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47)
47막, 비극을 삼킨 배우 (1)
47막, 비극을 삼킨 배우 (1)
첫 번째 촬영 현장을 찾은 여러 기자들.
그 사이에 선 백시현은 무딘 눈길로 현장을 바라봤다.
공교롭게도 백시현에겐 기자로서 별 다른 뜨거운 열정이랄 것이 없었다.
그저 연기파 배우들을 좋아하며 보는 눈이 조금 있었을 뿐.
우연찮게 시작했던 기자 생활은 그의 적성에 참으로도 걸맞았다.
특유의 일목요연하고 분석적인 서술은 여러 구독자들의 입맛을 채워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뛰어난 안목도 이바지해주었다.
연예계 각종 소식들을 취합하다보면, 특히 이슈메이커가 될 것 같은 누군가를 보노라면 절로 예감이 들었다.
그 재주는 인턴 기자에 불과했던 그를 어느새 특별한 네임드로 만들어주었다.
연예부 기자들 중에서도 탄탄한 고정독자층과 함께 보유한 유명 기자.
그런 그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 불현듯 충고 하나를 떠올렸다.
그 날, 신문사 선배가 그에게 해주었던 잔소리였다.
『야,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냐? 걔도 이제 막 첫 걸음 뗀 앤데 야박하게 굴지마』
가볍게 칼럼 하나를 작성한 뒤에 들은 잔소리에 백시현은 동조할 수 없었다.
이건 편애가 아니라 늘 해왔던 냉철한 직감일 뿐이라고.
오히려 속으로 반박해보였다.
『남유민은 뭐 처음부터 스타 배우고 연기 천재였냐?』
모르는 소리였다.
데뷔 때부터 큰 각광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백시현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싹은 분명 될 성 부른 떡잎이라고.
허나 아무리 보아도.
“···.”
고등학생 역을 위해 교복을 입은.
저 이신우라는 배우는 판을 깨부술 만한 무언가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태까지 틀린 적 없던 그의 예리한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곱상하면서도 어쩐지 반항적인 눈. 고생은 커녕 부족이라는 걸 느껴본 적 없을 것 같은 맵시.’
오밀조밀한 인상이 전체적으로 퍽 부드럽고 잘생겼다는 감상을 자아내지만 딱 그뿐이라고.
꼭 호기롭게 달려들었다가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고 마는 여느 아이돌 배우들처럼.
번듯한 외관은 오히려 연기력을 잡아먹을 기세였다.
‘저런 건 신인이 쉽게 갈무리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당장에 맡은 저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을 지부터 의구심이 들었다.
차라리 힘없는 고등학생이 아니라 재벌드라마의 자식 역이라면 어울리기라도 할 테지만.
독종의 도입 시나리오는 얼핏 알고 있었다.
지하방에서 차가운 숨을 주고받으며 연명하던 형제.
비극 자체를 품은 그런 배역을 맡기에는 무리일 거라고.
단정 짓던 백시현 기자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혀엉, 같이 가!”
돌연.
자신의 예리한 직감만을 믿고 있던 머릿속이 먹물이라도 퍼진 듯 까맣게 물들었다.
조명 아래 선 남유민과 이신우를 바라보며.
장난스레 제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 남유민이 미소 지었다.
“지혁이 너 인마! 공부한다고 체력이 이렇게 저질이면 어떡해?”
“형은 체대생이잖아!”
그를 자연스럽게 째려보는 이신우는 조금도 위화감이 없어보였다.
정말 하교길에서 형과 만나 집으로 돌아오는 고등학생이라도 되듯이.
조금도 과장스럽지 않고 담백한 어투가 점점 백시현에게 확신을 주었다.
‘···설마.’
아직 받아들이기엔 이른 백시현이었지만.
‘내 눈이 틀렸다고?’
이윽고.
카메라의 이동을 따라 걷던 이신우. 아니, 권지혁이 급작스레 멈춰섰다.
바람에 두둥실 실린 옷가지 아래로 권정우의 속살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형.”
보기 흉할 정도로 시퍼렇게 든 멍.
다행히 지나가는 이 없는 골목에 본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 동생을 제외하고는.
지진이라도 난 양 흔들리는 눈길로 제 형을 바라보는 권지혁은 자기도 모르게 옷가지를 들어올렸다.
그 안에는 파랗게 멍든 속살이 비쳤다.
“이건···.”
이내.
무어라 할 말을 고르는 듯 엉거주춤한 권지혁의 당황이.
죄책감이.
설움이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백시현에게까지 뻗쳤다.
허나 다음 순간, 제 동생의 손을 잡은 권정우는 옷가지를 내리면서 피식 웃어보일 뿐이었다.
“지혁아.”
피로한 눈동자로 제 동생을 담으며 중얼거렸다.
“형은 괜찮아.”
“···.”
지독하게 의연한 그 모습에도 백시현의 시선은 두 사람을 함께 담았다.
반대편의 배우 또한 어마어마한 감정을 표현해내고 있었으니까.
억지로 속을 파내듯 괴로운 마음을 삼키는 동시에 어쩔 줄 몰라하는 복잡한 울분이 혼재된 그 연기를 바라보며.
‘···하, 하.’
매사 시큰둥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던 백시현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그 기색을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비로소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연기 천재가······. 또 있었다고?’
드디어 외관이 아닌 알맹이를 마주한 탓이었다.
바뀌어버린 알맹이 속에는 비극을 삼켜냈던 한 단역배우가 남아있었으니까.
“빨리 집에 가자, 저녁 먹어야지.”
“···내가, 김치찌개 끓여줄게.”
서로 호응하는 두 배우는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절로 찡한 감정을 자아내는 의젓한 모습의 형도.
그런 형을 어찌 대해야 할 줄 모르면서도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동생도.
두 배우를 바라보는 백시현 기자가 새로이 직감했다.
독종.
이번 드라마로 인해.
어쩌면 남유민을 능가하는 스타 배우 한 명이 탄생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고.
‘자칫하면 정말 갈아타게 될 수도 있겠는데, 큭.’
왠지 이번 직감에 대한 확신은 쉽사리 지워지지 못할 것 같았다.
그가 본 신인배우의 연기는 고작 편린에 불과했지만.
* * *
다시금 하게 된 재촬영.
그 대단히 중요한 첫 번째 촬영이 끝나고 나자 현장 반응에 대한 기사가 들쑥날쑥 옮겨졌다.
아무래도 이미 한 번 제작 지연으로 인해 식었던 불판이더라도 대중들을 달구기에는 충분한 소식이었다.
대본리딩 이후 작게나마 한 번 지펴졌던 불판은 그렇게 본격적으로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닿으면 데일세라 뜨겁게.
개중에는 대형 신문사의 유명 기자가 쓴 칼럼도 있었다.
가장 먼저 신인배우를 다소 비관적인 태도로 바라봤던 앞선 칼럼에 대한 자신의 실책을 밝혔다.
그리고 남유민과 놀랍도록 어울리는 호흡을 보여준 신인에 대한 기대감을 널리 전파했다.
구독자들의 반응은 저번보다 더 뜨거웠으며 또 다른 독자들에게 기대감을 퍼뜨렸다.
정말.
방영 이후엔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게 될 것처럼.
“···그래서 그건 왜 보여주는데요 고모.”
한편 그런 반응을 가볍게 훑은 박하은이 휴대폰을 밀쳤다.
억지로 내밀고 있던 박시향도 웃으며 휴대폰을 거뒀다.
“흐흥, 그냥 재밌잖아. 어때 내 후배?”
모처럼 시골 본가에서 만난 박시향은 잠깐 담소나 나누자며 그녀를 불러냈다.
다른 친척들과 본가 어르신들도 계신 자리에서 단둘이 할 얘기가 있다며.
어르신들은 새로 연속극을 함께 맡았다는 두 여인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박하은 또한 그 생각이었는데.
퍽 김이 빠진 박하은 작가가 중견배우를 째려봤다.
“······고작 후배 자랑하려고 따로 부른 거예요?”
“아니, 유난히 답답해 보이길래.”
“네?”
장난치듯 그을렸던 입가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더 이상 농담 같은 기색은 없었다.
어찌 보면 의도치 않게 함께 공백기를 가졌던 두 사람이었는데.
“부담 갖지 마. 쉬어도 나보다 덜 쉰 애가 뭘 벌써 쫄아있니?”
“···쫄긴 누가 쫄아요.”
정작 어른스러운 척하는 제 고모에게 박하은은 어깨를 으쓱였다.
“고모야말로 그 잘난 후배 불러놓고 망신 안 당하게 조심하세요.”
“나야 뭐 후배니까 괜찮지만 너는 어떡하려고?”
“···뭐가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박하은을 보며 박시향은 지그시 웃었다.
처음처럼 넘실거리는 장난기로.
“차지윤한테 각본 밀리면 어쩌려고?”
“고모!”
곧이어 박하은의 얼굴 위로 넘실거리는 살기를 느낀 박시향이 재빠르게 사과했다.
얼굴에 잔뜩 낀 장난기는 여전했지만.
아무래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타 방송국의 라이벌 작가 이름을 꺼내는 건 무리였나 보다며.
빤히 밤하늘에 수놓은 별을 보던 그녀에게 조카가 문득 물었다.
“이번엔 촬영장 안 갈 거예요?”
“응?”
“저번엔 시사회까지 가줬잖아요. 그렇게 아끼는 후배라고.”
어쩐지 퍽 감상에 젖은 듯 하늘에 시선을 고정시킨 조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괜스레 박시향도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수놓은 별 사이로 요근래 참 떠들썩한 얼굴 하나를 떠올렸다.
남유민과 묶여 비교도 당하였지만 그만큼 저 자신을 증명 중인 신인배우의 얼굴을.
“이번에도 가볼까?”
“못 가실 거야 없죠.”
“으응?”
새삼 되묻는 반응에 박하은은 퉁명스레 말했다.
“곧 있으면 받아들일 새 아들이랑 전 아들이 둘 다 같이 있을 텐데, 아니에요?”
“푸핫!”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연속극에서 아들로 들였던 남유민과 좀 있을 분기의 드라마에서 아들로 들일 이신우가 함께 하는 촬영.
“맞네, 우리 아들들 보러 한 번 가야겠는 걸?”
물론 이번엔 그렇게 만만하게 갈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어려울 건 없을 터였다.
* * *
두 여인이 시골에서 밤을 지샐 무렵, 도심 속 빌딩숲에도 경과에 대한 보고가 들어갔다.
물론 그 보고가 닿은 건 다음 날이었지만.
상세한 보고라기보다는 대체적으로 제작 분위기나 흐름에 대한 보고가 전부였다.
딱히 신경쓸 것도 없으나 막상 듣지 않는다면 신경쓰일 법한 이야기를 전하기를.
“그래, 잘 되어가는 모양이구먼.”
“예, 헌데······.”
무언가 더듬는 기색으로 보고사항을 짚어보던 한건호 비서실장이 문득 특별한 이야기를 꺼냈다.
“곧 드라마 촬영장에 신우의 이름으로 디저트를 돌릴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철호 회장이 묻자 비서실장은 오해가 쌓일세라 바로 즉답해보였다.
“저희가 아니라 신우 팬카페에서 준비 중입니다.”
“팬카페?”
“예, 아직 규모는 이천여 명 정도밖에 안되긴 하지만 커피라도 돌릴 요량으로 모금중인 게 확인되었습니다.”
비서실장의 꼼꼼한 보고를 들은 이철호 회장은 이윽고 노트북을 두드렸다.
“···흐음.”
설마 막내아들에게 벌써 팬카페 같은 게 생겼을 줄은 몰랐는데.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어?”
정작 중요한 건 그 내부였다.
외관은 물론 그 디자인이 꽤나 신경을 쓴 듯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기껏 해야 전문가도 아닌 일반일일 텐데.
이 정도 정성을 쏟았다는 게 새삼 놀라울 세라 정작 모인 금액은 터무니없었다.
최소한 그의 눈에는.
“···이게 다인 겐가?”
“예?”
차마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지 못한 이철호 회장이 다시금 물었다.
“녀석을 위해 모인 모금액 말일세.”
“네, 그렇습니다.”
그제야 회장의 속내를 이해한 비서실장이 기다렸다.
이철호 회장의 다음 지시를.
“흐음······.”
잠시 후 못내 불편한 속을 삭히던 이철호 회장은 어떤 게시글을 발견했다.
막내아들을 위하여 모금까지 감행한 운영진의 정성과 애정이 담긴 게시글.
생면부지인 누군가를 위하여 이토록 한다는 게 참으로 기특할 참이었다.
별안간 이철호 회장이 제 비서를 부른 건.
“한실장.”
“예, 회장님.”
이미 나올 말을 대강 예상하고 있던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였다.
“모금액이 너무 적군. 조금 보태주도록 하지.”
“하면 금액은······.”
“디저트로 어디 양이 되겠나?”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꾸한 이철호 회장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만 그 기준점이 자신에게 있었지만.
“출장 뷔페 하나쯤 알아보게나. 적당히 건실한 대로.”
호텔식도 아니고 뷔페 정도면 수수하고 괜찮을 터.
그리 생각하고 넘기려던 이철호 회장에게 한건호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저어 근데······. 이름은 무어로 보내면 되겠습니까?”
“이름?”
“예, 아무래도 요즘 젊은이들답게 닉네임 같은 걸로 보내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만.”
“······그건.”
잠시간 고민하던 이철호 회장이 이만 물러가라는 듯 손짓했다.
“정하고 난 뒤에 알려주겠네.”
“알겠습니다.”
이윽고 비서가 사라지고 난 뒤 혼자 남은 회장실엔 정적이 맴돌았다.
그 안에서 이철호 회장은 묵묵히 가입 버튼을 눌렀다.
“요즘 젊은이들다운 닉네임이라···.”
다시 생각해보아도 참 흐뭇한 일이었다.
생면부지의 막내아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그 노고에 한 마디라도 더해준다면 앞선 흐뭇함이 더해질 터.
때문에 가입신청 화면에서 머뭇거리던 이철호 회장은 비교적 빠르게 고민을 끝냈다.
“으음, 요즘 애들은 한글보단 영어를 좋아하니···.”
비록 나이가 들었다고 한들 제국을 일궈냈던 철인답게 재빠른 결정을 마친 이철호 회장이 타이핑을 시작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한 자 한 자를 꾹꾹 눌러 담은 닉네임을 뒤로하고 가입을 완료한 이철호 회장.
“허, 도무지 늙어도 태가 나질 않으니 원.”
여간 신세대적인 닉네임이 참으로 감쪽같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그는 아까 봐두었던 게시글을 다시 찾았다.
이내.
운영진의 게시글에는 손때 묻은 댓글 하나가 남았다.
[아이언 타이거] 라는 닉네임의 유저 한 명이 남긴 댓글은.게시글에 있는 어느 댓글보다도 깊은 정성이 듬뿍 묻어나있었다.
퍽 감쪽같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