순간, 저 멀리서 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체 어디에 가셨던 거예요? 제가 얼마나 찾았는데!”
“아, 그게..”
그런데 저건 또 무슨 광경이지?
“야, 저거 뭐냐.”
“음. 여기 오는 길에 만난 아이인데 벤이 저 아이를 구해줬거든.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게..”
“..아주 쌍으로 난리구나.”
“하핫. 뭐, 그런 거지.”
생명의 은인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건가?
소설에 나온다면 개연성이 없다고 욕을 먹겠지만 벤 녀석의 얼굴을 보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저 얼빠진 놈은 알맹이와는 달리 겉모습만큼은 괜찮았으니까.
“어! 데, 데이브 경!”
“누구더러 경이라는 거야?”
“드디어 만났군요. 그, 그런데 성녀님은 어디에..”
“잠깐 자리 좀 비웠다. 조금 있으면 올 거야.”
“..네?”
벤이 당황하며 되물었으나 나는 태연했다.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냐.”
“..제가 말을 말죠.”
“뭐, 농담이고. 든든한 호위가 붙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호위요? 대체 어떤 사람이죠?”
“음. 너 정도는 수백 명이 있어도 못 이기는 녀석?”
“아..”
내 대답에 벤이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보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여린 녀석이다.
“기사님? 그분은 누구시죠?”
그러던 중, 벤 녀석을 쫓아다니던 소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짧게 친 붉은 머리칼. 나이에 비해 큰 키.
경지로 보아 대충 하급 익스퍼트 정도인가?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뭔지 모를 기시감이 드는 건 착각인가?
아니, 아무래도 익숙함을 느낀 건 나만이 아닌 것 같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소녀.
“앗! 당신! 그때의 그 흉적이군요!”
소녀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해온다.
역시 나를 아는 녀석이었나?
나는 다시 한번 소녀의 모습을 살폈다.
“너, 누구냐?”
그런데 진짜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