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15)
“아! 마츠… 다 선배!”
점심시간.
또 다시 학생회에 간 미유키와 따로 떨어져 혼자 교실로 돌아가려던 나는, 히요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처럼 밝은 낯으로 손을 흔드는 그녀가 보인다.
헌데 방금 내 성씨를 부를 때 조금 뜸을 들이지 않았나?
설마 어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벌써 히요리 자신의 식대로 이름과 성을 붙여서 부를 생각인가?
그래주면 오히려 좋지.
라는 생각을 한 나는, 히요리가 홀로 성큼성큼 다가오자 물었다.
“왜?”
“그냥 불러봤어요. 근데 선배를 보면 제가 항상 먼저 가는 것 같네요? 저 호리호리해서 힘든뎅…”
허리랑 팔다리는 얇은데 가슴이 크잖아.
미유키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호리호리한 건 아니니까 약한 척하지 마라.
난 안 넘어갈 거다.
“부른 사람이 와야지.”
시큰둥한 내 대답에 어제처럼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은 히요리가 말했다.
“그런 거예요?”
“어. 밥은 먹었어?”
“도시락 먹었어요. 선배는요?”
“방금 먹고 가는 길이야.”
“혼자?”
“아니, 미유키랑.”
“하나자와 선배랑요? 다른 선배랑은 안 드세요?”
“다른 선배 누구?”
“카페에서 같이 알바했던 분요. 검도부 부장 맞죠?”
“맞아.”
“그분은 어디 계세요?”
저런 질문을 할 만도 하다.
히요리는 내가 렌카와만 아주 가까운 사이인 줄 알 테니까.
“나나세 선배랑 있을 거야.”
“아! 그 귀여우신 선배요? 말투가 엄청 특이하던…”
말투는 너도 특이하단다.
“맞아. 두 사람이 엄청 친해.”
“소꿉친구?”
“비슷하긴 한데 아주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낸 건 아냐.”
“그렇구나… 좋겠당.”
“너도 미호 있잖아.”
“그래서 저도 좋아요. 하나자와 선배는 어디 계세요?”
“학생회 일하느라 먼저 갔어.”
“그럼 지금 혼자에요?”
“그렇지.”
“동성 친구는 없어요?”
이걸 있다고 해야 할까, 없다고 해야 할까.
남자들과는 교우관계를 거의 쌓질 않아서 대답하기가 좀 그렇다.
“근데 선배는 도시락 같은 건 안 싸와요?”
다행스럽게도, 히요리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질문을 해왔다.
뭐 저렇게 궁금한 게 많을까. 호기심이 충만한 3살 어린아이 같다.
그래도 히요리 자신이 직접 대화를 이어나가게끔 해줘서 기분은 좋다.
“안 싸.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중엔 그냥 급식 먹게 돼.”
“급식 맛없잖아요. 어제 한 번 먹어봤어요. 진짜 별로던데?”
“사료처럼 먹다보면 적응 돼.”
“그 직장인 같은 말투는 뭐예요? 영혼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넌 왜 혼자야? 미츠시마는?”
“교실에 있어요.”
“그럼 넌 왜 나왔는데? 밥도 먹었다며.”
“조용한 장소를 찾아보고 있었어요.”
“조용한 장소는 왜?”
“꿀꿀할 때 혼자 감상에 빠지려구요.”
그냥 땡땡이를 치기 좋은 장소를 찾는 거구나. 이해했다.
“어디 좋은 데 알아요?”
이어지는 히요리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인 내가 대답했다.
“알긴 아는데 그런 장소는 공유하면 안 되지. 혼자 감상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 찾아올 수도 있잖아.”
“그럼 둘이서 감상에 빠지면 되잖아용.”
“나쁘지 않네.”
“그렇죠?”
헤실거린 히요리가 빨리 안내를 해달라며 날 재촉할 때,
“거기, 학생.”
그녀의 뒤에서 교사로 보이는 중년 여자가 다가왔다.
히요리의 치마를 곁눈질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깐깐한 사람 같은데, 어쩌면 벌점을 받을 수도 있겠다.
“안녕하세용…”
교사의 시선에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다소 작아진 목소리로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히요리.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받아준 교사가 냉랭한 투로 물었다.
“치마가 왜 이렇게 짧지?”
“이거요? 그…”
왠지 히요리가 미유키에게 들었던…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을 들먹이면서 상황을 빠져나가려 할 것 같았기에, 나는 재빨리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교사에게 거짓말을 했다.
“제가 아까 전에 음료수를 쏟아버려서요.”
말을 한 직후 교사 몰래 히요리에게 공감하라는 듯 눈짓을 주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그녀가 잽싸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네. 맞아요. 이건 제가 교칙 통지문을 못보고 처음 줄여놨던 건데, 마침 라커에 있어서 갈아입고 왔어요.”
“다른 치마는 없고?”
“새로 산 게 하나 더 있긴 한데, 지금 세탁소에 있어요.”
“세탁소?”
“드라이클리닝 맡겼어요. 새 옷 냄새가 너무 심해서요.”
“그래? 어쨌든 벌점이야. 애초에 제복 치마를 그렇게 줄여선 안 되지.”
“지이이인짜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내일부터는 잘 입고 올게용… 네?”
양손을 모아 싹싹 비비며 발을 동동 구르는 히요리.
얼핏 경박하다고, 예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얼굴이 워낙 호감형인데다, 표정과 몸짓에서 진심이 묻어나왔기에 교사가 어이없지만 은근히 기분이 좋은 미소를 지었다.
“1학년이니?”
“맞아요.”
“이름.”
“아사히나 히요리에요. 1-C반이에요.”
“아사히나 히요리… 알았어. 내일 제대로 입고 오는지 확인해본다?”
“네! 감사합니다!”
히요리 특유의 말투가 듣기 좋고 웃겼는지 피식하는 교사.
다음부터는 절대 봐주지 않을 거라 말하며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히요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도와줄 필요 없었는뎅… 좋은 핑계가 있었단 말이에요.”
그 핑계가 미유키는 물론, 그녀가 속한 학생회를 곤란하게 만들 것 같으니까 그러지.
벌써부터 너와 미유키가 티격태격하게 되는 건 보기 싫단다.
“그랬냐? 말을 하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말을 해요? 저 놀리는 거예요?”
“아닌데.”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고맙습니다. 감사 선물로 스이츄 줄게요.”
“너한테 받은 거 아직 남았어.”
“또 먹으면 되지.”
“됐고, 너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점심시간부터 그렇게 입을 생각을 하냐?”
“왜요? 입을 수도 있죠. 근데 많이 짧아요?”
“어. 최소한 무릎 바로 위까지면 몰라도, 그건 좀…”
“조금 내려 입으면 여기까지는 오는데, 이것도 짧아요?”
그리 말한 히요리가 치맛자락을 좌우로 흔들며 내리더니, 자신의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후 치맛자락과 허벅지가 맞닿은 라인을 가리켰다.
그 뜬금없는, 다소 야릇하다고 할 수 있는 행동에 재빨리 고개를 돌린 내가 말했다.
“야, 야… 뭐하냐 지금?”
“아니, 물어보는 거잖아용. 얼른 봐봐요.”
“가리기나 해. 남들한테 오해 산다.”
“무슨 오해요?”
장난기가 가득 서려있는 얼굴을 보니, 날 놀리는 맛을 느끼고 있나보다.
우리 히요리… 정조관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니?
젖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어제도 그렇고… 자꾸 그러면 호되게 훈육을 하고 싶어진단다.
“이제 간다.”
“아 왜용…! 조용한 장소 안내해주기로 했잖아요.”
히요리는 남자들을 조종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기보다는 본능이라고 해야 옳다.
예쁜 얼굴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가벼운 애교를 부리는데, 저것에 안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일부러 여왕벌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저 말괄량이 같은 태도…
저게 여러 남자들의 호감을 사는데 큰 몫을 했겠지?
아마 지금도 히요리를 연모하는 그녀의 동창들이 수두룩할 거다.
몇몇은 같은 아카데미에 갈 수 없어서 엉엉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히요리의 뒤편에 있는 급식실을 가리킨 내가 말했다.
“급식실 뒤로 가보면 샛길이 있거든? 그쪽으로…”
“설마 저보고 혼자 가라는 거예요? 장난 안 칠 테니까 안내해주세요.”
“장난 때문이 아니라, 말로 알려줘도 될 만한 장소라서 그런 거야.”
“샛길만 따라가면 끝나요?”
“아니. 샛길을 따라가다가, 오른쪽 돌담이 약간 패여 있는…”
“복잡하당… 그냥 같이 갈까요?”
“일단 말부터 좀 제대로 들어볼래?”
“저한테 음료수 쏟았잖아요. 세탁비 받는 대신 안내해주는 걸로 봐드릴게요.”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교사에게 했던 핑계를 진실인 양 말하고 앉아있다.
뭐 이런 뻔뻔한 애가 다 있는지… 그래도 나 또한 원하니까 놀아줘야겠다.
“그래… 알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히요리가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친해진 남자가 나라서.
그리고 나와 말장난을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른 남자들한테도 이런 식으로 편하게 대하면 정말 크게 혼난다?
넌 오직 나한테만 이래야 돼. 나랑 이런 대화를 하는 것에만 흥미를 느껴야한다고.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킨 나는 기대감으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 히요리를 내려다보았다.
“따라와.”
“네. 근데 그 장소가 야외에요?”
“그렇지.”
“바닥이 흙밭이겠네요? 벌레도 많을 것 같은데…”
“흙밭은 아니고 평평한 시멘트 바닥이긴 한데, 여름에 모기가 많긴 해.”
“으… 저 모기 진짜 싫어하는데… 차라리 실내로 알려주시면 안 돼요? 야외면 비나 눈이 오는 날엔 못 쓰잖아요.”
“뭐가 이렇게 바라는 게 많아? 직접 찾든가.”
“…. 죄송해용. 야외도 좋아요.”
시무룩해져선 사과를 하는 그녀.
자신이 너무 오버를 하여 미안한 마음이 인 것 같다.
마음이 약해진다. 어차피 히요리를 비롯한 다른 히로인들과 쓰게 될 장소인데, 하나하나 공개하는 것보단 죄다 알려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을 한 나는 엄지로 내 어깨 뒤를 가리켰다.
“실내로 알려줄게.”
그러자 언제 쳐져있었냐는 듯 얼굴을 활짝 편 히요리가 대답했다.
“넹.”
뭐지? 텐션이 회복되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방금 구슬픈 표정은 연기였나? 왠지 닦인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기쁘기도 하지만 살짝 자존심이 상할 것도 같은, 그런 아리송한 감정이 든다.
이런 게 하나하나 쌓이기 시작하면 이용해먹기 딱 좋은 호구가 되는 건데… 히요리는 겉은 경박해보여도 속은 무척이나 따뜻한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굴 이용할 성격이 절대 아니고, 호의는 호의로 돌려주는 사람이니 뭐든 잘해주면 다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다.
나중에는 바꾸겠지만, 지금의 나는 딱 이 포지션을 잡는 게 좋아 보인다.
틱틱대기는 하지만 부탁은 잘 들어주는…
그래, 마치 렌카 같은 츤데레 말이다.