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65
■ 664화. 목소리 (4) □ ᓚᘏᗢ
솔직히 말해서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다. 나는 이미 이 세상의 진실을 알고 있으며 신들도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게다가 신들도 마음이 바뀐 게 있었는지 본인의 과오를 밝히기 위해 나를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악마 숭배자가 진실을 밝힌다니 뭐니 하면서 지껄여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다.
‘루미너스가 크레토스마냥 신들을 다 쳐죽인 것도 아는데.’
아는 걸 넘어서 신이 패륜을 저지른다? 아, 신화니까 그럴 수 있지~ 라며 넘어간다.
이건 내가 아니라 신화를 조금 아는 지구인에게 물어봐도 똑같다. 제우스가 희대의 강간마인 것도 모두 알고 있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는 인지도도 인지도지만 막장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군림하는 중이다. 3대가 패륜을 저질렀으니 말 다했지.
북유럽 신화는 그나마 덜하지만 그쪽은 잔혹한 면모가 강하다. 그들을 섬기는 바이킹이 어떤 민족인지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불과 대장장이는 보통 드워프를 떠올리잖아요. 그렇죠?”
“······그렇지. 하지만 축복을 받은 것과 창조는 별개라네.”
“아. 그러면 드워프는 달로스라는 신이 창조했고, 스타비르크 민족은 단순히 축복을 받은 거다?”
“··· ···”
내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가자 현자는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진지함과는 한없이 거리가 멀기에 당황스럽겠지. 헛소리에 지나지 않지만 동지로 착각할만하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들과 한 배를 탈 생각이 없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온갖 범죄를 저질렀으니.
“스타비르크 민족이 드워프를 질투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나요?”
“각기 장단점이 있다네. 드워프가 선천적으로 뛰어난 손재주를 지닌 건 맞지만, 인간에 비해 발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네.”
“그럼 달로스는 어째서 드워프를 창조한 거죠?”
“그건······ 아니. 잠깐만.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거지?”
어쩌다보니 옛 이야기를 줄줄 말하던 현자가 정신을 차렸다. 뽕을 뽑을대로 뽑고 싶었는데 약간 아쉽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현자가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이미 주도권은 나에게 있지만.
“듣자하니 이미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양이로군. 아닌가?”
“대충 알고 있죠. 루미너스 님이 관장하는 영역이 전쟁이었다는 것도.”
“호오. 그러면 이야기가 훨씬 쉬워지겠구만.”
쉬워지긴 뭐가 쉬워져. 나랑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통하겠지. 원래 친밀감을 가지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공통된 분모를 찾는 것이다.
앞의 현자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알고 있으며 나 또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당연히 친밀감을 가질 수밖에.
“거짓된 신들은 끔찍한 죄악을 저질렀다네. 감히 최고신이자 만물의 아버지의 의지에 거역해 새장을 쳐놓았지.”
“그렇죠. 새는 새장 안이 가장 안전하지만, 새는 새장 안에서 죽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해. 그대가 넘어온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현명한 건가?”
현자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좀 양심이 찔린다.
단지 문화의 양질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뿐이다. 게다가 나는 대한민국, 그러니까 공교육 시스템이 정립된 곳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주변에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등. 압도적으로 국력이 강한 국가들이 존재해서 그렇지 강대국인 건 확실하다.
너무 과도한 성장 때문에 부작용이 서서히 튀어나오고 있다지만 과학과 문화는 좋은 수준이다.
“나라에 따라 다를 겁니다. 피와 강철을 읽어보셨다시피 제가 사는 곳은 100개가 넘는 국가가 존재합니다.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없다고 해야할지 누구들 덕분에 제가 이리로 넘어왔죠.”
“흠.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군. 소환 의식이 반쯤 실패했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일지도 몰라.”
“원래는 누구를 소환시키려 한 건데요?”
지혜로운 현자라더니 소환에 대한 것도 파악한 모양이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혀를 잘 놀려야 할 것 같다.
현자는 내 질문에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상당히 날카로운 질문을 꺼냈다.
“그대가 이곳으로 넘어오기 직전의 시대가 언제였지?”
“무슨 말씀이시죠?”
“미네르바 제국 출신이니 잘 알고 있지 않나. 제국년으로 몇 년인지 말일세. 대부분의 나라가 건국년도로 따지고 있지.”
지구는 기원전과 기원후로 명확히 나뉘어져 있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기점으로 나눈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기원처럼 보편적으로 나눠진 년도가 없다. 각 나라마다 건국년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나마 알븐하임이 기준을 나눌 때 사용된다지만 그것마저 건국년도다. 다른 나라 입장에서 사용하기가 상당히 껄끄럽다.
“음······ 거짓말을 해도 되나요?”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네. 만물의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있으니.”
“사실 전 여자였습니다.”
“······허허. 너무 뻔한 거짓말은 하지 말게.”
대뜸 그리 밝히니 현자가 허탈하게 웃는다. 나도 괜스레 무안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면 진실인 것 같은 거짓말은 무엇이 있을까. 이것도 굉장히 애매하다.
결국 마땅한 거짓말이 떠오르지 않아 넘어가기로 정했다. 현자가 알아서 파악할 거다.
“저는 바람둥이가 아닙니다.”
“이제는 거짓말이 아니라 양심이 터진 소리를 하는군. 계속 그러면 대화를 그만두겠네.”
“죄송합니다. 진실 같은 거짓을 말하기도 힘드네요.”
반대라면 모를까. 나는 속마음을 삼켰다.
일단 현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내야겠지.
“제가 넘어온 시대는 이전에 비해 평화로운 시대였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다사다난했죠.”
“진실이로군. 얼마나 다사다난했지?”
“인류가 스스로를 멸종시킬 뻔한 적이 100번 넘게 있었다면 믿겠어요?”
“··· ···”
현자는 내 말을 듣고 눈쌀을 찌푸렸다. 무언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내가 말하는 건 ‘냉전’이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세계멸망의 위협이 도사리던 시대.
핵폭탄의 공포를 전세계로 몰아넣었으며 우주경쟁 및 컴퓨터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시대다.
소련 붕괴와 동시에 냉전이 종식됐음에도 핵폰탄에 대한 공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미국의 주요 발작 버튼이 바로 핵이다.
“······말이 안 되는군. 신이 아니고서야 인류를 멸종시켜? 진실이라는 게 더 혼란스럽군.”
“엄밀히 따지자면 문명을 구석기 시대로 돌려놓는 힘이라 보면 됩니다.”
“그런 무기는 봉인했겠지?”
“아직 수 천개가 넘는데요.”
“··· ···”
다행히 현자가 리나처럼 차를 마시지 않아서 다행이다. 차를 마셨다면 내 얼굴에 분사했을 테니까.
“그나저나 시대에 대해서는 왜 묻는 거예요? 원래의 소환 의식과 관련이 있나 보죠?”
“······당연히 있다네. 우리는 세계의 역사를 비틀 정도의 힘을 가진 영혼을 데려올 생각이었으니까. 그 영혼이 담을 그릇도 준비했고.”
“그리고 제 할아버지가 모조리 박살냈죠. 그 여파로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악마 숭배자의 존재 또한 드러났죠.”
소환 의식의 실패에 대한 나비 효과를 줄줄이 읊자 현자가 눈을 감았다.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진 걸 보면 생각만 해도 열이 받는 것 같다. 열이 안 받을 수가 없지.
선조가 의식을 망친 것도 모자라 그 후손이 후일을 도모할 기회마저 모조리 박살냈으니까. 나 같아도 화나겠다.
“······아무튼 시간상으로는 약 80년의 차이가 있다네. 그대라면 대충 알고 있겠지.”
“80년이라면······”
내가 죽은 년도는 2020년대. 그 시대로부터 80년의 차이라면······
‘······히틀러나 스탈린 둘 중 하난데?’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의 스탈린이라던가, 자살하기 직전의 히틀러라던가. 둘밖에 생각이 안 난다.
이렇게 보니 정말 굉장한 라인업이구나. 새삼 2차 세계대전이 세상을 얼마나 바꾸었는지 실감난다.
“아까 그릇이라 했는데 무슨 그릇이죠? 설마 그 석상이 그릇인가요?”
“생명 유지가 불가능한 석상에 영혼을 때려박는 짓을 누가 하는가? 만삭의 마족 여인을 납치했었지.”
“··· ···”
상상 이상의 씨발놈들이었구나. 생각만 해도 얼굴이 찌푸려진다.
어쨌거나 소환 의식이 성공해 히틀러나 스탈린의 영혼이 마족으로 태어났다면······
‘이야. 좆될 뻔했구나!’
파시즘에 가장 위험한 나라가 바로 헬리움이다. 절제를 미덕으로 삼고 있었기에 그 성향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
만약 둘 중 한 명이 마족으로 태어났다면 헬리움은 파시즘 혹은 그에 준하는 공산주의로 변질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세계정복을 단행했겠지. 민족주의자 히틀러는 마족을 위해서, 권력주의자 스탈린은 본인의 권력을 위해서.
여러모로 아찔한 순간이다. 심지어 신들조차 건드릴 수 없었을 테니 악마 숭배자의 계획은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의식이 그대로 진행됐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겠네요. 이건 확신할 수 있어요.”
“고맙군. 그래도 원하는 바는 반이나마 이루었으니 상관없지.”
“그러면 하나만 물어봅시다.”
의식에 성공해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었어도 알븐하임 및 연합군이 어떻게든 막았을 것이다.
엘프는 적어도 마족만큼은 경계하고 있으니까. 선민의식이 존재한다지만 파시즘 마족을 한 번 맛보면 제대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세상이 말 그대로 불바다가 되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마족의 ‘화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했으니.
그리 된다면 헬리움이 믿는 모라는 자연스레 ‘악신’으로 취급될 테지. 악순환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나 예상에 지나지 않지만 세상이 뒤숭숭해지고 악마 숭배자의 세력 또한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 숭배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이들이 숭배하는 만물의 아버지의 완전한 부활인가.
“당신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뭐죠? 만물의 아버지의 완전한 부활인가요?”
“물론이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목표가 있다네.”
“더 큰 목표?’
“자유의지.”
자유의지라는 말에 한 쪽 눈을 치켜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현자는 내 표정을 읽고 불쾌하게 웃다가 찬양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만물의 아버지께서는 우리 같은 필멸자에게 자유의지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네. 새장따위 존재하지 않는,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는 자유의지를!”
“날아가다가 독수리에게 먹히거나 날개를 잃어 땅으로 추락할 수도 있죠.”
“그렇기에 인류는 무궁무진한 발전을 할 수 있는 걸세. 그대가 살던 곳도 그렇지 않나?”
“부정할 수는 없네요. 대신 전쟁이 시도때도 없이 터졌죠.”
지구 역사의 반 이상은 전쟁이다. 현대 시대조차 러-우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세상이 요동쳤다.
인류는 이기적이며 욕심이 많다. 그 덕분에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거지만 피해를 입는 곳도 생기기 마련이다.
“피와 강철 같은 전쟁이 터져도도 상관없는 건가요?”
“그대가 아닌 제국의 황녀가 총에 맞았다면 비슷한 전쟁이 일어났을 걸세.”
“당신이 조언했다면서요. 막으라고.”
“조언을 했기에 아살라가 망설였던 거지.”
“허.”
고도의 심리전이었구나. 나는 헛숨을 삼켰다.
일부러 그런 정보를 흘렸기에 아살라가 극단주의자를 처단하지 못한 것이다.
보아하니 아살라가 갖고 있는 민족주의적 성향 때문이겠지. 지혜롭다면 지혜로운 계획이다.
“만물의 아버지가 돌아오신다면 우리 인류에게 자유의지를 심어줄 수 있다네. 그대는 그런 세상에서 왔으니 어떤 느낌인지 잘 알겠지.”
“물론 잘 알죠.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자유의지를 부여했는지도 잘 알아요.”
지구가 그랬듯이.
“결국 루미너스 님이 옳았군요.”
만물의 아버지는 세상을 멸망시키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