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70
◈ 명성 (5)
어린 태사의 손에 고종학의 목이 꺾인 직후.
삼사도는 아들의 죽음에 개의치 않았다. 도원향으로 갔을 터였다.
혈염교도는 돌아간 이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았다. 현세의 잡스러운 일이야말로 그들을 분노케 했다.
“천한 놈이.”
입황성 잡것이 제멋대로 손을 놀렸다. 본 적 없는 자질이라 하나 천하에 이를 무력도 아니었다.
아직은 버러지에 불과한 놈의 행태인 것이다.
“잡아 오라.”
혈염교주가 나지막이 말했다.
태사의에 앉아 턱에 손을 괴는데, 윤기 탓에 은빛으로 보이는 백발이 흘러내렸다.
의중을 알기 힘든 표정이었다. 적어도 태사의 즉결 처형은 염두에 두지 않는 듯했다.
‘안 될 일이다.’
삼사도는 생각했다.
입황성의 천것은 상당히 위험한 놈이다. 타고난 재능을 짐작할 수 없는데, 그 성품마저 제멋대로였다.
교주의 면전에서 패악을 부리는 놈이 천하에 몇 없을 자질까지 갖췄다. 통제하기 힘든 인사로 성장할 것이다.
-싹을 잘라야 한다.
어기전성(御氣傳聲)으로 말했다. 아주 은밀한 전음을 여럿에게 보내는 수법이었다.
찰나였다. 격분한 중진들이 어린 잡것에게 달려들고 있지만, 혈사교검의 격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법력 무공을 지닌 놈인데 마라굉혈공마저 익혔다. 초혈공의 교검들로는 대적이 불가능했다.
-육사도. 나서라.
-명령하지 마라.
폐부에서 날것으로 올라온 듯한 음성이 돌아왔다.
삼사도는 깡마른 체구에 강퍅한 인상을 지닌 육사도를 흘겼다.
혈염교 본단에 있는 사도는 넷이었다. 정찰을 나선 칠사도와 십사도를 제외하면 둘이다.
육사도 역시 없는 셈 쳐야 한다. 혈공을 익히고도 무학의 극의를 추구하는 망종이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입황성 잡것의 팔다리를 부러뜨리자면, 역시 삼사도 자신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라굉혈공을 운용했다. 곧장 온몸 세맥에서 움튼 충만한 신기(神氣)가 전신을 채웠다.
후욱!
삼사도는 의념과 함께 불타오른 진기를 전방으로 분출했다.
기세의 그물이 짐짓 담담하게 서 있는 태사 놈의 전신을 옭아맸다.
남궁세가의 제왕검형에 비견된다 칭송받는 상승 공부였다. 무형의 감옥처럼 느껴질 것이다.
감히 한 수라도 받아낼까. 제 자질에 취해 섣불리 패기를 보인 애송이였다. 일초 반식도 아까웠다.
‘사지를 뽑아야겠다.’
두 눈을 허여멀건 하늘빛으로 물들인 놈을 봤다. 사도의 안법은 어린 천것의 안광을 꿰뚫었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기이했다. 교검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내면에 침잠한 듯한 모습.
가관이었다. 정신이 다른 곳에 쏠렸다.
“네 가문을 익히 알았다. 하잘것없는 삼류 무가였지.”
삼사도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며 입을 열었다.
“하남 신야현. 정가장.”
기억이 뚜렷했다.
“주제에 맞지 않게 비옥한 땅을 누렸지.”
사파 십삼천의 복잡한 구도 탓에 패검종의 검 귀신들과 협력해야 했다.
요물 천하목의 힘을 빼는 일. 거추장스러운 삼류 가문을 치우고 땅을 불사르라 명했다.
교주도 허한 일이니, 요컨대 저 천것은 원수들 앞에서 대사부 행세를 한 것이다.
“네놈의 선친, 정가장주가 하남에서 알아주는 화화공자(花花公子)였음을 아느냐? 온갖 규수들과 숱한 염문을 뿌려댔다 했다. 제법 출중한 용모로 네 어미마저 꾀어냈지. 전대 신검단주의 옹졸함은 천하가 다 아는데, 그 일을 보고서는 군자가 아닌가 했다. 가문과 연까지 끊은 딸을 후처로 삼은 놈팽이를 살려 두었으니.”
어조에 웃음기가 깃들어 있었다. 조소였다.
“네 아비가 잡배이기에 네놈이 천출인 것이다. 마연적의 외손자라 해도 그렇다. 퇴물 늙은이가 입황성주에게 복수를 애원할까 저어하여 네놈 하나는 살리라 했거늘, 본교의 은혜를 원수로 갚더구나.”
칠사도의 왼쪽 눈이 떨어진 순간 혈염교의 모든 비선이 동원되었다.
하류층이 소식을 주고 받는 하오문까지 위협했다. 입황성 섬예의 모든 걸 알아 오라고.
일이 우스웠다. 후환을 염려해 살려둔 놈이 또 다른 후환으로 화했으니. 강호의 은원이란 그토록 오묘했다.
“초혈공은 잘 바꿔 주었다.”
삼사도의 음성이 거칠어졌다. 사도의 영역에 이른 공력이 목구멍 기도까지 끓어올랐다.
“이제 네 하찮은 수족이 필요없다. 입만 있으면 족할 일이다. 손톱 아래부터 대침으로 저며 주겠노라. 방자한 언행도 살갗으로 포를 뜨면 공손해질 일이다.”
쩌엉!
천것이 혈사교검들의 합공을 제법 잘 받아내고 있었다.
무아지경에 빠진 채 휘돌면서 손을 내쳐댄다. 신법 몸놀림이 유연했다.
전신 혈도에서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운용되는 내공이 담담한 기파로 다가왔다.
마라굉혈공의 경파를 뿜어대는데 법력 무공마냥 교검의 머리를 거침없이 부순다.
새삼 경악스러웠다. 더 크게 두어서는 안 될 놈이었다.
“나와라.”
나지막하게 명하자 교검들이 몸을 뺐다. 순식간에 길이 열렸다. 삼사도는 천것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공 수위란 강호 경험을 포괄하는 말이다. 사람이 그렇다. 세월을 먹고 강해진다. 네놈의 알량한 감각은 아직 개화하지 못했다. 일초지적이란 얘기지.”
듣고 있지 않음을 아는데도 주절거렸다.
무림 강호에 큰 발자취를 남겼을 만한 신진의 사지를 끊고자 한다. 묘한 감흥이 일 수밖에.
“한 수다. 막고자 하는 순간 격살당할지니, 천출로서 처신을 바로하라.”
그때였다.
쿠우웅!
순간 하늘이 울렁였다. 삼사도는 자신의 감각을 의심했다.
초상승의 경지에 이르렀는데도 그랬다. 잘못 보았나 싶었다.
아니었다.
콰아앙!
두 번째 울림은 달랐다. 무언가 깨어졌다. 순간적으로 천지가 개벽하는 듯했다.
대번에 이염혈령진이 떠올랐다. 직감한 바가 들어맞는다면 천지개벽이 맞았다.
수백 년간 본단을 보위한 천고의 방벽이었다. 이염혈령진의 파괴가 곧 혈염교 하늘땅의 와해였다.
“월령신기(月靈神技)!”
뒤쪽이었다. 느긋하게 보고 있던 교주가 벌떡 일어섰다. 몸가짐에 절대자의 체통이 사라져 있었다.
콰아아아!
순간 새하얀 폭풍이 불어닥쳤다. 산산이 부서져 헐어버린 방벽의 파편이 휘몰아쳤다.
삼사도는 드넓은 기감으로 곧바로 느꼈다.
팔방으로 비산하는 기운이 바깥 세상의 바람과 함께 본단을 덮쳐눌렀다.
와아아아!
도처에서 강호의 잡종들이 쳐들어오는 소리였다.
칠사도와 십사도는 무얼 한 걸까. 일찍이 정예 교검 여럿과 함께 정찰을 나섰다. 어찌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은 의미가 없다.
삼사도는 공황에 빠졌다. 술법진의 파훼를 느낄 만한 본단의 초고수들도 그랬다.
천하의 어디에서든 강자로 행세할 자들이 하나같이 머리 위를 응시했다.
까마득한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자가 있었다.
찰나였다. 바람에 스미듯 사라진 몸이 대지에 나타났다.
연둣빛 머리칼과 옷자락이 초월적인 선명함을 발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
하강한 선녀인 듯 사뿐히 바닥을 딛고 선 여인.
전신에서 일어난 존재감은 그렇지 않았다. 혈염교 고수들의 몸이 경직됐다.
무공 수위가 높을수록 느껴야 하는 공포 역시 달랐다.
선녀가 아니다. 저승의 염라가 맞다.
사박.
산보처럼 평온하게 한 걸음 딛는다. 풀잎빛 무복의 끝자락이 부드러운 질감으로 바닥에 쓸렸다.
언제 뽑았을까. 옆으로 들어올린 보검을 타고 흘러내려 온 광채가 영롱한 눈동자와 하얀 피부로 스며들었다.
햇볕이 유난히 밝아진 듯했다.
“미··· 친······.”
혈염교주가 뇌까렸다.
천하를 논하는 자들이 뇌리에 새기는 절대강자들의 용모파기가 있다.
그녀의 얼굴이 첫 번째였다. 지역 군벌이든 무림 대방파든 같다고 했다.
소국의 왕실 역시 다르지 않다고.
“입황성주······?”
삼사도의 침음이 의문을 띤다.
현실로 다가오지 않은 탓이었다. 상황이 그랬다.
용모파기 한 장으로 담을 수 없는 외모도 마찬가지였다. 극치의 아름다움이었기에 인식이 늦었다.
안 된다.
얼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입황성주가 느릿하게 한 걸음을 더 내디뎠을 때, 삼사도는 비로소 고드름이 뒷덜미에 꽂힌 것마냥 싸늘한 충격에 젖었다.
‘본교의 위기다!’
공간을 고요하게 밀어내는 듯한 압박감이 그의 피부를 층층이 저몄다.
맞닥뜨린 무력이 가늠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나서라!”
교단의 뭇 중진들에게 명했을 때였다.
스윽.
입황성주가 움직였다.
잡것들에게 더 이상의 여유를 허락치 않았다.
눈을 부릅뜬 삼사도가 기합을 내지른 순간, 그녀는 놈의 정면에서 검격을 가하고 있었다.
신선이 땅을 좁힌다는 축지술일까. 바람으로 화한 듯 비현실적인 신법이었다.
그녀의 새하얀 검이 투명한 미풍처럼 일렁였다.
툭.
삼사도의 머리가 떨어졌다. 악명 높은 초고수답지 않은 최후였다.
중원의 광활한 성과 성 사이를 넘나들던 이름이 허무하게 스러졌다.
정연신은 눈을 크게 떴다. 불현듯 무아지경에서 빠져나왔다.
상단전 기감과 눈앞의 광경이 일치된 까닭이었다.
‘초식을 보지 못했어.’
정연신은 추측했다. 자신과 같다. 삼사도는 그녀의 손속을 인식하지 못하고 귀천했다.
눈앞에 닥친 죽음만 확신했을 터였다.
그녀가 들어올린 손만 봤다. 검로는 눈에 담지 못했다.
절대고수. 혹은 절세고수.
의미가 다르지만 느낌은 같았다.
어느 누구와 맞서든 우위를 가져간다. 세상에 견줄 자가 없다.
‘천하목의 열매는 강탈의 대상이 아니라더니.’
호사가들의 이야기가 맞았다.
천지에서 가장 신령한 영약을 맺는다는 나무는 그녀의 보위 아래 영원할 것이다.
“······.”
죽음 같은 적막이 교주전 내원을 덮었다.
연회장에 난입한 이교도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삼사도를 참살했다.
허나 비분강개도 상대를 봐가며 해야 할 일이었다. 침묵이 깊었다.
바깥에서 울려퍼지는 무림인들의 함성과 기세만 드높았다.
저벅.
혈염교주가 홀연히 내려섰다. 입황성주의 면전이었다.
금빛 용이 새겨진 핏빛 장포가 뒤늦게 펄럭였다. 그가 새하얀 머리칼을 등뒤로 넘기며 입을 열었다.
“대면은 처음이로군.”
“죄인과 나눌 이야기는 없노라.”
입황성주의 어조에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검도 그랬다.
전조도 없이 희끄무레한 검광이 번뜩인 순간, 혈염교주의 목덜미에서 핏물이 터졌다.
주변에 있던 혈염교 초고수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오래된 절대자의 선혈이 꿈결처럼 쉽게도 흘러나온 것이다.
허나 즉사하지 않았다. 혈염교주는 어느새 반 보 물러서 있었다.
시사하는 바가 큰 일이었다. 검격에 반응했다. 회피 보법을 제대로 밟았다.
흐흐.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던 혈염교주의 입매가 비틀렸다. 새빨간 입술이 양옆으로 끝까지 찢어졌다.
순간 정연신은 분명히 봤다.
목의 검상이 끓어오르며 급격히 재생되는 광경이 놈의 웃음보다도 기괴했다. 혈공의 대종사였다.
혈사교검과는 재생 공능의 격이 달랐다.
동시에 두 절대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흡사 다른 영역으로 들어간 듯했다. 상상하지 못한 내공 성취였다.
콰아아앙!
한참 멀리서 울렸는데도 몸을 휘청일 뻔했다. 귓전을 때린 파동이 엄청났다.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정연신은 재빨리 진기를 일으켰다. 내부를 관조할 필요도 없었다.
귓속 외이도에 내공 방벽을 둘러쳤다. 섬세한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멸마청강수와 마라굉혈공을 궁구하며 내공 운용의 경지가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교주, 교주께선?”
“악적과 싸우고 계신다!”
고수들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교주전의 뒷산이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소리가 또 한 번 울렸다. 벽력탄 수백 개가 한 번에 터진 듯했다.
엄청나게 커다란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때뿐이었다.
굉음의 간격이 간헐적으로 바뀌었다. 절대자들의 충돌은 초기에만 요란했다.
‘한 호흡.’
정연신은 냉정하게 파악했다. 절세고수의 영역에 대해 들었다.
범인의 숨결 한 번이 영원과 다르지 않다고. 가늠하기 힘든 고수들답게 충돌보다 회피와 허초가 많은 듯했다.
정연신은 곧 상념을 접었다.
“사교를 멸하라!”
“파사현정! 척마멸사!”
검격과 경파 터지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혈염교 본단을 치기 시작한 무림인들이었다.
적들의 무기를 대충 흘려내며 질주해 오는 이들이 낯익다.
청명이 가장 빨랐다. 다음이 위지묘화와 백미려였다.
소신승 각정의 보신경도 그들 못지않았다. 화산파의 매화검수들까지 있었다.
반가웠다. 마음을 누일 침상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정, 정 소협······!”
선명히 들렸다. 선두의 끄트머리에 헌원창이 있었다.
그가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달려 왔다. 경공을 펼치며 혈염교도 여럿의 검격을 재치있게 피해낸다.
정연신을 보고는 몹시 피로해 보이는 웃음까지 지었다. 여전한 동료였다.
‘무공을 회복했구나.’
크게 안도하는 한편, 정연신의 뇌리가 팽팽거리며 회전했다.
입황성주의 승리를 떠올렸다. 허나 혈염교주 역시 광대한 중원에서 손꼽히는 절대자였다.
녹록하게 당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는 희생이 커진다. 얼핏 훑은 것만으로 알았다.
“네가 본교의 재앙이었군.”
지금 한켠에서 살기를 피워올리기 시작한 육사도가 큰 문제였다.
정연신과 무림인 양측을 번갈아 응시하는 모습이 몹시 위협적이었다.
입황성 흑색 대주에 빗댈 만한 강자는 흔하지 않았다.
‘사도에 미칠 초고수가 없어.’
사방에서 밀고 들어온 무림인이 수백 명이라 해도 그랬다.
수십의 혈사교검도 마찬가지였다. 본단의 교검 정도면 지역의 현이 아니라 부(府)를 재패할지도 몰랐다.
강호에 드문 강자들이란 의미였다.
“입황성의 대주들이 오고 있다!”
청명이 경공 질주와 함께 외쳤다. 허장성세인 게 분명했다.
상단전 기감이 일어났을 때 이미 살폈다. 아군에 흑색은 없다.
입황성의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광활한 중원을 아우를 인력이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