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39
◈ 노승의 은원 (3)
소림권법은 혼백의 힘조차 싣는 듯한 웅혼함과 절도가 있었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타격에 들어가는 묘리가 심오하고 복잡했다.
그러나 각정의 권각법은 충분히 봤다.
정연신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발뒤꿈치부터 틀었다.
동시에 허리에서 오른팔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느꼈다. 자유롭고 강대했다.
후욱!
단순해 보여도 작은 움직임으로 큰 힘을 냈다. 스스로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의 묘리를 일으킨 것이다.
본래 아주 작은 힘으로 큰 일격을 받아내는 무학의 이치였다. 지금은 달랐다. 짧은 진각으로 강력한 정권을 뻗어쳤다.
퍼억!
몸을 틀어 뒷 옆구리로 틀어맞은 각정의 몸이 휘청였다. 눈이 경악으로 뜨였다.
가격한 정연신이 느끼기에도 상당히 무거운 주먹이었다.
각정으로서는 기파가 느껴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을 것이다.
난타전이 시작됐다. 복잡한 궤적과 손발의 잔영이 엉켰다.
합을 나누면서 정연신이 더욱 많이 당했다. 애초에 경험과 무공의 깊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즐거웠다. 투로를 보조하는 마광결이 꺼진 채로 내치는 권각 초식은 아주 새롭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 상대의 주먹과 발의 충격은 깊게 들어오지 않았다. 아픔은 없고 때리는 재미만 있었다.
그의 육신만큼은 이미 소신승조차 능가했던 것이다.
펄럭- 터억!
정연신은 품 넓은 왼쪽 소맷자락으로 허초를 줬다. 동시에 오른손 권면이 각정의 어깨 옷자락을 짓뭉갰다.
까슬거리는 가사의 감촉이 깊게 들어왔다. 정연신의 단타 일격을 맞을 때마다 비틀거리는 각정이었다.
먼발치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소림오권의 형과 식을 가져간 건가? 아니, 아니다. 묘리가 같을 뿐이야. 오히려 한층 위에 있다. 권법 발경의 응용 범위가 커졌어.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저건 마치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가는 일과 같은······.”
헌원창은 옆에서 쉴새없이 중얼대고 있는 원종 선사를 흘끗 바라보았다.
소림사의 고수라 하여 모두가 이름을 날리지는 않는다. 무승들 외에도 승려는 많았다.
무론을 연구하는 무도승과 불도에 매진하는 학승 등이 그랬다.
원종 선사. 소신승 각정과는 달랐다. 처음 들어보는 법명이었다.
“산속에서 어떤 분야에 일념정진하다 보면 저렇게도 되는가 보오. 그렇지 않소?”
“음? 음······.”
헌원창은 옆에 있던 지현에게 친한 척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신야현의 지현이 머리를 피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정 소협의 몸이야 아는 사람은 알지. 우리 마광익에서도 괴력난신으로 꼽힌단 말이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 정 소협이 수욕을 할 때였소. 전각을 관리해 주는 시녀들이 물을 받아주는데, 글쎄 그들이 나갔다가 몰래 훔쳐보러 돌아온 거요. 하여간 그들도 입황성 사람이라고 아주 용감무쌍했지. 그러고 어떻게 되었냐면······ 음? 왜 그러시오?”
“그다지 궁금하지 않네.”
“허어, 다른 사람들은 아주 흥미롭게 듣던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결판이 났다.
각정과 정연신은 서로를 비추는 동경이라도 되는 양 동시에 물러섰다.
“더 하면 정말로 명정단을 쓰게 되겠소. 어느 한쪽이든.”
“한 수 배웠습니다. 스님의 설법을 듣도록 하지요.”
정연신의 담담한 말에 각정이 크게 웃었다.
“그대의 성품은 실로 담백하구려. 내 밑에 정 소협 같은 사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실상은 다들 오만하기 그지없어 무공과 불법으로 혼내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오. 하여간, 나 역시 소협을 이기지 못했소. 솔직히······”
천축 불교의 군신 위타천(韋馱天) 같던 각정의 미소는 묘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두렵기도 했소. 권초가 점점 먹히지 않는 게 금방 하나씩 파훼되겠다 싶었지. 이건 내 패배이기도 한 바, 소협이 설법을 들어주신다면, 나 또한 언제고 소협의 청을 하나 듣도록 하겠소.”
“좋습니다.”
정연신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로 세 가지를 얻었다. 모두가 컸다.
소림 권각의 초식을 몸으로 겪은 일은 자신의 무학에 큰 거름이 될 것이다.
유명한 요상약인 명정단으로는 목숨을 한 번 살릴 수 있을 터였다.
소신승에게 강호의 일을 부탁할 수 있는 권리 또한 큰 자산이었다.
‘신야백무파.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무림사의 기묘함을 느끼며 각정 스님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노을의 아스라한 빛무리 저편에서 달이 하얗게 차오르고 있었다. 오늘 객방으로 돌아가기는 그른 듯했다.
어느새 그들을 기가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흑도 졸개들을 턱짓으로 부렸다.
삽시간에 정리된 전각에서 설법을 듣고 묵기로 했다.
신야현의 지현은 사색이 된 채 도망쳤다.
신야백무파에서 받아먹은 재물이 제법 큰 듯했다. 정연신은 마진이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중원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초대조사이신 달마대사께서 이르시길······”
각정의 불법 강론과 함께 날이 저물었다.
달마대사가 불안한 마음은 실체가 없노라고 혜가에게 일렀다는 일화였다.
어린 나이에 거친 여러 혈전이 정연신의 정신을 검날처럼 벼리고 있었다.
반대로 타인의 생명에 무뎌진 마음은 시한부 삶과 어우러져 살기를 피웠다.
불교 선종은 불법을 구전으로 전한다고 했다. 설법 한 번에 정연신의 불안이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가의 무공을 관통하는 의념은 배울 수 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일순간 하늘색 안광이 정연신의 눈을 스쳤다.
그동안 침상 한켠에서 원종 선사가 그를 묘하게 바라봤다.
* * *
여명이 어스름으로도 보이는 때에 모두가 일어났다.
조찬을 함께 들며 원종과 각정의 말싸움을 봤다.
정연신과 헌원창은 수저를 움직이며 두 승려의 설전을 묵묵히 들었다.
늘 있는 일로 보였지만, 총관은 숨도 못 쉬는 듯 안색이 파리했다.
“파사현정이란 말은 그저 추상적인 법문의 일부가 아니다. 실재하는 힘이었지. 혈염교와 같은 사특한 무리가 쌓은 힘을 사멸시키는 법력! 술법과 무공은 본디 하나였다. 선인들의 변화막측한 기예가 둘로 나뉘어 불린 것인 바!”
“혈염교주를 죽이기 위한 무공을 만들고 계시오. 불법에 귀의하신 분이.”
각정이 몸을 기울이더니, 들으라는 듯이 정연신에게 속닥거렸다. 어느새 이렇게 친해진 건지는 정연신 자신도 몰랐다.
‘사문의 치부를 내보일 정도는 아닌 듯한데.’
조손으로도 보이는 두 사람의 언행은 상당히 유치했다.
소림에 대한 막연한 느낌이 깨질 만큼.
“그게 어찌 잘못되었단 말이냐? 천하 창생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좋지요. 기회가 있으면 마땅히 살계를 열어야지요! 한데 사숙께서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삶을 쏟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옥이 따로 없는 생입니다. 어찌 사백과 사질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지 않는단 말입니까!”
“내 번뇌는 참오로 풀 수 없느니라. 십수 년 면벽으로 깨달았다. 혈염교주가 죽어야 내가 산다.”
정연신은 가볍게 놀랐다. 면벽은 이름 높은 수련법이었다.
벽만 바라보고 묵상하는 수행이라 했다.
달마대사가 구 년간 벽 앞에 앉아 있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혈염교가 가족이라도 몰살한 건가? 나처럼.’
그러나 각정은 무던해 보였다. 수십 번은 같은 말을 들었다는 듯이 입을 연다.
“애초에 우리 사문의 반야대능력(般若大能力)과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으로도 충분히 혈공에 맞설 수 있습니다. 소림 무학은 원래부터 혈공에 강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상극관계는 없지요.”
“그걸로 부족하니 혈염교주가 살아있는 게 아니냐!”
“사숙께서 바라시는 건 완전히 새로운 계통을 창안하는 겁니다. 백 년으로도 부족할 일이지요.”
“법력무공은 본디 소림 무학의 하나였다. 내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느냐. 실전된 관음청강수(觀音靑剛手)라면 능히 사교 혈귀들의 골통을 깨부술 수 있다!”
“사숙께서는 언행을 좀··· 그리고 비급까지 불탄 무공을 대체 어찌······ 아니, 아닙니다.”
각정이 고개를 내젓고서야 식사가 끝났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다섯 사람이 일어섰다. 정연신의 표정만 묘했다.
‘관음청강수.’
말만 들어서는 혈염교와의 격전에서 극강의 위력을 발휘할 듯했다.
부처의 법력이 담긴 무공. 관심이 생겼다. 더불어 무공에도 상극이 있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파훼와는 다른 근본적인 성질의 차이란 게 존재했던 것이다.
‘어느 한쪽에 특화된 무공이라. 흥미로운데.’
청색과 흑색을 비롯한 강자들이 많았다.
아직 무공 수위가 떨어지는 정연신에게는 새로운 단초였다.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듯했다.
소림 권법의 형과 식이 품고 있는 묘리. 소림 선종 사상을 관통하는 뜻.
초식의 형태와 진기를 채우는 의념을 알았다. 정연신에게는 모두 던져 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때였다.
“뭘 하느라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는가 했다. 흑도 따위에게 당할 리도 없거늘.”
마진이 놀라운 신법으로 단번에 다가왔다.
뒤로는 마광익 고수들이 신야백무파의 정문을 넘었다. 원종과 각정, 총관을 훑은 마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림승들께서 계셨구려. 포위당했으니 인사할 여유가 없겠소.”
“포위라 하셨습니까?”
정연신이 물었다.
“혈염교다. 소식이 샜어. 하오문이 확실히 배신한 듯한데, 일단 살아나가야겠다.”
어조가 여유롭지 않았다. 긴장감도 있었다. 입황성 흑색이 한 말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정연신은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비로소 혈염교의 진정한 전력을 마주하게 됐다는 실감이 왔다.
어느샌가부터 주변 숲의 산새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문득 소소리바람이 불었다. 뺨 속으로 기어드는 느낌. 귓가를 스치는 소리가 음산했다.
무림세력의 포위는 지역 방위가 넓다고 했다.
천라지망(天羅地網)이란 게 있을 정도였다. 하늘과 땅에 펼쳐진 그물에 빗댄 것이다.
“정문으로 뚫고 나간다.”
마진이 말했다. 어느새 큼지막한 대도를 손에 든 채였다.
마광익 무인들이 각자의 병기를 뽑았다. 정연신은 느꼈다.
발검 소리조차 내지 않은 고수들이 긴장하고 있었다.
청명과 백미려가 그에게 가까이 붙었다. 헌원창도 함께였다.
“혹여 대열을 이탈하게 되면 의천검가(義天劍家)에서 만나도록 하지. 평정산에 있는 무림세가다. 입황성의 하남지부 역할도 겸하는 곳인 바, 살아남으면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터.”
“농담이라고 하신 겁니까?”
툭 던진 듯한 청명의 말에 사람들이 실소를 짓기도 전이었다.
쾅 소리와 함께 담장 벽면이 박살 났다.
앞을 막은 게 무엇이든 뚫린 문과 같다는 것마냥 선명한 발소리로 걸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저벅.
기이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흑발에 적안. 본 적 없는 외모였다.
“안녕.”
격 없이 가벼운 언행.
미풍에 휘날리는 머리칼이 새까맸다. 보통 어두운 게 아니었다.
걸치고 있는 흑색 장포처럼 밤하늘보다 짙게 느껴졌다.
반대로 입술은 핏물을 항시 머금고 있는 양 붉었다. 하얀 피부에 극명히 대비될 정도였다.
전신에 두르고 있는 기도가 사이했다. 흔들리는 장포의 옷자락까지 요사스럽게 느껴졌다.
‘저게.’
정연신은 본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혈염교의 무인은 무공이 높아질수록 적발이 흑발로 변해 간다고 했다.
그녀의 머리칼은 그야말로 칠흑 같았다.
혈염교의 사도. 여인이라면 일곱 번째 사도일 것이다.
강력한 무위와 악랄한 심성이 이미 유명했다.
“칠사도(七使徒).”
마진의 목소리는 복부 깊숙한 곳에서 긁어올린 으르렁거림 같았다.
“우둔하긴. 매복도 모르고.”
음성이 영롱했다. 혈염교의 제칠사도는 새빨갛게 웃으며 걸어왔다.
가벼운 발걸음인데 고혹적인 품격과 무시무시한 기파가 함께 묻어나온다.
수렁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혈사교검과는 격이 달랐다.
“네가 섬예구나. 입황성의 미래.”
십 보 앞에서 멈춰선 그녀의 시선이 정연신에게 향했다.
핏물로 매끄러운 옥을 만들어놓은 듯한 눈이었다.몹시 붉은 홍색 눈동자에 흥미가 감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목덜미가 제법 예쁜걸.”
“나를 봐라, 칠사도.”
한 발 나선 마진을 흘끗 본 칠사도는 시큰둥하게 시선을 돌렸다.
기다란 손가락을 까딱이자 사방에서 혈염교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연신은 시야가 빨개진 느낌이 들었다.
붉은 머리가 족히 백 명은 될 듯했는데, 혈사교검까지 스무 명은 보였다.
“여기서.”
칠사도가 입술을 달싹였다.
“마광익의 미래와 현재를 죽일 거야.”
“······!”
동시에 그녀의 손이 흐릿해졌다. 마광익과 소림 고수들이 적들의 전력을 파악하고 있던 사이였다.
요망한 기운과 함께 핏빛 벼락처럼 쇄도했다.
시뻘건 비수가 삽시간에 정연신의 미간을 파고들 듯 번쩍였다.
파아악!
정연신은 그대로 잡아채며 몸을 틀었다. 인지하기 전에 육신이 먼저 사특한 힘에 반응한 듯했다.
경력의 여파가 무지막지하게 강해서 한 걸음 물러섰는데, 자신의 손아귀에 머물고 있는 기운이 낯설었다.
비수에 실린 혈공의 진기를 해소해 준다. 밤새 들은 각정의 설법이 귓전에 울리는 것 같았다.
-삼독(三毒)을 영원히 없애고 항상 육근(六根)이 깨끗할지어다.
불교 경전의 뜻과 소림권법의 식이 어떤 구결로 화하는 중이었다.
달마대사 또한 이렇게 만든 걸까. 이 순간 움튼 미완의 무공이 있었다.
놀란 기색으로 고개를 돌린 마광익 고수들이 흠칫했다. 섬예의 안구에서 가끔씩 빛나던 하늘색이 묘하게 파래진 것이다.
“사도 역시 혈염교의 무공을 쓰는군.”
정연신이 말했다.
칠사도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던 정연신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 무공, 손대기 쉬워.”
그가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