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222)
Chapter 222 – 소유물 #2
“마츠다 군…!”
카페 안으로 들어온 미유키가 날 발견하고는 만면에 반가운 기색을 띠었다. 몇 없는 손님들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추는 그녀에게 손을 흔든 내가 말했다.
“왔냐?”
“응. 구석자리에 앉을까?”
“왜 하필 구석이야?”
“일하는데 방해될까봐.”
“그런 거 없어. 원하는 자리에 앉아.”
“그럼 다행이구. 안녕하세요! 이노오 선배!”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온 렌카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미유키. 아는 얼굴을 마주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렌카가 얼떨떨하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 하나자와.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마츠다 군이 알려줬어요. 오늘 오는 거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
“몰랐지…”
“혹시 실례가 됐을까요?”
“전혀 아냐. 잘 왔어.”
미유키의 뒤에는 부반장과 빵녀가 있었다. 미유키와 렌카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부반장에게도 시큰둥한 인사를 건넨 나는, 빵녀에게 턱짓을 했다.
“오랜만이다?”
“콜록?”
“난 잘 지냈지. 가서 앉아있어라.”
켁!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주억거린 빵녀는 곧 미유키, 부반장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지켜보던 렌카가 황당한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너 방금 뭐했어…?”
“뭐가요?”
“약간 소심해 보이는 애가 기침했잖아. 근데 왜 알아듣는 척해…?”
대화답지 않은 대화를 듣고 어이가 없어진 모양이었다. 하긴, 3자가 봤을 땐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겠지.
“알아들으니까요. 부장도 쟤랑 같이 있다 보면 뭐라 말하려는지 다 알게 돼요. 기침소리의 높낮이가 다르거든.”
“그, 그래…? 신기하네… 다 같은 반 친구야?”
“예.”
“하나자와가 온다는 건 왜 말 안 했어?”
“말해야하나요?”
“그건 아니지만 말해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잖아. 그리고 하나자와한테는 엄청 친절하네?”
“스승님한테도 친절하죠. 부장한테도 마찬가지고.”
“나한테도…?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맨날…”
“맨날 뭐요?”
“…. 아니다. 너랑 말하면 내 자신이 지치는 느낌이라 조용히 하고 있을게.”
“혹시 질투하고 있는 거예요?”
“웃기지 마. 이 망상증 환자 자식아. 질투는 무슨 질투야?”
정색을 하며 날 쏘아붙인 렌카는, 미유키가 주문을 하러 다가오자 밝게 웃어보였다.
“주문하려고?”
“네, 마츠다 군은 캐러멜 허니 라떼가 제일 맛있다고 그걸로 마시라는데,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음료가 있을까요?”
“캐러멜 허니 라떼보다는 초코칩 프라푸치노나 초콜릿 아이스 블렌디드가 더 맛있어.”
“그래요?”
“응. 아니면 하나하나씩 줘볼까?”
“저희야 그래주시면 감사한데… 만들기 너무 귀찮으실까봐…”
“손님으로 온 건데 귀찮고 자시고 할 게 있어? 괜히 배려 안 해도 돼.”
“그러면 하나씩 세 잔 주문할게요.”
“사이즈는 뭘로 할래?”
“레귤러요.”
“알았어. 쿠폰 없지? 도장 열 개 모으면 아무거나 하나 무료니까 줄게.”
“아 진짜요?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 주문을 받고 결제까지 끝마친 렌카는 미유키에게 진동벨을 쥐어주었다. 이후 그녀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옆에 있던 내게 말했다.
“에스프레소 큐브 꺼내.”
“명령하지 말죠?”
“꺼내.”
“부장은 기가 세도 너무 세서 탈이네요.”
“시끄러워. 하나자와 거 대충 만들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그럼 일해.”
간만에 할 말이 없게 만들어주는구나. 나중에 두고보자.
**
“마츠다 군, 이거 여기 놓으면 되지?”
커피 트레이를 반납대에 올려놓은 미유키의 물음. 미유키를 도와 다 먹은 컵 안의 얼음을 깔대 안에 탈탈 털어넣은 내가 말했다.
“빨대는 왼쪽 상단에 놔.”
“응.”
“맛있었냐?”
“기대이상이었어. 호노카랑 마사코는 초코칩 프라푸치노가 더 좋대.”
“걔네들이 그렇지 뭐. 넌 어땠는데?”
“난 캐러멜 허니 라떼가 더 좋았어.”
역시 미유키는 속이 깊다. 지금 잠깐 창고에서 들어가서 하면 안 되나?
“다행이네.”
“여기 자주 와도 돼?”
“되지 왜 안 되냐?”
“방해될까봐 그렇지… 그럼 쿠폰에 도장 열 개 채워야겠다.”
내 앞에서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도장이 세 개 찍혀있는 쿠폰을 흔들거리는 그녀. 깜찍한 미유키의 행동에 피식한 나는, 주변 눈치를 보며 그녀의 머리를 사근사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든가. 이제 뭐할 건데.”
“놀러 가려구.”
“쟤네랑?”
“응. 너무 늦지 않게 갈게. 내일 같이 공부하는 거 잊지 않았지?”
내일은 내 휴일이었다. 미유키는 그것을 잊지 않고 내게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질색을 한 내가 미간을 구겼다.
“아 뭔 벌써부터 공부를 해. 첫 휴일은 집에서 쉬면 덧 나냐?”
“그럼 집에서 공부하면 되지. 그리고 이건 방학 전에 약속했던 거잖아.”
저 저 학생들을 관리하는 반장의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좀 보라. 사랑스럽긴 한데 공부할 생각을 하니 막막해진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으니까.
“알았어. 해.”
“잘 생각했어. 그럼 이제 간다?”
“가라.”
내 음모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미유키가 밝은 표정으로 렌카에게 인사를 하고는, 부반장과 빵녀를 데리고 나갔다. 창문을 통해 한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미유키를 지켜보고 있던 렌카가 말했다.
“왜 하나자와 같은 착한 애가 너랑 친한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
평소처럼 장난 식으로 비꼬는 걸 보니, 아까 내가 미유키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은 못 본 듯하다. 봤다면 둘이 무슨 사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으려 했겠지.
“친하면 안 되나?”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의외라서.”
“왜 또 대들어요?”
“무, 뭐…? 이상한 소리 할래…? 대드는 건 너야…!”
순식간에 시뻘개지는 렌카의 얼굴. 저렇게 본전도 못 찾을 거면서 왜 까부는지 모르겠다. 반골이라서 당연한 건가?
“그렇다고 치고, 저 내일 휴문데 혼자 잘할 수 있겠어요?”
“…. 못할 건 뭐가 있어? 사장님도 도와주시는데… 오히려 너랑 할 때보다 잘할 걸? 마음도 편할 거고.”
“내일 손님으로 와야겠다.”
“만약 그러면 네 음료에 침 뱉을 거야.”
“그래요? 오히려 좋은데.”
“무, 뭐…?”
“되도록이면 많이 뱉어줘요.”
“…. 진짜 변태새끼.”
“할 줄 아는 욕이 그거밖에 없어요? 이젠 칭찬으로 들릴 지경인데 좀 창의적으로 해봐요.”
“…..”
비아냥에 삐친 렌카… 너무 예쁘다. 삐죽 내민, 블루베리 맛이 날 것 같은 저 입술에 당장 달려들어 키스를 하고 싶다. 그리 생각한 내가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오늘도 같이 돌아갈 거죠?”
“싫어… 무, 뭐야…? 다가오지 마…!”
완곡히 거절을 하려던 렌카가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그녀의 곁으로 성큼 다가갔기 때문. 고개를 뒤로 쭉 뺀 렌카가 당황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사이, 내가 재차 물었다.
“같이 갈 거죠?”
“가, 갈게…! 가면 되잖아…! 그러니까 좀 떨어져…! 손님들도 있는데…!”
“손님들 없으면 이래도 돼요?”
“다, 당연히 안 되지 이 무식한 놈아…!”
“그냥 쳐다만 보는 건데.”
“안 돼…! 쳐다보지도 마…!”
조만간 내가 뭘 하든 허락해주게 될 거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미래를 그린 나는, 순순히 렌카에게서 떨어졌다.
“끝나고 로봇매니아에서 피규어 구경이라도 하면서 기다려요.”
“안 할 거야…! 구경 안 해…!”
“그럼 탈의실에서 애니라도 보고 있든지.”
“….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꺼…”
“알았어요.”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렌카 조교를 끝마친 나는, 얌전히 싱크대로 가 고무장갑을 꼈다.
**
저녁 근무자와의 교대를 마친 나는, 약속시간에 딱 맞춰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렌카에게 한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렌카가 도도한 몸짓으로 팔짱을 꼈다. 기가 죽지 않으려는 노력… 가상하구나.
그렇게 렌카를 태우고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용히 운전에 집중하던 나는 룸미러를 통해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렌카를 흘끗거렸다.
“부장.”
“뭐.”
“어디 갔다 왔어요? 오늘은 피규어 안 샀어?”
“반말하지 마.”
“안 샀냐고요.”
“그냥 거리 돌아다녔어.”
“춥지는 않았어요?”
“별로.”
또 다시 틱틱대는 렌카를 보며 실소를 터뜨린 나는, 신호가 걸린 틈을 타 그녀의 코앞까지 내 고개를 쑤욱 내밀었다.
“흐악!?”
자신의 눈앞에 불쑥 나타난 머리에 놀랐을까? 기겁한 렌카가 짤막한 비명을 터뜨리더니, 카페에서처럼 고개를 뒤로 쭈욱 뺐다. 헤드레스트에 뒤통수를 댄 채로 눈을 크게 뜨는 그녀. 긴장을 했는지 침을 꼴깍 삼킨 그녀가 날 나무랐다.
“가, 갑자기 왜 또 난리인데…!”
“추운 것 같아서 확인해보려고.”
“어, 어떻게 확인한다는 거야?”
“가까이 붙어보면 몸에서 나오는 냉기를 느낄 수가 있잖아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부장은 체질 자체가 차갑기도 하니까, 이렇게 하면 알 수 있어요.”
말을 마친 나는 눈에 힘을 살짝 풀면서 눈꺼풀을 반쯤 내렸다. 이후 내 얼굴을 렌카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갔다. 마치 키스를 하기 직전의 사람처럼 말이다.
“야…! 야!”
이에 렌카가 다급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손을 등받이 조절기에 가져다대었다. 등받이를 내려 거리를 두려는 모양인데… 그게 더 이상한 걸 너는 알고 있을까? 귀엽기 짝이 없는 그 행동에 속으로 대소를 한 내가 옆쪽 방향으로 턱짓을 하며 말했다.
“담요 좀 꺼내려고요.”
“담요…?”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두는 렌카. 뒷좌석을 뒤적거리고 있는 내 한손에서 담요가 들려나오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눈을 부라렸다.
“너는 담요를 왜 이런 식으로 집어…! 그냥 몸만 살짝 돌리면 되잖아…!”
“이게 편해서.”
“웃기지 마…! 날 놀리려고 한 거면서…”
“아니니까 이거나 덮어요.”
담요를 펼친 나는 그것을 렌카의 무릎 위에 덮어주었다. 그러자 눈을 데굴 굴린 그녀가 자신의 기다란 속눈썹을 두세 번 끔벅였다.
“쓸데없는 짓을 하네…”
또 저러네. 좋으면서. 어깨를 으쓱인 나는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두고, 지나가듯 화제를 돌렸다.
“부장이랑 알바하는 거 진짜 재미있어요.”
“난 재미없어. 널 사장님한테 소개시켜준 걸 후회하는 중이야.”
“섭섭하네요.”
“전혀 섭섭해보이지 않는데?”
“맞아요. 휴일 겹칠 때 저랑 영화 볼래요? 이번에 유명한 애니 극장판 나왔던데. 액션 장난 아니래요.”
“…. 안 봐.”
“왜요? 이미 봤어요?”
“아니야…! 너랑은 안 본다고…! 차라리 혼자 보고 말지.”
반응을 보니 잘하면 같이 영화관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방금 훅 들어왔던 상황 때문에 놀랐는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한숨을 내쉬는 렌카. 그런 렌카를 곁눈질하며 천천히 운전을 해나가던 나는, 그녀의 집이 있는 동네로 진입했다.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고풍스런 가옥. 그 앞에 차를 대어놓은 내가 말했다.
“들어가고, 그거 잘 생각해봐요.”
오늘 언급했던 코스프레를 말함이었다. 이를 눈치챈 렌카가 자신의 입술을 안쪽으로 오므리더니 조수석 문을 열었다.
“태워줘서 하나도 안 고마워.”
여느 때처럼 츤데레 같은 감사인사를 전한 그녀가 담요를 잘 접어두고 시트 위에 올려놓았다. 이후 콧방귀를 훅 내뿜고는 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길쭉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를 느릿하게 출발시킨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스토어에 들러 입욕제를 샀다. 오늘 분위기를 내서 미유키를 자연스럽게 잠자리로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미유키를 아예 탈진시켜놓으면, 힘들어서 공부라는 단어를 꺼낼 엄두조차 못 내겠지.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뭐 어떠랴. 가끔은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