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385
◈ 신검단
* * *
십전문주가 격살당했다.
앞서 그가 마광익주에게 참패한 일과 더불어 강호가 경동할 사건.
하지만 장장 전황이 뒤바뀌는 등의 이변은 없었다. 싸움터가 넓은 건 둘째다. 얽힌 인원이 너무 많았다.
쾅! 쾅! 쩌어어어엉!
서슬 퍼런 빛을 산란시키는 날붙이들. 천라지망의 수백 명이 휘두르는 병장기들이 명부의 검수지옥마냥 무수한 칼 숲을 이룬다.
하나같이 사람의 신장을 우습게 뛰어넘는 보신경을 연성한 고수들뿐이라, 신검단의 대주들을 향해 짓쳐 드는 신형들이 팔방은 물론 허공마저 아우르고 있었다.
땅이 뒤집히는 폭음과 쐐액거리는 바람 소리가 가득했다. 그물처럼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전음들과 함께였다.
―섬예 기준으로 남서쪽… 십전문 갑주쟁이들이 검진 펼친 거 보세요. 얼씨구, 저기서 격체전력(隔軆傳力)? 눈이 뒤집혔나 본데, 성가신 거 나오기 전에 목을 분질러 놔야겠습니다.
―소연대주가 가깝군.
―지금 가오.
지상은 물론 허공에서도 무수한 옷자락들이 격하게 스친다.
경악과 독기가 어우러졌다. 대주들의 손속에 목이 꿰뚫리거나 팔다리가 날아간 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한편, 그 뒤에서 내공을 품은 악다구니가 반송장이 된 동료들의 등을 떠밀었다.
“차륜진으로 가면 이겨! 점혈이고 칼질이고 가리지 마! 오금을 끊고 낭떠러지로 밀어 버리면……!”
“저들도 사람이다! 절세고수가 아니야!”
“옳소, 기껏해야 고루한 구파 정예의 수장급이 열두엇쯤 모여 있는 게 아닌가.”
“사기를 떨어뜨려서 어쩌자는 거요!”
이 순간 언덕에서 거대한 원형을 이룬 천라지망이 신검단의 대주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밀려 나가는 이유.
입황성의 손속이 널리 알려진 까닭이다. 민생 수탈을 빌미로 황보세가를 멸문시키면서 전 무림의 경각심을 깨웠다.
나라의 북단에 가까운 산동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제는 제법 오래된 사건이기에 사천까지 퍼진 이야기.
이기지 못하면 몰살당한다.
“입황신창이 적수공권이다! 지금 당장, 커헉…!”
“양강기공을 익힌 자들은 저리로 가시오! 선목령주 빙백이 날뛰고 있소!”
푸확! 쿠구궁―!
반투명한 파도처럼 몰아친 경파들이 끝없이 부딪쳤고,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 난 쇳조각들이 핏물에 섞여 날아올랐다.
강호인도 집단전의 광기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사마외도에 몸담았다면 더욱 그렇다.
애초에 절세고수 셋을 상대하고자 모인 천라지망인 바, 떠밀려 나가는 전열의 등 뒤에서 칼날을 번뜩이는 고수들이 무수히 많았다.
‘괜찮을 거야.’
정연신은 격렬한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선배들의 강인한 기파를 살갗으로 느끼는 한편, 신검 여뢰의 칼날에 기다란 노을빛을 바르면서.
―할 수 있겠어? 조금만 버텨 봐. 여의랑 멸섬, 나까지 셋이면…….
웬 소녀의 음성이 귀를 간질였다. 정연신은 눈앞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목울대에 공력을 실었다.
―악 선배.
―응?
―저는 괜찮으니, 존체 무강하셔야 합니다.
할머니에게 하고픈 말을 했다.
감동을 받은 걸까. 악수림의 대답이 잠시 끊어졌다.
정연신은 개의치 않았다. 이제 완전히 자신을 향해 돌아선 금시문주가 시야에 맺혀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검권(劍圈)은 꽤 촘촘하구나. 아까 전보다 조금 길어진 느낌이야.”
“들어와라.”
정연신이 말했다.
뭇 선배들이 자리를 만들어 줬다. 굳이 자신을 분석할 시간을 줄 이유는 없다. 그 역이라면 몰라도.
사박.
금시문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내디뎠다. 자그마한 혼잣말과 함께였다. 나도 네게 질린 참이었어.
곧이어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극생(據生).]명줄을 할퀸다. 무슨 뜻일까.
후웅―
메아리처럼 겹쳐 울린 진언과 함께 흐릿한 금빛을 띤 파문이 땅을 훑고 지나갔다. 보이지 않는 호숫가에 물살이 인 것처럼.
“……!”
정연신은 주변을 큼지막한 반구형으로 둘러싸며 요동치는 자연지기를 느꼈다.
또다시 술법무공인데, 규모가 달랐다. 공능도 그런 듯했다.
우우우우웅―!
어슴푸레한 석양의 빛무리가 걷혀 나갔다. 삽시간에 밤낮이 바뀐다. 사방팔방이 쪽빛으로 물들기까지 찰나였다.
천지개벽에 준하는 이적.
푸르게 변모한 하늘 아래로 전장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화공이 붓질을 한 듯 홀연히 나타난 숲과 나무, 바위의 모습이 주변을 채운다.
멀리 펼쳐진 산자락에서는 아주 거대한 동굴이 시커먼 입구를 활짝 피워냈다.
교룡의 진법에서 본 것과 유사한 풍경. 주변의 인파가 모조리 지워진 상태다.
결국 두 사람이 남았다.
쾅!
술법무공이 발동된 순간 거리를 좁혔던 정연신의 검격이 금시문주의 팔에 막힌다.
어느새 푸른 염화가 그녀의 팔꿈치에서 손끝까지 이어진 채 새파란 깃털을 흩날리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빠른 호신강기였다.
주황색 윤기를 빛내며 사락 흘러내리는 소맷자락 위, 먼지 한 점 묻지 않은 금시문주의 속눈썹이 정연신을 향해 살짝 올라간다.
“내 먹잇감들의 고향을 그려 봤어.”
그녀가 말했다.
정연신은 직감했다. 공간을 이동한 게 아니라 잠시 주변과 단절된 것이라고.
공력과 심상으로 빚는다는 무형검을 터무니없이 넓게 펼쳐 공간에 덮어씌우면 이렇게 될까.
수풀과 바윗돌의 환영은 물론 땅에서도 금시문주의 진기가 흐르고 있다. 묘리를 형언하기 힘든 절세 기예.
달리 없다.
“공월무인가.”
정연신은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직 여뢰의 검파를 쥔 손에 힘을 가하고 있는데, 금시문주의 팔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벽을 미는 듯했다.
본래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무공과 술법이 모두 절세지경에 이르렀다는 금시문주의 공월무. 진법 결계와 같은 공간이 펼쳐지자마자 그녀의 힘도 달라졌다.
그 덕에 여유가 생긴 걸까.
“섭리를 속여서 널 용으로 삼았어. 여기선 네가 교룡이야.”
그녀의 자그마한 음성에 자랑이 실려 있었다.
그간 정연신이 경험한 바, 절세고수란 자들은 대개 자신의 무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이에게 공부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작자였다.
무극(武極)에 이르는 논검을 가장 좋아하는 부류. 금시문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치천용살공은 교룡을 사냥하는 신공절학이라 했다.
이 순간 신묘한 영역으로 정연신에게 용의 기질을 심었다면, 몇 마디쯤은 여유를 부릴 만했다. 그를 완전히 사냥감으로 전락시킨 것이기에.
정연신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뭇 흑색 선배들이 당도한 날. 오늘 진정한 자색으로 진일보해야 한다.
말 몇 마디로 절세 영역의 견문을 넓히는 건 기연의 일종이었다.
“방금 섭리를 속였다고 했지. 십삼천주 중 천극문주는 이치를 베는 검객이라던데, 네 공월무와 그자의 검법은 상극인가?”
“본 적 없어.”
심기를 건드린 걸까. 나직하고도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정연신은 충분한 가능성을 뇌리에 담아 뒀다.
환익보의 구결로 빠르게 옆으로 한 걸음 옮기면서.
쿠아아아앙―!
거대한 압력이 뺨을 스친다. 금시문주의 주먹질이 일으킨 여파.
권면에서 일어난 발경력이 대기를 통째로 밀어낸 동시에 땅 밑으로 거대한 깃털 같은 고랑이 패였다.
무시무시한 흡인력에 정연신의 머리칼 몇 가닥이 휘말려 흩어졌다.
그 틈새로 금시문주의 눈빛이 말하는 듯했다. 머리가 분수에 맞지 않게 길다고.
스팟!
정연신의 몸이 제자리에서 일그러졌다. 십리광요의 경공 질주. 하얗게 빛난 여뢰의 칼날이 그녀의 옆구리를 일직선으로 훑는다.
순간 거칠게 콰가각거리는 감촉과 함께 검 손잡이에서 손아귀까지 엄청난 진동이 파고들었다.
호신강기의 푸른 불티들이 사방으로 튕기며 시야를 교란했다.
‘얕아.’
그가 금시문주를 완전히 지나치는 찰나, 옆으로 살짝 휘청인 그녀의 손이 정연신을 쫓아 허공을 짚었다.
쿵!
흑포를 걸친 등에 거대한 금빛 광채가 작열했다. 순간 동심원을 그리며 번져 나가는 진기의 파동으로부터 퍼어억― 소리가 울렸다.
충돌 직후 맹금의 발톱처럼 세 줄기로 갈라진 경파가 살점을 터뜨린 것이었다.
정연신은 신음을 삼켰다. 아릿한 통증이 뇌리를 치닫는 와중에, 그는 살갗에 닿는 공기와 발아래 땅의 감촉, 등을 헤집은 경파의 느낌을 되새겼다.
타격의 면적이 컸다. 힘줄과 경혈 따위를 정가동공으로 곧장 꿰매기 힘들 정도였다.
파라락!
그때 금시문주가 몸을 회전시키며 날아왔다. 주황빛 소맷자락이 날개마냥 좌우로 활짝 펼쳐진다. 참룡천린신술. 거리가 지척에 이르기까지 한순간이었다.
빛살 같은 전사경으로 휘돌아 짓쳐 드는 발길질. 정연신의 눈에 그녀의 다리가 가득 찼다.
그는 손을 바깥으로 뻗으며 마주 후려쳤다.
쩌어어어어어엉―!
‘큭.’
불처럼 뜨거운 충격파가 뼈까지 흘러들어 온다. 맞닿은 발과 손등이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시화무극수 진벽의 일직선 경파로 맞선 참인데도 몸이 옆으로 살짝 밀렸다.
각법의 반동이 엄청났다. 등 뒤에서는 공월무의 영역을 장식한 모래가 화악 일어나 파도처럼 넘어지고 있었다.
쾅!
그 순간 정연신이 내려친 검신을 두 손으로 잡아내는 금시문주. 그녀의 전신에서 파랗게 일렁인 불꽃이 희끄무레한 검풍마저 흩어버렸다.
“네 심장… 대단해. 용의 내단만 한 게 있구나.”
그녀의 금빛 안광이 정연신의 가슴팍을 훑는다.
한쪽 다리를 든 모습이 오연했다. 용을 잡아먹는 금시조의 기질. 그녀의 눈빛은 소름 끼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냥감을 바라보는 맹금이 따로 없었다.
“확실히 네 말이 맞군.”
“응?”
“네 치천용살공이 날 교룡으로 여기고 있어. 발경력이 전에 비할 바가 아닌 게… 공월무가 신묘한 진법에 가깝다. 이럴 수도 있었어.”
“산룡자(山龍子:도마뱀)의 비늘을 부수는 무공이니까.”
금시문주가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한 직후였다.
아름다운 초원을 등진 그녀의 몸에서 황금색 운무가 움텄고, 제각기 다리와 검을 거둔 두 사람의 신형이 다시금 흐릿하게 일그러지며 섞여들었다.
쩌저저저정―! 콰아아앙!
금시문주는 권장법과 각법, 조법(爪法)을 자유자재로 뻗어냈다. 정연신은 검뢰섬릉식과 시화무극수를 양손으로 풀어내며 수십의 궤적을 그렸다.
검과 손이 혜성처럼 부딪치고 두 신형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공력 파동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면, 멀리 떨어져 있던 바위가 산산조각으로 박살 나며 솟구쳤다.
이십여 합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우우웅―
불현듯 거대한 맹금의 발톱을 형상화시킨 듯한 광채가 금시문주의 양손에 덮어씌워졌다. 금빛으로 유형화된 내공 병기였다.
여뢰를 맨몸으로 받아낸 그녀가 그것을 한 번 크게 휘두를 때마다 정연신의 장포가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일격의 여파만으로도 날카로운 잔흔이 땅을 내달렸다. 두 사람의 검과 발톱이 모두 그랬다. 성한 대지가 없었다.
합을 나눌수록 정연신의 몸 곳곳이 핏물과 함께 패였다.
신법 풍신은 금시문주의 참룡천린신술에 반 호흡 늦었고, 거듭된 그녀의 각법은 십리광요마저 차단해 싸움의 동선을 짧게 줄였다.
정연신이 번천참룡식에 대항할 경파를 일으키자면 투로를 길게 가져가야 하는데도.
하지만 금시문주의 눈에는 점차 놀람이 어리고 있었다.
그녀의 공월무는 인근 영역을 심후한 내공으로 뒤집고, 엄청나게 복잡한 술식으로 섭리를 비트는 무학이다.
용의 기질을 잠시나마 상대의 몸에 심어 두는 기예. 누가 봐도 상리를 벗어났다. 한 번 펼치고 나면 달포는 요양해야 한다.
‘한데, 어떻게……?’
그녀의 치천용살공은 분명히 정연신을 교룡으로 인식했다.
힘과 속도로 압도함은 물론, 짧게 내친 발경마저 상대의 경파를 완전히 풀어 헤치고 맨몸에 꽂혔다.
모든 초식이 파훼식에 준한다. 진작에 결판이 났어야 했다.
‘파훼법을 따라오고 있어.’
마광익주 정연신.
쿵! 쿠궁―!
조법의 경파와 각법 따위를 비껴 맞아 몸이 크게 들썩이는 순간에도 상극 무공을 상대하는 법을 깨쳐 나간다.
만신창이인데 기세가 밀리지 않았다. 일격이 서로 부딪치고 스칠 때마다 경파의 진기 구조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합이 백여 초식에 이르렀을 때는, 짜증 나게 날카로운 칼날이 어렵게나마 어깨의 옷자락까지 잘라낼 정도였다.
그리고 이윽고.
콰콰콰콰콰―!
마광익주가 그 유명한 환강을 발바닥 용천혈로 터뜨리며 무릎을 벼락처럼 차 올린 순간.
금시문주는 무심코 상대의 미려한 얼굴을 멍하게 바라봤다.
어떤 기연을 맞이하기 시작한 것마냥, 매혹적인 핏빛을 띤 입술이 희미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무도(武道)를 걷는 천하 기재의 광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