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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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이무기
“후우우우.”
숨을 길게 들어쉬고 내쉰다.
전부 내쉬지는 않고 한 호흡을 남기자 몸이 편안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떨리지도 않고 의지에서 벗어나는 움직임도 없는 아주 평안한 상태. 그러나 이 상태는 결코 길지 않다. 이 평온한 상태가 깨지기전에 목적했던것을 이뤄야했다. 그리고 남자가 보이자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콰직!
소리가 전해질리 없는 거리였지만 엘리의 귀에는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것만 같았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마도포를 거둔 엘리는 그대로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이만 하더라도 엘리와 맞먹을정도로 거대한 마도포는 그녀의 근력으로는 드는것조차 버거웠다. 보조 마법으로 무게를 줄이고 근력을 강화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드는것조차 불가능했을터. 물론 그냥 인벤토리에 넣고 가면 편하게 이동할수 있지만 눈곱만한 마력이라도 충전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들고가야했다.
산행은 별로 해본적이 없지만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르다보면 분명히 익숙해질수 있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가던 엘리는 곧 목적지에 다다르던 순간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며 마도포를 어딘가를 향해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마도포에 달려있는 구슬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방아쇠를 당기자 곧 저 너머에 있는 표적이 쓰러지는게 보였다. 그 후에는 뻔했다. 그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더니 곧 두서없이 흩어져서 저 멀리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단 한명의 침입자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엘리는 ‘시야 강탈’을 해제했다.
갑자기 시야가 달라지자 현기증이 올라왔다. 한번 머리를 휘저은 엘리는 마도포를 인벤토리로 되돌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강제 미션이 시작한 이후 빠르게 생각을 끝마쳤다. 이 섬에서는 자신 혼자만의 목숨을 부지하는것만도 힘들다. 유성훈은 공격으로 나서서 최대한의 이득을 거두려했고 미리내는 은거를 통해 스스로의 발전을 꾀했다.
그리고 엘리가 선택한것은 바로 방어였다.
‘나는 약하다.’
다른 사람들과 연계를 할때는 모르겠지만 순수하게 일인의 전투력만으로 따지자면 가장 약한것은 자신이다. 타인과 연합하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엘리는 동료를 만들지 않았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짐승의 눈에는 짐승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녀가 볼때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무슨 꿍꿍이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로만 여겨졌다. 그래서 그녀는 단 한 명도 동료를 만들지않고 산을 떠돌다가 적당한 장소를 발견할수 있었다.
맛 좋은 과실이 맺혀있는 나무와 작은 샘물이 새어나오는 곳.
자신 혼자만 지낸다면 채집과 사냥을 병행하면 충분히 한달을 버틸수 있는 공간이었다. 자신만의 은신처를 결정한 엘리는 곧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녀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것은 첫번째 미션을 진행한후 성훈이 내뱉은 충고였다.
마녀는 공격마법의 위력이 감소되는 대신 버프, 디버프, 그리고 잡학 계열 종류의 마법의 효율이 올라간다.
이건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니었다. 버프나 디버프를 노릴거면 차라리 신관을 찾고 만다. 마법사를 영입하는 이유는 바로 전장의 분위기를 뒤바꿀수 있는 강력한 한방을 기대해서다. 이대로 마녀의 직업을 밀고 나간다면 공격, 방어 둘 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되고 말리라.
평범한 사람은 여기서 공격마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갔으리라.
그러나 엘리는 평범하지 않았다.
“왜 굳이 공격마법을 강화해야지?”
마도포를 얻어서가 아니었다.
마도포가 아니었더라도 엘리는 분명히 마녀의 직업을 계속해서 밀고 나갔을것이다. 마도포를 얻어서 공격력을 보충할수 있게 된건 전혀 예상밖의 일이었다.
엘리는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진정한 마법사란 과연 무엇일까?
강력하고 파괴적인 마법을 사용할수 있는게 진정한 마법사인가? 한번의 손짓으로 수백의 적을 불태우고 도시를 휩쓰는 폭풍을 만들어내며 해일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거창한것들이 진짜 마법일까? 단순히 위력이 강력한게 진정한 마법?
엘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화염의 덩어리나 얼음의 창, 전격의 화살을 만들어낸 단순히 파괴적인것보다 오히려 보조 마법들이 훨씬 더 고등하고 뛰어난 마법같았다. 손짓 한번에 죽어가던 사람들이 힘을 얻고 멀쩡한 사람들이 쓰러지며 상식적으로는 할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것. 그게 엘리가 생각하는 진짜 마법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온갖 보조 마법을 익혔다.
……
………
어떤 사람도 익히지 않는 보조 마법들을 익혀나간다. 그녀가 익힌 공격마법은 겨우 8개, 그에 반해 보조마법은 120개가 넘어간다.
그렇게 익힌 보조마법을 극한까지 활용해서 만든 자신만의 거처.
마법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하지만 그녀는 자랑스럽게 이 마법을 ‘마녀의 영토’라고 이름붙였다.
이 근처는 온갖 보조마법으로 뒤덮여있다. 아무리 은밀한 암살자라도 접근하는순간 바로 들통나고 말리라. 환상마법은 목적지를 잃고 헤매게 만들고 대단한 힘은 없지만 몬스터는 발은 묶을정도는 된다. 오래있으면 있을수록 능력치가 줄어든다.
마지막은 시야 강탈과 조준 마법을 이용해 상대방의 위치를 확인하고 마도포를 겨눈다.
그녀의 마력으로는 하루에 몇번 쏘지도 못하는 마도포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곳곳에 마력집적진을 만들어놨다. 덕분에 적어도 사람 한 명을 죽일수 있을정도의 사격을 하루에 최소 서른발은 날릴수 있다.
그렇게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엄연한 별명까지 생겨버렸다.
‘죽음의 숲.’
들어간 사람이 모두 행방불명이 되서 붙은 별명이다.
이 별명이 붙은 이후로는 어지간하면 숲에 사람들이 들어오려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꽤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아마 이 숲에 강력한 네임드 몬스터나 던전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리라.
물론 그 무모한 도전의 결과는 엘리의 앞에 놓인 식량봉지 스무개로 나타났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과일이 아닌 밥을 먹을수 있다고 기뻐하던 엘리는 곧 이마를 찡그렸다.
덜덜덜덜.
덜컹! 덜컹!
지면이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지면에 납작 엎드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진동이 멎기 시작했다. 한 차례 수난이 지나가자 엘리는 입술을 내밀면서 중얼거렸다.
“대체 매일 이게 무슨 난리야? 지진이라도 나려는건가?”
벌써 일주일째다.
처음에는 그저 미미하게 떨리는게 전부였지만 요즘들어서 그 강도가 부쩍 거세지고 있었다. 미션이 끝날때까지 오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불안은 더더욱 커져만갔다.
“혹시나 화산이라도 폭발하는건 아닐까…라던가. 헤헤.”
자신이 생각해도 실없는 말이라고 생각한 엘리는 곧 조금씩 심각한 표정으로 산 정상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 섬은 총 네 개의 산이 존재한다.
북쪽에 존재하는 얼음산, 남쪽에 존재하는 돌산, 동쪽에 존재하는 민둥산, 그리고 서쪽에 존재하는 산. 특히 서쪽에 존재하는 산은 분화구도 있고 곳곳에 온천도 존재한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엘리 자신이 서쪽 산에 살기 때문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산 꼭대기를 바라보던 엘리는 일단 배를 채우면서 빠른 시일 내로 짐을 챙겨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혹시나라는 생각을 하면 안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계야. 화산? 외계인이나 공룡이 나타날수도 있는데 이 정도 걱정이야 당연한거지.’
지금와서 멀리 떠날수는 없다.
그러나 왠지 여기서는 조금 멀어져야 할것 같은 기분을 감출수 없었다.
10일 전.
미션 시작후 16일 경.
수많은 유저들이 서로간의 생존을 두고 끊임없이 다투는 가운데 지금까지 사람의 발길이 단 한번도 닿지 않은 장소에 성훈이 있었다. 최고의 은신처라고 할수 있는 장소였지만 성훈은 그렇게 널널하게 있어도 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화르르륵!
정수리부터 정확하게 일도양단을 하자 그대로 불똥으로 변해 사라지는 화염의 원숭이를 바라보면서 성훈은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별로 싸우지도 않은것같은데 더워서 돌아갈것만 같았다.
환경 효과 덕분에 체력 감소율이 증가하기도 했고 워낙에 온도가 높다보니 어쩔수 없었다. 마음같아서는 이대로 앉아서 푹 쉬고 싶었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허억, 허억! 저, 저기야!”
“x발! 족쳐버려!”
“젠장!”
벌써 2일째다.
처음에는 그저 도망치는것에 중점을 뒀지만 점점 성훈의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가?
누굴 죽인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경계가 삼엄한 다른 사람의 마을에 들어가고 지키고 있던 장소에 몰래 침입해 던전안에 들어온 사소한(?)일을 저지른것뿐인데 대체 왜 이렇게 죽이지 못해 안달인가?
게다가 주변의 온도가 높다보니 짜증지수가 올라가는 속도는 2배, 아니 4배였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내가 먼저 시작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해. 체력을 회복하는대로 바로 사냥을 시작한다!’
피잉!
“큿!”
고개를 꺾자마자 날아온 화살이 볼을 아슬아슬하게 긁고 지나갔다.
각궁에 바로 화살을 건 백운성은 망설임없이 시위를 놓았다. 그는 그 나름대로 빡친 상황이었다. 추적을 시작한지 2일째. 그도 진작에 저 괴인이 김이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면을 쓰고있는것은 둘째치고서라도 한손에는 책, 한손에는 검을 든 이상막측한 전투방식은 절대로 김이현이 싸우는 방식이 아니었다. 김이현이 아니면 더 이상 여기서 미적거릴틈은 없다. 바로 마을로 귀환해서 방어를 단단히 하는게 이득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도 없었다.
들어올땐 마음대로였어도 나갈때는 아니라는 명언을 몸소 깨달은 백운성은 그대로 눈이 뒤집혀버렸다. 왠 천둥벌거숭이 하나 때문에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뭐하던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잡아서 죽이고 만다. 무슨일이 있어도 사냥 해 주마!’
의외로 서로 생각이 통하는 둘이었다.
그렇게 화염 동굴에 떨어진지 3일째로 접어들무렵 추격전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