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162
◈ 마광익주 (5)
‘저건 배울 만하군. 역시 괴물이 맞아.’
태염룡은 생각했다.
어린 대주는 사흘 동안 세 번의 비무를 치렀다. 이 순간을 포함하면 네 번이다.
불청객들의 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시에 문을 두드리고서 하는 말이 비슷했다.
마광익주의 명성을 흠모하고 있으니 검을 섞어달라고.
호승심과 적대감의 발로일까. 혹은 어떤 사주를 받은 걸까.
일일이 구별하기 힘들다. 사람의 내면이란 어떤 변초보다도 짐작하기 힘든 것이므로.
‘상관없지. 내 눈앞에 천하의 진미가 있는데.’
어린 대주를 응시한다. 청일문의 여섯 고수와 검을 나누고 있다.
새하얀 검로가 빛으로 만개하는 꽃처럼 허공을 유영한다.
백도 정파의 정종무공들을 먹어치우면서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다.
‘저것도 나름대로 고절하긴 한데.’
태염룡이 본 정연신의 주력 무공은 검이 아니었다.
시화무극수.
검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면서 양손으로 발하는 권장법이 진짜였다. 어느 순간이든 결정타로 작용했다.
환강이라 했던 절초가 백미다. 사천 명공도에서 검갈마를 격살할 때 보여준 강맹함이 놀라웠다.
황보세가에서도 좀처럼 본 적이 없는 극강의 장법이었다.
‘헌데 지금, 검법을 보완하고자 한다?’
그의 어린 대주는 영악했다.
정파 무인들의 도전을 기꺼이 맞이하는 이유가 달리 없다. 도리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수락이었다.
무림맹회의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문파다? 제법 고절하고 독창적인 한 수를 지녔음을 방증한다.
어느 무맥이든 그러했는데, 소년 대주의 검로는 고명한 수법을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그간 곁에서 직접 봐 왔기에 구분할 수 있는 차이였다.
흡수하고, 해체하고, 자신의 검에 조금씩 싣는다.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찰나지간 바뀐 검로는 곧장 원래대로 돌아왔다.
치명적인 무기를 연마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광익주의 검법이 더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걸 말이지.’
본성의 율령대주가 크게 당황할 듯했다. 태염룡은 어린 대주의 자질을 자신보다 우위로 뒀다.
그만한 천재가 천고의 환경에서 검초 개변에 돌입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이 되지 않는다.
화룡점정으로 큰 심득이 생긴다면, 완전히 다른 검법으로 탈바꿈하게 되지 않을까.
맹주인 검성과 비무를 시작하기 전에 그럴 수 있길 바랐다.
검으로 별자리에 오른 절세고수 앞에서 권장법을 자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린 마광익주의 호신강기는 아직 절대자의 검초 한 번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개망신을 당한 다음에 절초를 얻는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마광익주로서 체면을 차리려면 병기술에 능해야 한다.
“저걸 보면 어찌어찌 될 것 같기도 하고…….”
가산(假山)에 걸터앉은 태염룡이 중얼거릴 때였다.
쩌엉―!
정원의 풀밭이 뒤집어졌다. 거대한 화포에 맞은 듯했다. 검격 경파의 힘이 도를 넘었다.
하늘을 휘감아 오르는 광화검류의 흐린 빛에 태양이 일그러진다.
청일문의 다섯 제자가 널브러진 순간, 정연신은 주춤 물러선 청일문주에게 마지막 초식을 풀어내고 있었다.
백색 시절에 즐겨 쓴 수법. 검격인데 검법 묘리가 아니다. 권장법의 발경력을 검법에 실었다.
발 앞꿈치를 살짝 틀면서 전신 근육에 회전 공력을 일으켰다.
청일문의 화람검법(花濫劍法)을 보고 떠올린 중첩 경파의 묘리를 일단 접어두면서다.
‘시화무극수, 나선.’
화악!
검을 쥔 오른손을 중심으로 흙먼지가 소용돌이쳤다. 공간이 휘어져 꺾이는 듯했다.
담아낸 공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데도 무시무시한 전사경이 일어난 것이다.
정연신은 신검 북명의 검신을 살짝 비틀어냈다. 손등과 검면이 위로 향한다.
청일문주의 방어 검초를 그대로 올려쳤다.
쩌어엉!
검을 굉장히 굳게 쥔 듯했다. 청일문주는 자신의 칼과 함께 튕겨 올랐다.
그와 함께 정연신은 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했다. 신법 풍신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두 신형이 삼 척가량 체공한 순간이었다.
정연신의 왼손이 움직였다. 다른 시간 축을 유영하는 듯했다.
굳은살 박인 권면이 청일문주의 등을 찍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포탄처럼 후려치는 광경이었다.
직후 소년의 어깨를 따라 불꽃처럼 일어난 충격파가 소맷자락을 들춰냈다.
콰아앙!
청일문주의 호신기(護身氣)가 산산이 흩어져 날아갔다.
동시에 쏜살처럼 땅에 박힌 신형이 둔탁한 소음을 삼켰다. 대 자로 엎드린 청일문주가 선혈을 토했다.
‘아무리 봐도 대가 없이 주어질 만한 자질이 아닌데…….’
태염룡은 정연신의 검로가 미세하게 비틀리는 광경을 목도했다. 전사경의 경파를 발하기 전이었다.
작게나마 또 한 번 쌓은 무학의 이치가 소년의 손안에 있었음을 짐작한 것이다.
새로운 검법이 태풍의 전조마냥 고요히 움트고 있었다.
‘나처럼 단명하는 거 아닌가?’
돌연히 생각하고는 스스로 피식 웃는다. 덧없는 상념과 별개로, 어린 대주는 청일문주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일으켜 세우고, 부축해 주고, 울혈을 뱉어내도록 등의 혈도를 격타하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진신 무공을 모두 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주의 무학이 그만큼 고절한 탓에.”
쿨럭.
피를 토하던 청일문주가 희미하게 웃었다.
“나야말로 대주께 감탄했소. 그 기량과 도량이 실로 놀라울 따름이오. 복건으로 돌아가 몇 년쯤 연련한다면 심득을 얻을지도 모르겠소. 대주 덕분이외다.”
“……과찬의 말씀을. 보중하길 바랍니다.”
정연신의 포권에 문주가 똑같이 답례했다. 비척거리며 일어선 문도들도 함께였다.
달리 더한 감탄사나 칭찬이 있지는 않았다. 허나 청일문의 고수들은 부드러운 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자신들끼리 부축을 주고받으며 나가는 순간까지도 그러했다.
“대주, 먹은 잘 갈아두었소.”
헌원창이 말했다. 청일문 고수들을 배웅하고 온 정연신을 향해서였다.
소년은 문방사우를 펼쳐놓은 대청에 앉았다.
스윽.
붓을 들어 집필을 시작했다.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갔다.
방금 겪은 무학의 요체, 통할 만한 파훼 방식, 진기 운용 시 주의할 점…….
지금까지 비무를 걸어온 무림맹 고수들이 어떤 심산인지는 모른다.
무엇을 가져가려 하는지, 어떤 걸 확인하고픈 건지, 총군사 대리의 눈에서 본 꿍꿍이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
괜찮다. 계략은 그들만 꾸미는 게 아니다.
정연신과 헌원창은 오늘 같은 방식으로 백도 무인들을 유인했다. 최대한 많은 무공을 겪고자 함이었다.
주어진 임무만 수행하고 갈 생각이 없다. 보다 큰 공적. 보다 많은 공훈.
최단기간에 흑색까지 오르는 데 크게 기여한 마음가짐이었다. 잠재적인 대적(大敵)의 무학을 모두 겪어볼 생각이다.
‘일석이조야. 검법에도 도움이 되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정보가 쌓였다. 겪은 무공의 가짓수 이상으로 무수한 파훼법이 나왔다.
면전에서 발경과 기파를 겪는 건 정연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나온 파훼법은 몇 권의 두꺼운 서책으로 화하리라. 수십 권이 될지도 모른다.
파백총람(破白總覽).
이미 이름까지 붙였다.
백도 정파를 부수는 방법을 한데 엮었다는 의미다.
흑색의 마광익주로서 몇 년을 더 행세하게 될지는 모른다.
허나 무림맹이 완전히 적으로 돌아선다면, 이 책은 정연신을 자색으로 인도하게 될 터였다.
맹회의 주축은 구파가 아니라 세가다. 문파 대전이 일어난다 해도 거리낄 게 없다.
‘다음 손님은 언제쯤 올까.’
조용히 붓질에 전념한 소년의 얼굴은 평온했다. 여느 때와 같이 담담한 기색이었다.
한켠에 멀찍이 떨어진 헌원창과 태염룡은 서로 눈길을 교환하면서 속삭였다. 신났지? 그런 거 같소만.
* * *
“이번에는 청일문이 돌아갔대요.”
“세 사람이 몸을 가누지 못했다던데. 몰골이 만신창이였다면서.”
“헌데도 웃고 있었다고 하더이다. 문도들 모두가 말이오. 그 청일문주께서도.”
“또?”
맹회의 젊은 무인들이 자리한 암자였다.
호숫가의 정자처럼 사방이 뚫려 있는 이 층에서 뻗어 나오는 기파가 어마어마했다.
본래 정종의 무공은 대기만성의 성질을 띤다.
구파와 달리 세속에 사는 문파라 해도 사마외도에 비하면 연성이 느렸다.
허나 명문가의 영약 수급이 태생적인 정종무공의 한계를 넘어섰다.
“몇 차례지?”
“네 번째올시다. 평판이 몹시 좋소. 적대적으로 비무를 청한 자들에게도 가르침을 베풀었다면서, 그가 군자가 아니면 누가 대협이냐고 묻더이다.”
“누가 그리 말했소?”
“화산파의 유현 도장, 화산잠룡 말이오.”
“…….”
“이쯤 되면 궁금해지는데. 꿍꿍이가 뭘까?”
암자 이 층의 법당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사내, 창턱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손가락을 튕기며 삼매진화의 불꽃을 조율하는 여인, 암자의 지붕에 느긋하게 누워있는 소년소녀…….
스무 명에 달하는 무학의 기재들이 자유분방하게 모여 있다.
암자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파도 같을 수밖에 없다. 공력 파동이 겹치고 겹쳐져서 해일 같은 느낌으로 번져 나왔다.
사마외도와 달랐다. 다듬어져 있다는 느낌이 컸다.
모용명준이 입황성 섬예를 보러 가자 했을 때도 이곳에 자리해 있었다.
명문 강호인들이 무학과 협을 논하는 교류의 장이다. 정종무공의 순정한 공력을 도야하는 자들.
선룡 제갈현이 굴욕을 당한 뒤에도 변함없이 잔잔한 분위기가 흘렀다.
머리를 길게 땋은 여인이 입술을 달싹이기 전까지였다.
“뭐든 좋은 의도는 아닐 거예요. 음흉한 속내가 있겠죠.”
그녀가 하얀 옷소매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산동악가의 악예림(岳譽林). 입황신창 악수림의 늦둥이 조카였다.
산동에서 남직례 진출을 꾀했던 악가가 내세운 금지옥엽으로, 청기린 남궁세진과 혼담이 오가던 인물이다.
남궁세진이 섬예 정연신과 겨루어 주검이 되기 전까지만 그랬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청기린은 특유의 완벽한 외양과 성품, 무공으로 이름을 떨친 자였다.
제왕검형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남궁세가의 그림자를 지워내던 협객.
그를 만나보지 못한 자들마저도 풍문만 듣고 흠모했을 정도다. 강호에 드문 인망이었다.
“호각지세의 생사결이었다고 들었네. 손속에 사정을 두기 어려웠을 거야.”
“글쎄요. 본녀는 직접 보지 못해서 모르겠군요. 입황성의 무력행사가 유독 과격했던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악 소저의 의심에 일리가 있소. 남궁 소협은 생전에 무수히 많은 흠모와 질시를 받았지. 내가 보기엔 후자가 더 컸소. 섬예가 일부러 과하게 손을 쓴 걸지도 모를 일이란 말이오. 아니면 큰 공적이 필요했다거나.”
“들어올 때 보니까 엄청 잘생겼던데요? 명족 보는 줄 알았는데.”
천장 바깥에서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지붕 위였다. 웬 소녀와 함께 누워있던 소년이다.
일전에 마광익주를 맞이하러 가는 제갈현을 배웅한 바 있었다.
“애초에 입황성주의 제자인 데다, 우리 아버지께 들어보니 전대 신검단주의 외손자랬어요. 명문가 출신이란 얘기죠. 벌써부터 까만 장포를 입은 것도 그렇고…… 솔직히 누굴 시기할 조건은 아니지 않나 싶은데. 우리마냥 세가주급의 권세를 누리지는 못하겠지만, 그것도 신검단주가 되면 얘기가 달라질 테고요.”
“공손 소협은 좋게만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래요. 제남 황보가의 터전을 보고 오면 생각이 달라질걸요? 입황성은…… 민심을 가죽으로 두른 짐승들이에요. 대주급이면 인면수심의 맹수란 소리죠.”
또 다른 여인이 말했다. 곁에 있던 사내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자리는 젊은 정파 강호의 최상층부다.
청기린과 면식이 있는 사람이 많다.
그를 남몰래 연모해 온 여인들, 호적수로 생각한 남녀 고수들, 강호인으로서 탄복한 바 있던 사람들까지.
실제로 만나보지 않은 자들조차 호감이나 시기 따위 마음으로 세월을 보냈다.
“정 뭣하면 직접 물어보고 오시든지. 청기린을 어찌 생각하냐고.”
공손 소협이라 불린 소년이 토라진 듯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피식 웃었다.
허나 신임 마광익주에 대한 근본적인 적대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견이 묵살당했고, 그들은 진기를 토납하는 것마냥 천천히 적개심을 들이마셨다.
“이럴 때 예 소저께서 계시면 좋으련만. 과감한 묘책으로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줄 터인데.”
한 청년이 푸념하듯 내뱉었다. 여러 곳에서 반응이 왔다. 즉각적이었다.
“근래에는 거처에서 두문불출하는 듯한데.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염려되오. 그러고 보면 제갈 공자도 그 이후로 보이지 않는데…….”
“그건 마광익주 때문인 거 아니오?”
“언니가 보고 싶어요. 지난번에 마두 때려잡는 거 보니까 고명한 패도 무공을 익힌 게 분명했는데.”
“숨어들었던 혈사교검을 웃으면서 격살했지. 참으로 섬뜩하게 아름다웠소. 손등의 발경 경파가 선녀의 옷자락 같더이다.”
“두 눈을 가리고도 어찌 그리 고강한지.”
담소가 이어지는 와중이었다.
돌연 악예림이 벌떡 일어섰다. 양팔을 걷어붙일 기세였다.
“지금 맹회의 본 목적도 마광익주에게 창피를 주는 데 있죠? 찾아가서 조언을 구해 봐야겠어요. 예 언니라면 좋은 방도를 말해 줄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