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28)
128막, 배역 그 이상의 악역 (2)
128막, 배역 그 이상의 악역 (2)
원래는 요청에 없던 설정, 장발의 친 첸.
이신우가 개인적으로 해온 그 분장은 미래에 관계자 중 하나가 수정했던 디테일이었다.
그게 누군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오늘 이 자리.
이러한 이신우의 분장을 예상한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다.
‘머리를··· 묶었어?’
심지어는 직접 각본을 다듬고 친 첸이란 캐릭터를 가다듬은 시나리오 작가 김태현마저도.
물론 본격적인 연기가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모두들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경험적은 신인이 저런 디테일을 신경써온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지.
감독인 박인수 또한 별 다른 언급 없이 리딩을 진행시켰다.
“···그럼, 시작합시다. 씬 13번 아지트!”
딱 그 입을 열기 전까지.
“햐, 한국이 좋긴 좋구나?”
곱게 기른 듯한 장발.
허나 헝클어진 채로 어딘가 야성미를 뿜어내는 그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머리끈을 풀어던지는 이신우.
이신우에게 박혀있던 박인수 감독의 시선도 물끄러미 그런 손짓을 따라갈 즈음이었다.
“양태야, 가져와라.”
“예, 형님.”
기존에 오디션에서 보여주었던 해방감의 두 배는 아득히 넘어설 것 같은 시원함.
그러한 시원함을 물씬 느끼게 한 이신우는 NG 한 번 없이 장면을 그대로 건너뛰었다.
대체 같은 장면과 대사를 얼마나 반복하고 입에 익혀놓은 건지.
물론 투탑 주연인 만큼 포커싱이 이신우에게만 뻗쳐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경위님, 그 불법체류자 새끼들 잡아서 어쩔건데요?”
“하··· 우리라고 냅두고 싶어서 냅두는 줄 아나. 어차피 의미없는 짓거리니까 웬만한 건 그냥 좋게좋게 넘기는 거지.”
두 단역배우의 반대편에 앉은 남유민은 신경질적으로 눈썹을 꿈틀거리며 핀잔을 경청했다.
어려서부터 정의감을 붙태워오며 경찰대학 수석 졸업을 이루어낸 신임 경위.
“이보쇼 경위님, 칼침 맞아본 적 있어요?”
그런 경위를 얕잡아보는 경사 역을 맡은 단역이 쿡쿡 찌르듯이 덧붙이길.
“여기 애들 다 대낮이고 밤이고 허리춤에 칼차고 나다녀요. 그냥 편하게 대학물 먹으면서 당신이 공부한 세상이랑 다르다고 어?”
단역에 불과한 사내임에도 흠잡을 데 없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이번 의 완성도를 미리 보여주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추방해봤자 다시 밀입국해올 거라는 말씀이죠?”
평소의 장난기라곤 찾아볼 곳 없이 날카로운 남유민의 눈매가 상대역을 향했다.
“햐, 이제야 얘기가 좀 통하네 우리 경위님! 이해가 좀 되셨······.”
“그럼 또 검거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예, 예?”
가리봉동의 상황은 처참했다.
태만한 경찰들과 스스로 호신용품을 두르고 다니는 주민들.
위조 신분으로 입국해 신원 추적조차 불가능한 조선족 범죄자들의 소탕을 두고.
“그놈이 추방당했다가 돌아오던 다시 중국에 눌러앉아 살던···.”
어린 시절 눈앞에서 부모님을 앗아갔던 어느 범죄자를 떠올리기라도 하듯 불타오르는 남유민의 눈.
“나쁜 놈이 나타나면 잡고 또 나타나면 다시 검거하고.”
그 맹렬한 눈에.
아니, 맹렬한 연기에 경사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게 경찰이 할 일 아닙니까?”
“···.”
“지금부터 이곳 가리봉동에 위치한 조직들의 명부와 세력도, 녀석들의 일거수일투족 뭐 하나 빠트리지 말고.”
어디서 받아온 건지 테이블에 놓여있던 팜플렛 하나를 서류철처럼 탁 집어던지면서 선언하는 남유민.
“당장 내 앞으로 가져오세요. 명령입니다.”
신출내기 경위임에도 묘한 위압감까지 자아내는 그 태도에 현장의 다른 이들도 눈과 귀를 열어젖혔다.
리딩의 흐름은 대충 그러했다.
이신우와 남유민이 서로 주고받는 연기 퍼포먼스.
그 사이로 크게 하나 빠지지 않는 단역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말미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긴 시간을 지나 리딩이 클라이막스 장면에 다다른 건.
이곳에선 재현해볼 수 없기에 중간중간 생략했던 격투씬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마지막 격투씬을 위한 두 사람의 대화.
영화 내에서 오직 단 한 번 마지막으로 맞붙은 두 사람.
정이현 경위와 행동대장 친 첸.
태만했던 경찰 조직을 규합한 뒤 가리봉동을 점령해나가던 친 첸을 몰아붙인 정이현은 따라붙는다.
막 현금다발만을 챙겨 급하게 해외로 도주를 결심한 친 첸을.
마침내 그 둘의 악연을 마무리지을 공중화장실.
“···.”
“어떡하냐? 너 비행기 못 탈 거 같은데.”
여권을 챙겨들고 비행기에 오르기 전 매무새를 정리해 나선 친 첸에게 정이현은 능청스레 묻는다.
이미 앞서 치가 떨리는 악랄함을 보여줬던 친 첸, 이신우가 나갈 출구를 막아서면서.
거기에 섞이는 우스개스러운 대사.
“혼자야?”
“어, 아직 싱글인데.”
풉.
예고에 없던 남유민의 애드리브에 누군가 터뜨리는 웃음.
그 웃음에도 불구하고 이신우의 얼굴은 더없이 딱딱하고 진중했다.
전혀 흐트러짐없는 표정과 태도로.
농담처럼 건넸던 남유민까지도 다시 얼어붙게 한 이신우는 머리끈을 잡아당겼다.
스르륵.
풀어헤쳐진 장발이 사자의 갈기처럼 헝클어졌다.
원래의 대본 속에선 그저 주먹을 풀고 격투 전 일부 자세를 준비할 뿐인 장면이었을 텐데.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두 손으로 모으며 입에 머리끈을 문 이신우는 좋지 못한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혹시 사람 죽여본 적 있니?”
거기에 남유민.
정이현 경위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었으니까.
그 즈음 머리끈을 다 묶은 친 첸도 옆에 있던 도끼칼 모형을 잡아들었다.
그 칼에 애정이라도 서린 듯 은근하게 훑어보면서.
마치 무언가를 회상이라도 하듯.
“살이 너덜거리고 피칠갑이 되어선 살려달라고 울고 불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야.”
섬뜩한 대사 위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물론 그 또한 잠시.
곧장 언제 그랬냐는 듯 통제불능의 야수처럼 눈빛을 바꾸는 이신우였다.
“너는 어떨 거 같니?”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만 같은 눈으로 히죽이는 입꼬리.
그 모순 가득한 표정 연기에.
“···하.”
무법도시의 시나리오 작가 김태현은 포기해버렸다.
더 이상 온 몸으로 번지는 소름을 어찌 할 바 없다고.
그냥 그대로 집어삼켜질 수밖에 없었다.
등골 너머로 소스라치는 감각에.
“···.”
“···컷!”
그러한 격정 속에 헤엄치던 이들 가운데 먼저 입을 뗀 건 박인수 감독이었다.
이 뒤로는 바로 피날레 격투씬.
사실상 오늘 리딩에서의 마지막 장면이 방금 전 끝나버렸으니까.
다만 그 다음으로 보인 박감독의 반응은 의외였다.
짝.
짜작짝.
“배역 하나하나 아주 잘 뽑았네그려.”
현장에서 오래도록 쌓아온 경력만큼.
이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들릴 법한 데시벨로 자찬한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찬이라고 하나 사실 그 칭찬이 향하는 대상은 배우들이었고.
“다들 이 날까지 참 고생 많았는데, 이렇게 보니 어떱니까?”
마치 건배사처럼 히죽 웃으면서 모두를 향해 물어보는 박인수 감독.
물끄러미 관계자들을 훑는 그의 시선은 얼마 안 가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막 촬영이 기대되고 그러지 않습니까? 나만 그런가?”
시나리오 작가 김태현을.
그 시선을 온전히 느낀 김태현이 뒤이어 입을 열었다.
비록 현장직으로 목청에 연륜이 배어버린 박감독에 비하면 모자랐지만.
“이번 무법도시의 각본을 맡았던 시나리오 작가 김테현입니다.”
배우들이 있는 쪽을 향하여 목을 기울이는 김태현.
인사를 마친 그는 박감독처럼 모두를 둘러보며 선언했다.
“제 금쪽같은 영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 배우분들에게라면 믿고 맡겨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짝짝짝.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
그 김태현의 시선도 마지막에는 한 배우를 향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배우는 알지 못했다.
‘내가 생각해냈던 친 첸···.’
각본 속 그 친 첸보다도 더 그 인물 같았던 연기를 보여준.
신인배우 이신우.
만약 대본 속 살인마가 살아서 눈앞에 나타난다면 딱 저런 느낌일까.
일말의 걱정까지도 깔끔하게 내려놓아버린 김태현의 뒤로.
“자아, 앞으로 딱 반 년! 반년만 더 고생해봅시다 우리!”
“와아아아!”
“좋습니다!”
“가자!”
박감독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본격적인 막이 오르고 있었다.
천만영화 무법도시.
대중들의 눈과 귀를 강타할 거대한 상업영화를 위한 막이.
* * *
“이제 촬영 날 빼면 더 봐드릴 게 없겠는데요.”
“네?”
연변 사투리를 가르쳐달라 초빙했던 언어 선생님으로서도 혀를 내둘렀다.
“더 이상 막 연습하고 공부하고 할 게 없어요.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연변 출신이라 해도 믿을 겁니다.”
“아···.”
촬영 날을 기다리며.
이미 유창해질 대로 유창해진 이신우의 연변 사투리는 더 이상 지적할 곳이 드물었다.
물론 더 유창해질 수야 있을 거고 그러면 자신으로서도 더 쉽게 돈을 벌겠지만 이미 앞서 이신우와 교습한 시간만 한참.
이제 그로서도 이 그칠 줄 모르는 우등생과의 관계를 내려놓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언어 선생님이 가버리자 그 빈 자리는 로드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가 채웠다.
아니, 사실 안 채워줘도 되는데.
“신우야 진짜, 너는 최고야 최고!”
요전 대본 리딩에 함께 간 날부터 이 상태인 김강현.
부담스럽기보다도 이젠 귀에 딱지가 앉고 지겨울 지경이었다.
물론 연기에 대한 칭찬이다보니 아직은 듣기 좋은 성질이 더 크지만.
“흠흠··· 솔직히 페이는 독보적이어도 1인 기획사다보니 처음 옮길 땐 좀 걱정했는데.”
그 옆에 신수연까지 거드는 건······.
“장난 아니긴 하더라 너? 끈 떨어질 리 없는 연 같아보였다 해야 하나.”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만!
“저 진짜 귀에 딱지 앉겠어요···.”
“기름칠이 아니라 진짜라니까 신우야?”
“형, 제발···.”
기름칠도 한두 번 해야 기름칠이지. 이제 진짜 진심이 아니라 아부로 들리잖아요.
“아무튼, 도와줄 게 있다면 뭐든 다 말해보라고. 알았지?”
으레 그러했듯 응원처럼 던지는 그 말.
허나 귀를 쫑긋 세운 내게는 달콤한 한 마디였다.
“그럼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
진짜로 부탁을 꺼낼 줄은 몰랐던 모양이지만 이미 뱉은 말은 무를 수 없었다.
“강현이형, 예전에 스턴트해본 적 있다고 했죠?”
“어어, 뭐 그렇지?”
역시.
유성태에게 들은 대로였다.
아무래도 저 큰 덩치라면 충분히 잘 어울리기도 하고.
아무튼 용건은 그게 아니지.
“저랑 합 좀 맞춰줄 수 있겠어요 혹시?”
“···너랑?”
“네.”
사실상 연기도 중요하지만 액션쾌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무법도시.
거기에 나는 아쉽게도 단역, 쓰러지는 역할 밖에 해본 적이 없는 조무래기였다.
즉 이 부분은 커버할 경험이 없다는 것.
“시간 나는 대로 꼭 좀 부탁드릴게요.”
“어, 어.”
내가 익혀야 할 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장 촬영이 얼마 남지 않은 앞으로까지도.
‘얼추 기본기만 익히고 나면 그땐 유성태 사장에게 한 번 부탁해봐야겠지.’
이번엔 내가 주연으로서 찍어볼 천만영화 무법도시.
그 안에서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기 위하여.
* * *
거의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작성하며 물밀 듯이 쏟아진 후기글들.
그리고 갑작스레 불어난 만큼 혼잡해진 카페 분위기.
모든 걸 다시 정리하고 정상화시키기 위해 학점을 일부 포기했던 임하연은 드디어 결실을 보고 있었다.
“하아아···.”
꽤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눈을 감으면 눈앞에 그 날 호텔에서의 밤이 되뇌어졌다.
팬들을 위한 이벤트라는 말에 충실하게 깊은 밤까지 연회장을 오픈하며, 팬들과 시간을 보냈던 이신우.
해외에서까지 온 영화감독이나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도 됐을 이신우는 그러지 않았다.
거의 밤이 새도록 팬들과 못 다한 이야기와 촬영장 이야기나 본인의 이야기도 풀어주고.
만약 돈을 내고 갔더래도 보람 있을 하루였다.
심지어 그 모든 걸 공짜로 베푼 데엔 감격이 벅찼고.
물론 딱 하나 걸리는 점.
유혜나였나?
일전에 안면이 트여있는 모양이었던 그 간호사는 ······.
조금.
아니, 좀 많이 굉장히 부러웠지만.
“나도 간호사나 할걸.”
“···그게 뭔 소리야 또, 이 정신나간 년이.”
학점을 포기한대도 이 디자인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 늘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수재.
그 와중에 웹 디자인 관련 자격증과 실무까지 쌓으며 알바비도 벌고 있는 그녀의 적성은 완벽히 이곳일 텐데.
“아니, 나도 간호사해서 운 좋았으면 우리 이신우배우님 병실에 근무했을 수도 있잖아!”
“진짜 정신이 단단히 나가버렸네, 나가도···.”
한편 그렇게 퍼질러버린 임하연이 문득 벌떡 몸을 일으켜세웠다.
“어!”
“또 뭐 떴어, 너네 배우님?”
호텔로 데려가주지 않은 그 날 이후로 부쩍 더 까탈스러워진 그녀의 동기.
설마 또 새로운 이벤트인가 했던 현지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에이 뭐야, 그냥 영화 얘기네.”
“버, 벌써!”
임하연으로선 다시금 감격과 기대에 젖었지만.
물론 수개월이 흐른 시점이긴 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벌써?
『남유민x이신우 주연 무법도시, 그 사이 절반 넘긴 촬영 단계··· 제작 순항 중』
얼마 안 가 시사회마저 할 기세였다.
그리고 그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는 임하연.
“이, 이번 시사회는 훨씬 더 빡셀 텐데···.”
무조건 먹는다.
아니, 먹어야 한다!
설령 끄트머리 자리일지라도.
그리 거칠게 결심하는 임하연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현지.
“미리 말하는데, 난 절대 도와줄 생각···.”
“야! 의리가 그런 게 어딨냐!”
“나 버리고 너 혼자 호텔 갈 땐 언제고!”
“그, 그럼 너도 카페매니저 하잘 때 같이 하지! 부매니저 시켜준댔잖아!”
유치하게 투닥거리는 둘을 두고도 시간은 서서히 흘러.
어느새 여물어갔다.
정말 공개시사회가 열릴 그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